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언론재단이 10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주최한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로 본 국제보도 시스템의 문제점'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현직 기자들은 '외신 맹신주의'를 두고 열띤 찬반토론을 벌였다
 한국언론재단이 10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주최한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로 본 국제보도 시스템의 문제점'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현직 기자들은 '외신 맹신주의'를 두고 열띤 찬반토론을 벌였다
ⓒ 안윤학

관련사진보기


7월 25일, 한국 정부 소식통 "피랍자 가운데 8명 석방" 언급. 외신들 "일부 미군기지 도착", "8명 석방 중 다시 끌려가" 등 보도 → 8명 석방 안 되고 배형규 목사 피살

8월 1일, AP와 로이터통신 "아프간 정부군의 인질 구출 군사작전 개시" 보도 →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짐

<동아일보>가 지난 4일 '아프간 피랍사건이 남긴 국내 언론보도 숙제'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언급한 오보 사례다. 이 기사에서 신문은 "사실 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외신을 인용 보도했다"고 반성했다.

40여일 동안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인질 사태를 겪으며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은 한국교회의 공격적인 선교 방식만은 아니다. 외신에 의존한 채 오보를 양산했던 국내 언론에도 비난이 쏟아졌다.

이와 관련해 피랍 사태를 취재했던 현직 기자, 언론학자 및 중동지역 전문가가 모여 국제보도 시스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언론재단이 10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주최한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로 본 국제보도 시스템의 문제점' 긴급토론회에서다.

아프간 사태 오보 원인은 '외신 맹신주의'

이날 토론회에 모인 언론인들은 하나같이 "아프간 피랍 사태를 통해 한국의 국제보도 수준을 여실히 드러냈다"며 '취재 능력의 한계'를 인정했다. "각 언론사의 취재지원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탄식도 나왔다.

그러나 아프간 오보의 원인으로 지적된 '외신 맹신주의'에 대해서는 찬·반으로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외신 오보조차 받아쓰기 경쟁을 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주류를 이룬 가운데 일부는 "열악한 취재 환경에서 나름대로 사실 확인을 위해 애썼다"며 반박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들은 아프간 현지 취재를 제한한 정부에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보수언론이 '정부가 테러단체인 탈레반과 협상을 벌여 국제적 망신을 샀다'고 보도한 데 대해 정우량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는 "아프간의 현실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보도"라고 힐난했다. 탈레반은 '테러단체'가 아니라 아프간 지역의 50%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무장세력이라는 주장이다. '테러단체'라는 지칭은 미국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란 지적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창룡 교수(인제대 언론정치학부)는 "무분별한 외신 인용, 외신 만능주의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면서 "미국 대형 언론사의 오보까지 한국언론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은 수치"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그는 "외신을 판단할 수 있는 내적 역량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또 김 교수는 "정부-언론의 협조체제가 부실했던 것 아니냐"며 "< KBS >, <연합뉴스> 등 국가기간 방송·통신사들은 정부와 협상을 벌여서라도 현장에 갔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타 언론사와는 달리 이들은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뒷받침했다.

이어 김 교수는 "외신은 무조건 사실이라는 고정관념, 외신은 오보도 면피된다는 무책임함, 신중함보다 신속함만 내세우는 보도풍토에서 피랍자와 가족은 이중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정부를 겨냥해서도 "안전을 이유로 현지 접근을 막는다면 한국언론의 발전에 역행하게 된다"며 일침을 가했다.

중동 전문가로 알려진 서정민 교수(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는 ▲중동 특파원이 양적으로 부족한 점 ▲중동 지역 전문가가 부족한 점 ▲인질사태 등 긴박한 사안에 대한 보도준칙이 없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박중언 기자(<한겨레> 국제뉴스팀장)은 "제한된 상황에서도 현지에서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해 취재를 맡기는 등 '제3의 길'을 찾아야 했다"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사실확인을 했다면 오보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되었다 석방된 19인이 2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기자회견에 앞서 사과의 뜻으로 인사를 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되었다 석방된 19인이 2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기자회견에 앞서 사과의 뜻으로 인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8명 석방' 오보는 정부가 확인한 것... 외신 맹신보다는 정부가 문제"

이날 일부 참석자들은 '외신 맹신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정부가 언론의 아프간 취재를 금지하는 데다가 사실 확인에 적극 응해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외신에 의존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는 반론이었다.

토론에 나선 김익진 기자(< YTN > 국제부장)는 "외신이 오보일 수 있겠다는 가정을 깔고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접근했다"며 "현재 지적되는 오보들도 시간이 지나봐야 확인될 것이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김 기자는 정부를 겨냥했다. 그는 정부가 한국언론의 아프간 취재를 막은 사실을 거론한 뒤 "외신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정부가 사실확인을 해 준 적이 거의 없다"며 "외신 맹신의 문제가 아니라 외신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따졌다. 

김태선 기자(< KBS > 국제팀)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그는 "'8명 인질 석방' 보도는 정부 측 핵심 관계자가 사실확인을 해줬지만 결국 오보였다는 게 드러났다"면서 "외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부에 확인 취재를 해도 거의 성과가 없었다"고 거들었다.

최병국 기자(연합뉴스 국제뉴스2부장)는 "외신에 의존해 보도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특파원의 수나 이들에 대한 질적 지원정책이 현저히 뒤처지는 등  취재 능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외신에 대한 사실 확인이 어려운 현실이었다는 해명이다.

이어 최 기자는 "파키스탄 전문가를 찾아보려고 했고, 사태 발생 초기에 아프간 AIP사와 계약을 맺어 보도하는 등 나름대로 '외신 맹신'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고 뒷받침했다.

"탈레반이 테러집단이라고? 한국언론의 무지 드러낸 것"

왼쪽부터 최병국 기자(<연합뉴스> 국제뉴스2부장)과 전우량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왼쪽부터 최병국 기자(<연합뉴스> 국제뉴스2부장)과 전우량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 안윤학

관련사진보기

토론회에서는 일부 언론이 "테러단체인 탈레반과 협상을 벌여 미국의 대테러전쟁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는 등의 보도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도 나왔다.

박중언 기자는 "탈레반은 테러세력이 아니라 납치세력 또는 반정부세력"이라며 "탈레반과의 협상을 비판하려면 협상 시작부터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자국민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구나'하는 신뢰를 구축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우량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도 "아프간은 내전 중인 데다가 탈레반은 과거 정부를 구성했던 단체로서 아프간 지역의 50%가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면서 "탈레반이 테러집단이라고 보도하는 것은 지식이 부족한 데에서 비롯된 보도"라고 거들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특파원 제도의 문제, 그리고 언론 보도의 윤리 문제에 대해서도 거론됐다. 김 교수는 "영어·구미 중심의 특파원, 사건이 발생해야 비로소 현지에 파견하려는 임기응변식 운영제도" 등을 비판했다.

또 그는 "외신에서 '몸값으로 2천만 달러가 지불됐다', '피랍자 일부가 성폭행 당했다' 등의 보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바로 인용·보도하는 것은 국내언론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태그:#아프가니스탄 피랍, #국제보도, #외신, #오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