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2007 안티페스티벌 '대통령과 춤을!'에 출전한 한의사 이유명호 고은광순씨가 호주제 폐지 이후 달라지는 혼인제도를 풍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아하, 알겠다! 호주제 폐지는 단순한 신분등록제의 변화가 아니라 부계혈통제가 생물학적, 정치적, 도덕적으로 틀려서 없앤 거구나."

'문화미래 이프'가 주최한 2007 안티페스티벌 '대통령과 춤을' 행사 중 '찜질방 수다'에 찬조 출연한 여성경호본부팀 남성출연자가 이렇게 말하자 여기저기서 "맞아! 맞아!"라는 함성과 함께 커다란 박수가 터져 나왔다.

2005년 2월 3일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판결을 내림으로 호주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신분제를 위한 법제, 전산 작업 등 법적, 행정적 절차로 2008년에야 개인별 신분등록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호주제 폐지 이전과 이후 달라지는 사항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경호본부팀은 '찜질방 수다'라는 제목으로 호주제 폐지 이후 크게 달라지는 사항들을 조목조목 쉽게 풀어 들려주었다.

호주제 폐지 대체 뭐가 달라진 것일까. 안티페스티벌 '찜질방'에서 참가자들이 풀어놓은 수다를 옮겨보자.

'시집'안가! '결혼'할래!

우선 여자들이 시집을 안 가게 된다. 아니 그럼 모두 싱글족으로 평생 산다는 이야기인가? 아버지 밑에 입적되어 있던 호적을 파 가지고 남편의 가에 입적되는 개념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갑순이와 갑돌이가 결혼을 했다. 예전같으면 갑순이 아버지는 자기 호적에 있던 딸을 신랑 갑돌이에게 넘겨주고 갑순이는 새 호주인 갑돌이 혹은 갑돌이가 장남이라면 갑돌이 아버지인 시아버지 앞으로 입적돼 갑돌이네 식구가 되었다. 즉 친정에는 법적으로 출가외인이 되고, 아버지 밑에 있던 호적을 파내어 신랑인 갑돌이 집으로 옮겨가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신분제인 개인등록법이 실행되면 각자의 신분등록부에 배우자가 각각 기록된다. 그러면 자연히 딸의 아버지가 사위에게 딸을 인계해준다는 것은 법적으로 맞지 않아 "시집 보낸다" "딸자식 치운다"라는 말은 어불성설이 되는 셈. 여자가 남자 집으로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한 여성과 한 남성이 '결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2007 대선을 앞두고 8일 저녁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안티페스티벌 '대통령과 춤을!'에 여성경호본부로 출전한 한의사 고은광순씨가 호주제 폐지 이후 달라지는 부분에 대해 찜질방 수다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본 적 없는 '본적'아 사라져라!

여권신청 등 신분을 증명해야 할때 필수로 기록되던 '본적'이 사라지게 된다. 뿌리 깊은 '본적'의 개념이 사라진다면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니 하는 지역 감정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내 경우만 해도 서울 장위동이던 '본적'이, 결혼을 하고 살아 본 적도 심지어 가 본 적도 없던 충청도 공주시로 바뀌었고 아이 역시 공주시가 '본적'이 되었다. 아직까지는 신분 증명시 '본적'을 기록해야 해서 일일히 민원에 되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앞으로는 그런 무의미한 '본적'의 개념이 없어지게 된다. 본 적이 없는 '본적'은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나!

이전의 호적법은 호주 밑에 온 가족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달려 있는 형국이었다. 남자들의 경우 독립을 해 새로운 호주가 되면 소시지 신세를 탈피할 수 있지만 여성들의 경우 결혼하면 남편을 호주로 남편이 죽으면 장남을 호주로 삼아 평생 호주밑에 매달려 사는 신세였다.

그러나 호주제 폐지 후의 새로운 신분등록법에 의하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개인의 신분등록부는 한 장이면 되고 결혼하면 배우자를, 자녀를 낳으면 자녀를 즉 필요한 신분의 변동사항만 덧붙여 기록하게 된다. 자녀 역시 자신이 신분등록부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니 '부계사회의 산물인 혈통, 가문, 종중 아들 낳아 대를 잇는다, 부성만 따른다'라는 사고는 새로운 제도에 맞게 전환되어야 하고 새로운 양성평등 문화가 생겨나야만 하는 것이다.

성씨는 자유롭게!

"맞아. 나는 이씨 엄마의 아들이기도 한데 경주 정씨 62대 손이라니, 틀렸지. 내 아이도 고씨 엄마(고은광순)가 나았는데 경주 정씨 63대 손이라는 건 억지야."

한의사 고은광순씨(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상임위원)와 함께 찬조 출연한 고은광순씨의 남편 정이동건씨의 대사였다. 나중에 위 대사에 공감하느냐고 묻자 그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2007 대선을 앞두고 8일 저녁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안티페스티벌 '대통령과 춤을!'에 출전한 한의사 고은광순씨와 이드씨가 호주제 폐지 이후 달라지는 부분에 대해 찜질방 수다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금은 결혼시 합의하에 엄마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했지만 민법 781조가 바뀐다면 좀더 자유로운 형태로 엄마성 아버지 성, 또는 양성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그들의 수다 아닌 수다를 지켜 본 관객들 역시, 연령과 성별에 상관없이 공감의 박수와 찬탄을 아끼지 않음으로 호주제 폐지가 가져올 평등사회에 대한 설레는 기대를 드러내 보였다.

공연 전 미니 인터뷰에 응한 고은광순씨는 "우리 팀에 낀 남자 2명 중 한 명이 나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기사에 꼭 명시해 달라"는 애교스런 주문을 했다.

고은광순씨는 호주제폐지를 위해 오랜 세월 시간을 바친 여성운동가다. 그녀의 남편 역시 기꺼이 그의 아내와 나란히 손을 잡고 양성평등 사회를 앞당기는데 물심양면 외조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개인을 위해서는 굳이 운동할 필요가 없는 조건을 지닌 고은광순씨 같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끈질기게 호주제 폐지를 외쳐왔는지는 새로운 신분등록법을 통해 바뀌는 비합리적이고 불평등한 여러 조항들이 잘 드러내주고 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비혼모이든 장애인이든 그 누구도 신분상의 차별을 받을 이유가 없다.지구촌 65억 중 오직 하나뿐인 당신이 누구보다 소중하고 귀한 유일한 생명이듯, 그들 역시 유일한 우주아 이기에

[미니인터뷰]호주제 폐지 이후 무엇이 달라지는가?

ⓒ오마이뉴스 남소연
고은광순씨에게 호주제 폐지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지는 사항에 대해 간단하게 들어 보았다.

"호주제는 이미 폐지되었지만 전산 작업에 오랜 시간이 걸려 내년부터 개인별 신분등록을 하게 된다. 일반인들은 아직까지는 폐지 이후 달라지는 사항에 대해 별로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개인별 신분등록은 결혼, 출생, 이혼, 사별 등 신분의 변동에 따라 이리저리 옮기는 번거로움, 신분을 통해 받는 불이익이 없는 그야말로 선진적인 신분등록 제도이다.

자녀 성만해도 2005년 12월 22일에 '예외 없이 아버지 성만 사용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유엔도 엄마 성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제 법무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는 적극적으로 민법 781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여 어머니 성을 좀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별로 느끼지 못했겠지만 내년부터는 호주제 폐지야말로 정말 상식이 통하는 사회, 양성평등 사회로 나가는 발판이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 이명옥

태그: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