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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따로 또 같이.
ⓒ 안소민
문학은 과연 사라졌는가?

디지털과 N세대의 문화가 가장 밀집되어있다는 대학가에서 순수문학이란 이름은 이제 '과거형'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습작이란 이름하에 수많은 밤을 원고지와 씨름하며, 지인들과 문학의 열띤 토론을 했던 지난날의 문학도의 모습을 요즘 대학생들에게 기대하기란 너무나 사치스러운 일이 돼버린 것일까?

그러나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섣부른 결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그들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최명희 문학관과 전북작가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제1회 전북지역 대학생 문학워크숍'이 지난 18일과 19일, 전북 장수에 위치한 우석대학교 연수원에서 열렸다. 미래의 작가지망생들을 위한 자리였다.

참가비는 일절 내지 않는 대신 참가자들은 자신의 습작품을 내야했다. 습작품을 가지고 서로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여기에 전북지역 선배작가들이 함께 해 품평회를 하기로 되어있었다. 어찌 보면 매우 부담스러운 자리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용기 있고 뜻있는 21명의 학생들이 함께 했다.

문학, 사라졌나

▲ 참가학생들이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 안소민
▲ '저 친구는 왜 이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일까?' 다른 학생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있는 학생들.
ⓒ 안소민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가 있었다. 학생들의 시선은 꼭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요즘 시대에 문학을 하기로 마음먹었느냐'의 문제에 가장 관심이 많은 듯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쩌다보니 글을 쓰고 있었다', '중·고등학교부터 글쓰는 것을 좋아했다'는 대답부터 '수학이나 이과과목을 피하려고 문과를 지망했다',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잘 보이려고 시구절을 찾아 읽어주다가 시를 좋아하게 됐다'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대답을 쏟아내 웃음바다를 만들기도 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어떻게 이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는지 그 동기가 자못 궁금했다. 자신의 작품을 내걸고 참여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사실 보통 용기 없이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을 평가받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 여겨 참가하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몇몇은 '유명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호기심에 참여하게 됐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아마 그 '유명작가' 범위에는 자기와 같은 길을 희망하는 타대학의 여학생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포함돼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젊음이 가진 특권이자 매력 아닐까.

이날 행사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이 지역 대학생들과 선배 문인인 전북작가협회 소속 작가들이 함께 어울렸다는 데에 있다할 것이다. 학생들과 작가들은 각자 자기 앞에 붙은 명함을 떼고 '문학'이라는 길을 함께 걷는 선후배로서 만났다. '어느 학교 무슨과 몇 학번'이기 이전에, 시를 사랑하고 소설을 사랑하는 선배 대 후배 자격으로 '맞짱'뜬 것이다.

선배님은 문학공부를 어떻게 했나요?

▲ 선배작가들로부터 듣는 그들의 대학시절이야기.
ⓒ 안소민
▲ 선배들의 대학시절에서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 안소민
▲ 선배작가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듣는 후배들
ⓒ 안소민
특히 선배 문인들에게 듣는 '나의 대학시절'은 이날 참여한 작가지망생들이 자라나는 데 많은 보탬이 될 자양분을 쏟아낸 자리이기도 했다. 선배들 대부분이 8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낸지라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결같이 '공부는 안하고 데모만 열심히 하고 다녔다'고 우스갯소리로 시작했지만 그 밑에는 치열하고 처절한 시대정신과 창작의욕이 깔려있었다.

이날 참여한 복효근 시인은 문학창작과 관련 "문학뿐 아니라 미술이나 음악과 같은 인접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라"고 충고했다. 이병천 소설가는 "술만 마시고 글만 쓴다고 다 문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자기 키 만큼의 책을 쌓아놓고 사시, 행시 공부하듯 치열하게 공부해야 진정한 문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신 시인은 "대학시절이야말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전업작가시절이라 생각하고 써라"라며 "쓸 수 있을 때 열심히 써야한다"고 후배들을 독려했다. 학생들은 선배들의 대학시절과 습작기의 경험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메모를 하는 등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치열하게 쓰고 부지런히 공부해라!

▲ 후배의 습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선후배의 모습
ⓒ 안소민
▲ 나이, 취미, 성별을 뛰어넘는 이들 선후배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다름아닌 문학에 대한 열정이다.
ⓒ 안소민
이어진 뒤풀이 시간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동안 서먹했던 타 대학 학생들과도 허물없이 어울리며 술잔을 주고받으며 문학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한 구석에서는 후배가 선배에게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가서 품평을 부탁하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선배는 진솔한 마음으로, 후배는 겸허한 태도로 작품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다. 아무 가식도 없이,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오로지 순수문학을 위한 순수한 열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오늘날 선배의 충고 한마디는 후배의 문학세계를 더욱 탄탄히 하는 밑거름이 되어 자라리라. 그것은 선배도 마찬가지.

선후배들간 대화 못지않게 이번 행사에는 미래 작가들의 눈높이와 키높이를 한 뼘 더 넓혀줄 강연과 답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날 강연에는 시인 손택수씨와 소설가 김종광, 소설가 김병용씨가 소개되었다.

특히 이 지역 작가인 김병용씨는 올해 11월 전주에서 열릴 세계적 축제인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과 관련, 세계속의 한국문학의 진로를 이야기 한 '소말리아에는 '빠라'가 산다'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해 학생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내안의 '푸르름' 언제까지 영원히...

오는 길에는 소설가 박상륭 선생의 생가를 방문하기도 했다. 선생의 생가터임을 알려주는 변변한 표지판 하나 없는 점이 참 아쉬웠다. 헛헛한 마음으로 생가터를 바라보며 동행한 선배들로부터 박상륭 선생의 생과 작품세계를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생가터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들과 산이었다. 더구나 시절은 8월 한낮. 푸르디푸르렀다. 박상륭 선생도 이 푸른 들과 산을 바라보며 문학청년으로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이 푸르름이야말로 문학도들이 잊어서는 안될 금과옥조라고 선생은 소리 없이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죄와벌>같은 작품 쓰고 싶어요"
[인터뷰] 대학생 워크숍에 참여한 유일한 고등학생 박소연양

▲ 고등학교 3학년 박소연양
ⓒ안소민
대학생들도 참여가 쉽지 않은 이날 행사에 참여한 반가운 손님이 있었다. 언니오빠들과 함께 문학공부를 해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박소연(호남제일고3) 양이 그 주인공이었다.

더구나 대학생들보다 더욱 바쁘고 분주한 여름을 보내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아닌가. 그러나 마음만은 이미 소설가에 '꽂힌' 박 양에게 이번 기회는 간과할 수 없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중학교 시절부터였는지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소설을 꼭 써보리라 다짐하게 되었다고 한다. <죄와벌>이나 <레미제라블>과 같이 인간본연의 성찰을 다룬 작품을 꼭 써보고 싶다고.

대학생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어려운 <죄와벌>을 다 읽었냐고 물으니 아직 원문은 다 보지 못했다며 쑥스럽게 웃긴 했지만 태도를 보아하니 머잖아 곧 다 읽어낼 기세다. 최근에 본 소설로는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고등학교 3학년이라면 좀 유별난 데가 있는 것 아닌가하며 좀 의아스러울 수도 있지만 소설을 유난히 사랑한다는 점만 빼면 여느 또래여학생들과 별다를 것 없다.

친구들과 수다 떨기 좋아하고 개인 홈페이지도 알뜰하게 꾸미고 있다. 소설 못지않게 영화도 좋아한다는 박 양은 최근에 본 <디 워>이야기를 한참 신나게 했다. 그 모습이 천생 여고생이었다. / 안소민

덧붙이는 글 | 손택수 시인의 강연내용 기사 이어집니다.


태그:#제1회 전북지역 대학생 문학워크숍, #문학, #소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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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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