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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리에' 끝난 이재오 의원의 자전거 이벤트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자전거 행사가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경부운하 공약에 대한 의지를 떨치고 관심을 모으는데 성과가 있었다. 5일째, 마지막날을 달린 자전거 행렬은 자신감으로 들뜨고, 주위의 격려에 고무되어 있었다. 가을의 따가운 햇살도, 심술궂은 가을비도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하루 100km를 넘게 달리고도 끄떡없는 이 의원의 체력도 놀랍다.

 

우리도 의도치 않은 호사를 누리고 있다. 차에서 내다보는 풍경과 자전거를 타며 느끼는 가을이 이렇게 다를까 싶다. 얼굴을 스치는 신선한 공기와 황금들판을 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상이다. 소기의 성과를 얻은 이 의원측과 기대치 않았던 횡재를 한 우리들 사이의 긴장도 현저히 줄었다.

 

하지만 자전거타기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에게 갈수록 커지는 의문이 있다. 이 의원측이 마련한 이 행사는 경부운하에 대해 스스로의 이해를 높이고,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탐방이라고 했다. 하지만 하루 10시간을 넘게 자전거 타느라 그런 의도는 거의 달성되지 못한 것 같다. 식사 때 만나는 주민들에게 잠깐씩 듣는 말이라야 자기 마을을 들른 손님에 대한 인사와 덕담 정도다. 좀 더 나가봐야 정권창출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는 정도다.

 

10여대의 자전거와 여러 대의 지원차량을 염두에 두고 마련한 코스 역시 목적 달성을 어렵게 하고 있다. 자전거 행렬은 강변을 따라 가기 어렵고, 강변길을 간다고 한들 무슨 조사를 할 경황도 없다. 지역 현황을 소개하는 순서도 없고 전문가의 설명도 없다. 촌부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도 없으며 이들에게 나눠 줄 자료도 없다.

 

그렇다고 이 의원에게 이런 악조건을 대신할 수단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참여하는 분들 중에 운하에 대해 특별한 지식을 가진 분도 없다. 이 의원 스스로 탐방단을 환경, 기술 비전문가 집단이라 말한다. 대통령배 축구에 대통령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경부운하 탐방에는 경부운하가 없다. 탐구와 방문도 찾기 힘들고, 질주만 있을 뿐이다.

 

이 의원은 탐방 소감에서 ‘환경단체들이 현장에 와봐야 한다. 어느 지역이 어려운지 지적하면 이제 답변할 수 있다’까지 했지만, 이는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낙동강과 한강을 두고 가까이 혹은 멀리 달렸을 뿐이지, 강에 들어가 손에 물 한번 적셔보지 않았다. 논란의 핵심이 되는 백두대간 구간은 터널을 통해 순식간에 지나쳤고, 운하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수량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토론한 적도 없다.

 

발품 판다고 경부운하 정당성 높아지나

 

이 의원의 운하와 강에 대한 생각은 매우 단순하다.

 

“100년 전까지, 낙동강과 한강에 배가 오고갔으니, 상주-충주 간 40km만 뚫으면 된다.”,  “지난해 홍수 때, 20일 동안 피해지역을 다녀 봤는데, 퇴적물이 많이 쌓여 문제다. 전국의 하천을 한 번 손 봐야 하는데, 운하를 만들면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 좀 좋으냐”

“배도 다니지 않는 쓸모없는 죽은 강을 활용하고 가꿔야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한강과 낙동강을 오르던 배는 흘수선(물 속 깊이)이 겨우 1-2m에 불과한 20톤 미만의 소형 돛배였다. 물길을 정비하기도 했지만, 9m 이상의 수심을 확보해 5000톤 바지선이 다니도록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전국의 하천을 준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당장 환경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들의 비난을 면치 못한다. 효과도 별로 없을뿐더러, 막대한 비용 때문에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배가 다니지 않는다고 ‘버려져 있는 쓸모없는 강, 죽은 강’이라고 말하는 것도 지나치다. 강은 그렇게 존재하고 흐르기 때문에 물을 정화하고 생명을 품을 수 있다.

 

빡빡한 일과를 동행하며 우리는 이 의원의 강한 의지에 감탄했다. 하지만 이렇게 발품을 팔고 몸 고생을 한다고, 운하의 타당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경부운하에 대한 기본 골격조차 발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런 행사들로 경부운하에 대한 지지가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은 이해하기 힘들다. 하다못해 침대도 과학이라고 광고하는 시대, 이 의원은 자신의 영감을 바탕으로 운하의 성공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이 의원은 자신의 높은 의지로 경부운하 공약을 가다듬는 작업을 독려하는 게 옳았

다. 스스로가 현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공부하고 싶었다면, 자전거 행진이 아닌 조사단을 구성하거나 훌륭한 안내자를 섭외하는데 힘을 쏟았어야 했다. 우리가 5일 동안 등과 배에 붙이고 다녔던 주장처럼, ‘홍보에 앞서 검증을’, ‘홍보에 앞서 운하 실체 발표부터’ 했어야 한다.

 

초유의 토목공사를 이 의원의 ‘예언과 신념’만 믿고 나가자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이 의원의 저돌적인 체력과 추진력은 신뢰하지만, 유력정당의 최고위원이 마련한 행사치고는 내용이 너무 허술하다.


태그:#경부운하, #이재오, #자전거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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