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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2인 22일 저녁 8시 정각 사회당사 내 강당에 설치된 텔레비전 화면 위로 대선 1차 투표를 통과한 두 후보 사르코지와 루아얄의 모습이 나타났다.
ⓒ 박영신
"휴~"

안도의 한숨. 4·21 정치 대지진의 트라우마에서 깨어나는 소리였다. 2007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첫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지난 22일 저녁 정각 8시(이하 현지시각),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52)와 사회당(PS)의 세골렌 루아얄(53)의 얼굴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지난 2002년 4월 21일 극우당 국민전선(FN)의 장-마리 르펜(77)에 밀려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당시 총리가 대선 1차 투표에서 탈락한 사건. 루아얄은 이로써 지난 5년 동안 사회당을 내리누른 정치 대지진의 망령을 걷어냈다. 그리고 선배 조스팽을 대신해 멋지게 복수했다.

극우파 르펜이 떨어졌다

일찌감치 교통이 통제된 파리 7구의 솔페리노 가(街) 10번지 프랑스 사회당사 앞은 2천 여 당원들에 접수됐다. 대형 화면이 설치된 거리에서 청년 당원들은 조마조마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밀려드는 취재기자들로 북새통이었다. 사회당 언론 담당관 아녜스 롱그빌에 따르면 이날 등록된 기자 수만 500명이었다. 당사로 들어서자 천장에 장식된 붉은 장미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회당의 주요인사들이 오르내리는 계단 밑에는 이미 카메라로 무장한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저녁 7시경이다.

▲ 사회당사 정문 앞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사회당 지지자들.
ⓒ 박영신
▲ 사회당사 입구는 사회당의 상징인 장미로 장식됐다.
ⓒ 박영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저녁 8시, 당사 내 강당에 설치된 두 대의 평면TV 화면 위로 사르코지와 루아얄의 얼굴이 나란히 보여졌다. 순간 떠나갈 듯한 함성이 들려온다. 청년 당원들이었다.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지난 주까지만 해도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했다.

사회당으로 향하기 전 나는 프랑스의 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프로그램 하나를 녹화했다. 며칠 전까지도 방송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선 후보 이야기를 해왔으나 이날은 달랐다. 프랑스의 고등시청각위원회(CSA)가 정한 규칙에 따라 공식 선거운동이 모두 끝난 20일 자정을 기해 여론조사 결과는 물론 특정 후보에 대한 발언이 엄격히 금지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고가 나가는 사이사이 출연자들은 대선 추이에 대해 갖가지 정보를 쏟아냈다. 때문에 나는 이미 대략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깊은 안도의 한숨이 새나온다. 당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장내 분위기는 대동소이 했다. 이유는 단 하나, '위협적인' 르펜이 '마침내' 탈락한 것이다. 르펜은 사전 여론조사에서 사르코지, 루아얄, 프랑스민주연합(UDF)의 프랑수아 바이루(56)에 이어 늘상 4위를 차지했다 해도 어느 때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해온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변은 없었다.

탈락 극우파 장-마리 르펜이 22일 밤 1차투표에서 탈락이 확정된 뒤 침울한 표정으로 연설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최대의 패배자는 결국 르펜이었다. 르펜이 끌어모은 10.57%(23일 0시 현재 내무부 집계)의 표는 최근 20여년 동안 최악의 기록이다. 결과가 발표된 뒤 르펜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프랑스인들이 제법 불만이 많은 줄 알았다. 내 오해였다."

르펜은 기록적인 투표율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2002년 4·21 정치 대지진은 71.6%라는 낮은 투표율에 기인했다. 올해는 83.6~84.5%로 프랑스 제5공화국 사상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1965년의 84.75%에 근접했다. 가히 42년 만의 기록이다.

선거인 명부 등록자 수도 역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평균 3700만 명 수준이었으나 올해는 총 4450만 명에 육박했다. 신규 등록자만 330만 명으로 지난 2002년과 비교해 7.5%가 증가한 수치다.

1등 우파 대중운동연합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가 1차 투표에서 1위가 확정되자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프랑스 좌파들, 루아얄을 중심으로 모여!

중도파 바이루는 분투했다. 비록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18.53%의 득표율은 바이루에게 값진 선물이었다. 르펜과 달리 만면에 미소를 띤 바이루가 자신있게 선언할 수 있었던 이유다.

"오늘 저녁을 기해 프랑스의 정치는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마침내 프랑스 정치에도 중도파가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한편 1위를 차지한 사르코지는 31.06%를 득표해 1974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32.6% 득표 이후 우파 후보로서 가장 높은 지지도를 기록했다. 특히 사전 여론조사와 비교해 5%P 가까이 높게 나타나 르펜의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는데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저녁 8시 30분 경 열광하는 당원들 앞에 등장한 사르코지는 특유의 장엄한 목소리로 '진정한 좌, 우파의 대결이 가능해진 결선 투표'를 축하했다. 그리고 '두려움에 떠는 이들을 보호해야 할 나는…' 이라는 표현을 써 다시 한 번 자신은 '신이 선택한 운명의 남자'임을 각인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2위의 루아얄이 얻은 25.75%는 사전 여론조사와 거의 일치한다. 이것은 1981년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후보가 1차 투표에서 얻은 25.85%와도 가깝다. 당시 28.32%의 지스카르 데스탱에 이어 2위를 기록한 미테랑은 그러나 결선 투표에서 52.76%로 역전, 대통령에 당선됐다. 사르코지 보다 한 시간 가량이 늦은 저녁 9시 30분 경 마이크 앞에 선 루아얄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리고 마치 사르코지에 응수 하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안도 사회당 세골렌 루아얄 후보가 22일 결선진출이 확정된뒤 중부도시 멜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나는 두려움을 경작하지 않습니다 !"

지역구인 되 세브르의 소도시 멜에서 지역구민과 함께 낭보를 접한 루아얄은 '당선 가능한 후보에 투표 하기' 전략의 수혜자다. 다시 한 번 4·21 정치 대지진을 살고 싶지 않은 좌파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아닌 '당선 가능성이 있는 좌파' 루아얄에 표를 던졌다. 단 한 사람도 5%를 넘지 못한 '작은' 좌파 후보들이 그 증거다.

이를테면 극좌 트로츠키주의자, 혁명공산주의자연맹(LCR)의 올리비에 브장스노(32)는 4.13%를 얻어 5년 전 4.25%를 득표하며 일으킨 파란을 재연했다. '작은 후보 중에 큰 후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선전이었다. 그러나 프랑스공산당(PCF)의 마리-조르주 뷔페(58)는 1.94%, 녹색당(Verts)의 도미니크 부아네(48) 1.57%, 노동자투쟁당(LO)의 아를레트 라기예(66) 1.35%, 대안세계주의 농민 운동가 조제 보베(53) 1.32%, 노동자당의 제라르 쉬바르디(56) 0.34% 등 브장스노를 제외한 나머지 좌파 후보들의 성적은 극히 저조했다. 루아얄과 반대로 사회당이 주창한 '당선 가능한 후보에 투표하기' 전략에 희생된 것이다.

"나는 이제 사회당 유권자만의 후보가 아닙니다"

대선 1차 투표가 끝나면 각 후보들 간에 헤쳐모여가 시작된다. 결선에 오른 두 후보 중 한 후보와 연합하는 것이다. 좌파 후보들의 동작은 민첩했다. "거리에서, 투표소에서 우파를 와해시킵시다!"

브장스노의 호소를 시작으로 부아네, 라기예, 뷔페, 보베는 일제히 루아얄 뒤에 집결했다. '강하고 단결된 좌파'를 역설한 보베는 특히 '사르코지를 무너뜨리자'고 선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도파 바이루를 비롯한 우파와 극우파 후보들은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를 꺼렸다.

이렇듯 사회당사 강당에 마련된 텔레비전은 투표 결과와 각 후보들의 반응을 신속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저녁 10시 경 되 세브르를 떠나 파리의 당사로 출발한다는 루아얄이 여전히 지역구에 머물고 있다. 시간은 이미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 사회당사 강당에서 세골렌 루아얄이 오길 기다리고 있는 방송 요원들. 루아얄은 새벽 2시가 다 돼서야 도착했다.
ⓒ 박영신
"루아얄은 자유로운 여성이다. 그녀가 원한다면 오늘 파리행은 취소될 수도 있다."

TV에서 이렇게 말하는 루아얄의 측근이 원망스럽다. 당사 앞에는 간이 무대가 설치된 지 오래다. DJ가 등장해 요란한 음악을 틀어대고 청년 당원들은 거리에서 샴페인을 터뜨리거나 춤을 춘다. 붉은 풍선이 하늘을 날고 사회당 깃발이 나부낀다. 이미 대여섯 시간 전부터 카메라를 고정한 채 강당에 쪼그리고 앉아 졸고있는 기자들도 보인다. 루아얄이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다시 감감 무소식.

"세골렌을 기다리는 게 지루하십니까? 그녀는 오늘 올 겁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우리는 앞으로 보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무대 위로 사회당 제1서기이자 루아얄의 동거인인 프랑수아 올랑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올랑드는 결선 투표일까지 보름이 남았으니 서두르지 말자고 말하고 있다.

당초 2000여명이었던 청년 당원들은 이제 500여명만 남았다. 소나기까지 뿌린다. 루아얄이 솔페리노에 등장한 것은 새벽 2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세골렌 대통령'을 연호하는 당원들도 루아얄도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잠시 후 루아얄의 낮은 목소리는 어두운 밤 하늘 높이 울려퍼졌다.

"나는 이제 사회당 유권자만의 후보가 아닙니다. 결집합시다. 그리고 전진합시다. 앞으로"

길었던 일요일을 마감하는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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