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심사위원장 스티븐 피어스(왼쪽에서 여덟번째)와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왼쪽에서 세번째) 등 다른 참가자들이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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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양탄자를 오르는 소수의 화성인과 화성인을 카메라에 담는 다수의 지구인이 공존하는 곳." 프랑스의 인기 토크쇼 진행자인 티에리 아르디송이 정의한 칸 국제영화제다. 지난 16일 개막해 12일간 칸을 영화의 도시로 탈바꿈시킨 제60회 칸 영화제가 27일 시상식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루아얄 지지하던 배우가 사르코지로 '전향'한 까닭은? 시상식은 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코미디언 자멜 드부즈가 열었다. 자멜은 모로코 이민 2세로 방리외(파리를 비롯한 대도시 외곽) 젊은이들의 말투를 구사하며 늘 오른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쑤셔넣는 등 '껄렁한' 태도가 트레이드 마크다. 이달 초 끝난 프랑스 대선에서 사회당(PS) 후보 세골렌 루아얄을 지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칸 영화제 개막날인 지난 16일 취임식을 치른 후 프랑스 제5공화국의 6대 대통령으로 국정을 시작한 니콜라 사르코지를 향한 '러브콜'로 자멜은 입을 열었다. "나는 오늘 니콜라 사르코지에 협력할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합니다." 야유와 웃음으로 뒤범벅이 된 장내에 다시 능청스러운 자멜의 목소리가 울렸다. "사르코지에 협력하는 것이 건강에 좋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건강관리를 위해 조깅을 즐기는 사르코지에게 '공화국 조깅'을 함께 할 것을 제안해 다시 한 번 웃음을 유도해냈다. 반어법이 절묘한 자멜의 농담이었다. 지난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토착민(라시드 부샤렙)>에서 열연한 바 있는 자멜은 동료배우들과 함께 단체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제작비 60만 유로 <4개월...>에 황금종려상
 칸 영화제 포스터.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올해 칸 영화제는 영국 감독 스티븐 프리어즈를 심사위원장으로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 홍콩 출신 배우 장만위, 포르투갈 감독이자 배우인 마리아 데 메데이로스, 프랑스 배우 미셸 피콜리 등 총 9명으로 심사위원단을 구성했다. 프리어즈는 지난 1985년, 성과 사회의 고정관념에 도전한 저예산영화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로 우리에게 알려졌으며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 이재용)>의 모티브가 된 할리우드 데뷔작 <위험한 관계(1988)>, <리틀 빅 히어로(1992)>를 거쳐 지난해에는 다이애너 왕세자비의 죽음에 얽힌 영국 왕실과 블레어 총리의 에피소드를 그린 <더 퀸>으로 그 저력을 확인시킨, 영국 대표 감독이다. 대망의 황금종려상은 루마니아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크리스티안 문기우)>이 차지했다. <4개월...>은 낙태를 불법화한 차우셰스쿠 정권 하의 루마니아에서 낙태를 원하는 '임신 4개월, 3주 2일'이 된 여인이 맞닥뜨린 '비열한' 남성중심 사회를 냉정하게 그려 영화제 기간 내내 화제가 됐다. <4개월...>은 더불어 시상식 전날인 26일 이미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했으며 국립교육영화상까지 거머쥐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지난 2002년 첫 장편영화 <서양>으로 칸 영화제의 감독주간에 초창돼 그 가능성을 인정받은 바 있는 저력의 신예 문기우의 두 번째 영화. "오늘 이 황금종려상이 작은 나라의 작은 영화인들에게 희소식이기를 바란다. 모두가 귀기울이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더 이상 엄청난 예산과 대스타들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기때문이다." 올해 서른 아홉의 젊은 감독 문기우는 이렇게 말했다. 촬영 6개월 전까지도 제작비가 없어 고민했다는 <4개월...>은 60만 유로(우리 돈 7억 5000만원 상당)의 적은 예산으로 제작됐다. 이에 앞서 황금종려상 시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미국 배우 제인 폰다는 칸 영화제 60주년 생일을 가리키며 질 자콥 조직위원장을 향해 '해피버스데이 투 미스터 프레지던트'라 인사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해피버스데이 투 미스터 프레지던트'는 전설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특유의 농염한 목소리로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에게 바친 노래. 여우 주연상 <밀양>의 전도연 한편 황금종려상 다음으로 큰 상으로 인식되는 심사위원대상은 <모가리의 숲(가와세 나오미)>에 돌아갔다.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은 바람이나 망자와 같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버팀목이 있을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전혀 뜻밖의 수상이라는 듯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가와세 나오미는 그러나 자신의 영화와 같이 잔잔한 수상소감을 밝혀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극영화 데뷔작 <수자쿠>로 지난 1997년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바 있는 가와세 나오미는 유럽에서 특히 인기있는 일본 감독. <모가리의 숲> 팀은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붉은 양탄자에 올라 집중적인 카메라 플래시를 받기도 했다. 같은 해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는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발에 입을 맞추거나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끌어안고 '메르시(고맙습니다)'를 연발하는 해프닝을 선보여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대상이 전세계 모든 분야를 통틀어 최고의 영예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베니니의 일화는 줄리안 슈나벨 감독이 재연했다. 영화제 내내 관심의 한가운데 있었으나 감독상에 그친 <잠수종과 나비>의 슈나벨은 단상에 자리한 모든 심사위원에 일일이 악수를 청해 웃음을 자아냈다. 슈나벨은 특히 지난 1996년 스물 일곱에 요절한 천재 낙서 화가이자 흑인의 영웅인 장-미셸 바스키아의 거리 인생을 영화화한 <바스키아>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감독이다. 우리나라 배우 전도연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칸을 빛냈다. 이창동 감독은 지난 1999년 이미 <박하사탕>을 들고 칸의 감독주간을 방문한 바 있다. 그리고 남우주연상은 러시아 영화 <추방(안드레이 즈비야진체프)>에서 열연한 콘스탄틴 레브로에 돌아갔다. 터키출신 독일 감독 파티 아킨은 영화 <야사민 키신다>로 시나리오상을 수상했다. 지난 2005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일이 있는 파티 아킨은 이보다 앞선 2004년 영화 <미치고 싶을 때>로 이미 베를린 국제영화제 금곰상 수상 경력이 있는, 올해 나이 '겨우' 33세의 재능있는 감독이다. 코엔 형제 탈락은 이변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그린 이란 출신 프랑스인 마르얀 사트라피의 만화를 원작으로 뱅상 파로노와 사트라피가 공동 연출한 애니메이션 영화 <페르세폴리스>와 멕시코 감독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고요한 빛>은 심사위원상을 공동수상 했다. <페르세폴리스>는 프랑스의 배우 카트린 드뇌브, 드뇌브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의 딸 키아라 마스트로얀니가 목소리 연기를 해 특히 주목받은 영화. 레이가다스는 지난 2005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천국의 전쟁>을 소개해 신성모독의 혐의를 불러일으킨 바 있는 '문제적' 감독이다. 이밖에 올해 60주년을 기념한 칸 영화제는 미국 청소년판 '죄와 벌'로 불리는 구스 반 산트의 12번 째 영화 <파라노이드 파크>에 60주년 특별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지난 2003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영화 <엘리펀트>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는 구스 반 산트의 영화인생을 통틀어 평가한 상이다. <파라노이드 파크>는 4주만에 촬영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시상식 직전 심사위원장 프리어즈는 특히 오르한 파묵, 장만위, 미셸 피콜리와 수상작을 놓고 다소 언쟁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그만큼 뛰어난 작품이 많았고 또 그만큼 의견대립도 많았다는 말이다. 이들의 논쟁은 예측이 불가능한 칸 영화제를 재확인시켰다. 조엘과 에단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수상 명단에서 제외된 것은 올해 칸 영화제의 최대 이변이었다. 살아있는 윌리엄 포크너로 불리며 필립 로스. 토마스 핀천, 돈 데릴로와 함께 오늘날 4대 미국 작가로 불리는 코막 맥카시의 2005년작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노인을 위한...>은 <4개월...>과 함께 영화제 기간 내내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거론돼 왔기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에이리언3(1992)>로 잘 알려진 데이빗 핀처 감독이 연쇄살인범의 여정을 치밀하게 재구성한 영화 <조디악>이나 에밀 쿠스트리차, 쿠엔틴 타렌티노, 왕가위 등 칸의 단골손님, 일명 '칸의 자식들'이 철저히 외면된 것도 특이하다. 지난해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서사시를 그린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해 정치영화로 귀환했음을 알린 후 올해의 칸 영화제는 어느 때보다 까다로운 '작가영화'에 주목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세계에서 '가장 성대한' 영화제는 '가장 작은' 영화를 선택함으로써 비교적 영화의 기반이 허약한 나라의 손을 들어줬다. 동시에 영화 <4개월...>이 받은 황금종려상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영화 중의 하나로 평가되는 루마니아 영화에 바치는 '희망'이었는 지도 모른다.

칸 영화제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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