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범이 홈런을 기록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 해가 갈수록 이런 모습을 보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 KIA 타이거즈 공식 홈페이지
해태와 KIA를 거치면서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자리를 꿰찬 이종범(37).

전성기 '바람의 아들'로 불리며 빠른 발과 빛나는 주루센스를 발휘했던 그는 상대팀에겐 경계대상 1호였다. 당시 타이거즈는 '이종범의 팀'으로 인식되었고 이종범의 발이 묶이면 패배한다는 공식까지 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이종범도 최근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다. 2007년 이종범의 성적은 이름값과 통산성적에 크게 못 미치는 1홈런 11타점 15득점 3도루 .183의 타율에 불과하다. 2군 선수가 올라와도 이 정도의 성적을 기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치부와도 같은 일본진출 실패

이종범은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 소속으로 4년간(1998∼2001년) 뛴 적이 있다. 결과는 실패였다. 현재 메이저리그를 주름잡고 있는 스즈키 이치로(34·시애틀 매리너스)와 곧잘 비교되기도 했던 이종범은 311경기 출장에 27홈런 174득점 99타점 53도루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한국야구를 지배했다는 그의 자존심도 나란히 추락했다.

물론 당시 한신의 사이드암 투수였던 가와지리 테쓰로(39)의 볼에 팔꿈치 부상을 당한 불운도 있었지만 일본야구 특유의 텃세를 실력으로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결국 이종범은 국내복귀를 결심하게 된다.

2001년 시즌 후반 국내 프로야구에 전격 복귀한 이종범은 과거의 명성을 이어갈 만한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암흑기를 거쳤던 타이거즈의 야구도 새 주인인 KIA를 찾는 등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일본에서의 실패를 완전히 딛고 일어난 이종범은 거칠 것 없었다. 2002년과 2003년은 전성기까지는 아니어도 85도루와 .293, .315의 타율을 기록하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라운드에서는 혼신을 다한 투혼이 이어졌다.

하락세의 조짐은 2004년부터

▲ 이종범 특유의 타격 후 배트를 놓는 장면은 그림과도 같다.
ⓒ KIA 타이거즈 공식 홈페이지
178cm, 73kg의 운동선수로는 상당히 왜소한 체구의 소유자인 이종범은 과거에도 "여름에 체력관리가 힘들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대신 남들보다 더 많은 운동량과 자기관리로 신체적 약점을 극복했던 것. 이종범의 화려함 이면에는 숨어있는 땀방울이 있었다.

그러나 30대 중반에 접어든 이종범은 과거와 같지 않았다. 많은 도루를 시도하고 화려한 플레이를 추구하는 그에게 나이의 무게는 더욱 크게 느껴지기만 했다. 2004년 이종범은 100득점으로 득점 1위를 차지했지만 .260의 타율에 그치며 하락세를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05년 이종범은 장타를 버리고 완전한 '단거리 타자'로 변신했다. 자신을 냉철하게 분석한 결과였다. 덕분에 .312의 타율로 3할 타율 복귀에 성공했다. 하지만 홈런은 고작 6개밖에 때려내지 못했고 번번이 찬스에 해결사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등 타격 통계에 비해 실속은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은 재계약에 성공한 이종범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으로 인해 동계훈련 부족을 그대로 느끼며 부진했던 시즌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특유의 장기인 도루는 10개에 그쳤고 가끔 루상에서 횡사하며 이종범 답지 못한 모습도 보이는 등 최악의 한해를 보냈다. 한화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베테랑다운 활약을 보였지만 그것이 정규시즌의 부진을 가리지는 못했다.

급격한 하락세의 원인은?

이종범은 전성기부터 뚜렷한 '배드볼 히터'였다. 타석에서 참을성이 있기보단 비슷하면 배트가 나가는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였다. 배드볼 히터는 안타의 양산에 유리한 반면 출루에 약점을 보이고 나이가 들면 부진의 폭은 더욱 커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일본진출에서 실패한 이유 중 하나도 이런 공격적인 성향에 있다.

더구나 이종범의 왜소한 체구는 자기관리를 하더라도 한계에 부딪힐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전성기에도 체력으로 고민했던 이종범에게 30대 후반이라는 벽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올해 이종범의 스윙은 한계에 부딪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지난해도 그랬지만 정확도가 결여된 스윙은 안타를 만들기 버거웠다. 장타력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KIA의 서정환 감독은 이런 이종범의 부진을 알면서도 팀 주장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해 2군으로 내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팀 성적이 최하위로 굳어지고 코칭스태프의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결국 19일 이종범을 2군으로 내리는 용단을 내렸다.

최근 KIA팬들 사이에서는 이종범의 은퇴를 종용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그만큼 이종범의 부진은 심각한 수준이다. 2군에서 마음을 다지고 1군에 복귀하는 이종범이 과연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영웅의 마지막이라면 아무래도 화려할수록 보기 좋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필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aprealist

2007-06-19 18:23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필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aprealist
바람의아들 이종범 KIA 해태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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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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