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 데 페스티발의 붉은 양탄자 위에서 관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배우 송강호·전도연과 이창동 감독(왼쪽부터). 송강호와 이창동은 약속이나 한듯 넥타이 없이 와이셔츠를 풀어헤치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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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이 칸을 울렸다. 신애(전도연 분)도 울고 칸도 울었다. 신애는 울음을 토해냈고 칸은 울음을 삼켰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안과 밖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24일 마침내 베일 벗은 이창동의 <밀양>
 <밀양>의 신애역을 열연한 전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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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회 칸 국제영화제의 폐막을 사흘 앞둔 지난 24일 소문만 무성하던 영화 <밀양>이 드디어 공개됐다. 오후 3시 30분(이하 현지시각)이었다. 상영에 앞서 배우 전도연, 송강호와 함께 팔레 데 페스티발의 붉은 양탄자를 밟은 이 감독의 얼굴은 고요한 가운데 상기돼 보였다. 미니멀리스트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전도연은 해맑았고 송강호는 호쾌했다. 이 감독과 송강호는 나비 넥타이를 매야 하는 관례를 과감하게 깨트렸을 뿐만 아니라 와이셔츠 단추까지 풀어헤쳐 산뜻한 복장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파격이었다. 이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 팬을 향해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 보이는 모습에서 '프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해가 중천에 뜬 시간 팔레 데 페스티발의 붉은 계단은 어둠이 깔린 가운데 화려한 조명이 작열하는 시간에 비해 덜 육감적이다. 비경쟁 부문 자격으로 <오션스 13(스티븐 소더버그)>의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등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들'이라는 배우들이 등장한 같은 날 저녁 7시의 광란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극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팬들이 에워싼 팔레 데 페스티발을 오른 일명 <오션스...>의 스타들은 극장 입구까지 올라갔다 달리듯 다시 내려와 환호하는 팬들을 향해 입맞춤을 날렸던 것이다. 지극히 칸 적인 쇼였다. <밀양>을 위해 준비된 <오션스 13>의 광란은 없었다. 이 감독은 그러나 여름을 연상시키는 따가운 햇살처럼 한껏 빛났다. 스타가 아니라 작품을 보려는 관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까닭이다. 오래 기다렸다. 칸 영화제가 지난 16일 화려한 막을 걷어올린 뒤 열흘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는 말이 아니다. <오아시스(2002)> 이후 실로 5년을 기다렸다. 길었다. 그러나 처녀작 <초록 물고기(1997)>로부터 단 한 차례도 관객을 실망시킨 일이 없는 이 감독은 그래서 더욱 기다려지는 감독이었다. 이 감독의 진가는 팔레 데 페스티발 내 뤼미에르 극장에 불이 꺼진 뒤 조용히 드러났다. 이 순간 관객은 칸을 완전히 잊고 말았다. 영화를 주도하는 전도연과 그녀를 뒷받침 하는 송강호 그리고 연극배우 출신의 탄탄한 조연들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빈틈 없는 시나리오가 압도적인 <밀양>은 스펀지처럼 관객을 빨아들이기에 충분했다.
 <밀양>에서 여주인공 주변을 맴도는 속물같은 남자역을 연기한 송강호. 호쾌한 모습으로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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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렌티노가 말했다 "그레이트!" <밀양>은 스릴러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다음 장면 예측이 불가능한 <밀양>은 스릴러 이상의 흡입력이 있었다. 남편과 아이를 잃은, 신경질적이고 도도한 여인 신애와 그 주변을 빙글뱅글 맴도는 '속물'같은 남자 종찬 그리고 이 감독의 카메라가 빚어내는 유려한 영상 앞에서 관객들은 무장해제 됐다. 느슨한 피로가 아닌 긴장이었다. 영화가 끝날 무렵 트로트풍의 음악이 흘러나오자 스크린 앞으로 몸을 바짝 끌어당겼던 관객들이 '휴~' 한숨을 토해내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제서야 긴장이 풀린다는 듯. 다음 장면은 물론 기립박수였다. 우레와 같은 박수는 10분 이상 계속됐고 자리에서 일어난 감독은 두 손을 모아 깊이 인사했다. 연신 박수를 보내는 관객 중에는 역시 경쟁작에 초대된 영화 <데스 프루프(Death Proof)>로 칸을 찾은 미국의 악동 쿠엔틴 타렌티노의 모습도 보였다. 감상을 묻자 타렌티노는 대답했다. "그레이트(great)!" 호들갑스러운 타렌티노가 과장한 것 같지는 않다. 타렌티노의 '그레이트'는 극장을 빠져나오는 관객의 입을 통해 되풀이 됐다.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 해 단지 '감동적'이라는 말만 남긴 채 사라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창동과 사랑에 빠졌다'며 너스레를 떠는 사람도 있었다. 불평불만이 특기인 프랑스 기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도 칭찬 일색이었다. "부드럽고 조용하지만 강렬하다." "느리다. 그 느림에 중독됐다." "자칫 통속적일 수 있는 한국영화의 모든 클리셰를 피해갔다." "숨 막히는 절제!" "중심에서 한 발 떨어진 송강호의 연기가 훌륭했다." "전도연은 온전히 신애였다. 까다로운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창동 감독 최고의 영화다." 영화제 소식지 "4점 만점에 4점"
 이창동 감독과 송강호, 전도연 등이 영화가 상영되는 뤼미에르 극장 로비에서 영화제 관계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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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면 영화의 프린트 상태였다. 몇몇 장면에서 흐릿한 장면이 목격됐던 것. 이 말은 곧 작품으로서 영화는 '완벽'했다는 뜻이다. 이같은 반응을 반증하듯 영화가 공식 상영된 24일 발행된 영화제 일일 소식지 <스크린>은 4점 만점에 4점이라는 후한 점수를 <밀양>에 할애했다. 전날인 23일 밤 늦게 열린 언론시사회 결과로 24일 현재 아직 평점을 발표하지 못한 <버라이어티> 등 다른 소식지들은 다음날인 25일자를 통해 일제히 점수를 매기게 된다. 그러나 언론시사회를 나선 기자와 평론가들도 <밀양>을 호평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제 개막 이후 <밀양>은 17번 째 경쟁 작품으로 소개됐으나 일일 소식지들이 공식 평점을 발표한 작품은 총 16편인 가운데 지금까지 최고 평점을 받은 작품은 크리스티안 문기우 감독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과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평점 3.2점을 기록했다. <밀양>이 경쟁부문에 초청된 사실이 알려졌을 때 단 세 편의 전작으로 '작가' 반열에 오른 이 감독이 빈 손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는 소문이 떠돌긴 했다. 단지 '이창동' 이름 석 자 때문에. 그러나 <밀양>의 반응이 이 정도라면 진정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극장을 나서던 한 평론가의 장담이 공허하지만은 않은 이유다. "칸의 심사위원이 공정하다면 <밀양>은 황금종려상이다." 칸의 심사위원이 공정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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