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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풍루. 화성행궁의 정문이다. 잡상이 올라있어 그 격이 높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앞에서 월요일을 제외한 매주 무예24기공연과 일요일에 장용영 수위의식을 거행한다.
 신풍루. 화성행궁의 정문이다. 잡상이 올라있어 그 격이 높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앞에서 월요일을 제외한 매주 무예24기공연과 일요일에 장용영 수위의식을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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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이상이 남아있는 화성행궁

수원화성은 정조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새로운 조선으로의 변화를 꿈꾸며 지은 성곽이다. 18세기 군사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는 세계인이 알아주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수원화성엔 수원화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정조가 수원화성에 왔을 때 머물던 곳인 행궁이 있다. 이를 '화성행궁'이라고 부른다.

행궁(行宮)이란 임금이 도성 외로 나갔을 시 머무르던 곳을 말한다. 머무르는 목적은 주로 전란, 휴양, 능원, 참배 등이 그 목적이라 하겠는데, 화성행궁은 화산 헌륭원 참배의 목적 외에 정조 임금이 1804년 양위 후 장차 화성에 내려와 노후를 보낼 시설로 지어졌다. 우리나라의 행궁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 바로 이 화성행궁이다.

기자는 이번에 수원화성에 갈 기회가 있었다. 후배 1명과 같이 수원화성에 왔는데, 이번이 3번째로 온 것으로서 이젠 제법 수원화성 내의 지리는 어느 정도 파악할 정도였다. 올 때마다 그 새로운 모습에 매료되고, 언제 한번 1박 2일 정도 시간 내서 이곳에 머무르면서 주위의 문화재와 수원화성의 모든 면을 세세히 살펴보고 싶다.

아무튼 기자는 수원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화성행궁으로 갔다. 화성행궁에서 하는 무예24기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무예24기 공연은 상설공연으로서 3월~12월까지 하며, 평소엔 화요일~일요일까지 공연을 하고 있다. 공연시간은 오전 11시로, 기자가 화성행궁에 도착하니 다행히 시간이 딱 맞았다.

 대장금 사진. 이영애와 그 옆에 대장금이라는 드라마 제목이 써있다. 드라마 촬영장임을 알리는 것은 나쁠 것이야 없지만서도 조금 걸린다.
 대장금 사진. 이영애와 그 옆에 대장금이라는 드라마 제목이 써있다. 드라마 촬영장임을 알리는 것은 나쁠 것이야 없지만서도 조금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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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24기 공연을 본 후 후배와 함께 화성행궁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화성행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화성행궁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려는 참에 옆에 있는 큰 사진에 눈길이 갔다. 바로 텔런트 이영애씨의 사진이었는데, 드라마 <대장금>에 나오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크게 '대장금(大長今)'이라는 드라마 제목이 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작게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라고 쓰여 있었다.

솔직히 입구부터 이렇게 한 것은 아니다 싶으면서도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도 중요하지만, 상업적인 면도 간과할 수 없으니 이 정도의 홍보를 통해 내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쪽을 공부하고 이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약간 껄끄러운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이 화성행궁은 예전부터 계속 남아있던 궁궐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의도적으로 화성행궁을 파괴하였다. 결국 당시엔 노래당과 낙남헌만 남겨두었고, 이는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다수는 최근에 들어 복원한 건물로서 1996년부터 복원공사가 시작되었고, 이는 2010년에 완료되기로 되어 있다.

비록 복원된 건물이라고 할지라도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을 잘 적용하고 만들고 있어서 그 역사적 의의는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약용이 고안하여 만든 거중기

 거중기. 정약용이 <기기도설>을 보고 고안 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수원화성을 쌓았고, 많은 노동력을 절감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실학자들은 말 그대로 실생활에 유용한 학문을 하였다.
 거중기. 정약용이 <기기도설>을 보고 고안 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수원화성을 쌓았고, 많은 노동력을 절감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실학자들은 말 그대로 실생활에 유용한 학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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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를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거중기이다. 거중기란 정약용이 고안한 기계로서 1794~1796년까지 화성을 축성하는데 유용하게 이용된 기계이다. 도르레의 원리를 이용해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장치로서, 정약용이 정조가 중국에서 들여온 <기기도설(奇器圖說)>이라는 책을 참고하여 개발한 것이다.

거중기의 사용법은 이렇다. 위에 4개, 아래에 4개의 도르래를 서로 연결하고, 아래 도르래 밑으로 물체를 달아맨다. 그리고 뒤 도르래의 양쪽으로 잡아당길 수 있는 끈을 연결하여, 이 끈을 물레에 감아 물레를 돌림에 따라 도르래에 연결된 끈을 통해 물체가 위로 들어올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여 수원화성을 쌓았고, 그래서인지 화성의 축조기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이며, 그 형태 또한 잘 정돈된 것이리라.

또 화성행궁 내부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 서비스가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즐김으로써 관광객들은 우리의 역사를 좀 더 친숙하게 여기게 되고, 또한 외국인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며,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한다.

 드라마 주인공인 장금 역의 이영애와 민정호 역의 지진희 모습. 굳이 행궁 내에 이런 장치를 설치할 필요까지 있나란 생각이 들면서 좀 씁쓸하다.
 드라마 주인공인 장금 역의 이영애와 민정호 역의 지진희 모습. 굳이 행궁 내에 이런 장치를 설치할 필요까지 있나란 생각이 들면서 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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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쪽에 두 명의 인물상이 있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놓았다. 바로 드라마 <대장금>의 주인공인 장금 역의 이영애와 민정호 역의 지진희의 모습이었다. 솔직히 여기서부터 약간 실망하기 시작하였다. 이건 좀 심하지 않나?

<대장금>이라는 드라마가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그 인기가 대단하였던 작품이라는 것은 기자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벌써 3~4년 전의 드라마이다. 드라마 종영 이후 1년가량 이런 식으로 꾸며 놓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지금까지 세트장처럼 해 놓는다는 게……. 솔직히 조금 이해가 되질 않는다.

화성 유수의 집무공간, 유여택

   유여택. 이곳에서는 평소엔 유수의 처소였으나, 정조가 올 시에는 집무공간이 된다. 이곳에서는 대장금 체험과 왕과 왕비 체험을 하고 있다.
 유여택. 이곳에서는 평소엔 유수의 처소였으나, 정조가 올 시에는 집무공간이 된다. 이곳에서는 대장금 체험과 왕과 왕비 체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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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에는 유여택(維輿宅)이라는 건물이 있다. 유여택이라는 이름은 시경(詩經)의 내용 중에서 "상제께서 모두 물리치시고 나라의 규모를 크게 하리라. 이내 서녘을 돌아보시고 이 집을 주었다(유여택)"라는 내용에서 유래하였다. 정조 입장에서 화성 유수를 임명하여 내려보내는 곳이라는 의미가 되었다고 한다.

유여택은 정조가 행차할 시에는 집무공간이 되던 곳이다. 평소에는 현재의 도지사라고 할 수 있는 유수의 처소로 사용되었다. 이런 유수가 장관으로 있는 행정구역을 유수부라고 하는데, 조선에는 개성, 강화, 광주, 수원 등에 설치되었다.

유여택을 바라보니 그 속에 여러 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모두 일반 관광객들이 만져보고 입어 볼 수 있는 체험행사를 위한 옷들이었다.

여기에서도 '대장금'은 빠지지 않았다. '대장금' 체험과 왕과 왕비 체험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러한 의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좋게 생각한다. 사실 대장금이 너무 많지 않나란 생각은 들지만, 이 부분에서는 그래도 관광객들을 위한 체험행사라는 점에서 이해가 된다.

유여택의 바로 앞에는 해시계가 있다. 이를 앙부일구(仰釜日晷)라고 부른다. 직경 35.2㎝, 높이 14㎝인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 16년, 즉 1434년에 처음 만들어진 가마솥 모양의 해시계이다. 이것은 24절기를 13개의 위선(褘線)으로 그어놓았는데, 북극을 향한 영침의 그림자에 따라 시각과 계절을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다만 이것으로 시계를 볼 때 나름대로 계산을 해서 살펴보면 일반적인 시계와는 시간차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한 30분 정도나 차이가 나는데, 이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일쑤이다.

30분의 차이가 나는 것은 바로 현재의 시간이 일본 동경시간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일본과 한국은 원칙적으로 따지면 30분 차이가 나며, 중국 베이징과의 차이도 1시간이 아닌 30분이다. 이는 일제시대 때 세계의 시간을 규정하면서 일본에 예속된 경우인데, 하지만 국제적으로 1시간 차이가 나는 것을 따로 30분 차이를 쓰기도 힘든 상황이다.

뒤주체험으로 정조의 효심을 느끼라고?

 뒤주.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바로 이 속에서 영조의 미움을 받아 굶어죽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화성행궁 안에 뒤주를 3개 갖다놓고 뒤주체험을 하며 정조의 효심을 느껴보라는 것은 좀 아니다.
 뒤주.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바로 이 속에서 영조의 미움을 받아 굶어죽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화성행궁 안에 뒤주를 3개 갖다놓고 뒤주체험을 하며 정조의 효심을 느껴보라는 것은 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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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황당했던 것은 바로 유여택 앞에 있는 뒤주 들어가기 체험이었다. 뒤주란 본디 쌀을 넣는 생활용기라고 할 수 있는데, 쌀이 1~2가마가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쌀벌레가 생기지 않게 회화나무로 만든다고 하는데, 당시 왕실에서는 소주방, 즉 수라간에서 뒤주를 보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왕실에서 이 뒤주는 꽤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바로 사도세자 때문이다. 사도세자는 정조의 아버지로서 영조의 미움을 받아 뒤주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도세자는 영조 38년인 1762년 윤 5월 13일~21일까지 뒤주에 갇혀 있다가 그만 죽었다고 한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죽은 뒤에 비로소 깨달았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이때의 사정에 대해서는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도 잘 나와 있다.

정조의 아버지가 사도세자라는 점에서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 뒤주 쪽에 관광객들 위하여 안내문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중에서 "아울러 사도세자께 효도를 다했던 정조대왕의 효심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뒤주에 들어가는 것과 효도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효도를 느껴보라는 문구는 삭제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그 당시 사도세자의 마음을 이해해보라는 식으로 문구를 대체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드라마 <대장금> 홍보. 이건 좀 심하지 않나?

 복내당. 복내당은 유수의 가족들이 머물던 곳으로 일제가 이곳을 훼손하기 전엔 정조의 친필이 현판에 걸려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중국 관광객들은 화성행궁은 정조의 꿈과 이상이 담긴 곳으로 생각할까, 아님 대장금의 촬영지로 생각할까?
 복내당. 복내당은 유수의 가족들이 머물던 곳으로 일제가 이곳을 훼손하기 전엔 정조의 친필이 현판에 걸려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중국 관광객들은 화성행궁은 정조의 꿈과 이상이 담긴 곳으로 생각할까, 아님 대장금의 촬영지로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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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여택의 위쪽으로 올라가면 복내당(福內堂)이 있다. 복내당이라는 명칭은 '복은 안에서 생기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연상되듯이 이곳을 쓰는 사람들은 주로 유수의 가족들이며, 이곳의 현판은 정조가 직접 썼다는 기록이 있으나, 남아있지 않아서 아쉽다.

그런데 화성행궁에서 복내당은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게 꾸며 놓았다. 복내당의 부엌은 당시의 살림들을 복원하여 여러 민속자료를 가져다 놓아 좋게 해 놓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곳은 그러한 것을 제외하곤 완전히 <대장금>으로 꾸며져 있다. <대장금>에서 어떤 장면인지 설명하는 안내판 2개와, 크게 이영애와 지진희의 사진이 있다.

 대장금 안내 표지판. 복내당에 이렇게 꾸며놓았는데, 화성행궁의 주요건물과 그곳에서 몇화 어느 장면이 찍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써 놓았다. 이거야 말로 주객전도가 아닌가?
 대장금 안내 표지판. 복내당에 이렇게 꾸며놓았는데, 화성행궁의 주요건물과 그곳에서 몇화 어느 장면이 찍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써 놓았다. 이거야 말로 주객전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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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부족하여 화성행궁 곳곳의 건물들의 사진을 넣어두고, 드라마 몇 화의 어떤 장면인지 자세하게도 써 놓았다. 그리고 복내당의 마루에 대장금에 나오는 옷을 입은 인형 2개를 놓아두었으며, 복내당 옆으로 가면 대장금에 나온 의상 중 대표적인 5개를 드라마의 사진과 함께 진열해 놓았다. 이 정도면 좀 지나치지 않나 싶다.

가장 압권인 것은 다름 아닌 복내당에 대한 설명이다. 복내당의 설명 아랫부분에는 이런 말이 써 있다.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는 화성행궁
화성행궁은 복원 이후 사극 촬영지로써 많이 이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대장금의 주요 촬영지이며, 그 중에서도 복내당은 조선 후기 건축양식이 잘 복원되어 있어 많이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촬영장소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대장금> 사진 옆에는 아예 이렇게 써 놓고 있다.

새로운 사극촬영지로 각광 받는 곳 드라마 대장금의 주무대이기도 했던 수원 화성행궁입니다.

정말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화성행궁 곳곳에 있는 <대장금> 안내표지판으로 모자라, 이를 전시만 해 놓은 게 아니라 자랑까지 하고 있다. 주객전도(主客顚倒)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무엇이 주(主)이고, 무엇이 객(客)인가?

기자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 중국의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깔깔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 화성행궁을 어떻게 생각할까? 정조가 수원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며, 그의 정치적인 생각이 담겨있는 역사적 장소로 생각할까, 그렇지 않다면 단순히 드라마 <대장금> 세트장으로 기억할까?

정조가 행차 시 머물렀던 봉수당

 봉수당. 평소엔 유수가 집무를 보던 동헌이었으나, 정조가 오면 처소로 사용하였다. 이곳에서는 마침 오는 10월부터 방영하는 케이블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8일'을 찍고 있었다.
 봉수당. 평소엔 유수가 집무를 보던 동헌이었으나, 정조가 오면 처소로 사용하였다. 이곳에서는 마침 오는 10월부터 방영하는 케이블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8일'을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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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奉壽堂)은 화성행궁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이름이 특이하다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봉수당은 바로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지은 명칭이다. 이 말은 "만년의 장수를 받들어 술을 드려 빈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정조는 수원화성에 올 시 이곳에서 머무르며 거처하였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유수가 집무하던, 이른바 동헌의 역할을 하였다. 안내표지판에는 동헌에 대해서 단순히 '동쪽의 건물'이라고 해 놓았는데……. 이것도 너무 단순하게 설명한 게 아닌가 한다.

기자가 이곳에 왔을 시 마침 촬영 중이었다. 덕분에 이곳에서는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등 행동의 제약이 여럿 있었고, 사진 찍기도 힘들었다. 그쪽에 물어보니 '8일'이라고 하는 케이블TV에서 하는 드라마를 찍고 있다고 하는데, 8일이라는 말에서 대충 내용이 짐작되었다.

정조가 이곳에 8일간의 행차를 하였고, 이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고 있는 드라마인 듯 하다. 기자가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예상대로였는데, 정조암살에 대한 미스테리를 다루며, 오는 10월부터 방영을 한다고 한다.

 노래당. 노래당은 남낙헌과 함께 화성행궁의 건물 중 일제강점기 시절 훼손되지 않은 건물이다. 이곳에서 정조는 순조에게 양위 한 후 머물며 살려고 하였다.
 노래당. 노래당은 남낙헌과 함께 화성행궁의 건물 중 일제강점기 시절 훼손되지 않은 건물이다. 이곳에서 정조는 순조에게 양위 한 후 머물며 살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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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을 지나 노래당으로 갔다. 노래당(老來堂)이라는 이름은 "늙은 것은 운명에 맡기도 편안히 거처하면 그곳이 고향이다"라는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백거이의 시에서 따온 말이다.

1797년 정조가 지은 시인 '노래당구점'에서 정조가 장차 화성에 내려와 혜경궁 홍씨를 극진히 모시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안내판의 노래당구점이라는 명칭을 보고 기자는 후배에게 장난스런 목소리로 말하였다.

“노래당구점? 명칭이 참……. 실제로 저런데 있으면 어떨까? 노래하면서 당구도 치고……. 뭐 술 마시고 2차를 어디로 갈까 고민할 필요도 없겠네.”
“서, 선배……. 그,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아무튼 노래당은 정조가 왕위를 순조에게 양위한 뒤엔 이곳에 머물려고 했다고 한다. 이 노래당은 특별한 곳인데, 바로 낙남헌과 함께 화성행궁에서 일본강점기 때 훼손되지 않는 건물이다. 그 당시 초등학교 옆에 있기에 그대로 보존된 것인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다.

화성행궁은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비록 복원되었다고는 하나, 조선시대 최대의 별궁으로서의 위상은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의 내용물을 열어 보고나서 실망하게 된다면, 이는 문제라고 하겠다. 게다가 수원화성의 입장료가 1000원임에 비해, 화성행궁은 입장료가 1500원이다. 둘이 바뀐다면 이해는 되는데, 그 입장료의 가치를 생각하고, 과도한 드라마와의 연계는 도리어 화성행궁에 있어서 독이 되지 않을까란 걱정이 든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8월 27일에 수원의 화성행궁에 갔다온 것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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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06학번 학생으로 현재는 휴학중입니다. 다음과 네이버의 커뮤니티에서 운영자나 논객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8년 네이버 1차 파워지식in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2009년에 네이버 지식활동대 1기에 선정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가야문화권 답사를 갔다와서 연재기사를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