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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오이밭에서 첫 수확한 오이
ⓒ 전갑남
비가 정말 기다려진다. 지난주 한 차례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했다. 그런데 웬일? 우리 마을은 그냥 지나갔다. 올핸 장마가 일찍 찾아온다는 말도 틀린 듯싶다. 일기예보가 잘 들어맞지 않는다.

비다운 비가 온 지도 2주가 지났다. 밭작물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다. 뙤약볕에 작물이 시들시들하다. 집집마다 지하수를 끌어올려 스프링클러로 물을 대느라 야단들이다. 이리저리 내둘리는 물줄기가 애처롭다. 아무리 퍼 나른다 해도 흠뻑 내리는 빗줄기만 하겠는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수밖에.

"오이가 비비 꼬였어요!"

▲ 달린 오이 중 일부는 가뭄에 모양이 좋지 못하다.
ⓒ 전갑남
오후 늦은 시간, 고무호스를 늘여 물을 주기 시작했다. 우선 고추밭에만 줄 참이다. 곧 있어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니 그 때까지 잘 버텨주면 좋겠다. 물을 다 주고 호스를 걷는 나를 보고 아내가 묻는다.

"여보, 오이에도 물을 줘야겠어요."
"좀 말랐지?"

오이도 맥을 못 추고 있다. 요즘 들어 자라는 게 시원찮다. 아마 가뭄을 타는 게 분명하다. 이러다 죽는 것은 아닐까? 덜컹 가슴이 내려앉는다.

비닐 구멍을 뚫었다. 비닐 속의 흙이 푸석푸석하다. 원래 비닐 피복을 하면 수분 증발이 잘 안 되기에 가뭄을 잘 타지 않는다. 그런데 불볕더위에는 별 수 없는 모양이다. 가뭄이 들기는 들었다.

"오이가 제멋대로 컸네!"
"쭉 뻗은 모양만 생각하나? 그래도 몇 개는 잘 빠졌는데 그래?"
"당신 정성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그렇지!"
"모든 게 내 맘대로 다 된다면 세상에 힘든 일이 뭐 있겠어!"

▲ 마디 마디 예쁜 오이꽃이 피었다.
ⓒ 전갑남
오이가 볼품이 없는 게 아내는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쭉 뻗어 오동통하게 열리면 좋으련만 꼬불꼬불 꼬인 데다 가느다랗다. 그래도 마디마디 꽃이 피어 앞으로 달릴 열매에 대한 기대가 크다.

장마 통에 오이 자라듯 한다는 말이 있다. 이제 잦은 비를 맞고 자라면 모양새를 내며 멋진 모양으로 자랄 것을 기대해 본다. 자잘하지만 여남은 개를 땄다. 첫 수확 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아내는 반찬거리가 또 생겼다고 좋아라한다.

예전에 먹어보았던 물외 맛이 생각나다

우리는 5월 초순, 스물 대여섯 그루의 오이 모종을 사다 심었다. 오이는 덩굴을 감고 올라가도록 지주를 세워주는 게 중요하다. 오이 지주를 세워주는 것도 요령이 있다. 버팀목에다 가로로 보처럼 연결해주면 튼튼하게 된다. 그리고 덩굴이 잘 뻗도록 얼기설기 줄로 엮는다.

지주를 잘 세워야 오이덩굴이 잘 뻗는다. 작년에는 지주를 시원찮게 세웠는지 장마철에 쓰러졌다. 결국 오이가 땅을 기게 되는 형국이 되었다. 올해는 거센 바람에도 끄떡 없도록 요령을 다해 튼튼히 세웠다. 한 번 실수를 하면 다음에는 그게 경험이 되는 모양이다.

▲ 장맛비에 튼실한 오이가 달릴 것이 기대되는 우리 오이밭
ⓒ 전갑남
아내가 꼬부라진 오이를 반으로 뚝 꺾어 한 입 베어 문다. 생각보다는 오이 맛이 들었다며 먹어보란다.

"예전 물외 맛이 생각나네요."
"물외 맛? 그렇지! 오이를 물외라고 불렀지!"

내가 자랄 때 전라도에선 오이를 물외라고 했다. 아마 '참외'에 대하여 '오이'를 구별하여 이르는 말이었다.

아내가 물외라는 말을 꺼내자 초등학교 다닐 때 경험했던 일이 생각난다. 우리 집 남새밭에는 여름철 반찬거리로 물외를 넉넉히 심었다.

그땐 뭘 먹어도 맛있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마땅히 먹을 게 없었다. 두런두런 먹을 것을 찾다 결국 남새밭으로 뛰어갔다. 부지런한 어머니는 틈만 나면 남새밭에 살면서 감자, 고구마, 가지, 물외, 호박, 옥수수 등 우리 대가족의 반찬거리를 죄다 해결할 수 있는 만물상을 차려놓으셨다. 그 자리에서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물외가 최고였다.

남새밭에서 어머니는 물외를 아낌없이 따주셨다. 팔뚝만한 물외는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남았다. 오이 꼬투리의 쓴맛까지 맛보며 서너 개를 뚝딱 해치울 때의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물외를 생각하면 물외장아찌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밑반찬으로 물외장아찌를 많이 담그셨다. 이는 형제 많은 식구들의 도시락반찬으로 쓰기 위해서다. 납작납작 동그랗게 썰어 고춧가루에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조물조물 무쳐낸 오이장아찌는 여느 도시락 반찬보다 맛이 있었다.

책보에 책과 함께 도시락을 싸는지라 국물 있는 도시락 반찬은 쌀 수가 없었다. 그래 단무지무침이나 장아찌가 단골손님일 수밖에. 이때 물외장아찌 무침은 도시락반찬으로 최고였다. 요즘 학교 급식을 하는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이해나 할까?

오이반찬으로 올 여름을 시원하게

"여보, 오이로 뭐 해먹을 거야?"
"부추 넣고 오이무침이나 할까요?"

부추를 썰어 길쭉길쭉 썬 오이와 버무려 먹으면 맛이 있을 것 같다. 부추와 오이는 잘 어울린다. 간단하게 해먹는 반찬으로 아내가 즐겨 만드는 음식이다.

▲ 한꺼번에 많이 달린 오이. 여름철 소중한 반찬거리가 될 것이다.
ⓒ 전갑남
아내는 오이를 참 소중하게 여기고 다양하게 해먹는다. 오이가 넘쳐나도록 많이 나오면 오이지를 담근다. 뜨거운 소금물을 팔팔 끓여 붓고 한 열흘 숙성하면 맛난 오이지가 된다. 오이지는 잘근잘근 썰어 무쳐먹어도 되지만, 얼음물에 동동 띄워 냉국으로 먹으면 여름철 입맛으로 괜찮다.

가끔 오이소박이를 해먹기도 한다. 오이로 녹즙을 내먹으면 천연음료로 그만이다. 밭일하다 한 잔 들이키면 갈증이 없어진다. 녹즙을 하고 남은 찌꺼기로 아내는 마사지를 한다며 얼굴에 덕지덕지 붙이기도 한다. 꿩 먹고 알 먹는 형국이다. 그리고 오이냉국까지! 오이로 해먹을 수 있는 요리는 다양하다. 올 무더위는 맛난 오이반찬으로 날려버릴 수 있을까?

오이는 수분이 대부분이지만 비타민과 무기질의 공급원으로 중요하다. 거기다 싱그러운 향, 녹색의 색깔, 아삭하게 씹히는 맛 때문에 오이를 즐겨먹는 사람이 많다.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다. 요 며칠 가물다보니 지루하게 펼쳐질 장마를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올 장마는 제발 점잖게 지났으면 좋겠다. 우리 오이도 장맛비를 맞고 무럭무럭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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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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