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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노래가사를 바꿔 부른 이른바 '노가바'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티꺼운 게 많은 대학 시절에 우리들은 오늘 데모하는 데 / 이리저리 막힌 바리케이트 우리들은 이제 어디로 가나 / 앞문으로 가면 전경들 뒷문으로 가면 짭새들 할 수 없다 짱돌을 던져라(집어던져라) / 너와 나는 투사다 승리의 물을 마시는 너와 나는 투사다 파쇼 갈 때까지 싸우자." (고교생 일기)

"일자리도 인정도 없는 도시는 뭐하러 가나 / 이 내 몸은 노총각신세 일만 한단다 / 금순아 갈테면 가라 삼돌이도 갈테면 가라 / 개간지 비탈에서 나만 홀로 괭이질한다." (노총각 타령)


첫 번째 노래는 최재성, 강수연, 손창민 등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 <고교생 일기> 주제곡을, 두 번째 노래는 1950년대 현인이 부른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의 가사를 바꿔 부른 곡이다. '노가바'(노래가사바꿔부르기의 줄임말)로 불린 이와 같은 형태의 노래는 1980∼90년대 대학가와 민주화운동진영에서 유행했다.

최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가 펴낸 민중가요 모음집 <노래는 멀리멀리>(상, 하)엔 이와 같은 '노가바' 134개가 실려 있다. 송대관의 '쨍하고 해뜰날'을 바꾼 '허하고 한숨이'를 비롯해 이용의 '첫사랑'을 바꾼 '첫 가투', '선창'을 바꾼 '울려고 농사했던가' 등 재치가 번뜩이는 노래들이 가득하다.

이번 모음집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민중문화 기본콘텐츠 수집사업으로 시작했다. 1차로 1977년부터 1986년까지 민중가요집에 실린 750여 곡의 민중가요 악보를 실었고, 이후 1986년부터 89년까지, 1990년부터 92년까지 2, 3차 악보집을 더 펴낼 예정이다.

이번 1차 작업을 위해 노래책 25권과 노래테이프 38개를 분석했고, 김민기, 김창남, 문승현, 백창우, 안혜경 등 민중가요 창작자 40여 명을 김병오, 서정민갑, 이은진 등 8명의 채록연구원들이 만나 구술을 채록했다.

문승현씨 같은 경우 아홉 번이나 인터뷰를 했을 정도로 구술에 힘을 쏟았다.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노래를 찾는 사람들, 감리교청년회, 노래마을 등 당시 민중가요 창작작업을 주도했던 단체 관계자들도 힘을 보탰다.

그러나 이와 같은 채록 작업이 쉽진 않았다. 이미 20∼30여 년 전 일이기에 당사자들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부는 인터뷰를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총괄연구원 서정민갑씨는 "워낙 오래된 일이라 정확한 사실 확인이 어려웠다"면서 "하지만 이영미 선생님은 날짜 상황까지 정확히 기억해 깜짝 놀랐다"고 채록 과정에서 생긴 일화를 전했다.

▲ 민중가요 악보집 <노래는 멀리멀리>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렇게 모인 노래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집회나 시위를 위해 만들어진 곡도 있지만 흔히 건전가요라고 불리는 노래들과 포크송, 가곡, 민요, 팝송 등이 함께 실려 있다. 성가곡이지만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도 흥얼거리곤 했던 '내게 강같은 평화'를 비롯해 윤극영이 작사 작곡한 '반달'과 '새 나라의 어린이', '밀양 아리랑', '군밤타령' 등이 악보집에 실려 있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박혜경 장나라가 부른 한국전력 CF 곡 '뭉게구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통해 유명해진 '도레미 쏭', '여신도회 회가', '애국가', '조선의 꽃', '앞마을 순이' 등 수록곡은 장르를 불문한다.

직업 운동가요 작곡가나 노래패가 없었던 시절 거리에 나선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서를 담은 노래들을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는 멀리멀리>를 보면 당시 부조리에 대항하고, 자신의 울분을 호소했던 사람들이 어떤 노래를 즐겨 불렀는지 알 수 있다.

'햇빛 따스한 아침 숲속길을 걸어가네. 당신과 둘이 마주 걸었던 이 정든 사잇길을…'으로 시작하는 현경과 영애의 '그리워라'는 시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메아리> 4집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노래가 있었나 싶은 곡들도 여럿 볼 수 있다. <메아리> 4집에 실린 '군발이 각설이'란 곡과 '돼지 부랄'은 가사가 재미있다.

"군발이 각설이 들어간다 군발이 각설이 들어간다 / 미국에선 Bob Dy lan 이 댓방 한국에서는 김민기가 댓방 / 둘이서 붙으면 건전가요 절로 난다 군발이 각설이 들어간다."

"엄마야 뒷집에 돼지 부랄 삶더라 / 좀 주대요 맛있드나 맛없대요 / 꾸꾸꾸릉내가 나대요 찌찌찌릉내가 나대요."


흥미로운 점은 다른 나라의 노래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팔레스타인,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라트비아 등 제3세계 국가뿐만 아니라 독일, 중국, 캐나다, 인도 지역 노래도 만날 수 있다.

물론 '그날이 오면', '광야에서', '불나비', '이 산하에', '타는 목마름으로' 등 민중가요 명곡들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눈여겨볼 점은 원전을 살린다는 뜻에 따라 당시 창작자가 없었을 경우 이번에도 그리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문승현 작사 작곡인 '이 산하에'는 이번 악보집에서도 작사 작곡자 이름이 없다.

▲ 문승현이 작사 작곡한 '이 산하에'가 악보집에선 창작자의 이름이 빠져 있다. 원전 당시 이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구술 과정을 통해 받아낸 증언들 중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작자 미상으로 알려진 '민족해방가', '투사의 노래'의 작곡자가 동국대 이형석이었다는 사실, <노래 무크>의 좌담에 문승현이 가명으로 참여했던 사실 등이 대표적이다. 이름을 속이고 비합법으로 활동하는 게 일상적이었던 시절 이야기다.

총괄연구원 서정민갑씨는 "이번 작업을 한 뒤 '수고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면서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송구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2차 작업(1986∼89)은 현재 진행 중이며 앞으로 1년 정도 작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노래 책자와 테이프 디지타이징, 관련자 구술채록 사업은 2008년 이후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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