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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반이 불안정한 토사 위에 건설된 우산의 고층 건물들. 경사가 급한 산간에 건설된 우산 신도시는 보기에도 아찔하다.
ⓒ 모종혁

▲ "우산은 공사 중." 싼샤 수몰지의 신도시는 여전히 건설 중이다. 그 덕분에 정부 관리의 '빽'이 있는 부동산 업자들은 막대한 개발 이익을 얻고 있다.
ⓒ 모종혁

지난달 23일 충칭(重慶)시 우산(巫山)현. 우산은 충칭 펑제(奉節)현에서 후베이(湖北)성 이창(宜昌)시까지 걸쳐 있는 싼샤(三峽) 192㎞ 구간 중간지점에 있다.

싼샤의 정수만 모아놓았다는 샤오(小)싼샤와 우샤(巫峽) 12봉을 간직한 우산 시가지엔 활력이 넘쳤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50만명이다) 작은 도시이지만 해마다 인구의 4, 5배가 넘는 관광객이 우산을 찾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항구에 들어서는 관광선, 샤오싼샤를 보기 위해 양쯔강의 지류인 따닝허(大寧河)로 들어가는 유람선, 도시를 거니는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복잡한 발걸음, 고층건물 건설작업에 여념 없는 인부들의 쉴 새 없는 담금질….

험한 산과 거대한 양쯔강으로 고립된 우산은 여느 중국의 중소도시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기자가 탄 샤오싼샤 전용 유람선에는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에서 온 일단의 관광객들도 함께했다.

그들 중 리젠궈(62)는 8년 만에 싼샤를 다시 찾았다고 했다. 리젠궈는 "1998년의 따닝허는, 싼샤댐 축수가 시작되기 이전이라 66m뿐인 수위 때문에 작은 동력선이 간신히 운항될 정도로 강폭이 좁았다"면서 "지금은 타고 있는 유람선처럼 큰 배가 다니기 좋아졌지만 이전보다 아름다운 자연풍광이 많이 사라진 듯하다"고 말했다. 리젠궈의 아내 궈옌징(59)은 "싼샤는 역사 이래 수많은 시인과 명인이 찾은 중국 제일의 산수를 지닌 곳"이라며 "중국인들이 평생 찾고 싶은 자연명승지 중 하나"라고 격찬했다.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우산 주민들의 생활은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중국이동통신에 다니는 슈션(25)은 "10년 전과 비교할 때 우산의 발전은 눈부시다"면서 "싼샤댐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중앙정부와 충칭시 정부가 싼샤 수몰지역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에 지금과 같이 발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황옌시(26·여)는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나아진 건 사실이지만 우산에서 돈을 번 사람은 석탄채굴업자와 부동산업자, 여행업 종사자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부동산개발회사에 다니는 황옌시는 "우산 주민의 절반 이상이 정리해고나 실업을 당해 할 일 없이 지낸다"면서 "평균 주민소득이 충칭 도심지 주민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것이 우산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1991년 가난이 싫어 고향을 떠나 광둥(廣東)성에 나가 돈을 번 뒤 7년 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푸뤼윈(35)도 황옌시의 주장에 동의했다. 작은 동력선을 운행하며 여행업을 종사하는 푸뤼윈은 "우산 주민들 간의 빈부격차가 상당히 심각하다"고 말했다.

푸뤼윈은 "지방정부는 신도시 건설과 수몰지역 주민 이주사업에 전력을 집중하느라 주민 생활 안정에는 아직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면서 "겉으로는 보기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번듯한 살림살이 없이 정부의 생활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싼샤 협곡의 정화만 모아뒀다는 샤오싼샤 디취샤(滴翠峽)의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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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창진의 주민들은 신도시로 이주,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했다. 멀쩡한 아파트 안엔 변변한 살림살이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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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샤 수몰민 140만명, 정든 고향을 등지다

1997년 싼샤댐 바로 옆 산을 깎아 신도시를 만들어 5만여명을 집단 이주시킨 이래, 작년 말 현재 120여만명의 싼샤댐 수몰지 주민들이 정든 고향을 떠났다. 중국 정부는 본래 113만명을 다른 성시나 충칭 및 후베이성 타 지역으로 이주시킬 계획이었다.

작년 9월부터 한 달 동안 135m이었던 싼샤댐 수위를 156m로 올리면서 이 계획은 다시 수정됐다. 같은 해 10월 푸하이칭(蒲海淸) 국무원 싼샤공정건설위원회 판공실 주임은 "싼샤 수몰지 주민 30만명의 추가 이주가 불가피해졌다"면서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할 전체 인원은 140만명 선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싼샤 수몰지에는 싼샤댐만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싼샤댐의 저수량을 조절할 여러 개의 보조댐 건설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총길이 660㎞에 이르는 싼샤 수몰지에서는 싼샤댐 주댐과 보조댐 때문에 주요 도시 22개와 1700여개의 마을이 물에 잠겼다.

이주 보상을 위해 공식적으로 파악된 140만명의 주민뿐 아니라 통계에서 제외된 사람까지 포함할 경우 200만명에 가까운 싼샤 수몰지 중국인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옮겨야 했다. 기자가 재작년과 작년 세 차례 방문했던 따창진(大昌鎭)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따닝허 내에 깊숙이 자리 잡은 따창진은 주변 산들에 둘러싸인 분지로, 충칭과 후베이성을 이어주는 중요한 군사요충지였다. 3세기부터 둔전마을로 발전한 따창진에는 명·청대에 축조된 성벽과 옛 민가, 수로시설 등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샤오싼샤 깊숙이 자리해 근현대사의 거센 풍랑의 영향을 덜 받은 이 작은 마을은 전체가 국가급 문화재로 중국 중앙정부에서도 보존과 이전 사업을 주목하던 곳이었다.

충칭시 정부는 따창진 내 중요한 민가를 해체해 12㎞ 떨어진 신도시로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작년 여름까지 4천여명의 주민 가운데 일부 주민은 수십 대째 살아온 정든 생활터전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단전, 단수 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외로운 투쟁을 벌이던 주민들도 차오르는 물에는 당해내질 못했다.

지난달 24일 찾은 새로운 따창진 마을은 겉으로는 평온했다. 5월 노동절 연휴에 개장하는 것을 목표로 옛 민가 거리에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마을 광장에서 만난 주민 예창(32)은 "현 정부가 샤오샤오(小小)싼샤 입구까지만 들어오던 유람선을 앞으로는 따창진까지 입선시키면 관광객들이 몰려올 것"이라며 늘어날 관광업 관련 수입에 대한 기대에 차 있었다.

옆에 있던 펑샤오밍(44)은 "가진 사람들이나 돈을 벌 것"이라고 냉소 지었다. 펑샤오밍은 "비옥한 토지에서 농사지으며 평화로이 살던 주민들은 새 마을로 이주한 뒤 할 일 없이 정부 보조금만 의지해서 생활한다"면서 "이주와 토지 수용 대가로 가구당 50~60㎡의 아파트를 받았지만, 농사를 못 지으니 제대로 된 수입이 없어 내부 인테리어는 할 엄두도 못 낸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 싼샤댐 건설 이전 66m이던 양쯔강 수위는 156m까지 올라갔다. 내년 수위를 175m까지 끌어올릴 예정인 중국 정부는 수몰지 사람들을 신도시에 이주시키려 하지만, 주민들은 생활터전을 쉽게 버리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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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파른 산간 경사로에 들어선 펑제현 숙박거리. 펑제현 사람들은 개선된 해상 교통조건 덕에 관광객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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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환상 사라지고 정부 정책에 불만 고조

우산과 달리 찾는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은 펑제현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오나라에 패한 유비가 죽어가며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한 '유비탁고'(劉備託孤)로 유명한 백제성(白帝城), 취탕샤(瞿唐峽)의 시작점인 쿠이먼(夔門), 두터운 석회암층에 형성된 세계 최대의 대형 깔때기 샤오자이텐강(小寨天坑) 등 적지 않은 관광자원이 있지만 개발 사업이 한참 더딘 상태다.

백제성에서 만난 한 상인은 "작년 10월부터 백제성이 섬으로 변했는데도 육지를 잇는 연륙교는 언제 완공될지 모른다"면서 "제대로 된 생계거리가 없는 마당에 믿을 것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장사인데, 교통이 불편하니 일부 단체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찾는 사람이 적다"고 말했다.

신도시 숙박거리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장천(44)은 "우리는 그나마 건물을 사서 운영하기에 좀 낫지만 다른 업자들은 빈 방을 계속 놀려 건물 임대료 내기도 힘든 형편"이라며 "싼샤댐이 건설된 후 편리해진 해상 교통조건에 관광객이 몰려들 거라는 지방정부의 말을 믿고 숙박업에 뛰어들었다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어졌다"고 푸념했다.

익명을 요구한 펑제현의 한 관리는 "현 내에 그나마 있던 공장 등 산업시설이 수몰로 다른 곳으로 이전하거나 생산을 중지하면서 경제 사정이 말이 아니다"라면서 "여행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충칭과 이창에 있는 여행사들의 투어 일정에서 펑제는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펑제는 다른 지역과 달리 주민들이 신도시와 구도시로 분산된 상황"이라며 "도시 집중도가 낮은데다 뚜렷한 산업기반이 전무한 상황에서 경제 발전은 요원하다"고 토로했다.

작년 12월 27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도 충칭발로 "싼샤댐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많은 싼샤댐 수몰지 주민들이 낡은 나무집을 떠나 언덕 위로 흩어져 살거나 당국이 입주시키는 신도시의 우중충한 아파트로 옮겨갔으나 그 속에는 주민들의 고통스런 한과 눈물이 있다"면서 "싼샤댐 프로젝트의 장엄함과 중국 정부의 장밋빛 약속 뒤에는 무차별적인 토지 징발, 관리들의 부정부패, 주민들의 절망이 숨겨져 있다"고 전했다.

완저우(萬州)구 정부의 의뢰를 받아 싼샤댐 수몰지 이주민의 현황을 조사한 정쩌건 충칭대학 교수는 "이주민들의 생활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정부의 이주정책에 대한 불만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정 교수는 "교육수준이 낮고 농민이던 대다수의 싼샤댐 수몰지 주민들은 불만은 있었지만 정부 정책에 호응해 정든 삶터를 버리고 타 지역이나 신거주지로 옮겨갔다"면서 "갓 이주했을 때는 좋은 아파트나 연립주택에 자위했지만, 마땅한 일자리나 돈벌이 수단이 없어 새 생활터전에서 정착하는 게 순탄치 않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정부는 이주민에게 살 곳을 제공하고 2~3년 동안 보조금만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하며 "1차 산업에 종사하던 주민들이 2, 3차 산업에 흡수될 수 있도록 재교육을 시키고 신거주지의 경제 산업에 투자해 이주민들의 자립기반을 닦아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 신도시 지반을 다지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수몰지 주민들. 원래 농사를 짓던 이들에게 그나마 신도시의 이 같은 일거리는 반가울 뿐이다.
ⓒ 모종혁

충칭시 롱바오구 도시 출신 이주민 지구 400가구(1274명) 수입-지출 대조표

 

수입(만 위안)

지출(만 위안)

이주 전

393.1

240.7

이주 후

328

253

ⓒ 싼샤이주민연구

충칭시 텐청구 농촌 출신 이주민 지구 213가구(766명) 수입-지출 대조표

 

수입(만 위안)

지출(만 위안)

이주 전

207.8

139.6

이주 후

309.4

233.7

 

*이주 후 수입 대부분은 정부의 생활보조금임.

ⓒ 싼샤이주민연구

충칭시 텐청구 농촌 출신 이주민 지구 1340명 생활수준 대조표

 

개선 유지

기본 유지

유지 불능

백분율(%)

16

43

41

ⓒ 싼샤이주민연구

높은 실업률, 산업공동화... 외지 이주민도 정착 난항

싼샤 수몰지 이주민 사이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서 중국 언론 매체도 장밋빛 환상이나 성공스토리만 보도하던 자세에서 변하고 있다.

작년 12월 26일 중국 국영 CCTV의 보도다큐인 <뉴스조사>는 싼샤 수몰지의 산업 공동화 현상과 이주민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이례적으로 보도했다. <뉴스조사>는 충칭시 완저우구와 후베이성 쯔구이(秭歸)현을 현장 취재해, "싼샤 수몰지의 대다수 기업이 수몰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과정에서 파산하거나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전했다.

<뉴스조사>는 "완저우 370여개 기업이 수몰로 인해 신시가지로 이전했는데 그 뒤 3분의 2 이상의 기업이 문을 닫았다"면서 "파산한 기업에서 정리해고되거나 쫓겨난 6만여명의 노동자가 길거리로 내몰렸다"고 보도했다. <뉴스조사>는 "구도시가 완전히 물에 잠긴 쯔구이현의 경우 신도시로 이전한 120여 기업이 모두 파산했다"면서 "농사짓던 농민들이 이주민의 절반 이상인데다 신도시 건설에 앞장설 2, 3차 산업의 기업들까지 문을 닫으면서 지방정부 자체적으로 신도시를 건설할 능력은 완전히 상실됐다"고 지적했다.

<뉴스조사>는 한 지방정부 관리의 입을 빌어 "중앙정부의 지원이 끊기는 날 싼샤 수몰지의 경제와 이주민 정착사업에 심각한 재앙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2월 27일 왕훙쥐(王鴻擧) 충칭시장도 "2005년 12.8%였던 싼샤 수몰지 실업률이 작년에는 11.5%로 낮아지고 이주민 가정마다 최소한 한 사람은 2, 3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면서도 "수몰지의 산업공동화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들기는 싼샤 수몰지를 떠나 머나먼 다른 성시로 옮긴 이주민도 마찬가지다. 작년 7월 8일 <경제관찰보>(經濟觀察報)는 상하이 충밍다오(崇明島)발로 "싼샤 이주민들이 정착지 정부나 주민들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현지 정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싼샤 수몰지 주민 가운데 16만명은 각기 다른 11개 성시로 이주해 갔다"면서 "충밍다오에 정착한 충칭 윈양(雲陽) 출신 이주민들은 상하이 현지인들에게 낙후한 외지인 출신이라는 멸시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작은 장사를 하는 몇몇 이주민의 형편은 그나마 나은 편으로 대다수 이주민은 현지 적응을 못한 채 정부 보조금에 기대어 살아간다"면서 "이주민들은 마음 편안히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며 과일을 재배하던 옛 고향의 생활을 그리워한다"고 보도했다.

모든 중국 언론매체가 싼샤 이주민들의 타 지역 정착생활을 과장, 왜곡 보도하는 것에 비춰볼 때 <경제관찰보>의 보도는 극히 예외적이다. 신문은 "싼샤 이주민은 농사도 못 짓고 돈벌이 수단도 없어 자신의 아이에게 과일도 사 먹이지 못한다"면서 "현지 원주민도 이주민들은 본래 수준도 낮고 기술도 없으며 언어도 달라 같이 지내기 힘들다고 불만스러워한다"고 지적했다.

싼샤댐 건설이라는 거국적 사업에 묻혀버린 진실과 이주민의 피눈물이 조금씩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 충칭시 싼샤박물관에 부조된 이주민상. 140만명 싼샤 이주민 가운데 16만명은 머나먼 다른 성시로 옮겨갔지만, 현지 정착을 하지 못하고 떠난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 모종혁

태그:#싼샤댐, #수몰민, #따창진, #펑제현, #충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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