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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 갔다가 돌아 올 버스를 기다리면서 쳐다본 육교에 걸린 플래카드. 나는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보지 않았나?"하고 내 눈을 의심했다. 다시 확인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살기 좋은 도시, 풍요로운 밀양건설'이 아니라 '기업하기 좋은 도시, 풍요로운 밀양건설'이었다. 나중에 알아 봤더니 이런 구호를 내건 도시는 밀양뿐만 아니었다. 김천이 그렇고 충주며, 김제시 등 우후죽순 격으로 내건 구호가 '기업하기 좋은 도시'다. 도시화가 급진전되면서 이웃하는 대도시에 인구유출을 막고 세수(稅收)를 뺏기지 않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내건 구호가 '기업하기 좋은 도시'다. 그렇다면 '기업하기 좋은 도시'는 시민들도 살기 좋은 도시일까?

기업하기 좋은 도시가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상식적으로 자연적인 조건은 말할 것도 없고 이윤을 많이 남겨 회사가 날로 번창하는 그런 도시가 기업하기 좋은 도시다. 아무리 천혜의 자연적인 조건을 갖춘다 하더라고 강원도 심산유곡에 공장을 세워 놓으면 상품을 이동하는 데 필요한 물류비용 때문에 기업 하기에는 좋지 않다. 노동자들의 인건비가 비싸 지출이 많으면 회사의 이윤을 보장해 줄 수 없다.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까다로운 허가 조건이나 설립절차가 복잡해도 그렇고 세금이 지나치게 많다거나 경영을 하는데 불필요한 규제를 하면 기업하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구호는 이렇게 행정관청이 노동자나 시민들이 아니라 기업에 유리한 환경조건을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기업의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다'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회사를 설립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당연히 밀양에 사는 사는 사람들을 고용하게 되고 기업은 이들에게 저임금을 줘야 한다. 또 도시 한복판에 공장을 세워 매연을 내뿜거나 정화하지 않은 폐수를 대량으로 방출한다면 도시민들의 건강이니 환경은 어떻게 되겠는가? 세금이란 국세도 있지만 지방세의 세수가 일정정도 확보되어야 도시가 유지된다, 기업체에게 세금을 적게 부여하겠다면 당연히 기업이 적게 부담한 세금이 주민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소방법을 엄격하게 규제하면 설립비용이 많이 필요한데 규제를 풀면 설치비용을 줄이기 위해 소방시설이 미흡하다면 혹시나 불이 나 시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자본의 입장에서야 '이윤을 극대화'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 일방에 이익을 보면 상대방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과거 박정희시절, '잘살아보세'라는 구호가 먹혀들어갔을 때가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절대빈곤에 시달리던 국민들에게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 어떤 명제보다 급선무요, 우선적인 가치가 아닐 수 없다. 개발이니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전통문화에 대한 말살이며 환경파괴도 문제되지 않는다. 자국에서 허가가 나지 않는 외국의 환경오염산업까지도 무분별하게 수입해 환경부담비용이 개발이익을 초과할 몇 십년 후를 계산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기업하기 좋은 도시!' 우선 살고보자! 좋은 얘기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그깐 환경 따지고 뭐 따지고 그러다 '경제는 언제 살릴건가?'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생각해보자 돈을 벌기 위해 죽자 살자 일해 놓고 몸뚱이 병들면 그 때는 번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치를 하는 나리들! 지식인들, 학자들! 이분들에게 사회적, 경제적인 특혜를 주는 이유는 뭘까? 앞날을 예측하고 더불어 사는 미래를 건설하는데 아이디어도 제공하고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도 내놓으라고 하는 예우 아닌가?

업무상 얻은 비밀으로 개인의 이익을 먼저 챙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도시계획업무를 담당한 공무원이 앞으로 만들어질 도시의 요지에 자신이 미리 땅을 구입해놓고 계획을 발표하면 이 사람은 돈을 벌 수 있지만 땅을 판 사람이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자본의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신봉하는 사회'는 자본은 좋지만 시민들은 울어야 한다. 시민이 주인이 아니라 자본이 주인인 나라, 자본이 주인인 도시는 과연 시민들도 살기 좋은 도시일까?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게 중요한 얘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농촌이나 중소도시의 인구유출문제는 기업인들에게 불리한 조건 때문에 나타난 문제가 아니다. 도시화가 급진전하면서 교육을 비롯한 생활환경조건이 도시화를 부추기고 비대화하게 만든 것이다. '선성장, 후분배'라는 경제정책이 도시문제를 만든 것이다.

도시마다 도시화로 나타난 문제를 기초의회가 나서서 공립학원을 만들고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케츠프레이즈까지 내걸고 도시를 살리겠다고 안간 힘을 쏟고 있다. 열이 난다고 무조건 해열제를 먹이는 의사는 돌파리다. 도시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에게 도시마인드가 없거나 눈앞의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지도자는 사이비 지도자다.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다. 시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가 아니라 '시민과 기업이 더불어 잘 사는 도시'다. 민족의 앞날을 내다보는 지도자가 이렇게 아쉬운 이유는 아직도 도시화의 필요성 때문 만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 포트와 제 개인 홈페이지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이야기(http://chamstory.net/)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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