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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6월, 의혹투성이의 한 시민기자가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데니스 하트(Dennis Hart)'. 분명 한국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기사는 단아한 한글로 쓰여 있다. 그는 얼마 전부터 <오마이뉴스> 해외통신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가 지난 6월 4일 쓴 '한국전쟁은 전쟁이 아니라고?'(☞기사 바로 가기) 기사에는 '삽질'이라는 고난도의 한글 어휘도 등장 한다. 여기서 독자들은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정말 외국사람 맞아?', '이 사람이 직접 쓴 것 맞나?'

그럼 지금까지 불거져 나온 데니스 하트(55)기자의 의혹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1. 이름만 외국 이름이다. 분명 한국어를 엄청 잘하는 한국계 외국인일 것이다.
2. 오리지널 외국인이 이렇게 한글을 잘 쓸 수 없다. 누군가 대필 해줄 것이다.


독자들의 이런 의혹들을 해소하고자 데니스 하트 기자를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수소문 해본 결과 그가 살고 있는 곳은 미국의 오하이오 주. 계획을 급하게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이메일로 태평양 건너 미국 사람하고도 소통이 가능하다. 이메일로 하트 기자와 두 차례(8월 1일, 8월 11일) 접촉했다. 다음은 서면 질문지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어떻게 그렇게 한국말을 잘하나"

▲ 대학에서 강의 하고 있는 데니스 하트 기자.
ⓒ 데니스 하트
- 정말 미국인 맞나? 어떻게 그렇게 한국말을 잘하나?"
"미국인 맞다.1952년 플로리다의 잭슨빌이란 도시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부모님이 나한테 묻지도 않고 뉴욕 주의 시라큐즈로 이사를 하셔서 그곳에서 쭉 살았다. 지금은 오하이오주 애크런시에 살고 있고, 켄트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난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미국인이다."

- 날 때부터 미국에 살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한국어를 잘 하나? 혹시 한국어가 제2의 모국어 아닌가?
"제2 모국어? 아니다. 제2외국어가 맞다. 한국어는 그저 제2외국어에 불과하다. 그래서 배우는 데 정말 고생 많이 했다. 해군에 입대해서 처음 한국어를 접했다. 예전에 한때 미국도 징병제를 한 적이 있었다. 기본 훈련을 받은 후 국방 언어 학교에 입학 신청을 했는데, 한국어반에 배정됐다. 군대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하니까. 그래서 난생 처음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다."

- 하트 기자는 양파같은 존재다. 까도까도 의혹이 계속 나오는 걸 보니. 군대에서 배운 한국어를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나?
"하하, 양파는 까다 보면 결국 아무 것도 안 남는데…. 해군시절 한국의 시골에서 2년 반 정도 근무를 했다. 그리고 전공이 '한국 정치학'이라 자연히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는 연구차 한국에서 3년 정도 살았다. 그래서 기사는 쓸 정도로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된 거다. 지금도 누가 나에게 '아유 한국어 잘 하시네요' 하시면 '쥐꼬리만큼 한다'고 대답한다. 정말 아직 멀었다."

하트 기자는 '쥐꼬리만큼' 하는 한국어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고 매번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런 것들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하트 기자가 '한국어를 잘하는 미국인'이고 '한국학자'이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기 때문이다. 하트 기자가 보여주는 이 세 가지 모습들, 일문일답 형식으로 추적해 봤다.

[한국어 잘하는 미국인] "뇌 발음은 쉽지 않다"

▲ 데니스 하트 기자가 집에서 혼자 찍은 '셀카'.
ⓒ 데니스 하트
- 혹시 대학에서 한국어도 가르치나?
"내가 한국어를 가르쳤다가는 여러 사람 망친다.(웃음) 내 전공은 한국 정치학이다. 다만 동양학이나 한국학 관련 강의를 할 때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부분을 조금은 이야기 한다. 동양학개론 시간이라도 인사하는 법이나 단어 몇 가지, 한국 문화에 대해서 조금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지만 난 한국어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니기 때문에 발음도 안 좋고 문법도 정확하지 못해 한국어를 가르칠 수준이 못 된다."

- 어려운 한국어 발음이 있나?
"아직도 정확하게 발음을 못하는 한국어 모음이 한두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ㅚ' 다. 내가 '뇌'라고 하면 한국사람들은 '네'라든지, 아니면 '노예'나 '누에'라고 하는 줄 안다. 그래서 '뇌'란 말을 하고 싶으면 '아 그 왜 해골 속에 들어있는 생각하게 하는 기관 있잖아'라고 해야 한다.

놀려먹고 싶은 미국인 친구가 있으면 '뇌'를 발음해보라고 해봐라. 아마 바닥에 구르면서 웃게 될 거다. 그리고 'ㅢ' 발음도 어렵다. '의자', '의사' 같은 말은 처음 배울 때 힘든 말이었다. 그 밖에도 '어려워요', '간지러워요', '미끄러워요' 등 다른 모음이 연속되는 말도 발음하기 쉽지 않다."

[미국속의 한국학] "미국 중심적 시각에 갇혀 있다"

- 유명한 한국학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와 사제지간이란 소문이 있는데.
"워싱턴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공부했는데 그때 지도 교수님이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와 작년에 돌아가신 제임스 팔레이(James Palais), 그리고 댄 레프(Dan Lev)였다. 내가 박사과정에 있었을 때 커밍스 교수가 시카고대학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지도 교수가 바뀌었다. 그 후로는 몇 번 만나지 못했다. 커밍스 교수의 연구에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지만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선배이자 동료라는 것 말고는 아무 관계도 없다."

- 미국에서 한국학 수준은 어떤가?
"사실 난 미국의 한국학에 대해 별로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한국을 공부한다는 학자들이 미국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냉전시대의 사고방식에 묻혀있든지 아니면 한국을 비하하는 오리엔탈리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국학자들이 많이 가입되어 있는 이메일 그룹을 예로 들어보자. 학회소식이나 학술지 뉴스 같은 것 말고 토론이랍시고 나오는 주제들이, 고작 '한국의 산부인과', '아이 간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미신', '남자 동성 매춘', '개고기 먹는 풍습' 같은 것들이다. 일일이 대응할 가치조차 없을 만큼 무지하고 미련스런 대화가 오간다. 최근만 해도 '한국사람 들은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고 믿는다'라는 제목의 글이 주제로 나왔다."

[시민기자] "한국사람이 읽는 글 쓰고 싶다"

▲ 데니스 하트 기자의 한 살 때 모습.
ⓒ 데니스 하트
- <오마이뉴스>는 어떻게 알게 됐나?
"<오마이뉴스>를 모르는 사람도 있나?(웃음) 실은 언어학자인 처남을 통해서 알게 됐다. 2002년 대통령 선거 이후로 한국에 대해 관심 있는 미국인이라면 대부분 <오마이뉴스>를 알 것이다."

-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시민기자가 된 이유는 여러가지다. 첫째, 난 한국학자이기 때문에 연구의 대상이 되는 한국 사람들에게 내 글을 읽히고, 연구의 질을 평가받아야 한다. 한국학의 너무 많은 부분이 백인 미국인들의 연구와 그에 대한 다른 백인 미국인들이 반응과 평가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사람들의 목소리와 시각이 아직도 많이 결여돼 있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쓴다면 한국 사람들이 읽고 서슴없이 내 생각의 옳고 그름을 지적해줄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 학술서적이나 학술지보다 폭넓은 독자층에게 빨리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인 동료가 얼마 전에 책을 새로 냈다고 해서 "전부 합쳐서 몇 명이나 너의 책을 읽을까?"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그 질문에 깜짝 놀라더니 "몇 명이 책을 읽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난 사실 그 질문은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채 몇 명도 읽지 않을 책을 왜 내야 하나? 혼자만 보는 일기가 아닌 이상, 독자를 위해서 쓰는 것이 글의 본질이 아닐까?

학자로서 글쓰기도 역시 나만을 위한 글쓰기가 아니며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더욱 많이 배우기 위한 수단이다. <오마이뉴스>는 공적인 공간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함께 성장할 기회를 주는 공론의 장이다. 해외통신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오마이뉴스>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 <오마이뉴스>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오마이뉴스>는 민주적인 글쓰기가 가능한 공간이다. 댓글 달기와 찬반을 표할 수 있는 기능이 마련돼 있어,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정보를 습득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어 아주 흥미롭다. 미국에는 이와 견줄 만한 인터넷 신문이 전혀 없다. 단점이라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만화 '비빔툰'이 실리지 않는다는 것 정도."

<오마이뉴스>에서 '비빔툰'을 아쉬워하는 하트 기자. 이제 그에 대한 대부분의 의혹은 풀렸다. 앞으로도 '쥐꼬리'만한 한국어 실력으로 바다 건너 <오마이뉴스> 한국의 독자들을 더욱더 감동시키길 기대해 본다.

▲ 켄트주립대학 도서관에서 데니스 하트 기자(왼쪽).
ⓒ 데니스 하트

태그:#뉴스게릴라를 찾아서, #데니스 하트, #미국인, #브루스 커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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