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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모기에 물리면 1년 후에 증상이 나타난다더라, 전역해서 병원에 입원하지 말고 물리지 않도록 조심해."
"북한에서 테러용으로 모기를 사육(?)해서 남쪽으로 날려 보낸다던데…."


별의별 말이 다 나돌았다.

"'말라리아 주의' 공습경보 발령"

해마다 이맘 때(6~7월경)쯤 되면 최전방 철책에 근무하는 부대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만큼 말라리아모기는 전방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에게는 큰 위협이 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군에서도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시키고 야간 외곽근무자들에게는 머리에 방충망을 씌우는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는 있지만, 해마다 몇 명씩은 말라리아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곤 했다.

지난 1998년, 내가 강원도 철원의 백골부대 최전방 철책부대(일명 GOP)에 근무할 당시 군대에만 있다는 일명 '전투모기'와 말라리아를 옮기던 모기와 벌였던 사투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모기는 다른 말로 배에 아디다스 상표와 같이 3개의 줄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아디다스 모기'라고도 한다. 정식명칭은 '오리엔탈 타이거 모스키토(Oriental Tiger Mosquito)'이고, 한국식 명칭은 '흰줄 숲 모기'다.

그해 여름, 전투모기와의 사투

▲ [군에서 병사들에게 지급하는 말라리아 예방약]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병사들에게 한알씩 지급하고 있지만, 병사들은 이 약을 복용하면 속이 쓰리다는 이유로 복용을 회피한다.
ⓒ 김동이
장마와 더불어 무더위가 찾아오는 이맘 때가 되면 최전방 철책부대에서 가장 바쁜 부서는 바로 의무대다. 벌레 서식지를 찾아다니며 소독하랴, 병사들에게 말라리아 예방약을 보급하랴, 철책을 순회하며 응급환자 보살피랴 의무대는 이래저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게다가 의료장비와 의료요원들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하지만, 전방철책을 사수하는 병사들의 건강은 후방의 어느 부대 병사들보다 건강해야 하므로 진료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군의관을 비롯한 의무병들은 하루종일, 심지어는 야간까지 소초를 돌며 병사들을 돌보는 일이 허다했다.

철책선을 지키는 것이 주 임무인 전방부대 병사들이 여느 때와 같이 생활하던 어느 날, 상급부대로부터 지시공문이 내려왔다. 전방대대 참모였던 나는 그 공문의 내용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공문의 내용인 즉, '전방부대에 말라리아모기가 극성이니 병사들에게 말라리아 예방약을 반드시 복용시키고, 철책에 투입될 시에는 반드시 방충망을 착용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곧바로 철책의 전 초소에 전달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초소에는 머리에 쓸 수 있는 방충망이 보급되었다. 또 아침 점호시에는 말라리아 예방약이 병사들에게 한 알씩 보급되었다.

이로 인해 전방 야간 일직근무자에게는 평소의 임무 이외에 두 가지 임무가 추가되었다. 그 하나는 근무자가 근무 투입 전에 방충망을 착용했는지 확인하는 것과 아침 점호 후 병사들에게 보급한 말라리아 예방약을 병사들이 복용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으려면 자기가 스스로 착용하고 복용해야 했지만, 이 두 가지에는 병사들이 거부할 만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방충망은 껄끄러워서 착용하기 불편했다. 말라리아 예방약은 복용하고 나면 속이 매우 쓰려서 먹지 않고 몰래 감춰놓은 병사들도 많았다(지금은 많이 개선되었겠지만 98년도에 보급되었을 때는 속이 매우 쓰렸다).

이로 인해 나중에 철책에서 철수하고 후방부대에서 근무할 때면 항상 몇명의 병사와 간부들이 말라리아 증상을 보여 병원에 입원하는 사례도 있었다.

우리 군대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모기

▲ [야간 초소근무자들에게 지급되는 방충망] 야간 초소근무자들은 방충망을 착용하고 근무를 선다. 모기로부터 보호는 할 수 있으나 껄끄러워서 불편하다. 그래도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천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 김동이
한번은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소문이 퍼졌는지 모르지만, 그 소문은 돌고 돌아 대대지휘소에까지 들어왔다. 소문인 즉 "지금 철책초소에 날아다니는 모기는 북한에서 생물무기로 개발한 테러용 특수모기로 물리면 큰일이 난다"는 내용이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소문이었지만, 그만큼 매일같이 야간 철책근무를 서는 병사들에게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라는 존재는 충분히 위협을 줄 만 했다.

▲ [버그밀크 플러스 로오숀] 바르는 모기약이다. 효능 및 효과에 모기, 파리, 빈대, 이 등 위생해충의 기피라고 쓰여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 김동이
또 한 가지, 소초 내무반에 들어가면 20~30여 명의 병사들이 제대로 씻지도 못해 풍겨나오는 땀 냄새가 모기들을 유혹한다. 지금은 다양한 모기 박멸약이 많이 보급되고 있으나, 그 당시만 해도 모기향뿐이었다. 이것은 차라리 모기에게 무방비로 수혈(?)을 해주는 셈이라고 보면 된다.

이 모기를 병사들은 전투복을 뚫고 피를 빨아먹는다고 해서 일명 '전투모기'라고 불렀는데, 한번 쏘이면 벌에 쏘인 것처럼 퉁퉁 부어올랐다. 아프기도 아팠지만 이쪽저쪽에서 한없이 부어오르는 살을 보고 있자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이맘때 전방 철책부대의 가장 큰 적은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총을 들이대고 있는 북한이 아니라 병사들의 잠을 깨우고 병을 옮기는 모기라는 사실이다.

지금 아무리 생각해봐도 철책에서 모기와 싸웠던 그 군대시절을 아무런 탈 없이 지내왔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또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이맘 때가 되면 항상 생각나는 잊지 못할 추억이기도 하다.

지금도 모기와의 사투를 벌이며 철책을 사수하는 대한민국의 장병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철책을 사수하는 대한민국 장병 여러분! 힘내세요, 파이팅!"

덧붙이는 글 | <여름의 불청객 '모기'를 말한다> 응모글


태그:#모기, #군, #말라리아, #병사, #장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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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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