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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무언가에 흠칫 놀라 발길을 멈추어야 했다. 어이없게도 내 발걸음을 잡은 것은 가로수 주변에 파랗게 머리를 세운 보리줄기였다. 아마도 누군가의 제안으로 가로수 주변에 보리를 심었고 대부분 시민들은 이 푸른 보리들을 보며 싱싱한 봄의 정취를 한껏 누렸을 터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파란 보리가 주는 의미는 죽음을 감싸는 수의(壽衣)와 같다. 그렇다. 나는 5월의 보리밭에서 끔찍한 주검들을 보았고, 그 참혹한 기억이 5월의 보리와 함께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80년 5월 그러니까 18년간 이 나라를 철권통치해온 박정희가 부하에 의해 살해되고 찾아온 80년의 5월을 당시 언론에 '서울의 봄'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내가 겪은 80년 5월은 결코 '봄'이 아니었다.

'충정훈련'이라 불리던 시위진압훈련을 지루하게 반복하던 어느 날 서울 출동 명령이 하달되었고, 수십대의 탱크와 수십대의 장갑차를 앞세운 채 400여대에 나누어 탄 완전무장한 정예사단이 서울에 입성하였다. 그 날은 여의도 광장에 100만이 넘는 시민이 운집하여 민주화를 외쳤던 바로 그 날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모 대학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에 긴급명령이 하달되었다. 우리는 인원파악을 할 새도 없이 차량에 탑승하였고 대원들을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전방이 뚫린 것 같아." 이 말은 전쟁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우리를 태운 트럭은 청량리가 아닌 용산역으로 질주하였다. 베트남 참전 경력을 가진 선임하사가 말했다. "전쟁은 아닌가 보다. 아마도 어디서 반란이 났나보다." 전쟁이 아닌 반란이라는 말에 우리는 조금 안도하였다.

기차를 탔다. 그것도 당시에 가장 빠르다는 새마을호였다.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 비로소 우리의 목적지가 광주란 것을 알게 되었다. 송정역에 하차하여 비상식량으로 아침을 때우고 광주로 진입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진입은 곧 저지되었다. 선도차에서 불길이 치솟고 검은 연기가 구름처럼 띠를 이루고 있었다.

▲ 전남도청앞 광장 민주화집회. 이것이 광주정신이다.
ⓒ 5.18기념사업회

새마을호를 타고 갔던 반란지 '광주'

차량 몇 대를 버려둔 채 부대는 상무대로 철수하였다. 몇 시간을 대기하니 후속부대가 비행기로 도착하였고 그들은 시내로 투입되었다. 우리 부대에 새로운 임무가 하달되었다. 헬기를 타고 전남도청에 진입하여 도청을 사수하란 명령이었다. 헬기 탑승을 앞둔 우리들에게 대대장은 시위대에게 먼저 폭력을 행사하지 말 것, 명령 없이 대오를 이탈하지 말 것 등을 당부하였지만 우리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도청에 가지 못했다. 도청을 향하던 헬기는 도청에서 총격상황이 발생했다는 소식과 함께 상무대로 철수한 것이다. "연대장이 탑승한 헬기에 시민군이 총격을 가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부대를 떠돌았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의 뒤를 이어 광주시내에 투입된 부대원들이 장갑차 등 차량을 버려둔 채, 패잔병처럼 퇴각하였고, 그들 중에는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부대원 중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나와 같은 제복을 입은 전우가 시민의 손에 죽고 다쳤다." 이것은 제복을 입은 군인에게는 대단한 충격이었다. 그 충격에 대한 반응은 현장에서 체포된 시민의 연행과정에서 바로 나타났다. 트럭이나 버스에 실려 온 체포된 시민들이 꼬치처럼 줄줄이 엮인 채 상무대의 한 건물로 끌려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 새끼들. 저 빨갱이 새끼들 죽여." 그리고 끌려가는 시민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십명의 군인들이 폭행에 가담했고 묶여있는 시민들은 무차별 폭행을 감수해야 했다. 동료의 사망과 부상 소식은 우리를 공포에 떨게 했고, 공포는 폭력으로 표출되었다. 얼마 후 상황은 진정되었다.

세 번째 임무가 하달되었다. 헬기를 타고 광주를 지나 지원동에 주둔하고 있는 공수부대와 임무 교대하란 명령이었다. 우리는 헬기를 타고 지원동을 향했다. 총격 발생 후 광주는 죽음의 도시가 되었다. 환한 대낮인데도 행인의 발자취를 찾기 어려웠다. 항공기는 광주시내에 전단을 뿌려대며 "폭도들은 무기를 버리고 자수하라"며 외쳐대고 있었다.

헬기가 지원동에 착륙했다. 공수부대원들이 헬기에서 내린 우리를 보고 "X만한 새끼들"이라며 조롱하였지만 우리는 감히 대꾸하지 못했다. 상대는 공수인데다 우리보다 계급도 높았다.

참호를 파고 매복에 들어갔다. 수칙은 간단하다. 낮에는 검문하고 밤에 이동하는 차량에는 집중사격을 하란 명령이었다. 밤이 되었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매복 중 어디선가 총성이 들린다. 간헐적 총격이 아니라 격렬한 전투였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소대에 방탄조끼가 지급되었다. 대원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제기랄 총 맞을 일 생겼나보다."

지원동에서 시내쪽으로 수색을 하다 보니 소복을 입은 사람들이 광주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급히 챙긴 살림살이를 등에 매거나 머리에 인 그 모습은 영락없는 전쟁의 피난민이었다. 그리고 얼마후 나는 거기서 '전두환'이란 이름을 처음 보았다. 부대원 중 누구도 그 이름 석자가 그 후 28년간 사람들에게 끝없이 회자될 살인독재자인지 알지 못했다.

"전두환이 누구냐?" 누군가 물었다. "광주고속 사장인가봐요." 길가에 처박힌 광주고속버스에 "살인마 전두환"이란 글귀가 있었기 때문이다.

▲ 당시엔 버스나 움직이는 모든 차를 이용해 광주로 진입하였다.
ⓒ 5.18재단

난사 당한 버스 안에는 11구의 시신이...

소대장은 우리 분대에 버스를 수색할 것을 명령했다. 지난밤의 총격은 바로 이 버스를 향한 사격이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버스의 운전석은 집중사격을 당해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고, 버스의 측면 철판도 벌집처럼 구멍이 나 있었다. 버스는 최소한 수 백발 이상의 총격을 받은 것이다. 버스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역한 피비린내가 났다.

차량 내벽에는 튀어 붙은 피와 살이 덩어리가 되어 젤처럼 굳어가고 있었고, 버스 안에는 수백발의 M -16 탄피들이 피 덩어리와 뒤엉켜 널부러져 있었다. 그 차량에 사격을 가한 병력이 차 안까지 들어가 확인사살을 했다는 증거였다. "이것은 분명 학살이고 살인이다" 목 밑으로 구역질이 치받쳐 올라왔다.

도망치듯 버스에서 내려오니 부대원들이 푸르게 자란 보리밭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리가 쓰러진 곳 마다 처참하게 살해된 주검들이 숨겨져 있었다. 내 기억으로 무려 11구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그중 여자가 세 명이었다. 얼마 후 염사가 왔고 시신은 누군가에 인계되었고 우리는 주둔지로 철수하였다.

당시의 나는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나라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는 군인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현장을 목격하면서 그런 긍지는 사라져버렸다. "야간에 이동하는 차량에 발포하는 것은 명령 때문이었다고 치자. 도대체 왜 죽은 사람에게 까지 총을 쏘았어야 했는가?"나는 아직도 그들에게 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내가 80년 5월에 군인의 신분으로 광주에 있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내 눈으로 확인되지 않은 어떤 소문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광주민주화운동' 혹은 '광주항쟁' 한때는 '광주사태'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던 광주의 비극은 그해 5월 뜨거운 아스팔트에 섰던 모든 살아남은 사람이 죄인인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그 많은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원흉과 주구들은 여전히 뻔뻔하고 파렴치하며, '명령 이상의 학살을 자행한 미치광이 군인들의 만행'에 대한 실체는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해마다 5월이 오면 '광주정신의 계승'을 외치며 광주를 찾는 정치인들의 무리이동을 보며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광주를 알아?"
"정말 광주 정신이 뭔 줄 알기나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다음, 더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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