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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런던 히드로 공항 근처 영국공항관리청 건물 철제구조물에 기어 올라가 히드로 공항 확장공사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환경운동 단체 젊은이들.
ⓒ AP=연합뉴스

"히드로 공항을 사수하라!"

런던 히드로(Heathrow) 공항이 환경운동가들의 핵심 타깃이 되었다. 수많은 환경운동가들이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히드로 공항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이들은 14일부터 21일까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항공기 운항이 무분별하게 늘어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영국 정부가 계획 중인 히드로 공항의 터미널과 활주로 증설 계획에 반대한다"고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히드로 공항은 세계로 통하는 영국의 관문이다. 매일 수많은 세계의 관광객과 비즈니스맨 등이 히드로 공항을 통해 런던을 방문한다. 한국에서 직항으로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이 히드로 공항을 통해 출입국을 한다. 히드로 공항은 영국 경제를 떠받치는 대동맥이다. 1년에 무려 6770만명의 승객을 실어 나르고 47만 번의 비행이 이뤄지는 등 유럽에서 가장 바쁜 공항이다. 히드로 공항에 가보면 흑인, 백인, 동양인 등 세계 곳곳에서 온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가득한 국제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히드로 공항은 1930년대에 세워진 오래된 공항이다. 처음에는 페어리 항공사(Fairly Aviation)라는 민간 소유 공항으로 항공기 훈련 등을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영국 정부에서 소유,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해럴드 밸푸어경(Lord Harold Balfour)은 영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장거리 수송기를 배치할 수 있는 기지가 필요하다며 히드로 공항을 정부가 소유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자서전(Wings over Westminster)에서 나중에 밝힌 바에 따르면, 이것은 겉으로 내놓은 대외 명분일 뿐 실은 거짓이었다. 실제로는 일반 시민이 항공기를 값싸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추진했던 일이라고 밸푸어는 밝혔다.

영국의 관문이자 반목의 역사와 함께한 히드로 공항

이처럼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장소인 히드로 공항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테러와 집회 등의 주요한 타깃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요지일 뿐 아니라 비행기를 운항하는 곳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자신들의 주장을 어렵지 않게 이슈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요구하던 무장단체 IRA(아일랜드공화국군)가 그 대표 격으로, IRA는 여러 차례에 걸쳐 히드로 공항 폭파를 시도했다. 1974년에는 공항의 자동차 주차장에 폭발물을 배치했고, 1994년에는 세 차례에 걸쳐 공항에 박격포로 폭격을 가했다.

최근에는 알카에다가 히드로 공항을 주요한 테러 타깃으로 삼는 분위기다. 영국 정보당국은 "알카에다가 집중적으로 히드로 공항 테러를 도모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이를 걱정한 영국 정부는 2003년에 영국군 1000여명을 추가로 배치했다.

하지만 알카에다의 테러 위협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영국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테러 위협을 증가시킬 수 있는 어떤 물질도 일방적으로 탑재할 수 없도록 하는 등 관련법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히드로는 여전히 불안한 공간이다. 지난 7월초에도 공항 터미널에서 폭발 의심물질이 발견돼, 승객과 공항 직원 등 2천여명이 급히 건물 밖으로 대피하는 긴급 소개령이 내려졌다.

"항공기=환경오염 주범, 비행 자체 줄여야"... 14~21일 기후행동캠프

이번에 히드로 공항에서 시위를 벌인 환경운동단체들은 기후 변화 관련 문제에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개입해 이를 이슈로 만드는 집단이다. 이들은 올해 히드로 공항 근처에 대규모로 캠프(기후행동캠프, the camp for climate action)를 차린 후, 이곳에서 워크숍과 세미나를 열고 이를 통해 그 지역의 주민들과 공감대를 넓혔다.

이들이 이번에 문제 삼은 것은 히드로 공항 제5터미널 증설. 매년 늘어나는 승객과 짐들로 포화상태에 달한 히드로 공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정부와 영국공항관리국(BAA)은 내년 8월에 제5터미널을 새로 개통하고 2020년에는 새로운 활주로를 추가로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항공기가 환경오염의 주범인 만큼 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항공 운항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영국 전체 배출량의 7%에 불과하지만, 지금 같은 증가 추세라면 그 비율이 눈덩이처럼 높아질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캠프 측은 "항공기를 통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다"며 "항공기 연료의 경우 대체할 만한 다른 에너지원이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비행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으로 더 많은 승객을 유치하고 중국, 인도,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 뒤지기 않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이 같은 증설 노력을 근본적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 히드로 공항 근처에서 시위대가 천막을 설치하는 모습.
ⓒ 기후행동캠프

연이은 게릴라 시위... '시민 불복종'에 긴장한 영국 정부

이 캠프는 정부가 말로만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한다고 해놓고는 실제로는 경제논리에 입각해서 공항 증설을 추진하고 있기에, 이 같은 일상화한 관성을 깨뜨리기 위해 명예스러운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을 하겠다며 직접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공포했다.

가뜩이나 테러 위협으로 불안한 공항관리국과 영국 정부는 이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일까 바짝 긴장했다. 일각에서 "정부를 놀라게 하기 위해 폭발물을 배치할 것"이라는 소문이 났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언론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 경찰은 이들의 시위권은 보장하되, 어떤 불법 행위도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 방침을 고수했다.

이에 대응해 환경운동가들은 영국 곳곳에서 게릴라 시위를 벌였다.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깔끔하게 옷을 차려 입은 이들은 수송부(Department for Transport)와 공항관리국을 급습, 스크럼을 짜고 출근하는 직원들의 진입을 막는 등 시위를 벌였다.

또한 시위대들은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영국 각지로 흩어져서 요구 사항을 알렸다. 일부 시위대는 영국의 지방도시인 켄트와 햄프셔에 있는 공항으로 흩어져 주요 출입구를 막고 자신들의 주장을 외치는 등 항의 시위를 했다.

아울러 원자력 발전소와 영국 석유회사인 브리티시 페토롤리엄(BP) 등으로 가서 직원들의 출입을 막고 방해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해 현장에서 연행된 사람들도 있었다.

캠프가 최고조에 달한 19일과 20일 '행동의 날'에 참여한 사람은 1400명이라고 주최 측은 밝혔다. 반면에 경찰은 10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번 시위로 연행된 사람은 58명이다.

▲ 시위자들에 대한 경고를 다룬 < BBC > 기사.
ⓒ < BBC >

엇갈리는 평가... "세계를 위한 전투"-"공항 위협 그만하라"

당초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이번 시위 과정에서 승객들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는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시위를 통해 환경운동가들은 어느 정도 자신들의 목표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급진적인 환경운동가뿐 아니라 70, 80대 백발노인부터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까지 수천명이 캠프 현장에서 이뤄진 워크숍과 세미나 등을 통해 환경 보호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되었다고 캠프 측은 밝혔다.

히드로 공항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도 얻었다. 항공기 소음으로 생활에 불편을 느끼고 있는 이곳 주민들 사이에선 공항을 증설하면 그러한 피해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증설 반대 의견이 주류인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으로 활주로를 확대하면 주민들의 집이 허물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도 한 원인이다.영국 정부는 약 700채의 가옥이 지도상에서 없어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한 히드로 공항의 상징성 덕분에 영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언론에서 이번 행사를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집중 조명했다.

일간 <인디펜던트>는 이번 행사를 "세계를 구하기 위한 전투"(A battle to save the world)라고 호평했다. 물론 보수적인 일간 <타임스>는 "히드로 공항을 위협하는 일을 중단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시위에 참여했던 이사벨 미쉘은 "우리는 위대한 승리를 했다"며 "우리가 평상시에 말해왔던 것을 모두 실행했다, 정말 즐겁고 만족스러운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시위자는 "히드로 공항 주변 지역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잊을 수 없다"며 "그들은 우리에게 차와 커피를 주는 등 강한 연대의식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이번 시위와 관련, 노동당은 정부와 함께 승객들의 안전을 우려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칼리드 마흐무드 의원은 "합법적인 시위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가짜 폭발물을 설치하거나 공항 주변의 콘크리트 담장에 올라가는 등의 행위를 하면 비행기 운항 관련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수당의 테레사 빌리어스 의원은 "히드로 공항을 운영하는 BAA에만 특혜를 주어서는 안 되고 공항 간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히드로의 위기를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며 "정부는 승객을 위해 서비스 개선 방안을 즉각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가 영국 정치의 핵심 의제로 부상한 지 오래다.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보수당조차 친환경 정당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데이빗 캐머런 당수는 국민들이 일정 거리 이상 비행기를 탈 경우 세금을 거둬들이고, 국내선에 사용되는 연료비에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는 등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히드로 공항 시위가 이 같은 기후 변화를 둘러싼 정책 논쟁을 더욱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

▲ 이번 행사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는 캠프의 홈페이지.
ⓒ 기후행동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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