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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장은 도매 위주의 대형 거래가 주류를 이루지만, 가락시장 전철역으로 통하는 동쪽 샛문으로 나오다 보면 보통의 재래시장과 비슷한 풍경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샛문을 나와 가락시장 전철역으로 가는 길 옆에는 스무명 남짓 되는 할머니들이 얼마 안 되는 야채나 과일을 놓고 팝니다.

그런데 거기서 파는 물건들은 특징이 있습니다. 과일이나 당근을 보면 상한 부분을 도려낸 칼자국이 있고 배추는 푸른 겉잎이 없고 노란 배추속만 있지요. 오늘 이야기는 할머니들이 파시는 그 물건에 대한 것입니다.

새벽과 오전의 도매시장이 진행되는 동안, 상인들은 물건을 선별하면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들은 버립니다. 망그러진 것이 섞여있으면 전체가 하품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그런 것은 골라내는 편이 낫지요. 그렇다고 그것들을 다듬어서 팔기에는 품값이 나오지 않습니다.

도매시장이 끝날 즈음, 할머니들은 그 더미에서 비교적 괜찮은 것들을 골라갖고 시장을 나옵니다. 그리고는 시장 담장 옆에 앉아서 다듬습니다. 지저분하거나 상한 부분은 잘라버리지요. 이렇게 해서 무자본에 노동력만 더해서 나오는 것이 바로 할머니들의 길거리 좌판 물건입니다.

따라서 그 좌판들은 주 취급 물품이 따로 없고, 그날 그날의 수확물(?)에 따라서 품목과 량이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가격은 가락시장에서 파는 일반 물품값의 이삼분의 일 정도이니, 오천원이면 한보따리를 들고 올 수 있습니다.

▲ 재래시장은 노동력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잘 품어준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이런 풍경은 마장동 축산시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소나 돼지의 내장과 머리 부분은 부산물이라 불리는데, 이것들의 원가는 무척 싼 대신 식재료로 되기까지 잔손이 많이 갑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먹는 가격은 약간의 원재료비에 손질하는 인건비, 그리고 거기에 판매이익이 얹혀진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런 부산물은 그나마 대접을 받는 편입니다. 소 곱창의 경우는 기름 덩어리 사이에서 발라내야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돈이 되죠.

잡육도 돈이 됩니다. 기술자들이 능숙한 솜씨로 갈비뼈와 갈비살을 분리하고 나면 갈비살은 랩에 둘둘 말려서 갈비집으로 가고, 뼈는 거기에 붙어있는 잔 살들을 한차례 더 발라낸 후에 잡뼈로 팔려나갑니다. 뼈 사이에서 발라낸 조각 고기는 "잡육"이라는 이름으로 돼지고기가 1Kg에 이천오백원, 소고기가 오천원 내외에 팔립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한근이 아닌 1Kg 가격입니다.)

같은 갈비살이라고 해도, 덩어리가 아닌 조각 고기거나 모양새가 좋지 않으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반 정육점으로 팔려나가지 못하고 저처럼 아는 사람들이나 찾는 물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수고에 비해 얻어지는 대가가 아주 적은 것이지요. 소의 목부분을 보면 기름 덩어리 속에 길다란 고기살이 한조각씩 하나씩 있는데, 이것을 발라내는 것은 대부분 나이드신 할머니들이 합니다. 오전 내내 작업하면 대여섯 근 정도의 고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하네요. (모르긴 몰라도 이런 것은 거의 거저 가져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잡육을 어제 한근에 이천원 주고 샀습니다. 값은 다른 잡육보다 싼 편이지만 장조림이나 찜을 하기에는 제격이라 저는 시장을 뒤져서 꼭 이것을 찾습니다. 다음주에 친구 몇명과 집에서 모임을 가질 예정인데, 이걸로 소고기 매운찜을 해 줄 예정입니다.

기독교 경전에 보면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자기가 일군 밭이지만 이삭을 줍기 위해 다시 밭으로 가지 말라는 말이지요. 제가 아는 바로는 이것이 단순한 권유가 아니라 유대나라에서는 법률과 같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객"은 "나그네"라는 말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엄밀한 의미로는 일을 찾아 돌아다니는 유랑민이 되겠습니다. 유랑민과 과부와 고아, 이 셋은 경제적 최 빈곤층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 "나무가 크면 그늘도 크다"는 말이 있지요. 제가 큰 시장을 다니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가, 가게도 자본도 없이 노동력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잘 품어주고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밭주인의 입장에서는 거두는 것보다 흘리는 것이 좋고, 그 이삭을 줍는 사람들에게는 빈곤한 살림이나마 떳떳이 일해서 꾸려갈 수 있는 터전이 되니 이 역시 좋은 일이지요.

요즘 이랜드 계열의 대형유통점 홈에버가 비정규직 해고로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마트라는 데가 그렇습니다, 지역에 들어갈 때는 지역 주민을 고용하겠다고 하고서 계산대를 담당하는 비정규직으로 고용했다가 때가 되면 쫒아내는... 아니면 "아웃소싱"이란 이름으로 하청회사의 고용원으로 전락하든지. 하지만 이제 이삼년 후면 그나마 남아있던 계산대마저 전자테그로 인해 사라질테고, 그러면 그 때 가서는 비정규직 문제가 아니라 아웃소싱 회사의 정직원 문제로 바뀌게 되나요?

이제 대형 마트로 가던 발길을 여러분 주변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돌리세요. 그리고 길 옆에 있는 할머니들의 좌판에서 흥정을 벌여보세요. 거기에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큰 나무와 큰 그늘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재래시장을 사랑하는 식품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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