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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외에서 이루어진 손택수 시인의 초청강연.
ⓒ 안소민
지난 18일과 19일 전북 장수에 있는 우석대학교 연수원에서 열린 '제1회 전북지역 대학생 문학워크숍'에서 손택수 시인의 강연이 있었다. 이 강연은 시를 공부하는 학생은 물론이고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자리였다.

손택수 시인은 시를 쓰려는 사람들은 "치열하게 열심히 쓸 것 그리고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뤄졌던 손택수 시인의 강연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해 요약정리해보았다.

- 처음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동기는?
"태어난 곳은 전남 담양이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부산으로 이사를 갔는데 어릴 적의 실향(失鄕)이 내게는 트라우마(심적 외상 및 심리적 외상)로 작용했던 것 같다. 시인은 뭔가 가슴에 맺힌 이야기를 세상에 하고 싶은 사람들인데 내 가슴의 저변에는 이 실향이 항상 깔려 있던 것 같다."

- 시인의 유년시절은 어땠나?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부산으로 이사를 가고 난 후에도 한동안 적응을 못해 나만 혼자 할아버지가 계시는 담양으로 보내졌다. 시골에서 어린아이 혼자 뭐하고 놀았겠나. 말똥구리 벌레를 가지고 놀거나 참새를 잡으며 놀기도 했다. 특히 참새를 잡았을 때 내 손안에서 팔딱거리던 참새의 심장박동을 느낄 때면 희열을 맛보곤 했다. 또는 어두운 부엌에서 그림자놀이나 빛의 변화를 보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때 마침 물놀이를 마치고 할아버지 손을 잡고 돌아가는 대여섯 살의 소년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뚫어지게 손 시인과 우리 일행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의 채근에도 눈길을 뗄 줄 몰랐다.)

"(지나가는 꼬마를 바라보며) 바로 저 아이의 모습과 같았을 것이다. 그땐 세상 모든 것이 다 호기심 덩어리였다." (일동 웃음)

- 학교에는 잘 적응했는지?
"취학통지서가 나오고 부산으로 옮겼다. 학교생활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획일적인 대답과 정답만을 요구하는 제도권 교육이 싫었다. 공부도 잘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뭣하나 똑 부러지게 잘하는 것 없는 소년이었다."

맹인들에게 시집 읽어주며 시와 친해지다

▲ 시종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손 시인의 모습에서 시를 향한 진솔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 안소민
손택수 시인은?

1970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경남대 국문과와 부산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언덕위의 붉은 벽돌집'이 당선됐다. 부산작가상, 현대시 동인상, 이수문학상, 신동엽창작상 등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호랑이 발자국>(2003 창비), <목련전차>(2006 창비) 등이 있다.
- 어떻게 시를 처음 접하게 되었나?
"고등학교 졸업 후 맹인들을 돌봐주는 곳에서 일했다. 그분들 눈과 손이 되어 일거수일투족을 도와주는 일을 했다. 그분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시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리듬감 있는 글이 좋겠다 싶어 시를 읽어주게 되었고 그때부터 일부러 시를 찾아서 읽었다."

- 경남대학교 국문과는 어떻게 들어갔나?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다고 하질 않았나.
"구두닦이 일을 좀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건달 한 명이 구두를 닦은 뒤 내 뒤통수를 후려치며 '똑바로 해라'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상한 건 화가 난다기보다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것이었다. 지금껏 제도권 교육의 부조리를 비판하면서 일방적으로 피하기만 했지 그것을 역으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은 것 아닌가. 그때부터 대학입시를 준비했고 25살에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했다."

- 등단을 하게 된 계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를 쓰면서도 '이건 아닌데…'라는 기분이 들었다. 30세를 목전에 두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도시락 싸들고 가서 아침부터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하루종일 시를 공부했다. 1910년도 이후부터 활자화된 모든 시집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한국 외국 가릴 것 없이 마구 읽었다. 하루에 약 백 편 정도 읽은 것 같다. 아마 시란 시는 그때 다 읽어봤지 않았나 싶다. 그 결과, 시라는 것이 무엇인지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 후 지방신문이나 지방문예지, 중앙일간지, 중앙 문예지를 가리지 않고 공모에 응모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매번 낙선이었다. 무려 40번이나 공모전에서 탈락했다. 나중에 '이것만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자'고 했던 것이 뽑혀 등단하게 되었다. 98년 <한국일보>에 응모한 '언덕위의 붉은 벽돌집'이 그것이었다. 그때의 감격과 감동은 설명할 수 없다. 이마에 '시인'이라고 쓰고 거리를 활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웃음)

하루종일 도서관에 처박혀 시 백 편 이상 읽었다

▲ 미리 손시인의 시집을 준비한 학생은 시인으로부터 직접 사인을 받기도 했다
ⓒ 안소민
- 시를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나?
"그런 질문하는 사람이 제일 밉다. 좀 과격해서 말하면 죽이고 싶을 정도다. (일동 모두 웃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내가 가진 모든 시간과 땀, 노력을 쥐어짜고 바쳐서 시를 쓴다. 누가 나에게 시를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에게 시집을 몇 권이나 읽어봤냐고 되묻는다. 마찬가지로 몇 번이나 낙선의 고배를 마셔보았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 정도도 노력하지 않고 어떻게 잘 쓸까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해줄 말이 없다."

- 그래도 손 시인이 나름대로 체득한 시 쓰는 마음가짐이랄까, 그런 것이 있지 않을까 싶다.
"시인은 앵무새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많은 시집을 읽고 습작을 하다 보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말해서 자신이 읽은 시인과 시들을 흉내낸 어설픈 모사품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 내 호흡으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 평론가들은 손 시인의 시를 두고 '표현의 반복성'에 관련하여 많은 지적을 한다. 이에 대한 손 시인의 생각은?
"물론 표현의 다양한 시도도 중요하다. 하지만 난 오히려 더 같은 표현을 반복하는 자세야말로 시인에게 필요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같은 표현을 반복하면서 그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점점 농익어간다. 나는 내 시가 조금은 미숙하고 미완되어 보이기를 희망한다. 완숙해 보이는 시를 쓰려고 마음먹으면 물론 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시가 한 번에 완숙해지는 시로 읽히기보다는 읽으면 읽을수록, 뜻을 새기면 새길수록 깊고 진한 느낌이 우러나는 그런 시가 되길 바란다. 오래된 포도주처럼."

- 어떤 시를 쓰고 싶은지.
"시인들이 '앞으로 어떤 시를 쓰겠다'고 흔히 말하는데 이건 반절이 뻥이다. (웃음) 시를 쓸 때 어떻게 어떻게 써야겠다 작정하고 쓰기 시작하지만 막상 쓰다 보면 내 의도와는 전혀 반대로 혹은 별개로 써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어쩌면 그것이 시를 쓰는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시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살아서 꿈틀거린다. 이 빗나가는 시의 생명력 때문에 시를 쓰는 것이다."

- 손 시인이 생각하는 시란 어떤 것인가.
"흔히 시는 아름다운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기 쉽다. 또한 시는 무슨 깨우침이나 교훈을 주거나 철학이 있어야 하며 잠언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면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시의 전부는 아니다. 나 역시 이러한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시는 우리의 삶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모습을 노래하고 읊은 것이 바로 시이다. 어린 시절 혼자 놀곤 했을 때 좋아했던 것 중의 하나가 돋보기였다. 공기 중에 있는 햇빛을 돋보기에 집중시켜 어떤 결정을 만드는 것 자체가 어린 내게 매력적이었다. 시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주위에 보이지 않게 떠 있고 우리를 감싸고 있는 소재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그런 힘을 지닌 것 말이다."

- 시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은?
"시를 쓰다 보면 많은 벽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내적 요인이든 외적 요인이든 반드시 겪게 된다. 아마 이것은 시인에 해당하는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벽을 피하려 하지 말고 그것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럴 때 시인은 더욱 성장한다."

▲ '늘 푸르게 출렁이소서'... 깊이 새기겠습니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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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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