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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노마파나 국립공원 입구
 라노마파나 국립공원 입구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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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에 가이드가 나에게 찾아왔다. 가이드의 이름은 도핀. 그는 어제도 하루종일 라노마파나 국립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나는 그와 함께 식당에 앉아서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했다. 어떤 코스를 따라서 트레킹할까?

가장 일반적인 트레킹 코스는 6시간 동안의 주간 트레킹 그리고 2시간 동안의 야간 트레킹이다. 모두 합쳐서 8시간이다. 그러니까 오늘 오전에 출발하면 밤이 되어서야 다시 마을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이 코스는 공원입구에서 출발해서 다시 공원입구로 돌아오는 코스다.

라노마파나 국립공원의 가이드 도핀

이 코스 말고 다른 코스도 있다. 그 코스도 역시 6시간 짜리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서 6시간을 걷고 마을로 돌아오는 코스다. 공원입구에서 출발해서 마을입구에서 끝나는 코스가 된다. 공원 입장료는 하루에 2만 5천 아리아리, 2일에 3만 7천 아리아리다. 하루입장료가 우리 돈으로 대략 1만 3천원 정도다. 그것과는 별도로 가이드비용도 따로 지불해야 한다. 도핀이 말한다.

"며칠이나 트레킹을 할 예정이에요?"
"오늘 하루요. 입장료가 너무 비싸네요."

위의 두 코스를 모두 경험하려면 오늘내일 이틀동안 트레킹을 해야한다. 하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나는 그냥 주간 6시간+야간 2시간 코스를 택했다. 각자 트레킹 준비를 마치고 9시30분에 마을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 트레킹 코스 힘들지도 않고 위험하지도 않아요."

내가 좀 불안하게 보였나? 아니면 긴장한 것처럼 보였나?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마음을 편하게 갖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울창한 숲속에서 하루종일 보낸다고 생각하니까 약간 흥분되는 것은 사실이다. 오늘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을까.

미니버스를 타고 공원입구에 도착한 우리는 입장권을 사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트레킹 과정 자체는 이살로 국립공원의 트레킹과 비슷하다. 가이드를 만나고 먹을거리를 사고, 입장권도 사고 가방을 메고 걷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이살로와는 다르다. 여기는 온통 열대우림이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공원입구에서 한발자국만 들어가면 숲속에 파묻히게 된다.

트레킹 코스 양쪽으로는 수많은 나무가 있고 그 너머로는 차가운 물이 흐른다. 주간트레킹의 목표지점은 바로 계곡 상류에 있는 커다란 폭포에 도착하는 것이다. 물론 아무 생각없이 걷기만 한다면 그곳까지 가는 데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목표지점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도중에 많은 동물들을 찾아야 한다. 빨리 목표지점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 등산하던 식으로 '빨리빨리'를 외치다가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다.

도핀과 나는 열심히 두리번거리면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내가 두리번거려봐야 과연 무엇을 얼마나 찾을 수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소가 뒷걸음 질 치다가 쥐를 잡는 것처럼, 예쁘게 생긴 여우원숭이를 한마리 발견하게 될지. 이곳에도 외국인 여행자들이 많다. 가이드 중에 한 명이 여우원숭이를 발견하면, 여행자들은 그 주변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많은 여우원숭이들이 있는 라노마파나

 붉은배여우원숭이
 붉은배여우원숭이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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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all Teeth Sportive Lemur
 Small Teeth Sportive Lemur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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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노마라파 국립공원은 아주 넓다. 그 넓은 곳 중에서 일반 여행객들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는 제한되어 있다. 공원 깊숙한 곳에는 여행객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도 있을 것이다. 여우원숭이나 희귀동물을 연구하는 학자라면, 그럴듯한 직함을 가진 기자라면 아마 그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깊은 곳에 많은 여우원숭이가 살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오늘 볼 수 있는 여우원숭이는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열심히 두리번거린다. 한마리라도 더 찾고 더 보기 위해서. 도핀이 말했다.

"여기에는 두 종의 희귀한 여우원숭이가 있어요."
"어떤 것들인데요?"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 큰대나무여우원숭이요."

영어로는 Golden Bamboo Lemur, Greater Bamboo Lemur라고 부르는 놈들이다.

"두 종 모두 대나무를 먹거든요. 원래 개체수가 많지 않은데다가, 사람들이 대나무를 많이 베어가서요. 아마 곧 멸종할 거에요."

도핀이 섬뜩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인간이 마다가스카르에 상륙한 이후로, 대략 십여종의 여우원숭이가 멸종했다. 그런데 대나무를 먹는 여우원숭이가 또 멸종한단 말인가? 이 주위에 사는 사람들은 대나무를 베어가서 집을 만들고 그 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트레킹 코스의 일부에도 대나무를 베어서 그 길 바닥에 깔아놓은 곳이 있다. 이런 식으로 대나무를 사용한다면, 그래서 대나무 숲이 점점 줄어든다면, 결국 그것은 대나무를 먹는 여우원숭이의 멸종을 재촉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쪽으로 오세요."

도핀은 나를 숲속으로 이끌었다. 트레킹 코스에서 벗어나서 나무와 풀을 헤치며 숲속으로 걸어갔다. 숲 바닥에는 온갖 나뭇잎이 깔려있고 도처에 거미줄이 널려있다. 여우원숭이들이 이런 곳에서 산단 말인가?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에요."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도핀이 나무 위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뭔가 시커멓게 보이는 것이, 털로 뒤덮인 커다란 것이, 나뭇가지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웅크리고 있는 건지 아니면 고개를 숙이고 잠을 자는 건지 모르겠다. 얼굴도 보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저놈이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인가?

"움직일 때까지 조금 기다려보죠. 우리한테는 시간이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기다렸다. 질척질척한 숲 바닥에는 앉을 만한 곳이 없다. 나는 그냥 고개를 들고 그 놈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아무 움직임도 없는 동물을 쳐다보고 있는데도 전혀 지루하거나 지겹지가 않다. 곧 움직일 거라는 기대감 때문일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잠복근무를 하는 형사처럼, 우리는 계속 기다렸다. 몇팀의 외국인 여행자들이 이곳으로 왔지만, 움직임이 없는 동물을 보더니 그냥 지나쳐갔다. 이제 이곳에는 도핀과 나 두 명 뿐이다. 아니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까지 셋이다.

시간이 지나자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똑바로 일어나서 앉더니 곧 대나무를 잡고 뜯어먹기 시작했다. 두 발로 나무를 잡은 채 앉은 자세로, 두 손으로는 대나무를 부러뜨려서 먹는다. 저 놈이 대나무를 부러뜨릴 때마다 '딱!'하는 소리가 고요한 숲에 울려퍼진다.

역시 오랫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다. 이곳에서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가 대나무를 먹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먹는 모습보다는, 앉아있는 모습이 더 독특하다. 굵지않은 대나무를 두 발로 잡고 똑바로 앉아있는 자세다. 저 위에서 저렇게 중심을 잡고 앉아 있을 수 있을까? 그것도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저 놈은 여러가지 면에서 꽤나 특이한 영장류다. 그 특이함 때문에 희귀종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나무를 먹는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

 대나무를 먹고 있는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
 대나무를 먹고 있는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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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색젠틀여우원숭이
 회색젠틀여우원숭이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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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우리는 걸음을 옮겼다. 다시 트레킹 코스로 돌아온 우리는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빵과 바나나를 먹고 음료수를 마셨다. 갑자기 한가지가 궁금해졌다.

"여우원숭이들이 바나나도 먹나요?"
"먹죠. 하지만 여우원숭이들에게 바나나를 던져주는 건 좋지 않아요."

물론 그런 건 좋지 않다. 난 그냥 궁금했을 뿐이다. 멸종해가는 여우원숭이들이 사는 곳에 들락거리는 것도 좋지 않은데, 바나나까지 던져준다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도핀이 나에게 물었다.

"여기 오기 전에 어디 여행했어요?"
"이살로에 있었어요."
"이살로에요? 누가 가이드였어요?"
"조지요. 조지 알아요?"
"예, 알죠."

이살로에서 라노마파나는 꽤 먼 거리인데. 가이드들끼리 모여서 한번씩 단합대회나 망년회라도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나무에 기대앉아서 말했다.

"아직 시간 있죠?"
"예. 시간 충분해요."
"그럼 여기서 좀 더 쉬었다가 가죠."

나는 나무에 기대앉아서 숲을 바라보았다. 이곳에는 지나가는 외국인 여행자도 없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울창한 숲의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비친다. 저렇게 비치는 빛을 '야곱의 사다리'라고 부르던가? 수많은 수풀이 우거진 이 열대우림은 온통 신비롭게 느껴진다. 이곳 어딘가에서 유니콘이 한마리 나타나더라도 놀랄 것 같지 않다. 휴식을 취한 우리는 다시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유니콘이 아니라, 여우원숭이를 찾기 위해서.

 라노마파나 국립공원
 라노마파나 국립공원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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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7년 여름, 한달동안 마다가스카르를 배낭여행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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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과 장르소설을 좋아합니다. 저서로 <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실크로드의 땅, 중앙아시아의 평원에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