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음식을 먹으면 내 체질에도 맞고 더욱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이 일에 동참하면 할수록 더욱 그 의미를 찾아가고 있어요."

영국 런던에 살고 있는 신시아(54·여)씨는 '지역 먹을거리(로컬 푸드)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기 지역에서 생산된 음식물이 제품의 질이나 이동에 있어서 더욱 우수하고 안전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는 "수백만·수천만 ㎞ 떨어진 곳에서 수입되는 제품들은 어떤 생산·보관·운반·검증 등의 절차를 거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런던푸드플랜, '무엇을 먹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You are what you eat'의 홈페이지에 소개된 출연자들의 변화된 모습.
현재 영국에는 '당신이라는 존재는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결정된다(You are what you eat)'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는 비만으로 코끼리 같은 다리와 남산만한 배를 가진 사람들이 출연한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그들의 식생활 습관과 주로 섭취하는 음식물들을 분석, 지적해 잘못된 식생활 습관을 바로 잡아준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영국 사람들은 편리함만을 고려하는 지나친 '인스턴트' 위주 식단과 고기 및 지방 제품 등을 무분별하게 섭취해 왔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처럼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어떻게 하면 더 질 좋은 음식물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가 영국 사회의 주요한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1986년부터 시작된 광우병 파동 이후 고기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음식의 문제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자신들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런던시는 이미 수년 전부터 다방면에서 구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먼저, 런던시는 지난 2004년 9월 런던시의 음식에 관한 제반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런던푸드위원회'를 세웠다. 이 위원회의 할 일은 런던 시민의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질 좋은 음식을 개발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지난 2006년에는 이를 확대 개편한 '런던시의 푸드 전략- 런던을 위한 건강하고 지속적인 음식'이라는 모임을 설립했다. 이 기구는 런던에서 음식 관련 사업을 하는 레스토랑 대표 등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까지 대거 참석했다.

이들은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만나 지역의 먹을거리 확보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런던시의 푸드 전략'은 런던시의 음식을 개선시키기 위한 5대 목표를 만들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런던 푸드 전략의 5대 목표
① 음식으로 런던 시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시민들 사이의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자.
② 런던의 푸드 시스템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자.
③ 런던의 음식 관련 경제를 활기차게 만들도록 지원하자.
④ 런던의 음식 문화를 환영하고 더욱 증진시키자.
⑤ 런던의 음식 안보를 발전시키자.


이를 통해 런던시는 오는 2016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질 좋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150㎞ 밖의 것은 절대 먹을 수 없어!

▲ 레스토랑 개혁을 소개하고 있는 런던푸드링크의 홈페이지.
ⓒ London Food Link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과 함께 런던의 먹을거리 변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런던푸드링크'.

지난 2001년부터 운영된 런던푸드링크는 음식과 관련된 각종 개혁적인 움직임을 선도하고 있다. 런던푸드링크는 런던 근교(약 150㎞ 이내)에서 생산되는 음식물을 소비하게 유도하는 것부터 이 음식물들이 친환경적으로 폐기되는 작업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이를 위해 런던푸드링크는 런던 근교의 땅에 시민들이 직접 농작물을 키울 수 있게 유도하고 있다. 런던 북부에 위치한 이슬링턴 자치구가 그 대표적인 사례. 이슬링턴의 공원 일부를 밭으로 할애해, 그 지역 주민들이 직접 농작물을 키우게 한 것.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이 직접 유기농 채소를 키우면서 안전한 먹을거리 생산뿐만 아니라 수확하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고 한다.

공공기관도 이러한 유기 농산물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슬링턴 의회는 인터넷을 통해 "이슬링턴 지역에서 만들어진 지역 먹을거리를 매주 일요일에 10시부터 2시까지 판매하고 있다"며 지역 주민들이 이러한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구입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런던푸드링크는 또 음식과 관련된 각종 조직과 관련 종사자, 런던시 등에게 지역 먹을거리의 필요성을 적극 설파하고 있다. 동시에 자신들의 뜻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구축, 서로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파트너십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또 병원과 학교 등 공공영역과 일반 식당 등 민간 영역에서도 지역의 먹을거리를 구입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실제 런던푸드링크는 런던시 내의 100여개 조직, 음식 관련 작가, 레스토랑 종사자, 정책 입안자 등과 연계를 맺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 등을 공유하고 있다. 지역 먹을거리 운동가인 리차드 쿨렌씨는 "많은 연구들은 영국 소비자들은 'made in the UK'라는 라벨이 달린 음식물을 먹기를 원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 영국에서 데이비드 베컴 다음으로 유명하다는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 그는 정크푸드에 익숙한 영국 아이들의 식습관을 바꾸기 위해 급식개혁 프로젝트 'Feed me Better'를 실시하기도 했다.
ⓒ www.jamieoliver.com
하지만 이같은 노력이 구체적인 결실을 맺으려면 가야할 길이 멀다. 무엇보다 런던에 있는 1만2000군데 이상의 레스토랑을 비롯한 민간과 공공 부분의 적극적인 동참이 절실하다.

다행히 이들의 노력이 음식 관련 시장과 문화를 바꾸는 등 결실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내 유기농 농산물, 공정무역(fair trade), 지역 먹을거리 등의 시장 규모가 연간 20억파운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옵저버>지는 "특히 유기농 농산물 시장은 그 자체만으로 처음으로 10억달러를 돌파했다"고 보도했다.

정크 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도 이러한 움직임에 재빨리 발맞추고 있다. 최근 영국 맥도날드는 "7월 말까지 영국의 1200개의 영업점에서 사용하는 커피와 차에 사용되는 우유를 영국에서 기른 소의 젖을 짜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찰스 왕세자의 당근이 거부당한 까닭은

지난 6월 영국의 찰스 왕세자는 때 아닌 '당근' 논쟁에 휩싸였다. 열렬한 유기농 옹호자인 찰스 왕세자는 1986년부터 웨일스 글로스터셔주에 위치한 자신의 영지에 유기농법으로 각종 농·축산물을 재배하는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건은 영국의 대표적인 유통업체인 '세인즈베리'가 지난 1월 찰스 왕세자를 비롯한 몇몇 유기농 농장에서 재배한 당근의 납품을 거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세인즈베리는 "(찰스 왕세자의 당근이) 유기농 제품이지만 문제의 당근들은 지난 해 겨울을 지나면서 보관하는 과정에서 썩었다"며 "품질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세인즈베리의 주장에 당사자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제품이 아니라 세인즈베리 같은 대형화된 유통망이 문제라는 것. 찰스 왕세자와 함께 납품을 거절당한 홀덴 토양협회장은 "찰스 왕세자와 나는 중앙 집중화된 슈퍼마켓 공급 시스템으로 인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 찰스 왕세자의 당근 사건을 보도한 <가디언>. 찰스 왕세자는 열렬한 유기농 옹호자로 알려져 있다.
ⓒ Guardian
홀덴 회장의 주장에 따르면 생산된 당근은 품질 좋은 유기농이었지만 유통을 위해 운반되는 과정에서 이동거리가 길어지면서 상태가 변질됐다는 것. 실제로 찰스 왕세자와 홀덴 회장이 키운 당근은 세인즈베리에 납품되기 전 포장을 위해 수백마일이나 떨어진 동부 잉글랜드 지역으로 옮겨져 창고에 보관됐다. 특히 홀덴의 당근은 약 230마일(약 370㎞)이나 운반됐다.

또 유기농 제품인데도 색상 등 겉모양을 좋게 하려고 세척 과정을 거쳐야 했다. 홀덴은 "이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약 15%의 제품이 손해를 봤을 뿐만 아니라 세척을 너무 세게 해 당근이 쉽게 상하는 상태가 됐다"고 주장했다.

홀덴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약 40~60%의 유기농 제품들이 이런 공급 시스템으로 낭비되고 있다"며 "많은 유기농 공급자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지만 슈퍼마켓에 잘못 보일까봐 감히 말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찰스 왕세자의 '당근' 사건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지역에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산한 먹을거리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지 않고 지역에서 소비하면 되는 것.

하지만 세인즈베리·테스코 같은 거대 유통망이 장악하고 있는 영국에서 지역 먹을거리를 지역에서만 소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이 사건은 대형할인점 같은 거대 유통 시스템에서 지역 먹을거리가 어떻게 안전하게 소비될 것인가 라는 시사점을 던져 주었다.

왕세자는 유기농을 좋아해
열렬한 유기농 옹호자, 찰스 영국 왕세자

찰스 영국 왕세자가 유기농업 옹호자라는 사실은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실제 올 1월 찰스 왕세자는 "국민 건강을 위해서는 맥도날드를 금지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찰스 왕세자는 자신의 영지에 살충제와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농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거기에 생산된 각종 농산물과 축산물을 자신의 이름을 걸고 판매하고 있다. 영국의 대형 유통업체 막스 앤 스펜서는 찰스 왕세자가 운영하는 재단과 연계해서 양고기를 독점 판매하고 있다.

▲ 막스 앤 스펜서와 찰스 영국 왕세자가 운영하는 재단의 협약식 사진.
ⓒ Prince’s Trust Cymru
찰스 왕세자는 '왕세자 트러스트 킴루(Prince’s Trust Cymru)'라는 재단을 운영하면서 각종 불이익을 당하는 젊은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 들어 찰스 왕세자 재단은 웨일즈 세레디지온 카운티의 농부들이 막스 앤 스펜서 17개 지점에 6개월 동안 일주일에 200마리의 양을 공급하는 일을 지원하고 있다. 농부들의 안정적인 사업 활로를 위해 직접 왕세자가 나선 것.

막스 앤 스펜서는 양을 공급하는 농부들에게 특별히 우대한 고정금액으로 돈을 지불하는 대신 제품에 '왕세자의 재단 킴루와 협력해서 일한다'는 문구를 표시한다.

찰스 왕세자는 지역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대해 그 지역의 젊은 농부들에게 사업 활로를 뚫어주려는 것이고 막스 앤 스펜서는 지역 먹을거리를 공급받는 동시에 왕세자 이미지를 이용해 제품을 더 많이 판매하는 것. 왕세자가 적극적으로 나서 지역 먹을거리를 보호하고 대형 자본에 대신 맞서 기회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