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해 3월 1일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87주년 3.1절 궐기대회에서 일본 정부에 의해 희생됐던 가족들의 영정과 태극기를 들고 규탄대회를 가졌다.
ⓒ 여의도통신 김진석 기자
<재원(財源) 고려 안한 무책임한 입법>

지난 9일자 조선일보 1면에 실린 기사(작성자: 배성규 기자)의 제목이다. 톱 기사에 이어 두 번째 크기로, 그것도 1면에서 유일하게 박스까지 둘러 쳐서 비중 있게 보도한 이 기사에는 <국회, '태평양전쟁 희생자 지원법안' 졸속 통과 / 2000억 더 필요…정부, 대통령 거부권 건의 검토>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지난 3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장복심 열린우리당 의원이 본회의를 앞두고 수정안으로 제출한 이 법안의 정식 명칭은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 이하 '태평양전쟁 희생자 지원법'이라 함)을 다룬 이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국회가 20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법안을 재원(財源) 검토도 제대로 하지 않고 통과시켰다가 정부로부터 법안 공포를 거부당할 상황에 처했다. 국회가 입법의 기본원칙조차 지키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기자가 검증 취재한 결과 이 조선일보 기사야말로 '보도의 기본원칙도 지키지 않은' 졸속 오보이자 왜곡 보도의 전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설상가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점입가경이라고 해야 할까. 문제의 조선일보 기사가 보도된 직후 다른 보수언론의 '장단 맞추기'도 이어졌다. 조선일보 기사가 보도된 바로 그날 저녁 문화일보와 다음날 아침 중앙일보가 잇따라 이런 제목의 사설을 내놓은 것이다.

<재원 나 몰라라 한 한심한 과거사 입법>(문화일보 7월 9일자 사설)
<국회 졸속 법안으로 2000억 날아간다>(중앙일보 7월 10일자 사설)


특히 자사 기자가 직접 취재한 기사도 없이 작성된 사설임에도 불구하고, 두 언론사의 공식적 입장을 개진한 이 글에는 단정적이고 직설적인 표현들이 난무했다. 당장 눈에 띄는 몇 가지 대목만 골라보면 다음과 같다.

"무책임 수준도 넘어 '막가파식 입법'이다" "국회의 이성적 판단을 미덥지 않게 한다"(이상 문화일보) "이렇게 어이없는 의안 통과는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벌어진 소극은 국회의 입법 수준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이상 중앙일보)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앞에서 조선일보 기사에 대해 지적한 것처럼, 이 두 개의 사설 역시 "언론의 이성적 판단을 미덥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언론의 보도 수준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게 만드는 "무책임한" 그리고 "한심한" 졸속 작문이자 나아가 "무책임 수준도 넘어 '막가파식 사설'"의 진수라 평가할 만했다.

▲ 지난 2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안건 중 '일제강점하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안(대안)'에 대해 여야 협의로 안건처리를 연기하자 일제강점하강제동원희생자유족회 한 회원이 본회의장 입구에서 오열하고 있다.
ⓒ 여의도통신 한승호 기자
소극(笑劇).

중앙일보가 사설에서 동원한 이 단어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관객을 웃기기 위하여 만든 비속한 연극. 중세 도덕극의 막간극에서 발달한 것으로, 과장된 표현·노골적인 농담·우연성·황당무계함 따위를 특징으로 한다"고 설명돼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최근 조선, 중앙, 문화 3개 보수 신문이 연출한 소극'의 전말을 살펴보기로 하자.

기자는 제일 먼저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조선일보 7월 9일자 기사부터 찾아내 다시 한 번 읽어봤다. 그리고 조선일보가 기사를 통해 주장한 내용을 7가지의 명제로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여기에다 조선일보와 중복되는 부분은 생략하고 문화일보와 중앙일보가 사설을 통해 새롭게 제기하거나 특별히 강조한 부분만 덧붙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조선+중앙+문화가 제기한 주장의 '종합판'이 다음과 같이 집대성(?) 됐다.

(1)장복심 의원이 수정안을 본회의 직전에 갑자기 끼워 넣었다(중앙일보는 "본회의 표결 날 장복심 의원이 수정안을 발의했다"고 주장하면서 "돌출 법안"이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2)정부와 상임위(행정자치위)가 합의한 대안 대신에 수정안이 통과된 것은 황당한 일이다(중앙일보는 "원래 본회의 수정안이라고 하는 것은 여야 간에 정치적 타협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돌발적 수정안은 부결되는 게 관행"이라면서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장 의원의 돌출 행동을 막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행자위도 아닌 복지위 소속의 장 의원"이 수정안을 발의한 것에도 시비를 걸었다).

(3)예산이 드는 법안임에도 사전심의를 거치지 않았고,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검토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재원에 대한 검토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4)열린우리당 지도부까지 나서서 장복심 의원의 수정안 제출을 만류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했다.

(5)수정안에 대한 찬성 토론은 2명(이낙연, 문병호)이나 있었지만 반대 토론은 한 명도 없는 (일방적인) 분위기에서 표결이 진행됐다(중앙일보는 "의원들은 수정안 내용을 잘 모르거나 대선․총선의 표를 의식해 강제동원 피해자측의 청원성 법안에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6)태평양전쟁 희생자에게 위로금을 주면 6․25 참전용사 등에게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문화일보는 '6․25 참전용사'에다 '베트남전 참전용사'까지 포함시켰다).

(7)수정안이 통과되는 바람에 2000억원의 추가비용이 증가해 지원규모가 10배로 늘었다.


그렇다면 7가지 명제에 대한 검증을 하나씩 해보기로 하자.

[명제1] 장복심 의원이 본회의 직전에 갑자기 수정안을 끼워 넣었다?

기자는 사실 검증을 위해 지난 10일 오전 장복심 의원실을 찾았다. 장 의원은 "수정안은 갑자기 끼워 넣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
ⓒ 여의도통신 한승호 기자
"나는 이미 17대 국회 개원 직후인 2004년 6월 21일 '태평양전쟁 희생자에 대한 생활안정 지원법안'(공동발의 117명)을 대표발의 한 바 있다. 이번 수정안은 어디까지나 그때 발의한 법안의 연장선 위에 있다. 17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법안을 발의한 '지적소유권자'로서 나는 당연히 수정안을 제출할 자격이 있다. '갑자기 끼워 넣었다'라는 말은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여기서 잠시 배경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 국회의장은 적절한 소관 상임위를 선정해 이 법안을 회부한다. 당시 김원기 의장은 이 법안을 보건복지위에 회부시켰다. 장 의원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소관 상임위인 복지위에서는 공청회(2005년 11월 18일)까지 마쳤다. 이 공청회에는 정부(기획예산처)와 국회(예산정책처) 실무자까지 참석했다. 그러나 이후 정부가 별도의 관련 법안을 '갑자기' 제출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2006년 9월 25일). 더욱이 정부가 이 법안에 대한 주무 부처를 행정자치부로 정함에 따라 국회 소관 상임위가 행정자치위로 바뀐 것이다. 여기에다 행자위 한나라당 간사인 정갑윤 의원도 지난해 11월 15일 별도의 관련 법안(정식 명칭은 '태평양전쟁 전후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니까 이번에 행자위와 법사위를 거쳐서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정식 명칭은 '일제강점하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안(대안)'이다)은 바로 이 정부안과 정갑윤 의원안이 대안으로 통합된 것이다. 한편 장복심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은 현재도 복지위에 계류 중이다. 옆에 있던 김봉겸 보좌관이 거들고 나섰다.

"유사 법률이 2개의 상임위에 분산된 것은 전문가들도 보기 드문 일이라고 한다. 언론이 정작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려고 했다면 도리어 이런 불합리한 부분에 주목해야 했다. 아무튼 장 의원은 법안을 발의한 이후 지난 3년 동안 3차례 대정부질문을 하면서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이 법안의 제정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다. 특히 희생자 중에서도 언제 사망할지 모르는 고령자인데다 경제적 형편까지 궁핍한 생존자 어른들을 반드시 지원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본회의에 상정된 대안에는 정작 생존자에 대한 지원 부분이 빠져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법안의 명칭에는 '일제강점하'라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인정하는 몰역사적 표현까지 들어가 있었다. 김 보좌관은 "우리가 최초의 법안에서 제기했던 핵심 내용이 본회의에 상정된 대안에서 모두 빠져버린 것을 확인하고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고, 그래서 긴급하게 수정안을 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 의원은 지난 6월 28일 각 의원실에 긴급하게 공문을 발송해 이러한 상황을 설명한 뒤 수정안에 대한 동의를 요청하는 서명을 부탁했다. 급박한 상황임에도 46명의 의원이 서명에 동참했고, 장 의원은 나흘 후인 7월 2일 의장에게 수정안을 제출할 수 있었다. "본회의 표결 날(7월 3일) 수정안이 발의됐다"는 중앙일보의 주장이 명백하게 '팩트'와 어긋난 것으로 밝혀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명제에 대한 결론을 내릴 때가 왔다. 소관 상임위와 법사위를 거친 법안은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된다. 때문에 본회의 수정안은 대부분 긴급 사안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돌발' '돌출'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것은 마치 KTX나 급행버스를 향해 엉뚱하게 '왜 빨리 달리느냐'고 시비를 거는 것과 마찬가지다.

[명제2] 정부와 상임위(행자위)가 합의한 대안 대신에 수정안이 통과된 것은 황당한 일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수정안은 부결되는 게 관행"이라거나 "당 지도부가 개별 의원의 수정안 제출을 막았어야 했다"는 조선+중앙+문화 3개 언론사의 주장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국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황당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국회법은 비록 법안이 상임위와 법사위까지 통과해 본회의에 상정됐다 하더라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국회의원 누구나 수정안을 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정안('수정동의'라고도 함) 제출은 국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적법한 절차라는 말인데, 해당 조항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95조 1항: 의안에 대한 수정동의는 그 안을 갖추고 이유를 붙여 의원 30인 이상의 찬성자와 연서하여 미리 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96조 2항: 수정안이 전부 부결된 때에는 원안을 표결한다.


일반적으로 법안 발의는 10명 이상 의원의 서명만 받으면 된다. 그러나 본회의 수정안은 3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엄격한 규정이 있다. 장복심 의원의 수정안에는 46명의 의원이 연대 서명했다. 따라서 여기에는 어떤 법적 하자도 있을 수 없다.

아울러 수정안에 대한 표결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도 순전히 의원들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는 문제다. 찬성, 반대, 기권, 불참 등 어떤 행위를 선택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황당한 일"로 규정될 수는 없다.

도리어 더 황당한 것은 중앙일보가 "관행"을 강조하고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의원 개개인의 활발한 자유의지 발현보다 정당 지도부의 통제와 타협에 의해 국회가 운영돼야 한다는 낡은 논리가 그 심리의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행자위도 아닌 복지위 소속" 운운한 중앙일보의 주장도 국회의 운영 방식과 입법 과정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실언이다. 의원들은 소속 상임위와 무관하게 법안을 발의할 수 있고, 수정안 발의 자격 역시 의원의 소속 상임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국회의원은 그 개개인이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다.

[명제3] 예산이 드는 법안임에도 사전심의를 거치지 않았고,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검토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재원에 대한 검토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취재 결과 이 부분도 사실과 전혀 다른 억지 주장인 것으로 드러났다. 복지위와 행자위에서 각각 공청회가 열렸으며, 특히 정부안과의 통합 심의가 진행된 행자위에서는 예산심의도 진행됐다. 다음은 김봉겸 보좌관이 덧붙인 설명이다.

"형식적인 자구 심사에 그치기 쉬운 법사위의 마지막 심의 과정에서도 깊이 있는 심의는 계속됐다. 실제로 문병호 의원이 위로금 지원 대상에 생존자를 포함시킬 것과 법안의 명칭을 '일제강점하'가 아니라 '태평양전쟁'으로 바꿀 것을 촉구했다. 당시 정부측에서는 '우선 법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추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답변했다."

확인 결과 정갑윤 의원이 지난해 11월 15일 대표발의 한 법안에는 총 소요예산이 1조944억원으로 집계된 '비용추계서'가 분명하게 첨부돼 있었다. 이 중에서 생존자에 대한 지원은 당시까지만 해도 2090억원(1인당 일시금 3000만원, 월 지원금 50만원)으로 산정됐다.

참고로 장복심 의원안의 비용 추계는 1조1087억원이었다. 그런데 2005년 11월 18일 국회 공청회에 정부 대표로 나온 기획예산처 실무자는 장 의원안대로 통과하면 44조7000억원의 예산이 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양순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장은 "터무니없는 예산 부풀리기는 법 제정을 방해하기 위한 정부의 고도의 술책이었다"고 비판했다.

한편 국회법(79조의 2)에도 "예산 또는 기금상의 조치를 수반하는 의안"을 발의할 때는 반드시 비용추계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재원에 대한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되기는커녕 애초에 발의조차 되지 못 했을 것이다.

따라서 "재원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거나 "상임위 검토도 없었다"는 주장은 완벽한 오보(쉽게 말하면 거짓말)이다. 물론 최소한의 확인 절차만 거쳤더라도 이런 거짓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부실한 거짓말을 근거로 "졸속" "무책임한" "막가파식 입법" 등의 과도한 표현을 사용한 것도 '오버'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명제4] 열린우리당 지도부까지 나서서 장복심 의원의 수정안 제출을 만류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장복심 의원실의 김봉겸 보좌관의 증언을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수정안을 제출한 이후인 7월 2일 오전 열린우리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장복심 의원의 수정안을 두고서 격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갑론을박 끝에 의원들이 이 사안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자는 차원에서 본회의 상정과 표결 처리를 하루 연기하기로 결론을 냈다(실제로 2일 오전까지만 해도 '본회의 처리 예상 안건' 목록 17번에 이 법안의 명칭이 기재돼 있었다-기자주). 결국 김진표 정책위의장은 '정부와 상임위가 합의한 대안이 나왔고 수정안이 제기된 마당에 두 안 중 하나를 당론으로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다만 대안을 권고적 당론으로 하되 내일(3일) 본회의에서는 수정안과 대안에 대한 의원 개인의 자유투표를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나서서 장복심 의원의 수정안 제출을 만류했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명제5] 수정안에 대한 찬성 토론은 2명(이낙연, 문병호)이나 있었지만 반대 토론은 한 명도 없는 (일방적인) 분위기에서 표결이 진행됐다?

찬성 토론만 있었기 때문에 문제다? 참으로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거꾸로 반대 토론만 진행된 법안도 모두 문제인가? 실제로 지난 2일과 3일 본회의에서는 특정 법안에 대한 반대 토론이나 찬성 토론 중 하나만 진행된 사례가 몇 건 있었다.

국회 출입 기자 명단(2월 28일 현재)에까지 버젓이 이름이 올라 있는 기자가 어떻게 이런 함량 미달의 기사를 작성했는지 궁금할 뿐이다.

▲ 사진 왼쪽부터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 열린우리당 문병호 의원, 중도통합민주당 이낙연 의원.
ⓒ 여의도통신 사진부
중앙일보의 "의원들은 수정안 내용을 잘 몰랐을 것"이라는 주장도 '근거 없는 강변'에 불과하다. 우선 장복심 의원이 2004년 6월 21일 법안을 발의할 당시 117명의 의원이 서명을 했다. 아울러 장 의원이 3회에 걸쳐 대정부질문을 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이 법안을 거론했다. 나아가 이 문제는 이미 15대 국회 때부터 논의된 사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먼저 잘 몰랐을 것이라는 주장은 이번 수정안에 찬성한 의원 114명(한나라당 56명, 통합민주당 17명, 열린우리당 15명, 무소속 23명)에 대한 명백한 인격 모독이다. 수정안에 반대한 의원이 정작 20명(기권 53명)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졸속 입법'이라고 비판한 것도 사실 왜곡, 여론 호도, 입법권 훼손 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예상을 깨고 수정안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본회의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수정안이 일정한 타당성과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실제로 수정안 통과를 지켜본 직후 관련단체는 성명을 통해 "헌정사상 국회에서 이루어진 기적"이자 "대한민국 국회가 아직도 살아서 국민의 민의와 고통을 대변하는 마지막 보루라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행자위를 대표해서 원안을 제안설명 했던 윤호중 의원마저 장복심 의원의 수정안 제안설명과 곧바로 이어진 이낙연, 문병호 의원의 찬성 토론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나서는 수정안 투표 당시 '반대'가 아닌 '기권' 의사를 밝혔을 정도였다(특히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시절 이 사안을 직접 취재하면서 느꼈던 참담한 심정과 절절한 사연을 굵은 저음으로 고백한 이낙연 의원의 찬성 토론은 의원들의 수정안 찬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명제6] 태평양전쟁 희생자에게 위로금을 주면 6·25 참전용사 등에게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으며, 생존자의 범위도 애매하다?

견강부회식 주장의 전형이다. 무엇보다 양자의 역사적 성격이 전혀 다르다. 하나의 사례만 들어보자.

지난 5월 31일 일본 나고야 고등법원 민사3부는 일제에 강제로 연행되어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던 여자근로정신대 피해할머니들이 가해자인 일본 기업 미쯔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미쯔비시가 강제로 연행해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게 하고 임금도 주지 않았다는 원고들의 주장은 인정된다. 하지만 1965년 한일협정으로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됐기 때문에 손해배상은 할 수 없다."

과거 한국정부가 추진한 굴욕적인 한일협정 때문에 일본에 대한 한국민의 정당한 배상청구 노력은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억장이 무너지는 소송 사례가 벌써 약 40회를 넘어섰다고 한다. 더욱이 한국 정부(박정희 정권)는 청구권을 소멸시킨 대가로 일본정부로부터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받았다. 따라서 희생자 문제 해결의 책임은 한국정부에 있다. 이와 관련 장복심 의원은 이런 주장을 했다.

"한국 정부가 청구권 소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면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하나는 한일협정을 파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희생자 유족과 생존자들은 스스로 일본 정부로부터 정당하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또 하나는 추가협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보상금을 추가로 요청해서 받아줘야 한다. 그 두 가지는 못하면서 2000억원 국민 혈세 운운하며 시비를 거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이번에는 생존자의 범위가 애매하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을 검증해 보자. 사실 조선일보가 문제 삼은 것이 바로 생존자에 대한 위로금 500만원 지원이었다. 결국 생존자에 대한 지원은 적절치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2004년 공개된 한일협정 당시 회의록(일반청구권소위원회 제12~13차 회의록)을 보면, 당시 한국 정부(장면 정권)가 생존자 등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금과 청구권 변제를 요청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생존자에 대한 지원을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은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명제7] 수정안이 통과되는 바람에 2000억원의 비용이 증가해 지원규모가 10배로 늘었다?

조선일보 기사가 '졸속 오보'임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주장이다.

우선 정부합동기구인 '일제강제동원희생자 지원준비기획단'이 지난 6월 장복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부터 살펴보자. 기획단은 이 자료에서 '①생존자에게 의료지원금 50만원(연간)을 지원할 경우와 ②위로금 500만원(일시금)을 추가 지원할 경우 소요되는 예산'(일련번호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자가 붙인 것이다)을 추계한 바 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 50만원(연간) × 4만90명(2005년 기준 생존자) × 4년(평균 여명기간) = 802억원
② 500만원(일시금) × 4만90명 = 2004억원

물론 행자위 대안의 예산은 ①번(802억원)과 같고, 장복심 의원 수정안의 예산은 ②번(2004억원)과 같다. 따라서 수정안 가결로 500만원의 위로금이 추가 지원된다 하더라도 지원규모는 10배로 늘어난 것이 아니라 2.5배 늘어난 것이다. 김봉겸 보좌관은 "(802억원과 2004억원을 비교하는 것이 타당한데) 아마도 조선일보 기자는 50만원과 500만원을 단순 비교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더욱이 4만90명이란 숫자도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다. 신고접수 시점인 2005년을 기준으로 한 숫자인데, 신고했다고 해서 모두 희생자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2005년 당시 평균 여명(餘命) 기간을 4년으로 설정했는데, 벌써 2년이 지난 현재 생존자의 절반 이상은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원금이 지원되는 시점은 법률 공포 6개월 후이다. 생존자 평균 연령이 85세 전후라는 점에서 과연 그때까지 몇 명이나 생존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지원되는 위로금 액수는 1000억원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는 것처럼 여론을 몰아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 김 보좌관의 주장이다.

"국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태평양전쟁 희생자와 생존자에 대한 지원은 청구권 소멸 대가로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협력자금을 뒤늦게나마 되돌려 주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만약 이를 회피한다면 빚을 진 정부가 예산이 아깝다고 빚을 갚지 않는 것과 같다."

김 보좌관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한일협정 당시 한국 정부는 청구권 소멸 대가로 일본 정부로부터 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를 받았지만 당사자들에 대한 보상금이나 지원금으로 사용하지 않고 포항제철(현 포스코)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의 경제개발 자금으로 활용했다. 특히 무상 3억 달러의 24%를 사용한 포항제철은 나중에 3조8천억원을 정부에 갚았으나 이번에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단기외채 상환에 사용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마치 2000억원(실제로는 1000억원 이하)의 세금이 날아가는 것처럼 공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단초는 굴욕적인 한일협정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장복심 의원실이 내놓은 보도자료 중에서 '수구언론의 사실왜곡 보도의 저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해 놓은 다음의 내용은 그래서 시사적이다.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굴욕적인 한일협정의 과오를 예산문제로 전락시키는 한편 한나라당 유력 대선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의 외풍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저의를 의심케 함."

(기사는 여기서 끝났다. 그리고 기자는 이 기사를 오늘(16일) 오후 조선일보 배성규 기자의 메일로 발송했다. "반론이든 해명이든 성실하고 진지한 답변을 부탁합니다. 여의도통신 지면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라는 요청과 함께.)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ssal@ytongsin.com

"피맺힌 가슴 잔인하게 짓밟은 엉터리 기사"
[인터뷰] 양순임 (사)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장

▲ (사)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양순임 회장.
ⓒ 여의도통신 한승호 기자
"본회의에서 수정안이 통과되는 순간 62년 동안 쌓였던 한이 풀리는 감격을 맛봤다. 장복심 의원의 제안 설명과 이낙연, 문병호 의원의 찬성 토론을 듣고 압도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려준 17대 의원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래도 그들의 가슴에 최소한의 양심이 살아 있었기에 천심을 정확히 읽어내고 한국 정치사에 영원히 기록될 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양순임 (사)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장은 법안 통과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나 감격과 기쁨의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 9일부터 이틀 동안 조선일보, 문화일보, 중앙일보가 갑자기 보도하기 시작한 악의적 기사와 사설을 보면서 심장이 멎는 듯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조선일보로 찾아가 정치부의 김민배 부장과 김창균 차장을 만나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해방 이후 62년 만에 어렵게 성사된 입법인데 어떻게 이렇게 보도할 수 있느냐. 우리 보고 모두 죽으라는 거냐. 너무나 잔인한 기사에 피눈물이 난다'고 따졌다. '기자라면 쌍방 취재가 기본인데 어떻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보도할 수 있느냐'는 말도 했다.

우리의 항의와 주장이 주효했는지 인터넷에선 문제의 기사가 사라졌다(그래서 양 회장은 그나마 조선일보에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가 뒤늦게 확인해본 결과 관련 기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주 작게 보도하긴 했지만 11일 발표한 성명서도 다음날 기사로 받아주었다. 그러나 언론도 사실을 제대로 파악해서 보도해 달라는 대목만은 끝까지 외면하고 빼버렸다."

양 회장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의 엉터리 기사는 피맺힌 우리의 연약한 가슴을 너무나 잔인하게 짓밟았다"면서 "약자에 대한 언론의 권력 남용과 횡포를 그대로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입법전문 정치주간지 <여의도통신(ytongsin.com)> 20호(7월 16일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태평양전쟁, #장복심, #박근혜, #박정희 정권, #태평양전쟁희생자지원법
댓글

여의도통신은 오마이뉴스의 제휴사입니다. 여의도통신은 유권자와 정치인의 소통을 돕는 성실한 매개자가 되려고 합니다. 여의도통신은 대한민국 국회의원 299명 모두를 ‘일상적 모니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