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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투표가 끝난 4월 22일 이후 사르코지와 루아얄의 지지율 추이. 양 후보간 격차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한은희
지난 2003년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52)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대선 후보가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의 일이다. 사회자가 물었다.

"아침에 거울을 보며 면도를 할 때, 혹시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있습니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사르코지는 대답했다.

"단지 면도할 때만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보다 앞선 1988년, 재선에 성공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취임식은 사회당(PS)의 세골렌 루아얄(53) 후보를 각인시킨 날이었다. 일렬로 늘어선 각료들과 인사를 나누는 미테랑의 손을 잡은 보좌관 루아얄은 불쑥 말했다.

"저를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습니까?"

공식 석상에서 예상 못한 반응에 당황한 미테랑이 '아직 시간이 있다'며 돌아서려 하자 루아얄은 재차 간청했다. 난감해진 미테랑은 '시간이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멀어졌다.

루아얄이 원한 것은 공천이었다. 그리고 꿈은 이뤄졌다. 미테랑의 낙하산을 탄 루아얄은 프랑스 중서부, 전통적 우파 지역인 되 세브르에 출마해 승리했다.

지난 22일 대선 1차 투표를 통과한 두 후보 루아얄과 사르코지의 오늘을 만든 것은 성공을 향한 집념이었다. 대범하다 못해 뻔뻔스럽기까지 한 두 후보는 닮은꼴이다. 때문에 올해 대선을 뜨겁게 달구는 주된 요인이 루아얄과 사르코지라는 '인물'이라는 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뻔뻔한 그들 '후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 선두를 달리고 있는 사르코지 후보가 1차투표 전인 지난 20일 한 농장을 방문해 자신감을 과시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여성과 남성의 성대결에 나선 두 후보는 국모와 가장을 자처한다. 루아얄의 대선 스폿 광고는 자녀를 보호하는 어머니를 부각시킨 반면, 사르코지는 엄격하고 권위적인 아버지를 강조했다. 좌파와 우파를 대변하는 두 후보는 노동과 미국을 보는 시각 등에서도 확연히 구별되고 있다.

"더 일하고 더 벌자."

주 35시간 노동을 정면 공격하는 사르코지에게 프랑스는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의 것이다. 루아얄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의 편에 서있다.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지난해 9월 미국을 방문한 사르코지는 '프랑스가 동맹국 미국을 배신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다'며 사과에 가까운 발언을 했고, 루아얄은 최근 '프랑스가 미국에 사과할 이유는 없으며 사과하지도 않겠다'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상호 비방에도 인색하지 않은 두 후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설전이 있다.

"사르코지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사안에 답을 갖고 있다."

각종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주저없이 자신의 견해를 밝혀온 사르코지를 향한 루아얄의 비아냥이었다. 사르코지는 이렇게 응수했다.

"그렇다면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런 답도 없는 후보에게 투표하라."

아버지 사르코지와 어머니 루아얄

두 후보가 프랑스 역사를 통해 세우고 있는 각종 기록도 눈여겨 볼 일이다.

이를테면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후보가 결선에 올랐다. 그리고 이번에 결선에 오른 두 후보는 현직 대통령도 총리도 아니다. 1981년 이후 처음이다. 또한 2차 대전을 겪지 않은 첫 후보들이 처음으로 당원에 의해 선출됐다.

그리고 지난 28일에는 또 하나의 기록이 수립됐다.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결선에 오른 후보와 탈락한 후보의 공개 TV 토론이 성사된 것.

사르코지는 전화를 했고 루아얄은 편지를 썼다. 누구에게? 사르코지가 보기엔 좌파요, 루아얄이 보기엔 우파인 '중도파' 프랑스민주연합(UDF)의 프랑수아 바이루(56)에게.

지난 22일 실시된 대선 1차 투표에서 탈락하기는 했어도 18.57%라는 무시할 수 없는 득표율을 기록한 바이루의 유권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다음달 6일 결선 투표의 관건이었던 것이다. 바이루에게 투표한 '사르코지도 싫고 루아얄도 싫은' 680만 유권자의 향방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25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바이루는 결선에 오른 두 후보 중 누구도 '선택하지 않을 것을 선택'한 바 있다. 중도파다운 결정이다.

그러나 유독 사르코지에 비판적이었던 바이루가 선호하는 인물을 짐작하기는 그러나 어렵지 않았다. 1차투표에서 사르코지에 5.31%P 뒤진 25.87%를 획득한 루아얄이 바이루에 급히 러브콜을 보낸 이유다.

사회당이 타 세력과 연대를 모색한 예는 그러나 루아얄의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프랑스에 보통선거가 도입된 1965년 사회당과 공산당(PCF)의 단일 후보였던 미테랑은 대중공화국운동(MRP)의 장 르카뉘에를 회유했고, 1974년 다시 좌파 단일후보로 나선 미테랑은 현 집권 대중운동연합의 전신인 공화국연합(RPR) 후보 자크 샤방-델마와 연대를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미테랑을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은 1981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당시 대통령을 배신한 자크 시라크 현 프랑스 대통령의 '술수'였다.

사르코지만 빼고 모두? 루아얄을 위해 모두!

▲ 지난 20일 자신의 아성인 푸아티에에서 열린 1차투표 마지막 유세중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루아얄 후보.
ⓒ 박영신
미테랑의 후계자답게 루아얄은 미테랑의 전략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그러나 루아얄의 조건은 더 열악하다. 대선 1차 투표가 실시되기 직전인 지난 14일 사회당의 미셸 로카르 전 총리는 루아얄과 바이루의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으나 불발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사르코지만 빼고 모두'를 부르짖는 루아얄의 연합전술은 '왕따' 전술이라 비난받기도 했다. 사회당은 기실 '좌파 후보들이 40%에 미치지 못하는 역사상 최저 득표'를 기록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60% 이상의 유권자가 사르코지에 '반대해' 표를 던졌다는 분석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사회당 제1 서기 프랑수아 올랑드는 "(사르코지가 주도하는) 증오의 정치를 거부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세골렌을 위해 전력질주하는 긍정적인 선거전을 모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1차 투표 당일 극좌파 후보들의 조건없는 지원을 약속받은 루아얄은 본격적으로 바이루에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바이루는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나 토론의 방법이 문제였다. 지방신문이 주축이 된 토론 또는 인터넷 토론 등이 거론됐으나 무산됐다. 마침내 프랑스 최대 유료TV 채널 <카날 플뤼스(Canal+)>를 무대로 토론이 계획됐으나 고등시청각위원회(CSA)가 강제하는 후보들의 '발언시간 평등 원칙'을 이유로 <카날 플뤼스>는 26일 급히 토론을 취소했다. 그러는 사이 프랑스민주연합 소속 총 29명의 의원 중 2/3가 사르코지 진영으로 돌아섰다.

다음날인 27일 결국 24시간 정보전문채널 <베에프엠 TV(BFM TV)>와 라디오 <에르엠세(RMC)>가 토론을 생중계 하는 것으로 잡음은 일단락됐다. 사르코지에게도 80분의 발언 시간을 할애하는 조건이었다. 이와 관련해 사르코지는 "<카날 플뤼스>만 내게 복종한다"는 말로 빈정거렸고 바이루는 "사르코지가 경제, 언론 권력을 조종한다"며 <카날 플뤼스> 토론 무산에 사르코지의 입김이 작용했음을 시사했다.

"함께 살 생각 있나" "내 이름이 프랑수아지만"

지난 28일, 예정보다 다소 늦은 오전 11시 15분경(현지 시각) 바이루와 루아얄의 토론은 시작됐다. 가벼운 농담이 오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토론에서는 특히 두 후보의 재치가 빛을 발했다.

이를테면 '두 사람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에서) 함께 살 생각이 있느냐'는, 마치 두 남녀의 결합을 연상시키는 사회자의 질문에 바이루는 "사람 놀라게 하지 말라"며 청년처럼 수줍어했고 루아얄은 능청스러웠다.

"이름이 프랑수아이긴 하지만, 그래도 과장은 하지 맙시다."

사회당 제 1서기이자 루아얄의 동거인 이름이 프랑수아임을 염두에 둔 대답이었다.

▲ 28일 오전(현지시간)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왼쪽)과 프랑수아 바이루가 TV토론을 벌이고 있다.
ⓒ EPA=연합뉴스
제도 개혁 부분에서는 합의점을 찾았으나 경제 정책에서 입장을 달리한 두 사람의 토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바이루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루아얄의 '바이루 총리' 제안과 사르코지의 집권당에 기대, 오는 6월 총선을 겨냥해야 하는 필연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유지하는 형국이랄까. 다수당인 집권 대중운동연합의 양보로 프랑스민주연합 후보들이 공천을 받아온 전력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는 2일 사르코지와 TV 토론을 앞두고 있는 루아얄의 이날 토론은 결선진출 후보가 의견을 달리하는 정치인과 열린 자세로 토론에 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유권자들의 호감을 자극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이번 토론 이후 루아얄은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르코지의 눈에는 비록 '파리의 고급 호텔에서 이뤄진 협잡'에 불과했지만.

프랑스인 74%, '사르코지 대통령' 전망

한편 지난 29일자 일요신문 <르 주르날 뒤 디망쉬>가 여론조사 기관 이폽(Ifop)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르코지는 52.5%의 지지를 얻어 47.5%의 루아얄에 여전히 우세했다. 지난 22일 또 다른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의 조사에서 사르코지 54%, 루아얄 46%였던 점을 감안하면 후보 간의 간격이 점차 좁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지 여부를 떠나 '도발적인 달변가' 사르코지가 루아얄보다 대중적 관심면에서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5, 26일 프랑스의 공영TV 채널 <프랑스2>의 '판단은 당신의 몫'이라는 인기 토론 프로그램에 각각 출연한 루아얄(408만)과 사르코지(527만)가 끌어모은 시청률이 그 증거다. 같은 날 민영TV 채널 <테에프1>(TF1)의 저녁 8시 뉴스에 각각 교대 출연했을 때도 사르코지는 1000만, 루아얄은 855만의 시청자가 지켜본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이폽의 같은 조사에서 지지 후보와 상관없이 사르코지가 당선될 것을 전망하는 의견이 응답자의 3/4에 해당하는 74%, 루아얄은 18%로 나타나 '사르코지 대세론'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은 아직 일주일 남았다.

태그:#프랑스 대선, #미테랑, #루아얄, #사르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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