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제하 독립운동가들은 '남산 위의 저 소나무'를, 민주화운동 시기 386 세대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그리고 IMF 시기 우리들은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를 읊조리며 힘을 냈다.

'소나무'는 역사를 관통하여 고난에 굴하지 않는 '일편단심'의 현현이었다. 백설에도 아랑곳없이 독야청청했던 고집스런 소나무를 변하게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솔잎혹파리'이다. 소나무가 모두 고사한 백두대간을 상상해보라. 끔찍한 일이다. 솔잎혹파리를 제대로 방제하는 일은 어쩌면 민족정기를 세우는 일의 일환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솔잎혹파리 집중 방제기간인 지난 6월간 강원도 일대에서 방제작업을 하던 노동자 8명이 급성 농약중독으로 입원했다. 안타깝게도 어제 그 중 한 명이 지난 12일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관련재해가 보도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지만 사실 소나무 수간주사 중 농약중독 사고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었다.

7년 동안 20명이 급성중독으로 사상

동국대학교 안연순·임현술 교수가 지난 3월 대한산업의학회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5년 사이 동안 솔잎혹파리 방제작업을 하다가 총 20명이 급성 농약중독으로 산재요양을 받았다. 모두 동일하게 솔잎혹파리 방제용 살충제 포스파미돈(품목명 포스팜)에 의한 급성중독이었다.

솔잎혹파리는 바늘모양으로 생긴 소나무 잎 사이 깊숙한 곳에서 주로 서식하기 때문에 잎에 살포하는 방식으로는 방제할 수가 없다. 나무줄기에 구멍을 뚫고 거의 원액 그대로의 농약을 직접 주입하는 수간주사를 한다.

주사로 투입된 농약은 나무물관을 타고 잎맥까지 이르고 솔잎혹파리가 이 수액을 빨아먹어 죽게 된다. 수간주사 할 때는 포스파미돈(phosphamidon)이 50% 들어있는 액상제품(액제)을 희석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

원래 이 약제를 작물해충 방제용으로 살포할 때는 이보다 수백 배 이상 낮은 농도로 희석하여 사용한다. 희석된 농약을 살포하다가도 중독되는 일이 있는데 원액에 가까운 약제를 쓰는 위험성은 불문가지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포스파미돈은 유기인계의 '고독성 농약'으로 국내 농약 중 그 독성에서 상위 2% 안에 든다. 고독성 농약을 희석하지 않고 사용하는 수간주사 작업은 고도의 안전보건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포스파미돈을 비롯한 유기인계 농약의 독성은 신경계 효소인 아세틸콜린에스터라제(Acetylcholinesterase)의 기능 억제에 의한다. 이 효소는 신경계에서 주요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Acetylcholine)을 분해하는 효소이다.

신경전달물질이 전달 임무를 다하고 바로 분해되어야 하는데 분해되지 못하고 전달경로에 쌓이면 신경은 계속 자극받게 된다. 눈물·콧물이 많아지고 구토가 일고 근육경련이 일어나는 급성중독 증상은 이 때문에 일어난다. 고농도로 노출되면 기관지 협착, 기관계 분비물 증가, 횡경막 수축, 뇌의 호흡중추 억제 등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호흡곤란으로 사망하게 된다.

흡입? 검사 부족? 문제는 피부노출

그렇다면 어떻게 농약중독을 예방해야 할까 ? 언론보도를 보니 어떤 방송에서는 흡입에 의한 중독을 주된 원인인 것처럼 말하기도 했고 또 어떤 신문은 안전교육은 했는데 약물중독 검사를 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했다고도 했다.

모두 적절치 못한 지적이며, 이는 모두 현장 관리감독자들의 인식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므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보통 사업장에서 쓰는 화학물질은 호흡기를 통한 흡입이 가장 문제가 되지만 농약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농약은 그 용도상 증발이 잘 안되며 지질층에 잘 흡수되도록 개발되었기 때문에 흡입보다는 피부노출에 주의해야 한다.

농약이 피부에 농약이 묻게 되면 빠른 속도로 피부의 지질층에 녹으면서 침투하여 혈관으로 들어간다. 포스파미돈(50%)을 손 등에 살짝 흘린 것을 바로 세척하였음에도 복통과 두통 등 농약중독 증상을 일으킨 사례가 있다.

그러므로 방제복을 철저히 갖춰야 함은 물론 오염된 옷이나 손으로 음식을 먹거나 담배를 피울 때 입을 통해 농약이 들어갈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매일 세척한 방제복을 지급하는 것이 좋다.

보도화면상으로 볼 때 일부 노동자들이 손바닥만 코팅된 목장갑을 착용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반드시 불침투성 장갑을 착용해야 한다. 손은 피부노출의 절반이상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피부노출 경로가 되기 때문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화면상으로 볼 때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면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흡입에 의한 중독 가능성은 낮지만 면마스크는 적절치 않다. 활성탄이 칠해져 있고 배기밸브가 달린 안면부여과식 방진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활성탄은 극미량일 수 있는 기화된 농약원액과 혼합액으로 쓰인 유기용제에 의한 노출을 감소시켜 줄 수 있고 배기밸브는 습기가 차는 것을 막아주어 어느 정도의 쾌적함을 제공한다. 방진마스크 자체는 방진보다는 입 주변부의 피부노출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준다. 방진마스크는 일회용으로 매일 방제복과 함께 새 것을 지급해야 한다.

약물중독 검사를 할 수는 있으나 검사는 농약중독 확진을 위한 용도는 될 수 있어도 예방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방송에서 재해자 가족이 병원을 세 곳이나 전전했다고 했는데 어려운 검사를 하기 보다는 관리감독자가 항상 면밀히 살펴서 초기 증상이 있을 때 즉시 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안이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농약을 살포하는 데도 공인된 자격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자격증은 고사하고 넘치는 인터넷 정보 속에서 제대로 된 농약안전사용 요령 하나 찾기가 힘들다. 산림청이나 지자체 등 관계 당국에서는 농약 안전교육에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파리 잡다가 사람을 잡아서야 되겠는가.

덧붙이는 글 | 강태선 기자는 노동부 산업안전근로감독관으로 일하고 있으며 이 기사는 김상진기념사업회 <선구자>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농약, #수간주사, #피부노출, #포스팜, #포스파미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