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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프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한 아이들이 우물가로 모여들었습니다.
ⓒ 김민수
어린 시절 여름이면 우물가에 모여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등목을 하며 더위를 식히기도 했고, 두레박에 수박을 넣어 우물 속에 넣어두었다가 꺼내 먹기도 했습니다. 동네 우물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출 무렵에는 집집마다 펌프가 마당 한 켠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을 하면 저 깊은 곳의 샘물이 올라오고 잠시 후면 얼음물같이 차가운 물이 올라왔습니다.

펌프질을 해서 올라오는 물로 등목을 하면 무더위도 맥을 못 추고 도망을 했습니다. 세숫대야에 시원한 물을 담아 책상 아래 놓고 의자에 앉아 발을 담근 채 공부를 하면 더운 줄 모르고 독서삼매경에 빠져들 수도 있었습니다.

▲ "나도 해보고 싶어요"하며 달려든 꼬마와 땅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물에 더위를 식히는 꼬마
ⓒ 김민수
메마른 펌프에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선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이 필요합니다. 이 물을 부으면서 펌프질하면 저 아래 고여있는 샘물이 솟아오릅니다. 이때 붓는 '첫 물'을 '마중물'이라 합니다. '마중하러 간다'는 것은 누군가를 '맞이히러 가는 것'이요, '마중물'은 샘물을 맞이하는 물인 것이지요.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맞이한다는 것은 참으로 설레는 일입니다.

펌프가 사라진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와 편리해지긴 했지만 편리함을 얻는 대신에 추억을 담보로 편리함을 얻었고, 지금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도 마음놓고 먹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조금 불편했던 그 시절이 오히려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 "와, 너무 시원하다. 얼음물 같아"
ⓒ 김민수
작년에 가평에 갔다가 흔적만 남은 펌프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소록소록 올라왔는데 하늘이 너무 맑았던 그 날, 물이 콸콸 쏟아지는 펌프를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신기한지 너도 나도 펌프질을 하겠다고 달려들고, 펌프에서 나오는 물로 세수를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펌프도 생소하지만 펌프질은 더더욱 생소했나 봅니다. 할아버지가 해 줄 때에는 쉬워 보였는데 자기들이 펌프질을 해보니 물이 쑤욱 내려가 버립니다.

"어, 망가졌나와요? 물이 안 나와요."

▲ "이렇게 시원할 수가!"
ⓒ 김민수
마중물을 한 바가지 부으면서 펌프질을 하니 다시 물이 콸콸 쏟아집니다.

"우와! 다시 나온다."
"얘들아, 이걸 마중물이라고 하는 거야. 물 한 바가지를 부으면서 펌프질을 하면 땅 속 깊이 모여있던 샘물이 올라온단다."
"마중물이 없으면요?"
"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지. 마중물이 있어야 저 깊은 땅 속의 샘물을 길어올릴 수 있는거야."
"마중물이 굉장히 중요한 거네요?"
"그럼."

▲ 어릴 적 펌프에서 막 올라오는 물로 등목을 하면 더위같은 것은 몰랐단다.
ⓒ 김민수
어린 시절 여름에 등목하던 기억, 겨울날 얼어버린 펌프를 녹이며 마중물을 몇 번이나 붓고서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샘물을 끌어올리던 기억, 마중물이 없어 이웃 집에 마중물을 얻으러갔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런 추억의 단편들이 스치면서 내 삶을 돌아옵니다. 마중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마중물은 샘물을 끌어올리고 나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직 저 깊은 땅 속에 있었던 샘물이 솟아나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간혹 마중물이 깨끗하지 않아도 한참 펌프질을 하면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 마중물을 붓고 다시 물을 끌어올리는 아이들, 신기하기만 한지 서로 펌프질을 해보겠다고 줄을 서있다.
ⓒ 김민수
마중물을 붓고 물이 나온다고 바로 그 물을 먹지 않습니다. 한참 펌프질을 한 후에, 마중물은 이미 다 없어지고 온전히 샘물이 올라온 이후에야 비로소 식수가 되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몇 번 펌프질을 하더니만 마중물을 붓고 물을 끌어올리는 일도 능숙하게 잘합니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얘들아, 마중물같은 사람이 되거라!" 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마중물 같은 사람인지 돌아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아주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습니다.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어릴 적 추억이 담겨있는 풍경들 속에는 우리 삶의 의미들을 돌아볼 수 있는 것들도 참 많이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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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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