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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로 향하는 길에서 잠시라도 차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한증막을 뚫고 지나는 것처럼 땀이 솟아난다. 사막 한 가운데를 지나다 보니 이렇게 더운 모양이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라스베가스가 속해 있는 네바다 주는 2000년 통계로 인구가 200만이고 그 중 라스베가스와 그 인근에 100만명 가까이 산다고 하니 수도인 카슨시티나 리노·라플린 등 몇 도시를 제외하면 네바다 주는 그저 사막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라스베가스가 이렇게 사막 한가운데에 들어선 이유가 재밌다. 라스베가스 초창기 마피아들과 어우러져 지금의 라스베가스를 만든 사람 중의 한 명인 벅시. 영화로도 소개가 된 적이 있지만 특별히 네바다주에 도박이 허용된 까닭은 노동력 동원과 관계가 있단다.

 

라스베가스에서 가까운 곳에 후버댐이 있다. 이 후버댐을 지을 때 일하던 노동자들에게 유흥과 오락을 제공해 주기 위해 1931년에 도박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라스베가스가 그 도박의 중심도시였다. 벅시란 인물은 마피아와 손잡고 1946년 플라멩고 호텔을 짓는 등 오늘의 라스베가스로 만드는 초석을 놓은 셈이다. 유명한 하워드 휴즈가 뒤이어 호텔과 카지노를 지으면서 기업가형 라스베가스를 만들어간다.

 

노동자들을 도박판에 몰아넣는 라스베가스

 

라스베가스의 밤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도시다. 각종 호텔과 카지노가 손님을 유혹하기 위해 화려한 치장과 놀이로 밤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회색빛 도시도 밤이 되면 그 회색을 감추고 불빛들로 일렁이지만 라스베가스의 밤은 알 수 없는 기대들이 보태어진 탓인지 더욱 화려하게 느껴진다.

 

호텔 문만 나서면 훅 하고 다가오는 더운 공기. 걸어다니는 것조차 힘들지만 사실 이 사막의 뜨거운 공기는 라스베가스에서는 그리 문제가 아닌 듯 하다. 대부분 사람들이 거리로 나설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에어컨이 빵빵한 호텔에 내내 머물며 카지노와 극장으로 다니는 데 더울 새가 있겠는가? 가끔 콜로라도 강에서 보트를 타고 물보라를 가르는 것도 더위를 식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내가 라스베가스를 간다니까 혹시나 카지노에 들어서서 슬롯머신이나 포커판에서 돈이나 잃지 않을까 하는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걱정하지들 마시라. 돈을 벌어갈 테니까." 큰소리쳤지만 정작 기계 앞에 앉을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라스베가스의 야경을 구경하고 라스베가스의 멋진 쇼를 볼 수 있다고 해서('19금'이긴 했는데, 흔히 상상하는 누드쇼는 아니다) 구경을 갔다. 물량공세로 나오는 댄서들의 집단무와 정신없이 바뀌는 무대장치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 이걸 돈 주고 보다니….

 

 

담배 연기처럼 사라진 내 돈

 

그러다 보니 호텔로 돌아왔을 땐 1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그래도 카지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보고 가야지 싶어 잠시 기계 앞에 앉아서 약간의 돈을 집어넣고 해 보았지만 담배 한 대 피울 참도 안돼서 담배연기처럼 사라지는 돈을 보고 나니 허망하기만 하다. 나중에 보니 한 번에 1불짜리였다. 1센트짜리도 있다고 한다.

 

하여간 의욕을 잃게 만드는 기계 앞에서 물러나와 포커판으로 이동해 보니 한 테이블에서 다들 진지한 표정으로 칩을 던지고 있다. 어깨 너머로 몇 판 지켜보는데 중국계 미국인 한명이 판을 쓸고 있다. 결국 나머지 백인들이 전부 항복을 선언하고 주섬주섬 나머지 칩을 챙기며 그 중국계 미국인을 향해 "당신이 이겼어(You are winner)"를 외치고 있다.

 

카지노장 여기 저기서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베팅하는 소리, 기계음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옆 극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쇼로 라스베가스의 밤은 웃음과 화려함, 부풀려진 기대로 눈들이 초롱초롱한 사람들의 활기가 넘치는 도시다. 어느 한 곳만이 아니라 라스베가스 곳곳에서 그들의 에너지가 느껴질 정도로 화려한 야경 아래 보이는 수많은 호텔들이 라스베가스가 그야말로 불야성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 수많은 호텔과 카지노의 집합체인 라스베가스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라스베가스의 유명한 호텔과 카지노의 운영자는 스티브 윈과 그의 라이벌이라 불리는 커크 커크리언, 택시운전사를 하다 아이디어 하나로 라스베가스 호텔업계의 거목이 된 윌리엄 버넷 등 3사람에게 집중돼 있다.

 

80년대 라스베가스가 또다른 도박도시 애틀란타시티의 등장으로 옛 영화가 쇠락할 즈음 등장하여 오늘의 관광도시형으로 변모시킨 이들이 10여개의 유명한 호텔과 카지노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스베가스 들락거리다가 알거지 되기 일쑤

 

세계에서 객실이 가장 많다는 MGM호텔·뉴욕뉴욕호텔·서커스 서커스 호텔·미라지·벨라지오·라스베가스 윈·럭셔·트레져 아일랜드 등 알려진 유명한 호텔들은 이들이 만들었거나 현재도 소유하고 있는 호텔들이다.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때로는 재마삼아, 때로는 무모한 도전으로 라스베가스에 털어 놓아 주고 가는 돈이 몇 사람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라스베가스의 한 호텔에서 손지창과 오연수 부부가 대박이 났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무모한 도전으로 알거지가 되는 일이 심심찮다. 캄보디아계 이민으로 미국에서 도넛 왕이라 불리며 도넛가게로 서부지역에서 성공한 기업가 한 사람이 대표적이다.정치자금 기부로 역대 대통령들하고도 가깝게 지내고, 캄보디아 이민자들에게 도넛가게의 지점을 내주면서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그는 라스베가스를 들락거리다가 결국은 알거지가 되어 지금은 자신의 친척 누군가의 가게에서 집도 없이 지내고 있다고 한다.

 

가이드는 아예 그 사람의 신문기사를 스크랩해서 관광객들에게 도박에 빠진 사람들의 최후를 경고했다. 돈을 잃고 돌아서다가 다시 한 번 하고, 라스베가스 공항에 들어서서 화장실을 나오기도 전에 도로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할 정도로 라스베가스 곳곳에 눈만 돌리면 부딪히는 것이 형형색색의 슬롯머신과 포커판이다.

 

화려한 밤은 지나고... 쓰린 속 부여잡는 사람들

 

화려한 밤이 지나고 아침 나절. 여전히 기계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드문드문 보이지만 어제 저녁 열기가 올랐던 포커판에는 딜러만 외로이 앉아 있다. 네온사인이 꺼진 거리엔 여전히 더운 바람이 불지만 화려한 불빛이 사라진 호텔 건물들은 그리 정겨워 보이지 않는다.

 

밤새 혹시나 하는 기대와 열망으로 손에 잡히는 돈이란 돈은 모두 털어 넣었던 사람들은 쓰린 속을 움켜쥐고 호텔방에서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늦게까지 기계 앞에서 돈을 보태주었던 관광객들도 아직 잠에서 깨어 나오지 못하고 있거나 쓰린 속을 부여잡고 서둘러 떠나고 있다. 지난 밤의 쓴 기억에 라스베가스의 아침은 라스베가스의 호텔과 카지노의 주인을 제외하고는 우울하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대한 열망으로 오늘도 라스베가스는 밤이면 희망의 도시이고 아침에는 역시 우울한 도시가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절제가 강요되지 않는 도시에서 인간의 삶은 파괴될 수도 있으며 그런 사람들의 삶 위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부가 축적되고 있다.라스베가스는 그 존재 자체가 자본주의적 도덕률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침은 우울하게만 느껴진다.


태그:#라스베가스,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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