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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운 할머니를 아시나요? 할머니는 1991년 위안부 사실을 공개한 뒤, 1995년 북경 세계여성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도 한 분입니다.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앞장선 할머니는 2004년 2월 26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지금도 그 시대를 증언할 분들이 계속 세상을 떠나고 계십니다. 그 시대를 잊지 않기 위해서, 슬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그 시대를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 정서운 할머니 추모와 평화의 탑 건립'에 나선 이유입니다. 이제 며칠 뒤면 탑이 세워집니다. 할머니와 얽힌 인연을 소개하며, 평화의 탑 건립 행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정서운 할머니가 진해 제일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모습. 간병하는 사람이 채수영씨.
ⓒ 오마이뉴스 윤성효
어머니, 의아들 채수영입니다. 당신을 처음 만난 날도 오늘처럼 오월의 햇살 한 자락이 당신이 살아온 세월을 보상하듯이 비추었습니다. 2003년 진주 경상대학교에서 당신은 생애 마지막 증언을 했지요. 위안부의 역사와 진실을 말입니다. 그때 당신은 여든의 연세에 단 한 명의 사람들에게라도 위안부의 사실을 알려야 한다며, 힘든 몸을 이끌고 오셨지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어가는 당신의 증언이 귓가에 생생합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와 진실을 토해내는 당신의 눈빛. 하지만 그 눈빛은 증오와 한의 눈빛이 아니라, 생을 당당하게 산 한 사람의 살아있는 눈빛이었습니다. 강당에 모인 200여 명의 학생들은 8년간의 '위안부'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당신이 불행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자신의 죄가 아니라, 나라가 힘이 없어서 생긴 일이라고 하셨지요.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결혼생활이 행복했냐고 묻는 학생의 질문에 "나의 결혼생활은 행복했다"라고 하셨지요. 아, 그 순간 저는 한마디로 당신에게 반했습니다. 모든 상황과 조건을 뛰어넘어 스스로 행복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말입니다.

과거에 얽매여 자신의 현재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당신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물론 당신이 14살에 끌려가서 고초당한 일들은 결코 버릴 수 없는 짐이 되었을 겁니다. 나라를 잃은 죄 때문에 그 시대를 살았던 숱한 처녀들이 겪어야 했을 아픔이 얼마나 고단했을까요.

▲ 정서운 할머니
ⓒ 할머니닷컴 신미란
한국정신대연구소의 자료를 보니 10~20만 명이 위안부로 끌려갔고, 1/10이 살아남았고, 그 중에 1/10인 1000~2000명이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그분들 중에는 평생 누구에게 속 시원히 얘기하지 못하고 가슴의 한으로 남겨둔 분이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90년대 초반에 '위안부'로 끌려간 과거를 밝히셨지요. 당신의 그 용기가 새삼 놀랍습니다. 당신의 그 당당함 때문이겠지요. 그리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미국, 북경, 일본으로 다니며 위안부의 역사를 알리셨지요.

아, 그런 당신이 2004년 쓰러져 병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지막 증언을 들었던 인연으로 당신께 갔지요. 하지만 당신 곁에 간호할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당신 곁에 머물렀던 한 달 동안의 시간들, 이제는 그리움이 됩니다.

그때 저는 당신 곁에서 당신의 과거를 만났습니다. 또한 당신의 현재를 만났습니다. 병상에 누워 꼼짝도 못하는 당신의 손을 꼭 잡고 있던 기억도 납니다. 당신이 필요할 때마다 "수영아"라고 저를 부르던 목소리도 기억합니다.

▲ 하동 악양면에서 소녀 시절 정서운 할머니
ⓒ 할머니닷컴 박나리
한 여자로 몸으로 낳은 자식이 없던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저를 의아들 삼고 싶다고 하셨지요. 저는 감격스러웠지만, 당신께 한 번도 어머니라 부르지 못했지요. 그리곤 당신의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한 죄책감에 장례식장에서 '어머니'라 부르며, 목 놓아 울었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일본이 사죄하는 걸 못 보고 어떻게 내가 눈을 감겠냐고 하시던 당신. 그런 당신이 아득한 능선 어디쯤에 서서 저희를 지켜보고 있다고 믿습니다. 시대의 고통을 짊어지고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수많은 어머니를 위해서 더 늦기 전에 작은 마음을 모았습니다.

당신을 기억하며, 시대의 고통을 진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세운 '평화의 탑'이 오랫동안 벗지 못한 끈끈한 어둠을 씻겨 내길 바랄 뿐입니다.

추모와 평화의 탑 제막식 행사
26일 하동군 악양면 일대서 펼쳐져

'평화의 탑'은 많이 늦었지만 내년보다는 올해가 빠릅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정의를 바치는 시간이 더 이상 늦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할머니에 대한 추모와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그냥 묻혀버리지 않도록, 평화의 탑 제막식에 오셔서 역사적인 시간을 함께하기를 제안합니다.

▲ 고 정서운 할머니 추모와 평화의 탑 제막식
-2007년 5월 26일 (토) 오후 3시
-장소 : 하동군 악양면 소재 '취간림'(최참판댁에서 악양면 방향으로 2km)

▲ 평화콘서트 <어머니의 이름으로>
-일시: 2007년 5월 26일 (토) 오후 3시
-장조: 하동군 악양면 매암차박물관 (취관림에서 100m)

* 서울, 대구 그리고 통영거제지역에서 다수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제막식과 문화행사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 행사 홈페이지 '아름다운 동행'(www.halmun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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