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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호세 시티칼리지 마케팅 디렉터 문창석씨.
ⓒ 구은희
놀라운 문창석씨의 재치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저는 한국 사람."
"-이에요."

"이름이 뭐예요?"
"문창석."
"-이에요."

"선생님, 잘 지냈어요?"
"네, 문창석씨는요?"


영어 대화에서는 명사만으로도 대답할 수 있는 것에 반해 한국어는 항상 동사나 형용사로 끝나야 하는데, 영어식으로 명사로만 대답하는 문창석씨에게 항상 '-이에요'나 '-있어요'와 같이 동사들을 붙이도록 하고 있는데, 이때 문창석씨가 한 마디 던진다.

"한국어는 모두 '-요, -요' 그래요. 랩의 원조는 한국인 것 같아요."

순간 문창석씨의 재치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는 어느 누구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으로 한국어 존대법의 특성을 집어낸 것이다. 사실, 문창석씨는 한국어만 어눌하지 다른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머리의 소유자다. 그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언제나 빛을 발한다.

컴퓨터로 한국어 공부해요

수만 명의 학생과 교직원들의 심부름꾼인 문창석씨의 휴대전화는 공부하는 수업 중에도 끊임없이 그를 찾는 사람들로 인해 쉴 틈이 없다. 그래도 문창석씨는 수업 중에는 아주 중요한 총장님의 전화 정도만 받고 나머지는 안 받는다.

문창석씨는 또한 자신의 컴퓨터로 한국어를 공부한다. 나는 프로젝터를 통해서 스크린으로 설명을 하고, 문창석씨는 한글이 자유롭지 않은 자신의 맥킨토시 컴퓨터로 한국어를 공부한다. 아직은 자판을 못 외워서 스크린에 나온 자판을 보고 한 자 한 자 독수리 타법으로 수업 내용을 정리하는데, 그래도 그렇게 자신이 한 자 한 자 눌러서 만들어낸 글자가 스크린에 뜰 때마다 탄성을 지르곤 한다.

문창석씨는 자신의 한국어 학습을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 중 하나가 새로운 단어나 문구들을 한국어와 영어로 녹음하는 것인데, 그렇게 녹음한 것을 자신의 mp3 플레이어에 담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외운다는 것이다.

수업 중에 자신이 먼저 영어로 단어 뜻을 말하면, 필자가 한국어로 그것을 말하는 식으로 교과서에 나온 단어들을 녹음하기도 했다. 사실, 요즘은 한국어 교재들이 잘 만들어져서 CD와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실질적으로 이렇게 한국어와 영어 단어들이 함께 녹음되어 있는 교재는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발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런 문창석씨의 한국어 학습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억양'이다. 한국어의 단어들은 대부분 첫 음절에 악센트가 오지만 영어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또한, 한국어는 평서문을 의문문으로 바꿀 때, 다른 단어들을 붙이거나 문장 구성 요소의 순서를 바꾸지 않고, 단순히 마지막을 올림으로써 의문문을 만들 수 있는데, 문창석씨의 경우에는 끝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책이 책상 위에 있어요."
"책이 책상 위에 있어요?"


두 가지를 구분해서 말하는 것이 녹녹지 않게 보인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의문문의 끝을 올리라는 나의 말에 "책이 책상 위에 있어요"를 다른 말들은 다 내리고 '있어요'의 '-어-'만 높였다가 '-요'는 내리는 영어식 억양으로 발음하여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영어권 학생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특이한 현상이었다. 문창석 씨는 '안녕하세요?'의 경우에도 '-세-' 부분만 올렸다가 정작 '-요' 부분은 내리는 재미있는 현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문창석씨는 현재 영문학 대학원생이기도 한데, 그의 석사학위 논문 주제가 아주 흥미롭다. 그가 택한 논문 주제는 바로 미국에 이민 온 한인 1세 소설가에 대한 것인데,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한국인 이민 1세 영문 소설가의 작품을 분석하였다. 문창석씨가 한국어를 배우게 된 목적 중의 하나도 그 논문과 깊은 관련이 있다.

문창석씨는 내년 3월에 한국에 직접 나가서 그 소설가의 가족들을 만나서 인터뷰할 계획이다. 그래서 그는 그 바쁜 일정을 쪼개서 일주일에 두 번씩 개인교습을 받고 있으며, 매일 점심시간에는 1시간씩 배운 것을 복습하고 때로는 예습을 하기도 한다.

'-이에요, 가요, 먹어요, 자요, 좋아요, 싫어요 등'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모든 한국어는 '-요'로 끝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문창석씨의 이야기를 다른 수업 시간에 해 주면서 '-요'만 빼면 존대법이 아닌 말이 된다고 했더니, 한 학생이 "랩 단어만 빼면 되는군요" 한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이론이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그래서 우리나라 가수들이 랩을 잘하나?'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오늘(26일)부터 새로운 여름학기가 시작되었다. 이번 학기에는 더욱 많은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본교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가는 모습에서 작은 행복감에 젖어본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더 많은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는 구은희 산문집 <한국어 사세요!>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문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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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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