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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솔바우의 돌담집과 정원, 층층나무엔 온갖 새들이 모여 축제를 열고 있다.
ⓒ 윤희경
손수 길러낸 청정 채소들을 트럭에 싣고 시내 배달을 다닐 땐, 종종 'god'의 <길>이란 노래를 감상한다. 그 때마다 <길>은 그 진솔한 내용과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생생하게 다가와 북한강 쪽빛강물을 가슴가득 퍼 올려 담아준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 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 오두막집에 딸린 솔바우 텃밭, 보이는 건물이 재래식 화장실이다.
ⓒ 윤희경
길만큼이나 긴 노래를 감상하며 구불구불한 춘천댐 구비 길을 돌아 나오다 보면, 그 동안 걸어온 길, 앞으로 더 걸어 가야할, 그래서 다다라야 할 길들이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새파란 호수가 그림처럼 드리우고, 수수하고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의 솔바우 마을. 도시 생활을 뒤로 하고 오솔길을 밟으며 이 시골 동네로 들어왔다. 친환경 유기농 꿈을 꾸며 땅 파고 땀 흘려 작은 행복을 일궈낸 지 벌써 십여 년이 넘어간다. 지렁이, 굼벵이, 달팽이와 함께 새참 먹어 흐르는 땀방울을 씻다보니 어느새 촌부(村夫)가 다 되었다.

▲ 텃밭엔 고구마, 땅콩, 옥수수, 들깨, 고추 등 있을 것은 다 있다.
ⓒ 윤희경
처음 농사를 시작하며 흙 일궈 씨 뿌리고 비료나 주면 풍성한 먹을거리를 주려니 했다. 그러나 소박한 기대와는 달리 첫해 농사는 보기 좋게 실패를 했다. 고추 탄저병, 배추 바이러스, 토마토엔 배꼽 썩음 병이 걸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어지간해서 땅을 타지 않는다는 들깨를 심어도 발육이 신통치 않아 잎이 붉게 변해갔다. '할 일 없으면 시골에 가 농사나 짓고 땅이나 파먹지'하는 철딱서니 없는 말들이 일반론적 상식으로 설명하기에 얼마나 어리석은 소린지를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흙을 한 사발 퍼들고 농업기술센터로 갔다. 환자의 환부를 다루듯 면밀히 토양검사를 하고 흙을 진단했다. 흙이 죽었다 했다. 숨이 멈춘 지 오래 되었단다. 흙이 죽다니 참 딱한 일이었다.

▲ 텃밭을 갈아내 유기질 땅을 만들어내는 싱싱한 지렁이, 만약 제초제를 치면 즉시 몰살을 당한다.
ⓒ 윤희경
동안, 이 사람 저 사람 농사를 지으며 비료 농약 제초제를 마구잡이로 사용해 흙은 척박해지고, 유기물을 공급해야 할 지렁이나 굼벵이가 몰살을 당한 지 오래되었다 했다. 흙은 산성화되어 몸살을 앓고 병이 깊다 했다. 그랬다. 땅 속은 단물이 다 빠져 삭아 버리고 땅덩이는 굳어버린 것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왔다.

농한기마다 환경 친화형 유기농업 교육도 받고 참고서적을 읽으며 '땅이 살아야 인간도 살 수 있다'는 원초적인 결론과 해답을 얻어냈다. 또 제초제에는 다이옥신 원료가 포함, 과도하게 남용했을 때 사람은 물론 흙에도 치명적인 해가 돌아온다는 사실과 한 번만 사용해도 흙을 되살려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현실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흙을 살려야 했다. 흙이 먹고 살 유기질 비료가 필요했다. 소나타 승용차를 팔아 농촌형 세레스 덤프로 바꾸었다. 승차감은 형편없어 궁둥이가 튀어 올랐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쌀겨, 깻묵, 톱밥, 음식물찌꺼기, 가축배설물, 볏 집 부스러기들을 모아 야적장에 쌓았다. 가랑잎과 부엽토를 긁어다 훌훌 섞었다. 인분을 퍼붓고 보온 덮개를 씌웠다.

▲ 텃밭을 가는 굼벵이, 어서 환생하여 매미가 되어야할 터인 데 밭가느라 정신이 없다.
ⓒ 윤희경
퇴적물들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온도가 올라 흑갈색으로 변했다.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올라 발효가 되며 썩음 질을 시작했다. 얼마 동안 이들이 뿜어내는 암모니아가스 냄새로 코를 들 수 없었다. 그러나 차차 숙성되며 고약한 냄새들은 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열 상승을 멈추며 양질의 발효퇴비로 탈바꿈하였다.

햇볕이 들지 않도록 차광 망을 씌우고 필요한 때마다 조금씩 퍼다 밑거름이나 웃거름으로 사용한다. 황폐했던 흙은 비옥해지고 살이 올라 기름기가 흐른다. 흙들이 아침마다 목숨을 살려줘 고맙다 인사를 한다. 흙에서 달착지근한 냄새가 난다. 이젠 맨발로 들어가 김을 매도 좋을 만큼 보드랍고 탄력이 생겼다.

▲ 청벌레 잡는 선수 청개구리, 혓바닥만 내밀면 꿀꺽 삼켜 버린다.
ⓒ 윤희경
지렁이와 굼벵이도 되돌아와 재주가 한창이다. 개구리, 사마귀, 메뚜기, 무당벌레, 달팽이들도 함께 산다. 여러 식구들이 공존하다보니 정토(淨土)가 따로 없지 싶다. 채소마다 붉은 색은 씻은 듯 가시고 푸르고 싱싱하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이들이들 춤을 춘다. 배추, 감자, 참외에서 꿀맛이 묻어난다. 이제야 농촌의 사는 보람과 흙에 대한 소중함을 피부로 느낀다.

흙으로 돌아오길 잘했다 가슴을 펴본다. 그러나 인분을 거름으로 쓰자니 재래식 화장실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여름이면 구더기가 우글거리고 파리들이 득실거리며 똥 묻은 발로 밥상을 오르내린다. 겨울에 일을 보려면 엉덩이가 시려온다. 누가 방문한다 하면 재래식 변소 사용이 가능한가부터 물어본다. 어린것들이 시골오기가 무섭다 하니 그도 걱정이다.

농한기엔 시간만 나면 부엽토를 파러 산에 오른다. 산이 얼마나 사람 기분을 가볍게 하는지 올라본 사람은 다 안다. 산 속은 늘 따사롭고 아늑하며 향기가 넘쳐난다. 이름 모를 무덤가에 내려앉는 멧새의 지저귐과 솨-하고 밀려오는 솔바람 소리는 산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다. 서걱거리는 떡갈나무 잎, 구수하고 달착지근한 부엽토 냄새만으로도 여름은 덥지가 않다.

▲ 오이를 씻어내리는 달팽이
ⓒ 윤희경
흙은 뿌린 만큼 돌려준다지만, 거기엔 농부의 투박한 손과 땀이 필요하다. 그리고 먹을거리를 길러내는 밭주인의 정성과 영혼이 깃들어야 한다. 흙은 말한다. 먹고 살만큼 되었으니 농업증산정책에서 벗어나 하루 빨리 옛날처럼 태평 농법으로 돌아가자고.

올 여름에도 살충제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으려면 많은 용기와 인내로 흙을 보살펴야 할 것이다. 제초제는 우리의 삭막한 현실을 더욱 처량하게 만들어 놓는다. 풀은 말할 것도 없고 땅도 마음도 황폐화 되어간다. 이제부터라도 흙이 눈물을 거두고, 맑은 웃음을 잃지 않도록 다독거려 후손들에게 건강하고 살맛나는 땅을 물려줘야 할 때이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텃밭이다. 밭에 들어가 잔 기침을 해가며 '잘들 잤니'하고 인사를 건네면 파란 잎사귀를 흔들며 팔랑거린다.

▲ 유기농을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나의 분신들, 호미, 괭이, 낫, 고무신, 장화 등등. 살림살이가 만만치 않다.
ⓒ 윤희경
이 세상 모든 생물들은 주인의 아침 발자국소리 듣기를 좋아한다. 강아지, 닭 같은 길짐승은 말할 것도 없고 채소들도 주인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 오면 좋아라고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때마다 청 벌레, 달팽이도 떼어내고, '참, 많이 컸구나.' 잎이라도 쓰다듬어 주면 채소들은 아침 이슬을 반짝이며 파란 웃음으로 다가온다.

처음 귀농해 심어놓은 층층나무의 키가 자라나 천국계단을 쌓아 올려 늠름하고 시원하다. 층층나무의 우듬지마다 열매가 까맣게 익어 꾀꼬리, 어치, 박새들이 모여들어 노래를 불러대며 한바탕 축제를 열고 있다.

▲ 오늘 아침에 수확한 참살이 식품들, 오이, 고추, 토마토, 부추, 깻잎, 상추 등등. 이 유기농 청정 식물들만 있으면 재벌이 부럽지 않다.
ⓒ 윤희경
오늘도 고추밭 풀을 뽑다보니 허리가 쑤시고 다리가 저려온다. 그러나 초록텃밭을 건너가는 멧새소리와 아침햇빛 한줌만으로도 나의 영혼은 고단하지 않다.


태그:#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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