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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꼭 20년 전 그해 5월, 나는 원주에 있었다. 전국에 걸쳐서 민주화에 대한 열기가 고조되어 가고, 4.13호헌 철폐에 대한 규탄 집회가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그때 나는 정선에서 막 목회를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월요일이면 정선에서 기차를 타고 원주로 갔다 주말에 내려오곤 했다.

거리마다 젊은이들과 시민들이 넘쳐났다. 목회자들은 시위대 맨 앞에 섰다. 시위대와 진압경찰 사이에 쫒고 쫒기는 숨바꼭질이 계속되었다. 아무리 스크럼을 짜고 결집을 해도 최루탄(지랄탄)이 터지면 금방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한 번은 원주세브란스 병원 앞 사거리 시위에 참여했는데 마이크가 내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 아마 2천 명쯤 모였을 것이다. 뭐라고 한 마디는 해야 하겠는데 난감했다. 원고도 없는 즉흥연설이었다. 그런데 하나도 떨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설교를 인용하였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였다.

여리고에서 강도 만난 사람이야기에 등장하는 세 사람 가운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내가 이 사람을 돕느라 시간을 지체하다가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하는 질문을 가졌는데, 사마리아인은 "내가 이 사람을 돕지 않으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질문을 가졌다는 것이다. 상황은 같은데 질문이 달랐다. 오늘 이 시대, 우리는 어떤 질문과 삶의 깨달음을 가지고 살 것인가를 고민하자고 호소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왜 5.18민중항쟁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 5.18 광주민중항쟁 민주영령들.
ⓒ 박철
5월하면 또 생각나는 일이 있다. 5.18민중항쟁 이야기이다. 시나브로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스무 일곱 해가 되었다. 지난 3월 나는 아내와 애들 둘을 데리고 5.18국립묘지를 다녀왔다. 나의 처남 김의기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서였다. 아내는 소리 없이 흐느껴 운다. 긴 침묵의 시간을 깨고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 의빈이에게 물었다.

"의빈아, 어떻게 해서 광주 5.18항쟁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니? 네가 알고 있는 대로 얘기해 보렴."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으려고 했는데, 학생들을 비롯해서 온 국민들이 전국적으로 데모를 하고 반대를 하니 다급한 나머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민주인사들을 잡아들이고, 광주를 타깃으로 삼고 무고한 시민들을 총으로 무참하게 죽인 거 아니에요? 그것도 북한 간첩들의 조정을 받은 폭도들에 의해 저질러진 폭동이라고 선전을 하고…."


오늘 아침 새벽기도회를 다녀와서 이 글을 쓴다. 5.18민중항쟁 27주기를 맞이하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거룩한 항쟁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은 우리들에게도 같은 사명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들에게는 광주이야기를 우리의 후손들에게, 역사의 먼 훗날까지,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전해줄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왜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그때 그 이야기를 신화로 만들지 않고 오늘의 상황에 역사로 재생시키기 위해서이다. 5월 광주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다. 광주 이야기는 구원의 이야기이다. 까닭은 이 사건을 통해서 오늘 우리의 삶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우리 민족이 참으로 사는 길이 무엇인가가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광주 이야기의 내용이 무엇인가? 한국의 청순한 햇순과 꽃봉오리인 젊은 학생들과 민중들이 민족과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집단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죽임을 당한 이야기가 아닌가?

독재자를 위해 축복기도 한 한국 기독교

▲ 본회퍼 목사
ⓒ 박철
그러나 당시 기독교는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참혹한 살육 행위에 대해서 철저하게 침묵했다. 오히려 종교 지도자라고 하는 자들이 불의한 정권을 옹호해주고 축복을 빌어주는 기도를 했다. 그 후에도 저들은 아무런 반성이나 회개가 없었다. 역사의 진보와 발전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자들이 무임승차하여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참으로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어제 우리교회에서 5.18광주항쟁 27주년을 기념하여 뜻을 같이 하는 지인들과 함께 영화 <본회퍼>를 보았다.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본회퍼 목사가 나치에 체포되어 처형을 앞두고 이런 질문을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감방에서 걸어 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 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내게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나는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하지만 내가 누구이든, 신은 안다. 내가 그의 것임을…."

그렇다. 지금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사마리아인의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삶의 진정성과 정체성에 대해서 깊은 고민과 성찰이 요구되는 때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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