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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제3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지 오는 5일로 40주년이 된다.

전쟁이 6일 간 이어져 '6일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3차 중동전은 오늘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끝없는 분쟁의 씨앗을 뿌린 사건이었다.

건국 후 채 20년이 되지 않았던 신생국가 이스라엘은 1967년 6월5일 자국의 존립을 위협하던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아랍연합국을 선제공격하는 것으로 3차 중동전을 열었다.

이스라엘 공군의 전폭기들은 이날 새벽 적의 레이더 망에 탐지되지 않도록 초저공 비행으로 이집트의 공군기지로 날아가 활주로에 있던 이집트 전투기들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날 하루 동안 파괴된 이집트 공군기는 약 300대에 달했다.

이스라엘군은 동시에 요르단, 시리아 및 이라크의 비행장들을 공격해 약 100대의 전투기들을 파괴했다.

선제 기습공격으로 제공권을 장악한 뒤 지상전에 돌입한 이스라엘 군은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로 진격해 2만700㎢에 불과하던 영토를 순식간에 6만8천600㎢로 늘려 놓았다.

이집트 땅이던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 요르단령이던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 지역, 시리아의 골란고원이 이스라엘의 손아귀에 놓인 것이다.

이스라엘의 기습으로 허를 찔린 아랍연합군의 주축인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가 차례로 휴전을 받아들여 발발 6일 만에 종료된 이 전쟁에서 승자는 이스라엘이었다.

이스라엘이 당시 아랍연합군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선제공격이 주효한 것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미국과 영국이 항공모함까지 동원해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지원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지금도 이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이 전쟁은 불과 6일 만에 끝났지만 실은 길고 소모적인 싸움의 시작이었다.

이스라엘의 점령을 거부하는 원주민인 아랍인들이 목숨을 건 저항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는 1967년 11월22일 결의안 242호를 채택,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 때 점령한 아랍 국가들의 영토에서 철수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1978년 평화협정을 맺은 이집트에 시나이 반도를 반환했을 뿐 2005년 9월 정착촌과 군대를 일방적으로 철수한 가자지구를 포함한 나머지 점령지에서는 불법적인 지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특히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인들의 잠정자치 허용을 골자로 하는 오슬로 합의를 지난 1993년 이뤄 놓고도 일부 점령지를 자국의 영구적인 영토로 만들기 위한 일을 계속하고 있다.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 이뤄져 온 정착촌 건설과 분리장벽 건설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가자지구와 서안 지역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점령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유혈투쟁의 강도를 높이고 있고 이스라엘은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무자비한 탄압으로 대응해 아랍권의 공분을 사고 있다.

2000년 9월 팔레스타인인들의 제2차 반 점령 투쟁(인티파다)이 시작된 이후 4천300여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군에 희생됐고 이스라엘 쪽에서도 1천여명이 사망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3차 중동전 이전의 국경을 기준으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영토로 하는 독립국가를 세워 이스라엘과 공존하길 갈망하고 있다.

하지만 영토욕심이 많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꿈을 수용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오히려 우호세력인 미국과 영국의 후원 아래 40년 간 불법 점령한 땅에서 일어나는 원주민들의 독립투쟁을 테러로 규정하고 점령지의 온전한 반환을 요구하는 팔레스타인 정파인 하마스에 테러단체라는 낙인을 찍어 놓았다.

이스라엘은 또 골란고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시리아를 테러 지원국으로 몰고 있다.

이스라엘의 반복된 선전전략이 먹혀들어가 3차 중동전이 발발한 지 40년이 흐르는 사이 가해자인 이스라엘이 피해자로 오인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스라엘인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자행한 인종청소 범죄인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의 영향으로 전 세계의 동정을 받아 1948년 아랍권의 한 복판에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3차 중동전을 계기로 점령국으로의 이미지가 부각된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호여론은 식어가고 있다.

AP통신은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전반적 평판이 '사랑스런 친구'(Darling)에서 '약자를 못살게 구는 자'(bully)로 바뀌었다며 3차 중동전으로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후유증의 한 단면을 지적했다.

<6일 전쟁 일지>

▲1967.5 = 시리아, 요르단과 군사동맹을 맺은 이집트가 시나이 반도 주둔 병력을 증강하고 이스라엘의 해상 관문인 아카바만으로 이어지는 티란 해협을 봉쇄하자 이스라엘 군 전쟁준비 돌입
▲1967.6.5 = 이스라엘 공군,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에 선제공격..적 항공기 약 400대 파괴
▲ 6.7 = 이스라엘, 요르단령 예루살렘 구 시가지(동예루살렘)와 요르단강 서안 장악..요르단 휴전 수용
▲ 6.8 = 이스라엘, 시나이 반도 점령 완료..이집트 휴전 수용
▲ 6.9 = 이스라엘, 시리아 군이 포격 거점으로 활용해 온 골란고원 장악
▲ 6.10 = 시리아 휴전 수용..6일 간 전쟁으로 이스라엘 군 679명 사망, 2천563명 부상;아랍 연합군 2만1천 명 사망, 4만5천여 명 부상

parksj@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medium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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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6일 전쟁, #이스라엘, #제3차 중동전쟁, #이집트,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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