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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팔 끓는 소금물을 부어 김이 오르고 있는 오이지 항아리.
ⓒ 서미애
올해는 더위가 일찍 오더니 장마도 일찍 오나 봅니다. 내일부터(21일)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며 오이지를 담기로 했습니다. 주부들은 장마가 오기 전에 할 일이 많습니다. 요즘 한창 출하되고 있는 마늘을 값이 쌀 때 사서, 까고 찧어서 냉동보관을 해야 하고 마늘장아찌도 담아야 합니다. 저장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양파장아찌도 담는데 아삭한 맛이 일품입니다.

장마철에는 비로 인해 농작물이 녹기도 하고, 폭우가 쓸어 가기도 하고, 또 잦은 비로 출하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야채 가격이 비싸집니다. 그러니 두세 가지 김치도 미리 담가 놓아야 하지요. 저는 작년 김장 때 담가 놓은 묵은 김치가 아직도 제법 남아 있고, 얼마 전에 담아놓은 총각무 김치도 있어 오이지만 담기로 했습니다.

어제는 아파트에 알뜰시장이 들어왔는데 시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의 인사가 모두 다음과 같았습니다.

"오이지 담갔어요?"
"마늘 샀어요?"
"김치는?"
"매실은 담갔어요?"
"우린 마늘장아찌 담갔는데 색깔이 맑지 않네요."


주부들은 1년 동안 먹을 저장 음식을 장만하는 이맘때와 김장때가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철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마가 코앞에 닥쳐서인지 오이 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지난주에는 50개에 8~9천원이었는데 이번 주에는 11000원입니다. 가격이 비싸도 남편이 워낙 좋아하는 음식이고 또 마트에 가서 사먹는 것보다는 싸게 먹히니 담가야지요.

저는 고향이 경상도라서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오이지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제 고향에서는 오이를 우물물에 둥둥 띄워놓았다가 때가 되면 건져서 오이냉국을 해 먹거나 무쳐서 먹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늙은 오이는 무조건 소 먹이가 되었는데 서울에서는 '노각'이라고 하면서 씨가 있는 부분은 발라내고 얇게 저며서 무쳐 먹기도 하더군요.

오이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편물공장에서 일을 할 때였습니다. 주인집에서 숙식을 제공받았는데, 그때 반찬으로 나온 음식이 오이지였습니다. 그냥 맹물에 둥둥 띄워진 오이를 사람들은 맛있다고 집어 먹는데 참 별스런 음식도 다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날은 우리 할매 뱃가죽처럼 쪼글쪼글해진 오이를 고춧가루에 쫑쫑 썬 파와 통깨를 듬뿍 뿌려 고소한 참기름에 무쳐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먹어보니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고, 오독오독하니 맛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알게 된 오이지를 해마다 여름이면 먹게 되었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이 오이지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남편 고향은 충청도인데도 오이지를 잘 아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담가보기로 했지요. 먼저 항아리에 오이를 차곡차곡 담고 오이가 뜨지 않게 편편한 돌멩이로 눌러놓고, 팔팔 끓는 물에 많이 짜다 싶을 정도로 소금으로 간을 하여 끓는 물 그대로 부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 뜨거운 사랑을 준비하고 있는 오이와 항아리.(그대들은 뜨거운 소금물을 끼얹을 지라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가?)
ⓒ 서미애
방법이야 참 간단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소금 간을 맞추는 것인데, 싱거우면 오이가 물러버리고 너무 짜면 또 제 맛이 안 난다는 것이었지요. 그래도 짠 것은 물에 우려내서 먹을 수 있지만 싱거운 것은 허물거리며 물러지기 때문에 다 버려야 해 그 해 오이지는 완전 실패작이 되는 것이지요.

초보 주부가 그 소금 농도를 잘 맞춘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서 첫해에는 실패를 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다음 해에 또 도전을 했습니다. 잘은 아니지만 웬만큼은 오이지의 모양을 갖춘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주부 경력 19년째인 지금은 어림짐작이 저울금보다 더 정확합니다. 예전에 친정 엄마가 늘 '애들 계산보다 어른 요랑이(눈대중) 더 낫다'라고 하시더니 계량컵으로 부피를 재고 무게를 달지 않아도 척척 맞아 떨어지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렇게 하여 올해도 오이지를 담갔습니다. 5일 후에 그 물을 따라내어 다시 끓여 부어야 하는데 그때는 식혀서 붓습니다. 그리고 5일 후에 또 한 번 끓여 부으면 맛있는 오이지가 탄생을 하지요. 저의 장마 준비는 이렇게 오이지 담그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번 장마는 폭우와 태풍이 가슴을 후벼낸 상처가 되지 않고, 꽃가마 타고 시집 간 내 고모처럼 사뿐사뿐 고운 발걸음으로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방송에도 올립니다.


태그:#오이지, #장마, #김치, #주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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