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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대선 당시 점심식사를 마치고 한 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는 여의도의 젊은 직장인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국의 대리들>(해바라기)이란 책을 처음 봤을 때 나하고는 맞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난 대리를 달고 8년이 지난 고참 중에서도 왕고참 대리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30대 초중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이미 30대 후반이었고 후배들한테도 밀려 있는 대리였다. 때문에 글을 읽어 나가면서 지금 현실에 와 닿는 것도 물론 있었지만 모든 일이 나에게는 한참 지난 과거의 일이었다.

사실 난 이 책을 어쩌면 과장·팀장 처지에서 읽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과거에는 정말 이랬지' 하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30대 초반 대리 승진 시험을 위해 공부하던 기억이 되살아나고, 대리를 달고 '뭔가 그래도 해냈구나' 하는 생각과 이제 궂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면서 쾌재를 부르던 일이 생각 났다.

입사동기들은 다 과장 달았는데 왜 나만...

대리를 달면서 직장 옮기는 문제가 고민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내가 바로 그 당사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 옮기는 이유가, 가장 선택하지 말아야 할 '변화를 주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뭔가 진짜 내가 하고 싶어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이 생활이 지겨워서, 환경을 바꿔보고 싶어서'라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위험한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안전장치를 생각했는지 같은 업종으로 전환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옮기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당시에는 정말 벗어나고 싶었고, 자신도 있었다. 정규직에서 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받아가는 계약직으로 바뀌었지만 더 많은 것을 얻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만큼 그렇게 일은 진행되지 않았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험한 신분이 된 것이 전부였다.

다행히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안정을 찾았지만 그 회사에 그냥 있었으면 과장이 되었을 나이에 대리라는 직함을 버리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전에 같이 입사했던 동기들이 승진하면서 모임에 나가 대리라는 명함을 내밀기가 창피하기까지 했다. 잘 해보겠다고 회사를 나갔는데 오히려 더 쪼그라든 삶을 살고 있으니 모임에 나가는 것조차 기피하게 되는 시기도 있었다.

성과따라 인간 대접받는 영업직 생활

▲ 건물 밖에서 쉬고 있는 여의도 63빌딩 직장인들.(자료사진)
ⓒ 한태욱
영업직이라는 것이 성과에 따라 인사고과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조금만 게을러지게 되면 그 표시가 금방 나게 된다. 한때 잘하면 영웅대접을 받지만 못하는 시기에는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잘 나가는 때는 불러서 술도 사주고 고기도 사주지만, 실적이 바닥을 헤매고 있을 때는 똑같이 불려가는데 임원실로 불려가 한소리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사실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되뇌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관리부서라면 내가 하는 일만 열심히 하면 상관의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영업직이라는 것은 수치가 인간적인 대우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나의 평가는 항상 바닥이었다.

영업직이 체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말주변 없는 성격이 영업에 맞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견디어 왔는지가 신기하기까지 했다. 지금도 영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생소한 부서는 아니지만 그래도 실적에 치이는 부서는 아니다.

이러는 동안 인사평가라는 것은 나에게는 그저 항상 그런 것이고, 낮은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만년 대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늘 비교당하는 만년 대리의 비애

▲ <한국의 대리들>. 35세 전후 직장인들의 현실과 나갈 방향을 짚고 있다.
ⓒ 해바라기
자신의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먼저 특정 상사에 맞지 않는 경우와 특정 업무와 맞지 않는 경우 두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이 두 가지가 다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업무가 맞지 않아서 상사의 질책이 있었고 그 질책이 내게는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후배들에게 추월당한 느낌이 어떤 것일까? 물론 능력 있는 후배가 추월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참 서글픈 것이 현실이다. 후배 처지에서도 그렇게 좋아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말은 하지 않지만 집에서도 눈치만 보고 있는 것도 느껴졌다. 옆집은 같은 나이에 과장인데 우리 남편은 아직도 대리를 달고 있으니 말이다. 옆에 있는 동료 대리가 갑자기 "과장님! 아니… 대리님!"하고 부를 때 그 느낌은 참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주변에서 나에게 들리지 않게 하는 말들이 얼마나 많을까? 나를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내가 대리로서는 상당히 늙었구나! "어?" 대답을 하면서도 몇 초 동안이지만 이 생각 저 생각을 다 하게 된다.

8년 전 남들과 똑같은 나이에 대리를 달았지만 그 대리라는 직함을 4년이나 더 보유하고 있어야 했던, 어떻게 보면 무능력한 직장인으로서 <한국의 대리들>이라는 책은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제목 그대로 한국의 대리들이 고민하는 것을 가슴에 와닿게 정리해 놓은 책 같다.

늦깎이 대리여, 능력을 깎아내리지 말라

▲ 아이들과 함께
ⓒ 이종일
공교롭게 이 책을 읽는 도중 '대리'라는 명함이 더는 필요치 않게 되었다. 포기보다는 막판 스퍼트로 '과장'이라는 타이틀을 쟁취하였고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승진이라는 것은 나의 능력의 전부를 반영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능력만 가지고 승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항상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이 반영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나의 업무 능력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추월당한 4년이라는 긴 시간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아니다. 이 시간은 나에게는 피눈물의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앞으로 내가 더 열심히 해서 이 4년이라는 시차를 극복하게 된다면 보약 같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늦깎이 대리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다. 자신의 능력을 깎아내리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 기업 분위기가 개인을 위해 할애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없는 한, 회사에 아직 미련이 남아 있는 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지 않는다면 진정한 마음으로 상사에게 상의하고 변화를 주고 자신의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남들이 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인정을 받는 순간이 올 것이다. 직장생활에서 진정한 나의 멘토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터 놓고 얘기할 수 있는 대화할 수 있는 선임자가 있다면 보다 어려운 시기를 빠르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늦었지만 남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또 다시 '만년 과장'이라는 타이틀이 나에게 붙지 않도록 나의 능력과 주변 환경을 스스로 다스릴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의 대리들> 김성재·구본재 지음. 해바라기 펴냄.


태그:#책, #한국의 대리들, #직장인, #정규직, #인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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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PB로써 고객자산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사내 증권방송 앵커 및 증권방송 다수 출연하였으며 주식을 비롯 채권 수익증권 해외금융상품 기업M&A IPO 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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