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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 박영신
"비계를 싫어하는 미국은 20개월 미만의 소를 식용으로 사용한다. 20개월 이상이면 비계가 생긴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내용을 보면 우리는 '30개월 미만 소의 살코기만 수입한다'고 했다. 30개월 미만의 소에서는 광우병(BSE)이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24개월 된 소에서도 광우병이 발견된 일이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소를 도살할 때 뼈를 발라낸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만을 위해 뼈와 함께 소를 도살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25일 파리의 몽소 공원에서 만난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의 말이다. 미국에 사는 한국 동포들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느냐는 질문에 따른 대답이었다.

20일 개막된 제 75회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가 끝나는 날이었다. 강 의원은 참관인 자격으로 총회에 참석했다. OIE 총회 개막에 맞춰 파리를 찾은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산하 파리 원정 투쟁단의 일원으로 21일 투쟁단에 합류한 것.

"위험 통제국 등급은 뼈 있는 쇠고기 유통에 관한 규정 아니다"

OIE는 '가축의 질병과 그 예방에 대해 연구하고 국제적 위생규칙 관련 정보를 회원국에 보급하기 위한 단체'로 1924년 설립됐다.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있다. 그러나 OIE가 동물검역에 관한 국제기준을 수립하는 국제기관으로 공인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설립과 동시에 '위생식물 검역조치 적용에 관한 협정'(SPS협정)이 발효되면서부터다.

총회 사흘째인 22일 OIE는 예상대로 미국과 캐나다 등을 '광우병 위험 통제국'(controlled BSE risk country)으로 판정했다. 현행 OIE 규정에 따르면 이 등급의 국가에서 생산된 쇠고기는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SRM)만 제거하면 교역과정에서 연령이나 부위 제한을 받지 않게 된다.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 쇠고기 수입조건을 변경해 줄 것을 우리 정부에 요구했다. OIE 등급 판정을 근거로 지난해 1월 맺은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이라는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을 고쳐 갈비 등 부위에 관계없이 모든 쇠고기 제품을 수입해달라고 우리 측에 공식 요청한 것이다.

"광우병 위험 통제국이라는 등급은 뼈 있는 쇠고기 유통에 관한 규정이 아니다. 뇌나 척수 등 6개 부위에서 발견되는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의 유통을 제한하는 등급이다. 미국은 이 6개 부위를 제외한 나머지, 즉 뼈는 가능하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괘념치 않는 것 같다. 지난 28일 관련 장관회의 직후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정부는 OIE 권고를 존중해 수입 위생조건 개정 협상에 성실히 임할 것이고 이에 따르는 절차를 합리적 기간 안에 마무리할 것"이라 밝혔다. OIE 총회가 끝난 것이 25일, 미국이 개정 협상을 요청한 것이 지난 주말 즉 26일, 우리 정부의 발표가 28일. 모든 절차가 속전속결이다.

이와 관련해 OIE 산하 과학위원회의 빈센조 카포랄레 회장은 '광우병 위험 통제국'이라는 등급은 광우병 위험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통제 기능이 있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OIE를 통한 '정치적' 결정은 내려졌다. 한국과 미국은 이제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 OIE 산하 과학위원회의 빈센조 카포랄레 회장과 강기갑 의원 .
ⓒ 박영신

미국, 도살된 소의 1% 미만만 광우병 검사

▲ 지난 25일 국제수역사무국(OIE) 본부 앞에서 벌어진 범국본 기자회견에서 최정옥 한미FTA 저지 여성대책위원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그 옆으로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 모습이 보인다.
ⓒ 박영신
카포랄레는 이어서 "미국의 광우병 검사가 현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검사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3년과 2005년, 2006년 등 세 차례에 걸쳐 이미 광우병에 감염된 소가 적발된 전력이 있는 미국의 광우병 검사 제도에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강 의원은 말했다.

"일본의 경우 도살된 소의 100%에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 3500만 마리의 소를 도살하는 미국은 1% 미만만 검사한다. 광우병 증세가 보이는 소에만 한정된 검사다. 그러나 2005년 유럽연합(EU)에서 무증상 소를 검사한 결과 113건의 광우병 사례가 발견됐다."

미국이 광우병 검사 제도를 강화하기 전에는 광우병 위험 통제국이라는 등급을 주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 강 의원의 주장이다. 강 의원은 OIE 총회에 참가한 우리 측 대표단에 강한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총회가 열리기 전 우리 측 대표단을 만난 강 의원은 미국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 통제국 판정에 반대해줄 것을 호소했고 우리 대표단은 수긍한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래놓고) 막상 토론에서는 동의해 버렸다.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한미FTA 선결조건에 따른 대통령의 발언에 맞춰 (대표단은) 행동했고 결국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 참담한 심정이다."

강 의원이 파리를 찾은 목적은 분명했다. OIE 총회에 한국 국회 농림해양수산위(농해수위) 소속 의원들의 의견서를 전달하는 것. 그러나 이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파리 소재 한국 대사관 측은 강 의원과 베리 오닐 OIE 총회 의장이 만나는 날짜를 24일로 잡았다. 광우병 관련 등급 평가가 22일 열린 것을 감안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버스 지나고 손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대사관에 전화를 건 강 의원이 고함을 친 배경이다. 강 의원은 결국 21일 사무총장과 의장을 만나 농해수위의 서한을 전달할 수 있었다. 강 의원은 OIE 총회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과도 면담했다. 중국이나 일본 측 대표들이 다소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캐나다 대표는 "나라별 협상으로 결정할 일이며 (광우병) 위험 요소가 발견되면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친 뒤 거부할 수도 있는 일"이라 말했다 한다.

▲ OIE 총회에 참가한 각국 대표단이 범국본 파리 원정 투쟁단의 집회를 지켜보고 있다.
ⓒ 박영신

"미국이 최홍만이면 한국은 코흘리개 초등학생"

지난해 워싱턴 원정 투쟁에도 참여한 강 의원에게 산 설고 물 선 이국땅의 투쟁이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농민들이 어려우니 그게 착잡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 국가와 FTA를 체결할 때 우리는 반대하지 않았다. 서로 비슷한 상대끼리 경쟁할 때 좀 더 빨리 달리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우리는 경쟁 상대가 안 된다. 미국이 이종격투기 선수 최홍만이라면 우리는 코흘리개 초등학생에 불과하다.

최홍만이 초등학생을 걷어차면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여차하면 뇌진탕으로 쓰러질 수도 있다.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상대의 취약한 부분은 제외하거나 유예기간을 요청하는 등 상호 공존 형태의 FTA가 돼야 하는데 미국은 예외 없는 FTA를 요구하고 있다."


인터뷰는 한가로운 몽소 공원에서 OIE 본부까지 이동하는 동안 진행됐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파리의 인상을 묻는 등 가벼운 질문을 시도했으나 강 의원은 단호했다. 파리에 머문 닷새를 숙소와 OIE 회의장을 오가는 것으로 채운 강 의원은 '한가한' 관광객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원정 투쟁단이 일정을 마치고 귀국 준비를 위해 숙소로 돌아간 정오 무렵 샐러드로 간단한 요기를 마친 강 의원은 자원봉사에 나선 동포 통역인과 함께 몽소 공원을 배회했다. 강 의원에게는 끝내야 할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총회 회의록을 건네받겠다는 것이 바로 그것. 총회가 끝나는 오후 4시까지 고집스럽게 현장을 지킨 강 의원은 노란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거대한 OIE 본부로 발길을 옮겼다. 그 뒤로 따가운 5월의 햇살이 무심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 마지막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며 범국본 파리 원정 투쟁단은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 박영신

▲ 범국본 원정 투쟁단과 파리 현지 단체 연결책이었던 시민단체 AITEC의 아멜리 카논과 전북 임실군 한우협회장 이강용씨 그리고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 박영신


싸늘한 한국 대표단, 연대하는 현지 단체들

제75회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가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6일 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됐다. 이번 총회에서 미국이 광우병 위험 통제국(controlled BSE risk country)으로 판정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 시기에 맞춰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산하 파리 원정 투쟁단이 꾸려진 배경이다.

원정 투쟁단은 정광훈 한국진보연대(준) 공동준비위원장, 홍하일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대표,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 전기환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최정옥 한미FTA 저지 여성대책위원, 남호경 한우협회장, 이승호 낙농육우협회장, 김수동 학교급식운동본부 충북지역 사무국장 등 총 25명으로 구성됐다.

인천에서 3시간 반의 비행 끝에 홍콩에 내린 원정 투쟁단은 공항에서 1시간여를 허비한 뒤 다시 13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보내야 했다. 원정 투쟁단의 호주머니는 가벼웠다.

20일 새벽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한 원정 투쟁단은 플래카드와 유인물 등이 가득 든 짐을 옮기기 위해 소형 트럭을 물색했으나 비싼 임대료에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결국 각자 짐을 나눠 들고 열차를 이용해 파리 시내로 들어와야 했다.

총 30여명 수용이 가능한 숙소에 짐을 푼 원정 투쟁단은 총회가 열리는 부르스(Bourse) 광장까지 지하철로 이동했다. 파리의 물가는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를 듯했다. 외식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좁은 방에 각각 4인씩 동거하며 새우잠을 잤다. 시차적응은 차라리 고생스럽지 않았다.

파리 시민 시선 모은 고행의 삼보일배

21일 오전 8시 30분부터 '위험 가득한 미국산 쇠고기 반대한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 출근길 파리 시민들의 시선을 모은 원정 투쟁단을 침울하게 만든 것은 우리 측 대표단의 싸늘한 반응이었다.

오전 9시경 회의장에 도착한 김창섭 농림부 과장을 비롯한 한국 측 대표들은 수인사조차 없이 회의장으로 사라져 버렸다. 환대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멀리 파리에서 만나는 한국인끼리 이러면 안 된다"며 이강용 전북 임실군 한우협회장은 분통을 터뜨렸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기자회견을 마친 원정 투쟁단이 삼보일배 행진에 돌입한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파리의 한인 풍물패 '얼쑤'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회의장을 한 바퀴 돈 뒤 오페라까지 1.5km에 달하는 거리에서 진풍경을 연출한 것이다.

'NO US BEEF'(미국산 쇠고기 반대)를 외치며 삼보일배를 결행하는 원정 투쟁단에 파리시민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지며 관심을 보였으나, 원정단에게 이것은 절박한 고행길이었다. 원정단의 평균 연령은 50세가 넘어보였다.

그러나 외롭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대안세계주의 시민단체인 아탁(ATTAC, 시민지원 금융투기 거래 과세운동연합)과 프랑스 최대의 노동조합 중앙조직인 프랑스노동총동맹(CGT), 단위 노조연맹(FSU), 농민동맹 등 프랑스 현지 단체들이 연대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22일 OIE는 예상대로 미국을 광우병 위험 통제국으로 분류했으나 원정 투쟁단의 투쟁 열기는 수그러들 줄 몰랐다. 전 세계에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이들의 투쟁은 총회 마지막 날인 25일 OIE 본부 앞에서 벌어진 기자회견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한편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이승호 낙농협회장은 지난 22일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한-EU(유럽연합)FTA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유럽의회가 있는 스트라스부르를 방문하기도 했다. 허 부위원장에 따르면 한-EUFTA의 진행 과정도 한미FTA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한다.

"쌀과 같이 민감한 사항이 제외된 것은 정치적 의도다. 한-EU FTA가 위험한 것은 협상을 EU 관료들이 전담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국가 대 국가가 만나는 것이 아니라 EU라는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한다. EU 회원국 국민들은 이런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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