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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흘리는 지구의 눈물인 이라크전쟁. 가공할 위력의 슈퍼폭탄이 터지고, 지축이 흔들리면서 모래폭풍이 불고, 어린이를 포함한 무수한 시민들이 죽어가는 참혹한 전쟁이다.

그 전쟁터에 대한민국 정부는 자이툰부대를 파병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라크전쟁이 왜 발발했는지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다. 적어도 브렌단 넬슨 호주 국방장관이나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

그건 이라크전쟁을 일으키고 지금까지 주도해온 미국, 영국, 호주국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해당국가 지도자들이 자국민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를 말했지만 정작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던 것.

 브란덴 넬슨 호주 국방장관.
 브란덴 넬슨 호주 국방장관.
ⓒ 호주국회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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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겁결에 흘러나온 호주 국방장관의 석유 관련 발언

지난 7월 5일, 브렌단 넬슨 호주 국방장관은 <2007년 호주 국방백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호주가 이라크전쟁에 동참한 이유는 중동지역의 석유를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들도 기대하지 않았던 아주 뜻밖의 답변이었다.

이어서 넬슨 장관은 "원유생산량 세계3위 국가인 이라크를 포함한 걸프지역은 세계 에너지의 주요 공급원"이라면서 "호주는 석유공급처의 안정적인 확보가 전략적으로 불가피"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호주는 원유수요의 약 20%를 중동지역에서 공급받는다.

넬슨 장관의 발언은 제2차 이라크전쟁 4년 반 만에 나온 참전국가 정부당국자의 첫 석유 관련 언급이었다. 넬슨의 발언 내용 자체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이라크전쟁 반대론자들 말고는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이 내용이 국방장관의 입에서 엉겁결에 흘러나온 것.

문제의 발언 직후,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넬슨 장관은 "이라크전쟁의 주된 이유는 사담 후세인의 압정에 시달리는 이라크에서 인도주의를 회복하는 것"이라면서 "석유는 수많은 이유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앞의 답변을 얼버무렸다.

넬슨의 발언은 예상대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넬슨은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일본, 중국, 인도 등 3개국 공식방문길에 올랐다. 대신 존 하워드 총리와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이 나서서 "이라크전쟁은 테러조직 소탕전일 뿐"이라며 국방장관의 발언을 부정하고 사태수습에 진땀을 흘렸다. 넬슨 장관은 귀국 후에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4년 반 만에 불편한 진실 인정한 미국의 전 '경제 대통령'

그러나 뜻밖에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한테서 브렌단 넬슨 호주 국방장관의 7월 5일 발언을 뒷받침해주는 메가톤급 코멘트가 나와서 미국 정가에 핵폭풍이 불고 있다.

9월 18일 판매가 시작된 그린스펀의 회고록 <격동의 시대 회고 : 신세계의 모험(The Age of Turbulence : Adventures in a New World)>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는 것.

"이라크전쟁의 주된 원인이 석유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게 정치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현실이 서글펐다(I am saddened that it is politically inconvenient to acknowledge what everyone knows: the Iraq war is largely about oil)."

 그린스펀 전 미 연준 의장의 이라크전쟁 관련 발언을 보도한 <시드니모닝헤럴드>.
 그린스펀 전 미 연준 의장의 이라크전쟁 관련 발언을 보도한 <시드니모닝헤럴드>.
ⓒ 시드니모닝헤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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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그린스펀이 누구인가?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자를 포함한 6명의 미국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중책을 맡아온 자칭 '평생 자유주의를 신봉한 공화당원(lifelong libertarian Republican)'이다.

또한 그린스펀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18년 동안이나 역임하면서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던 공신력이 높은 경제전문가다. 어디 그뿐인가. 퇴임 후에도 그가 던지는 말 한 마디에 세계주식시장이 요동칠 정도로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대량살상무기의 허구, 거짓으로 일관한 이라크전

그런 그린스펀의 회고록 내용은 부시 대통령이 그동안 주장해온 이라크전쟁 명분을 일거에 거짓말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부시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의 독재정치 종식과 이라크가 보유한 대량살상무기(WMD)의 척결, 그리고 이라크의 대테러 지원을 차단하기 위한 불가피한 전쟁"이라고 줄곧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4년 반 동안 이라크 어디에서도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측근들은 교수형과 총살형에 처해졌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기자와 인터뷰를 한 존 포크너 호주 상원의원(노동당 소속 중견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꼭두각시인 하워드 총리는 거짓에 근거해서(based on a lie) 호주군인들을 위험천만한 이라크 전쟁터로 몰아넣었다. 호주국민들은 다음 선거에서 그 사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호주의 철군을 강하게 암시하는 노동당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이는 호주국민의 다수 의견이기도 하다. 브렌단 넬슨 국방장관의 석유 관련 발언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3%의 응답자가 철군을 지지한다는 의견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한편 2003년 이라크전 발발 당시 파병국가는 36개국이었다. 그러나 2004년 스페인, 뉴질랜드,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등 11개국이 철군했다. 2005년에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4개국이, 2006년 7월에는 일본 육상자위대 병력이 철수했고 심지어 영국군마저 철군을 서두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이어 나온 넬슨 장관과 그린스펀 전 의장의 석유 관련 발언은 국익을 빙자한 '침묵의 무덤'에서 피어난 '진실의 들꽃 한 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라크에서 전사한 호주병사의 송환 장면.
 이라크에서 전사한 호주병사의 송환 장면.
ⓒ ABC-TV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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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시드니 시위.
 호주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시드니 시위.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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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가 미국의 중동침략을 지원하는 걸 반대하는 시드니 시위 장면.
 호주가 미국의 중동침략을 지원하는 걸 반대하는 시드니 시위 장면.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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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연장' 내비친 노무현, "집권하면 철군"하겠다는 호주 야당 당수

2007년 총선에서 야당이 집권하면 이라크 주둔 호주군인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한 캐빈 러드 노동당 당수는 APEC 정상회의 참석차 호주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나의 공약은 변함이 없다"고 재차 확인했다.

이에 실망한 부시 대통령이 러드 당수를 이런저런 얘기로 설득하면서 재고를 당부했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그 대신 21개국의 정상들이 참석한 빡빡한 APEC 일정 중에 일부러 만난 러드 당수에게서 다음과 같은 반론을 들어야 했다.

"이라크전쟁의 원인으로 생각했던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고 수니파와 시아파의 끔찍한 시민전쟁으로 치닫기 때문에 미국이나 호주는 참전명분을 잃었다. 반면에 아프가니스탄 참전은 9․11 테러범으로 지목되는 알카에다의 리더 오사마 빈 라덴이 그곳에 숨어있기 때문에 대테러전쟁의 명분이 살아있다. 노동당이 집권하면 아프가니스탄 파병 호주군인의 숫자를 늘릴 수도 있다."

 캐빈 러드 노동당수와 만나는 부시 대통령.
 캐빈 러드 노동당수와 만나는 부시 대통령.
ⓒ 디 오스트레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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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APEC 기간 중에 한미정상회담을 한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서 "이라크에서 자이툰부대가 임무를 매우 능숙하게 수행해 평판이 높다"는 말과 함께 사실상 자이툰부대 파병 연장을 요청하는 제의를 받고 러드 당수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국회에서 연말까지 임무 종료를 결의한 만큼 국회와 협의해 동맹국으로서 할 일을 찾아 나갈 것"이라면서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자의 석방을 위해 미 정부가 지원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검토 방침' 시사는 결국 자이툰부대 파병연장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국방부도 지난 6월 국회에 제출한 임무종결계획서에 철군 시한을 명시하지는 않았다는 한국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이라크에 태어난 죄만으로 삶을 빼앗긴 민간인들

한편 AP통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군 전사자가 2007년 4월에 104명, 5월에는 109명으로 두 달 연속 1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매일 3.5명 정도 숨진 꼴이다. 2003년 개전 이후 2007년 6월까지 미군 사망자는 모두 3452명으로 집계됐다.

이라크 민간인의 희생은 미군의 희생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매달 1000명이 넘게 희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이라크 민간인 희생자는 최소 6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그러나 이라크 정부가 현재까지 공식적인 인명피해 통계를 발표하지 않고 있어 전쟁 희생자 숫자는 보도기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9월 16일자 영국 <옵서버>는 "2003년 미군의 이라크 침공 이래 민간인 희생자 수가 120만명에 달해 1994년 100만여명의 사상자를 낸 르완다 희생자 수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전쟁난민의 숫자도 상상을 뛰어넘는다. 지난 4년 동안 발생한 이라크 난민은 전체 인구(2600만명)의 15%에 가까운 400만명에 달한다. 그 중 60% 정도가 아동으로 밝혀져 국제사회의 지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미국은 이라크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 월평균 84억 달러(약 7조8천억원)라는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쏟아 붓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사용한 미군의 이라크 전쟁비용이 4500억 달러(약 414조4천억원)에 달한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대량살상무기를 들먹이면서 거짓으로 유발된 이라크전쟁은 당초 예상과 달리 무려 4년 반 동안 이어지면서 최소 6만5천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그래서였을까. 시드니 APEC에서 열린 부시 반대 시위는 사실상 반 이라크전쟁 시위였다.

지난 9월 8일 오후, 초봄처럼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하이드파크 분수대의 물줄기를 맞으면서 피맺힌 목소리로 '전쟁 반대(Stop the War)'를 외친 중동계 여성 이민자의 처연한 절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분수대에서 '전쟁중지'를 외치는 여성.
 분수대에서 '전쟁중지'를 외치는 여성.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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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는 부시의 꼭두각시'라며 호주의 이라크 파병을 비판, 풍자한 APEC 시위 참가자.
 '하워드는 부시의 꼭두각시'라며 호주의 이라크 파병을 비판, 풍자한 APEC 시위 참가자.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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