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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 매장의 주류판매대에 붙어있는 안내문. 5월 3일까지 주류 판매가 금지되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 서진석
기자는 에스토니아 최대의 대학인 타르투대학교에서 이미 2년간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4학기 동안 20여명 이상의 학생들이 이 수업을 거쳐갔지만, 그 중에 가장 두각을 나타나는 학생이 한 명 있다.

그 학생은 에스토니아 동부 러시아인 밀집지역 유흐비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나스타시야라고 하는 러시아계 여학생이다. 러시아인 밀집지역의 거주자들 중 대부분이 에스토니아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과 달리, 아나스타시야는 에스토니아어를 현지인처럼 구사할 수 있고 에스토니아 시민권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여학생은 나의 질문에 언제나 이렇게 대답한다.

"아나스타시야씨는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저는 러시아 사람이에요, 그런데 에스토니아에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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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소련군 동상 철거에 러시아인들 난동

"나는 에스토니아에 사는 러시아 사람"

지난주 탈린에서 일어난 러시아인들의 소요 사건으로, 인구 120만의 이 나라가 세계 언론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1991년 소련의 굴레를 벗고 독립한 이래 발생한 최대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사태는 웬만큼 진정되었고, 그 소요와 관련된 여러 사안들은 정리하여 재발을 방지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이 소요사태를 접하면서 지난달 세계를 흔들었던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연상시키게 되었다.

그 사건에서 범인은 소위 미국 1.5세대라고 불리는 이민 세대이며, 한국 국적이지만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 이번 소요에 참여한 대다수 러시아인들은 20대 초반의 젊은이였고, 그들 역시 소련 시절 부모를 따라 이곳에 이주한 1.5세대들이라는데서 공통점을 보인다.

차이점이 있다면, 주미 한국대사는 '사죄'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러시아는 거꾸로 에스토니아에 사죄를 요구하고 있고 에스토니아 정치인 중 몇명은 개인적으로 러시아에 사죄의 의미를 내비쳤다는 점이다.

이번 소요에 가담한 러시아인들이 대부분 아나스타시야처럼 완전한 에스토니아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면, 러시아 정부가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에스토니아에 관여할 만한 근거는 매우 적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에스토니아에 이번 사태에 대한 해결을 직접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에스토니아는 그러한 러시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어찌 해야 좋을지 몰라하고 있다. 왜 에스토니아 정부는 러시아의 그런 태도를 '내정간섭'이라 비난하지 못하는 것일까.

▲ 이번 소요사태의 불씨가 된 소련군인 동상. 탈린 한가운데 있다가 옮겨졌다.
ⓒ 서진석
'가해자' 러시아가 '피해자' 에스토니아에 사죄 요구

러시아는 에스토니아를 지배했던 소련을 이어받은 나라이다. 때린 사람은 발을 오므리고 자고 맞은 사람은 발을 뻗고 잔다고, 피해받은 에스토니아 입장에서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말라'고 요구할 권리도 있다.

그런데 러시아는 아직도 소련의 지배를 '무력침공의 결과'로 인정하지 않고 에스토니아 정부와의 합법적인 계약을 통해 자연스럽게 합병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소련 지배시 에스토니아가 입은 피해보상은 한 푼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 차원에서 에스토니아라는 작은 나라가 벌이는 눈물 작전은 세계적으로 많은 공감대를 얻으며 큰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문제가 아니다. 아나스타시야가 말하는 것처럼, 여기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자신들을 '에스토니아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이라 생각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에스토니아에 살고 있지만 엄연한 러시아인들이라는 이야기이다.

에스토니아에서 요구하는 까다로운 조건에 맞춰 시민권을 획득했건 아니건 그건 별로 의미가 없다. 시민권은 단지 형식적인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 에스토니아에서 러시아 사람으로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에스토니아 텔레비전은 러시아 채널로 넘쳐나고, 국영방송과 현지 케이블 TV에서도 러시아어 방송을 보여주며, 러시아 소수민족을 통합하기 위해 애를 쓴다. 러시아어로 뉴스를 전해주는 시간도 있다.

신문도 대부분 에스토니아어와 러시아어판 두 개로 나뉘어 발간되지만 러시아 주요 신문이 거의 실시간 발간되며, 극장에 가도 러시아어 자막이 필수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러시아 학교도 있어서 에스토니아어를 몰라도 공부를 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학교에서 그들은 2차 대전 중 러시아는 독일과의 전투에 승리해서 유럽을 해방시킨 나라라고 자랑스럽게 배운다. 집에서도 부모님과 함께 러시아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외국에서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로서 살아나가기 위한 미덕과 덕목을 배운다.

▲ CC-TV에 찍힌 러시아인들의 약탈 장면.
ⓒ 에스토니아 경찰청 홈페이지
침략자로 살 것인가, 합법적 이주자가 될 것인가

그러나 그들은 독립 이후로 러시아인으로 살아야한다는 것에 대한 큰 부담감을 느껴야만 했다. 에스토니아에 살고 싶으면, 자신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러시아인이라는 이름표를 떼어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는 아직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민족의 용광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에스토니아에 사는 러시아인'은 될지언정 자신을 에스토니아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러시아인들은 모두 하나 같이 원죄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 바로 이들은 에스토니아를 지배하기 위해서 건너온 침략자들의 후예라는 것이다. 에스토니아는 그 소련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독립을 이루어 냈다.

그리고 현재 에스토니아는 1945년 소련이 세운 사회주의정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2차 대전 발발 이전에 존재하던 에스토니아 1차 공화국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현재의 에스토니아와 더더욱 연관이 줄어든다. 그런 배경은 당연히 러시아인들에게 어려운 조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현재 러시아가 소련의 에스토니아 강제합병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만약 러시아가 그 사실을 인정할 경우, 현재 발트3국을 비롯한 구 소련 국가에 남아있는 러시아인들의 입지가 심하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침략자로 들어온 그들은 러시아로 돌아가든가 침략자로서 들어온 사실을 인정하고 평생 그들에게 굽신거리며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곳에 사는 대부분의 러시아인들도 그 사실을 인정한다.

그들은 막상 돌아가고 싶어도 대부분의 이주자들에게 러시아에는 고향조차 없다. 대부분 이곳에 태어났으며, 산 설고 물 설은 러시아에서 새로운 정착을 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소련 시절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발트3국에 이주해온 러시아인들은 여러 가지 딜레마에 빠져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그들은 러시아인으로서 에스토니아에 남을 수 있는 철학적이고 정치적 배경이 아주 중요하다.

▲ 탈린 시내의 상점들을 약탈하고 있는 러시아계 청년들.
ⓒ 에스토니아 경찰청 홈페이지
'고철덩어리' 동상이 주는 의미

침략자가 아닌 합법적인 이주자로서, 러시아인의 자랑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배경이 필수적이다. 그런 차원에서 탈린 한가운데 자리잡은 청동군인동상은 그들이 기대하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었다. 러시아인들은 나치로부터 이곳을 해방시켰고, 그 이후로 에스토니아의 사회주의 건설에 이바지하게 해준 장본인이라는 그들의 입장이 그 동상에 그대로 담겨있다.

그러나 에스토니아인들이 보는 입장이 러시아인들과 동일할 수는 없다. 그것은 에스토니아인들에게 분명히 침략의 상징이었고, 소련은 에스토니아를 피폐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수 만명의 인구가 하루밤 사이에 시베리아로 끌려가 꽃같은 목숨을 잃었고, 공산정부의 지배 하에 그들은 제대로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았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시베리아로 끌려가거나 빨치산 활동으로 희생된 사람들과의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들이 만든 동상이 독립한 수도 한가운데 버젓이 서있는데, 그것조차 맘대로 허물지 못하다니.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에스토니아 정부가 서운하고 밉기만 했다.

청동군인동상은 단지 에스토니아만이 아니라 발트3국 전체에 남아있는 러시아인들이 기댈 수 있는 이념적 토대였고, 그들의 생활을 정당화할 수 있는 철학 그 자체였다.

특히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에스토니아에 러시아인으로 태어나야 했던 러시아 1.5세대들의 상황은 미국의 이주 한인 1.5세대들이 느낄만한 공허함과는 비교조차 안되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 청동군인동상이 침략자의 상징으로 인정되어 철거된다면, 러시아 1.5세대들이 언제나 염려해왔던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시련이 시작된다는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어쩌면 아무 의미없어 보이는 그 고철덩어리에 집착하는 그들이 행동이 이해가 된다.

러시아, 폭동부터 사과하는 것이 순서

ⓒ 에스토니아 경찰청 홈페이지
세상에 모든 사람들에게는 다 그들만의 사연이 있고, 그것을 들여다보면 뭐든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다. 그러나 이해가 있다고 해도 껄끄러운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데는 도움을 될지언정,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안 된다. 이 모든 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소련의 과오를 인정하고 모든 것을 현금으로 보상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상징적인 금액인 1루블이라도 좋으니 에스토니아 정부구좌에 입금하여 그들의 심정을 보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서로가 가진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 자신들의 가진 입장과 철학을, 쌍방간의 협의나 대화 없이 폭력이나 일방적인 주입을 통해 요구하는 것은, 양측이 가지고 있는 골을 더 깊게 할 수밖에 없다.

거의 폭동과도 같은 이번 탈린의 소요는 그것을 여전히 증명해 주었다. 그들은 대화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에스토니아를 나치에 동조하는 파시스트들의 나라로 치부했고, 그들은 닥치는대로 부수고 불태웠으며, 심지어 약탈하는 행동까지 보였다. 그들은 대부분 술에 취해있었고, 백화점과 명품매장이 자기들이 손에 들어온 것처럼 창문을 깨고 거침 없이 물건을 꺼내어 나왔다.

그 사실은 이미 에스토니아 현지 방송사를 비롯한, 세계 주요 언론에 거짓없이 보도되었다. 불타는 매장과 깨진 유리가 난무하는 거리에서 자랑스럽게 맥주를 마시고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은 전부 러시아어로 '에스토니아인들은 파시스트들'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만약 러시아에서 에스토니아에 이번 사태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기를 요구한다면, 그 약탈과 폭동을 선동하고 참여한 이들에 대해서도 먼저 사과하고 해명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었을까.

언젠가 소련의 흔적이 탈린을 아름답게 하리라

▲ 탈린의 구시가지에는 매년 수 십만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에스토니아인들을 농노로 부리면서 주변 강대국이 남겨놓은 호화로운 문화유산은 현재 그들이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고 있어 아이러니하다.
ⓒ 서진석
이번 사태가 야기한 피해액은 상상을 초월했고, 심지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에 부어진 페인트는 금전적인 가치를 넘어선다. 그렇게 피해가 막심하지만 에스토니아는 정작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며 액땜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더 많다.

물론 소요 당시 유리가 많이 깨지고 건물이 파손되긴 했지만, 관광객이 워낙 많은 탈린이다보니 유리가 깨지고 건물이 파손되는 것은 거의 매일 있다시피한 일이다. 3년 동안 파손될 것이 불과 이틀 사이에 일어난 것이라 치부하고 웃어넘기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에스토니아 언론이 너무 지나치게 선정적인 장면만 보여준 것은 아니었느냐 라고 하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렇게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며 철거된 청동군인동상은 러시아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승전의 기념일을 하루 앞둔 5월 8일 탈린 인근 국립군인묘지에서 다시 시민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그 동상의 재개막을 앞두고 당시 전투에 참가한 사람들을 기리는 성대한 행사까지 준비하고 있다.

이제 한숨의 흙으로 돌아간 병사들이지만, 어찌 되었든 그들은 현재의 에스토니아를 있게 한 장본인 중 하나가 되었고, 좋든 싫든 에스토니아의 후손들은 그런 역사를 배우고 전승해 나가야할 필요가 있다.

유네스코에서 세계 유산으로 지정한 아름다운 도시 탈린도, 엄밀히 말하면 에스토니아를 거쳐간 침략자들이 만들어놓은 침략의 잔재에 불과하다. 덴마크·스웨덴·독일·제정 러시아가 눈독을 들인 무역의 거점지라는 가치로 인해 그들이 이루어놓은 부와 영광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들의 치하에서 고통 받고 신음하던 에스토니아 농노들이 흘린 피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탈린은 더 이상 침략과 압제의 상징이 아니다. 모든 유럽의 건물이 한곳에 모아져 조화를 이룬 탈린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유럽의 모든 건축양식이 한곳에 모아져 있는 건축의 박물관이 된지 오래이다.

독립 후 16년만에 혹독한 고통을 당하긴 했지만, 소련 역시 에스토니아를 거쳐간 여러 문화 중 하나로 탈린 구시가지 한켠을 자랑스럽게 장식할 날이 올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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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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