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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정정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전 박사는 아닙니다. 10년 동안 박사 공부해서 수료만 했지 학위는 없습니다."

10일 오전 10시 국회정론관에서 가진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정태인씨의 기자회견은 간단한 정정으로 시작됐다.

민주노동당 입당 선포를 공식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앞둔 정씨는 회색 양복에 굵은 곱슬머리를 바짝 빗어 올려 평소와는 달리 조금 긴장된 모습이었다. 한미FTA와 관련해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던 한 방송국 PD는 "인터뷰이의 복장이 조금 난감하다"고 했다. 현 정권의 경제비서관 출신이 현 정권이 말하는 최대 치적인 '한미FTA 반대'의 공식적인 중심에 선 것을 선포하는 자리니 어쩔 수 없이 예의를 갖춘 복장일 것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문성현 대표와 심상정 의원, 김형탁 대변인과 함께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당직자들에 둘러서서 꽃다발을 걸어주고 축제 분위기속의 기존 정당 입당식과는 다른 조금은 조촐한 입당 회견장이었다.

오동나무 이파리를 보면 가을이 온 것을 안다는 한시를 거론하며 정태인씨의 입당에 큰 의미를 부여한 문성현 대표는 이 땅의 더 많은 지성들이 비판과 함께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시금석이 되길 희망했다.

정씨를 "동지"라고 부른 심상정 의원도 인재가 모이는데 희망이 있다며 정태인씨의 입당이 대선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 장담했다. 이날 입당한 정씨는 앞으로 '한미FTA저지 사업본부장'을 맡을 예정이다.

직접 쓴 입당의 변으로 기자회견을 마친 정씨는 자리를 옮겨 기자들과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약 10여명의 기자들은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정책의 최고점에서 대척의 최고점으로 가장 큰 변신을 한 정씨에게 개인적인 질문부터 한미FTA 비준 전망까지 다양한 질문을 했다. 방송 진행을 오래한 경력답게 정태인씨의 간담회는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정태인 전비서관의 민주노동당 입당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그동안 민노당원이 아니었나.
"심상정 의원이 '꼬셔서' 내 생애 최초로 당적을 갖게 됐다. 한미FTA라는 워낙 중차대한 위기 앞에서 결단을 해야 했다."

- 대선이 4개월 남았지만 한미FTA는 후보들의 논쟁에서 비껴난 느낌이다.
"현재 천정배 의원 정도만 반대 의사가 분명하고 나머지는 다 찬성하고 있다. 여권의 강력한 후보라고 하는 손학규씨는 이명박씨보다 더 적극적 찬성론자다. 아이러니한 것은 협상 타결에 반대해 단식까지 했던 김근태 의원이 손학규 후보 영입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부적인 사정 때문에 한미FTA가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어느 후보도 30%의 한미 FTA를 반대하는 표를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 한미FTA와 관련해 참여정부를 비판하면서 대통령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나.
"대통령의 변화에 따라 나도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진보세력을 공격하면서부터는 대통령 스스로 시장 만능론자가 되어버렸다. 최근 유시민 의원까지 시장 만능론을 얘기하고 그래서 갈라서야 했다."

- 민노당도 경선이 치러지고 있는데, 총괄 본부장으로 있는 것이 어떤 연관이 있나.
"내가 역할을 맡는 것에 대해 심상정, 노회찬, 권영길 후보도 동의했고 문성현 대표도 요청했다. 한 캠프에만 있는 것보다는 당 전체에서 필요한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나."

- 민노당 외의 당에서 입당 제의를 받은 적은 없었나.
"작년 봄, 유시민 의원이 낚시하러 가서 묻더라. 한미FTA 계속 반대할거냐고. 그렇다고 했다. (심)상정이 얼마나 도와주고 있냐고도 물었다. 그래서 5년 전 노 후보 도와줄 때만큼 도와준다고 했다. 그게 입질이 아니었나 싶다."

- 유시민 의원이랑 친한가.
"유시민, 심상정, 정태인 우린 동기(서울대 78학번)다."

다음은 정 전 비서관 입당의 변.

1. "그래도 민주노동당에 들어오세요"

저에게는 이 말이 고 허세욱씨의 유언입니다. 숭실대, 동작지역위원회 주최의 강연이 끝나고 피곤에 찌들어 발걸음조차 제대로 떼지 못하던 제 앞에 택시 한 대가 스르르 섰습니다. 그는 택시노련 소속의 기사라고, 방금 강연을 들었노라며 운전을 하면서도 한미FTA에 대한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일주일 쯤 뒤 관악위원회 주최 강연 말미에 그는 저에게 왜 민주노동당에 들어오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그 분의 분신 소식을 청와대 앞, 문성현 대표의 단식농성장에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유언을 실천합니다. 한미FTA는 너무나 어마어마한 정책이라 경제학을 전공한 저도 그 엄청난 영향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민중들은 어떤 피해가 돌아올지 몸으로 먼저 느낍니다. 고 허세욱씨 는 민중이 겪을 고통을 미리 보여주었습니다.

2. 1992년 여름 박현채 선생이 저를 서교호텔로 불렀습니다. "DJ하고 손 끊었다". 72년 대선 때 '대중경제론'을 쓴 이래 줄곧 숨어서 정책을 보좌했던 인연을 끊은 겁니다. 이유는 92년 대선 때부터 이미 김대중 후보가 '뉴DJ플랜' 같은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박현채 선생은 민중의 삶의 관점에 선 '민중의 경제학'을 세운 분입니다. 그 기준에 비춰 김대중 당시 후보의 경향은 이미 위험해 보였던 겁니다. 박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한미FTA에 찬성했을 거라는 유시민 의원의 진단은 지극한 무지의 소치일 뿐입니다. 저 역시 이제 이른바 민주화운동의 선배, 동지, 후배들과의 인연을 끊습니다.

이제 민주화시대, 또 산업화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 왕년의 투사들이 함께 모여 한미 FTA 비준 동의를 꾀한다면 그들은 이미 민중의 편이 아닙니다. 그들은 재벌-재경부-조중동이라는 지배 삼각동맹의 꼭두각시일 뿐이며 민중의 시대를 가로막는 '시대의 퇴물들'일 뿐입니다.

3. 한미FTA는 이 나라의 사회경제체제를 송두리째 미국형으로, 더 정확히는 멕시코형으로 바꾸는 쿠데타입니다. 더 많은 시장으로, 더 많은 개방으로, 결국 양극화 일변도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역진불가의 체제입니다.

이 나라의 일반 국민들이 그 내용을 알기만 한다면 도저히 찬성할 수 없는, 국민 전체를 건 일대 도박입니다. 이번 대선, 그리고 내년의 총선은 한미 FTA의 진실이 밝혀지는 정치 마당이 될 겁니다. 그리하여 민주노동당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와 양립하는 순간, 그들은 대안이 뭐냐고 물을 겁니다. 이번 대선은 민주노동당이 그 대안을 제시해서 국민의 지지를 확인하는 장이 될 겁니다.

저는 고 허세욱 동지, 그리고 박현채 선생님의 뜻을 이어서 민중의 경제학을 실천하러 민주노동당에 들어왔습니다. 한미FTA를 저지하고 다가올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승리하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우리는 승리합니다. 감사합니다.


▲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 1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 FTA를 저지하고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승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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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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