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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브와 인간과의 만남.
ⓒ 강기희
강원도 정선의 화암팔경. 화암팔경은 힘차게 뻗어 내려오던 백두대간이 잠시 숨을 고른 곳인 정선군 동면 일대에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자연이 빚어낸 작품인 화암팔경은 여느 곳과는 분명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림바위와 만난 이브, 아담의 후예는 어디?

화암(畵岩), 즉 그림바위라는 말이다. 정선에선 '그림바우'가 더 친근한 이름이다. 바위가 얼마나 아름다우면 그림바위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 아름다움이라는 게 고개를 꺾는다 해도 끝을 짐작할 수 없기에 카메라로 담는 것도 불가능하다.

화암팔경은 제1경을 화암약수로 둔다. 이어 거북바위, 용마소, 화암동굴, 화표주, 소금강, 몰운대, 광대곡 등이다. 팔경을 다 둘러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서두른다 해도 사흘. 찬찬히 살피려면 닷새도 모자란다. 이쯤 되면 만만한 팔경이 아니다.

작은 마을에 이렇듯 알찬 풍광이 모여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심성과 지역만의 독특한 음식까지 보태면 온 마을이 자연사박물관이다.

지난 일요일(24일) 아름답기만 한 화암팔경에 알몸의 이브가 나타났다. 올해 두 번째로 진행되는 '그림바위가 유혹하는 누드 촬영대회'가 그것이다. 그림바위가 이브를 유혹했는지, 이브가 그림바위를 유혹한 것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알몸의 이브는 자연 속의 일부처럼 보였다.

다만 인간만이 자연의 일부가 되지 못하고 카메라를 들이대기 바빴다. 누드(nude)는 영어의 알몸(naked)와는 구별된다. 알몸이란 단순히 옷을 벗은 상태를 의미하지만 누드는 이미 예술의 형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누드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인들이 창안한 예술이다. 그러하니 누드의 역사 또한 깊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폴론과 비너스를 인간의 육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드로 탄생시켰다.

누드는 그림으로 조각으로 형상화되었다. 처음엔 남성의 누드 작품이 많았고 17세기 이후부터는 여성의 누드가 많이 다루어졌다. 아름다움의 표현 양식에서 우위를 점한 여성의 누드 작품은 그 이후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 누드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화암약수 계곡을 찾은 사진작가들.
ⓒ 강기희
▲ 주의사항 : 이브는 이브일 뿐입니다. 터치는 금지. 사진은 지난 대회 전시작품들.
ⓒ 강기희
화암팔경에선 이브도 자연의 일부

세월이 흘러 사진 예술이 등장하면서도 누드 사진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진부한 증명이지만 사진 예술 분야에서는 아직도 누드 사진을 외설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논란을 불식시키는 일이 정선 화암팔경에서 시작되었다. 시작은 지난 2004년. 여름철에 열리는 화암아트페스티벌에서 누드크로키를 시작한 게 출발이었다. 그 후 동면 면사무소의 행정적 지원을 업고 누드예술은 '자연과 웰빙과의 만남'으로까지 발전 되었다.

이번에 열린 누드 사진 촬영대회는 누드 사진 예술을 자연과 접목한 두 번째 시도. 100여 명의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사진작가들은 꽃잎 한 장 가려지지 않은 여체의 신비를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심장이 떨리지 않으면 카메라가 떨리기도 하는 순간이지만 자연과 하나가 된 여체는 관능적이기보다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와 셔터 소리에도 이브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뭇가지처럼 침착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촬영은 점심 이후에도 이어졌다. 점심 무렵부터는 비도 뿌렸다. 하늘이 인간을 시기하는 순간. 카메라를 든 이들의 눈매는 더욱 빛났다. 행사를 함께하고 있는 방윤범 동면 면장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누드 예술을 접목시킨 예술행사를 자주 열 계획입니다. 아름다운 풍광에서 펼쳐지는 누드 크로키와 그림, 누드와 함께하는 음악회, 시낭송 등 동면의 화암팔경을 자연과 웰빙을 주제로 한 예술의 마을로 만들 작정입니다."

누드에 대한 선입견이나 호기심만 접으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윤범 면장은 "누드와 접목할 수 있는 다른 예술 장르와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준비해 단순한 시각 예술 형태의 행사에서 벗어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화암팔경에서 맞이하는 올여름은 누드 세상

▲ 이브와 마주선 아담의 후예들.
ⓒ 강기희
▲ 지금까지는 날씨 맑음. 하늘이 시기한 이후부터 비.
ⓒ 강기희
의지가 그 정도면 절반은 이루어진 셈. 하지만 예술의 행위가 작품으로 승화되려면 준비의 치밀성과 참가하는 이들의 예술가 정신이 맞물려 돌아가야만 허접하지 않다. 자칫 소문 거리나 외설 시비에 휘말려 참다운 예술 정신이 폄하되는 일 또한 막으려면 진정한 예술가와 그 작품을 즐기는 관객의 시선이 편안해야 할 것이다.

"7월 20일경부터는 화암팔경 중의 하나인 광대곡에 누드 촬영장을 만들 계획입니다. 이곳에서는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누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됩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누드를 남기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의 접근이 힘든 계곡의 입구를 막아 접수 순서대로 입장시키겠다는 것이다. 한 팀이 나오면 다른 팀이 들어가므로 다른 이들의 누드를 훔쳐 볼 수도 없게 하겠다는 생각이다. 여름 휴가철 기간 화암팔경을 찾은 사람들에겐 무료로 누드 촬영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방 면장의 계획이다.

이와 함께 오는 7월 7일에도 누드 촬영대회가 있고, 7월 21일과 22일은 이틀간의 일정으로 화암동굴 야간 개장식과 함께 동굴 안에서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참여하는 누드 퍼포먼스가 예정되어 있다. 이날의 행사는 누드 사진 공모대회를 겸하는 것이라 많은 사진작가들의 참여가 예상된다.

이어 7월 28일부터 8월 1일까지 화암약수 계곡에서 열리는 화암아트페스티벌에서도 누드 크로키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화암아트페스티벌은 설치미술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누드예술과의 접목을 꾸준하게 시도하는 예술 행사로 이번이 네 번째다.

줄줄이 예정되어 있는 누드와 자연과의 만남은 신선하다. 그러나 지금의 수준에서 머물면 '알몸의 여자와 옷을 입은 인간'과의 만남에 지나지 않는다. 준비된 행사가 예술축제로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층 높은 수준의 기획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자연에서 만나는 누드 예술, 그리 흔치 않은 행사들이다. 올여름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누드 작품을 즐겨보려는 이들은 정선의 화암팔경으로 걸음 하길 권한다. 자연에서 만나는 이브,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일 아닌가.

▲ 반라의 비너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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