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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도 본격화되지 않던 10년도 더 된 그 시절. 개인적으로 일본이 가지고 있던 선망하던 몇 가지가 있었는데 구로사와 아키라 ,기타노 다케시,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히사이시 죠, 류이치 사카모토 그리고 칸노 요코가 그 대상이었다.(지금은 우리의 영화감독이나 음악가들 위상 역시 더 없이 높아졌지만…)

'천재 뮤지션'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일본이 낳은 영화음악가 칸노 요코(菅野よう子/Kanno Yoko)의 공연이 지난 20일 오후 7시 30분경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치러졌다.

예매 3시간 만에 3천여장의 입장권이 완전 동이나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던 그녀의 첫 내한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에는 화려한 코스프레와 '오타쿠'들만이 공연장을 찾을 거라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고 10대 팬들부터 20~30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연령층이 공연장을 찾았다.

'칸노 요코'의 음악을 들으며 자라온 소년들이 성장해 이제는 직장인이 된 넥타이 부대들과 기성세대들도 종종 눈에 띄었으며 일본에서도 공연을 잘 하지 않는 그녀의 공연을 보기위해 공연장을 찾은 일본인 팬들도 있었다.

이미 3살 때부터 피아노 연주와 작곡을 시작하며 천재성을 드러냈었던 그녀는 라벨과 드뷔시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의 유명 게임 제작사인 코에이(KOEI)에서 일할 당시 '대항해 시대' 등의 음악들은 기존의 게임 음악을 넘어서는 신선한 사운드로 주목받았고 1992년 히사이시 조가 음악을 담당한 <붉은 돼지>의 사운드 트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본격적으로 그녀의 재능을 세상에 알리게 된 건, 애니메이션 '마크로스 플러스(Macross Plus)' 극장판과 전 남편이었던(최근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메 미조구치'와의 작업으로 뛰어난 완성도를 선보인 TV 애니메이션 '나의 지구를 지켜줘',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등의 음악을 담당하면부터로, 대중과 평단의 고른 호응을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1998년 그녀의 대표작인 '카우보이 비밥'의 음악을 담당하면서 애니메이션과 사운드트랙의 빅히트로 세계적 아티스트로 발돋움하였다. 재즈와 클래식, 팝과 락이 완벽히 조화를 이룬 '카우보이 비밥'의 음악으로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메모리즈', '울프스 레인', '지구소녀 아르주나', '턴A 건담', '공각기동대: 스탠드 얼론 콤플렉스(TV시리즈)',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 '허니와 클로버' 등으로 다양한 작품에서 그녀만의 서정적이면서도 스펙터클한 음악세계를 선보여 왔다.

올해 한국영화인 한재림 감독의 '우아한 세계'의 음악을 맡았던 그녀는 <라그나로크 2 > OST 총괄 프로듀싱을 맡아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라그나로크2'의 제작사인 '그라비티'의 주최로 열리는 칸노 요코의 '라그나로크2' 콘서트는 공연과 맞춰 '라그나로크2' OST가 발매되었으며 OST의 곡을 중심으로 공연되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진 칸노 요코는 이번 첫 내한공연에 '라그나로크2'의 곡들을 중심으로 '천공의 에스카플로네'와 '울프스 레인'에 참여한 여가수 '사카모토 마야'와 '카우보이 비밥'의 야마네 마이, '공각기동대SAC'의 러시아 출신 여가수 '오리가'와 실제 녹음 당시의 함께했던 기타, 첼로, 베이스, 퍼커션 등 최고의 뮤지션들이 함께하여 더욱 많은 화제를 모았었다.

▲ '천재 뮤지션'이라 불리우는 일본의 영화음악가 칸노 요코
ⓒ 그라비티
2002년 일본에서 열렸던 seatbelts 콘서트 이후 5년 만에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칸노 요코 콘서트의 화려한 서막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랐다.

먼저 마크로스 플러스에서 부터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카우보이 비밥, 턴A 건담, 지구소녀 아르주나, 울프스 레인, 공각기동대 SAC의 영상들과 칸노 요코가 만들어낸 주옥같은 곡이 나오고 에스카플로네나 카우보이 비밥의 인기작품들의 곡들이 흘러 나올 때는 객석의 환호성과 박수는 커져만 갔다. 20070620 공연의 칸노 요코가 공연 날짜를 든 종이를 들고, 세션들이 등장하는 영상이 끝나는 듯하다가 뭔가 글 하나가 뜨기 시작한다.

'READY?'

관객들은 환호하기 시작했고 칸노 요코의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이 시작된 것이다. 화려한 조명과 함께 선보인 세션들과 세 명의 여성보컬이 눈에 띈다. 바로 '사카모토 마야'와 '오리가' '야마네 마이'가 한꺼번에 등장한 것이다. 오리가의 신비로운 목소리와 사카모토 마야의 코러스로 '공각기동대 SAC'에 수록곡 'Torukia'가 오프닝을 장식했다.

몇 달 전 '우아한 세계' 홍보차 내한했을 때 보여준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던 모습의 칸노 요코의 모습은 사라지고 펑크한 헤어스타일과 흰 셔츠와 타이와 언밸런스한 길이의 스커트 차림으로 무대 뒤에서 리듬을 타며 등장해 무대 중앙의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이어 들려준 공각기동대 SAC 1기 오프닝 'Inner universe'와 2기 오프닝 'Rise'가 관객들의 심장박동을 빠르게 자극하기 시작했다. 몽환적인 사운드와 오리가의 천상의 음성과 사카모토 마야의 여린 듯한 감성적인 코러스, 칸노 요코의 연주가 어우러져 묘한 울림을 내었다.

칸노 요코의 대표 작품인 '카우보이 비밥'의 'Don't Bother None'와 'Call Me Call Me'는 야마네 마이의 음성으로 재즈적인 요소를 그녀만의 허스키한 음성으로 멋드러지게 들려주었다. 칸노 요코가 직접 하모니카 연주를 들려주었고 사카모토 마야와 오리가까지 코러스 부분에 어우러져 환상의 화음을 들려주었다.

공연은 한창 더 무르익고 야마네 마이는 'Prayer'를 부르며 관객들을 도발 시키는 열창과 몸짓으로 그 열기에 불을 붙였다.

이전까지 주로 코러스 파트를 담당했던 사카모토 마야가 '지구소녀 아르주나'의 '공기와 별'을 부르며 특유의 미성을 선보였다. 뒷편으로 보이는 스크린 위로 아름다운 하늘이 펼쳐지고 그 위에 칸노 요코의 피아노 연주가 마야의 청아한 음성과 어우러져 허공을 가른다.

칸노 요코의 반주로 이어지는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삽입곡 'Hikaru no Naka de(光の中)'가 이어진다. 사카모토 마야의 청아하면서도 애절한 음성자체가 곡의 슬픈 감성을 듣는 이에게 스펀지에 잉크 스며들듯 잘 전달해 주었다.

본격적으로 라그나로크 2의 삽입곡들이 이어졌는데 가장 우려한 부분이 라그나로크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나 상대적으로 귀에 익숙한 칸노 요코의 영화와 애니메이션 음악보다는 낯설어 할 수도 있기에 적절히 섞어 기존곡들과 조화롭게 배치하여 관객들을 배려하였다.

칸노 요코의 피아노 솔로를 지나 호스를 이용해 효과음을 직접 연출하기도 하고 이어진 'Numachi'에서는 첼로의 애절함과 타악기가 주는 드럼의 울림이 흥을 돋우게 한다.

Clap & Walk에서는 아코디언을 직접 들고 발을 구르며 토끼처럼 경쾌하게 깡총깡총 무대를 뛰어다니던 그녀의 모습은 세계적인 뮤지션의 모습이 아닌 소녀와도 같았다.

이어 무대위에 초대형 실로폰이 등장하고 칸노를 비롯한 세션 4명이 함께 한 코믹 실로폰 연주 'Stone Music'가 이어졌는데 북을 치던 세션과 베이스도 합류 코믹한 퍼포먼스를 보여 웃음을 선물하며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카우보이 비밥'에서 'Tank', 'Rain'과 더불어 많이 알려진 가장 대중적인 그 노래로 'The Real Folk Blues'를 선보이자 객석에서는 더 큰 환호가 쏟아졌다. 어쿠스틱 버전으로 재즈풍의 선율을 야마네 마이가 익숙한 영어버전이 아닌 일어로 불러 주었고 열광적인 환호에 객석을 향해 키스를 보내며 "감사합니다"라는 멘트도 잊지 않았다.

오리가와 야마네 마이가 듀엣으로 부르는 'ELM' 다시금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라그나로크 2 로그인시에 흐르는 Intro theme곡을 어린 소년이 몽환적이면서도 여리고 아름다운 음색으로 라그나로크의 신비한 세계관을 음악으로서 잘 표현하고 있다(공연 후반에 칸노 요코의 멤버 소개에 의하면 요코가 직접 오디션을 본 경쟁을 뚫은 윤현수라는 10살배기 한국 소년이었다. 그녀는 윤현수를 천상의 음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몇 곡의 라그나로크 음악들이 공연되고 'Five years war'라는 곡이 진행되면서 갑자기 무대가 180도 회전하면서 대규모의 오케스트라단이 깜짝 등장했다. 음악적으로 워낙 완벽을 추구하는 칸노 요코라 다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의외의 등장이었다. 하프를 비롯한 오케스트라의 음향은 객석에서 등장한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의 백파이프 연주와 드럼 소리가 관객의 박수와 어우러져 흥이 높아져만 간다. 트럼펫, 호른, 플룻 소리가 점점 고조되며 비장감이 느껴지면서도 경쾌하다.

고조된 분위기는 카우보이 비밥의 엔딩곡인 'Blue'가 야마네 마이에 의해 불려진다. 원곡을 뛰어넘는 라이브의 묘미를 맛보게 해준 곡으로 흥겨움 뒤에 느껴지는 아련한 슬픔이 야마네 마이의 호소력 짙은 보컬의 힘이 느껴졌다. 무대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절규하듯 열창하는 그녀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무대에 전달되어 졌다.

이번 칸노 요코 공연의 진정한 하일라이트는 에스카플로네의 '반지'와 '약속은 필요없어'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원곡을 불렀던 사카모토 마야가 한국어로 부르기 시작하는데 너무나 완벽해서 마야를 잘 모르는 관객은 한국 사람이 아닐까 할 정도로 완벽히 소화해 내 오케스트라와 칸노 요코의 피아노와 어우러져 관객들과 하나가 됐다.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오리가 역시 한글로 코러스를 불러주고 사카모토 마야는 한글과 일어를 섞어서 경쾌하게 무대를 휘어잡았다. 언어가 달라도 음악의 울림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마야의 청아하고 맑은 음성으로 한국어로 "그대의 그대의 그 눈빛 모든 슬픔 전부 씻어주네~ 그대의 그대의 환한 미소 내 맘 속 가득히"라는 후렴구를 반복해서 부를 때 이날 공연의 에너지가 가장 충만했던 순간일 것이다. 무대 위를 춤추듯 뛰어다니며 노래하는 사카모토 마야의 모습과 한층 기분이 업된 칸노 요코, 무대 위의 연주자들과 관객은 말 그대로 하나가 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오래된 역사나 감정을 뛰어 넘어서는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음악으로 보여주는 전율을 넘어서서 감동 그 자체의 순간이었다.

거의 모든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앙코르곡으로 칸노 요코와 오케스트라가 메들리로 들려준 에스카 플로네의 곡과 울프스 레인, 대항해시대 등의 선율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이어 칸노 요코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그동안 숨겨온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뽐내며 멤버들을 하나하나 한국어로 소개했다. 귀여운 음성으로 재치있는 멘트와 유머감각까지 잊지 않은 그녀의 모습은 '천재 뮤지션 칸노 요코'가 아닌 '인간 칸노 요코'의 모습을 가식 없이 보여주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전 칸노요코예요. 오늘은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사람이 많이 있어요. 저는 사람이 많이 있으면 힘이 납니다"라고 특유의 어린아이 같은 뉘앙스로 인사를 건넸다.

3층과 2층 관객들에게도 인사를 건넨 후 "오늘은 삼계탕을 먹어서 너무 힘이 납니다"라며 멤버들에 대한 애정어린 소개를 마쳤다.

▲ 공연이 마지막 부분에 슬라이드를 통한 영상으로 관객들에게 '사랑해요'란 메세지를 전하는 칸노 요코
ⓒ 박병우
라그나로크의 수록곡인 'Hodo'를 칸노 요코가 피아노 솔로로 연주하고 이어진 'Church'를 한손으로 연주하며 빛과 슬라이드를 통해 스크린으로 한국관객들에게 아쉬운 마음의 메시지를 대신했다.

'와줘서 고마워'라는 메시지로 팬들을 감동시킨 후 '어땠어?' ,'좋았어?'라는 메시지를 선보였다. 이어 '짱이야', '사랑해요'라는 마음을 담아 전달한 후 'Bye, Bye'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그녀와의 2시간 30여분의 만남은 끝을 맺었다.

공연 내내 소녀 같은 순수함과 더불어 당당하면서도 뮤지션으로 지휘자로서 프로페셔널함을 잘 보여준 칸노 요코의 음악과 천상의 목소리로 불리는 맑은 사카모토 마야, 오리엔탈적인 오리가의 신비로운 음색과 허스키하면서 힘있는 야마네 마이, 서로 다른 인종과 국적을 넘어 하나로 어우러져 화합의 외침으로 울려 퍼졌다.

칸노 요코가 음악으로 들려주었던 삶을 더욱 아끼고 열심히 살아가라는 메시지는 오래도록 공연장을 찾았던 이들의 가슴에 울려 퍼질 것이다.

태그:#칸노 요코, #라그나로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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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쪽 분야에서 인터넷으로 자유기고가로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생생한 소식과 리뷰를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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