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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탈레반과 정치협상은 없다."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의 '선언'이다. 사뭇 용기가 묻어나는 발언이다. 30일 워싱턴 교외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영국 총리 고든 브라운과의 정상회담 끝에 한 말이다. 부시의 말은 아프가니스탄에 피랍되어 있는 한국인 인질을 직접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소가 웃을 일이다. 찬찬이 톺아볼 일이다. 말 그대로, 직접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연관되어 있다. 한국인 인질의 석방조건으로 탈레반이 제시한 수감자 석방을 미국은 단호하게 거부해왔다. 테러리스트와 타협은 없다는 사뭇 의연한 논리다. 하지만 거기에는 두 가지 의문이 어쩔 수 없이 든다.

첫째, 탈레반은 테러리스트들이 아니다.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탈레반은 없다. 탈레반은 '이슬람경전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란 뜻이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를 침략해온 옛 소련군과 싸웠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해 들어가기 전까지 엄연한 아프가니스탄의 정부였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로서는 소련에 이어 침략해온 미국과 싸우는 게 필연일 수밖에 없다.

둘째, 탈레반에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미국인이어도 과연 조지 부시가 원칙론만 밝힐까라는 의문이다. 미국인 20여명이 탈레반에 납치되어 살해위협을 받을 때 과연 미국은 '한가한 이야기'를 할까. 더구나 이미 인질이 살해당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조지 부시 정권이 테러리스트와 정치협상은 없다고 살천스레 선언함으로써 탈레반은 더 강경 노선으로 쏠릴 게 분명하다. 탈레반 대변인은 이미 강조했다. "우리는 몇 차례에 걸쳐 협상시한을 설정했지만 아프간 정부가 시한에 주목하지 않았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이 제시한 시한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뒤에 미국이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미국이 침략해 들어가 세운 정부 아닌가.

그래서다. 살해당한 한국인, 지금 이 순간 공포에 잠겨있을 인질들의 슬픔과 고통이 주는 교훈을 뼈아프게 새겨야 옳다. 무엇보다 미국은 자신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데 더없이 냉정하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자국인의 생명은 '신성시'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 국민은 아니다. 보라. 아프가니스탄은 물론, 이라크에서도 얼마나 숱한 민간인이 무차별 폭격으로 숨졌는가. 베트남 전쟁 때도 마찬가지다. 아니 멀리 갈 이유도 없다. 이미 한국의 저 빛나는 오월항쟁 때도 미국은 민주시민을 학살하는 전두환 일당을 도왔다.

노 정권, 고 김선일씨 사건 교훈 벌써 잊었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미국의 탓이라며 미국만 비판할 일은 아니다. 얼마든지 우리가 대응할 영역이 있다.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권의 선택이다. 노 정권은 민주시민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파병했다. 많은 사람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반대했다.

흔히 우리는 '똘레랑스'를 이야기한다. 차이를 미덕으로 거론한다. 생각해보라.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처지에서 오늘의 상황을. 그들에게 미국은 명백한 침략자다. 미군과 더불어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외국군은 죄다 미국의 용병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슬람국가이기에 기독교 교회의 선교에는 민간인이라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다. 정부가 인질 협상을 벌이고 있기에 그동안 참아왔지만 더는 아니다. 국민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차례차례 죽어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아프간과 이라크에 파병한 게 큰 과오임을 우리 모두 확인할 필요가 있다. 고 김선일이 비명에 숨졌을 때 이미 비극이 되풀이될 수 있음을 노 정권에 경고한 바 있다.

명토 박아 둔다. 탈레반은 테러리스트들이 아니다. 자신의 나라를 침략해 들어온 외세와 싸우고 있을 따름이다. 어차피 연말에 철군할 깜냥이라면 그것을 앞당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것은 굴복이 아니다. 국가의 품격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는 길이다.

적어도 즉각 철군을 '무기'삼아 저 냉정한 부시 정권을 압박할 수 있다. 그렇다. 당당하게 미국에 할 말을 할 때다. 우리 국민이 하나둘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한국인 봉사단원들의 모습.

태그:#탈레반, #인질, #조지 부시, #파병,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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