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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질서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공고해 보였던 미국 단일패권체제의 종말을 예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냉전시대 라이벌이었던 러시아는 에너지 파워를 앞세워 국력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질서의 한축을 담당할 것이 유력시되는 중국은 급격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군사적, 외교적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인도 역시 미중관계의 균형자로 부상하면서 강대국화 되고 있습니다.

정치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유럽연합(EU) 역시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에 불만을 품으면서 독자성을 강화하고, 일본은 경제회복과 군사대국화를 지향하고 있으나 정치지도자들의 잇따른 망언으로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되는 분위기입니다. <기자 주>


▲ 테러와의 국제 분쟁에 관해 백악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부시 미 대통령과 외교안보팀(자료사진).
ⓒ 백악관 홈페이지

"우리의 적과 우방은 미국이 세계로부터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악(evil)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고립주의'라는 그릇된 안락을 거부한다."

미국 내에서 고립주의를 선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6년 연두교서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그는 이 연설에서 '고립주의'라는 표현을 4번이나 사용하면서 "미국이 그 길을 가면 위험과 쇠퇴를 피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부시의 발언은 고립주의에 대한 우려의 표현인 동시에 이라크 철군을 고립주의와 동일시함으로써, 이라크 철군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고립주의자로 비난하고자 하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었다.

이러한 화법은 이라크 철군 문제로 의회와 정면충돌하고 있는 요즘도 자주 나온다. 즉, 이라크 철군 요구는 '이적행위'이자 미국이 고립주의를 선택했다가 일본군의 기습을 받은 진주만 사태를 망각한 것이다.

물론 '이라크 신드롬'에 빠진 미국이 1·2차 세계대전의 전간기 때처럼 고립주의를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제국의 꿈을 안고 강행한 이라크 침공이 역설적으로 제국의 몰락을 앞당기고 있다는 징후는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아메리카 제국, '여러 강대국 중 하나'로

앞으로 미국은 '제국' 혹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지위에서 여러 강대국 가운데 하나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할 수 있고, "폭정의 종식과 민주주의의 확대"를 추구하며, 중국 등 경쟁자의 등장을 사전에 좌절시켜 21세기도 '미국의 세기'로 만들겠다는 이른바 '부시 독트린'이 역설적으로 제국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5만8000명에 가까운 미군과 500만 명의 베트남인의 목숨을 앗아간 베트남 전쟁은 미국 사회와 대외정책에 큰 후유증을 남겼다. 전쟁에 신물이 난 미국 국민들은 미국인의 목숨을 요하는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꺼려하게 되었고, 이러한 정서는 미국 대외정책을 지배하면서 '베트남 신드롬'이란 말을 남겼다.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은 직접 개입보다는 돈과 무기를 친미세력에게 제공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대리전쟁'을 선호하게 되었다.

미국의 이러한 대리전쟁은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칠레·앙골라·니카라과·엘살바도르·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이뤄졌다. 1980년대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이란 공격으로 발생한 전쟁 역시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베트남전 호치민시 꾸찌터널에는 전쟁 당시 쓰던 짚차가 숲 속에 아직도 그대로 있다.
ⓒ 윤성효
베트남 신드롬의 여파로 한 때 유행했던 '대리전쟁'의 방식은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중대한 국면을 맞게 되었다.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인 중동에서 이라크가 미국의 핵심적인 우방국인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이다.

1979년 이란의 '반미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이 중동의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도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후세인이 중동의 맹주를 노리고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은 직접 개입을 선택했다. 그리고 개입의 목적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축출해 '현상유지'를 재건하고 후세인 정권을 약화시키는데 두었다.

미국이 이전에는 전쟁을 일으키거나 개입하면 '완전한 승리'나 '무조건적인 항복'을 추구했던 것과는 달리 '제한 전쟁'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 부시는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축출한 직후, "우리는 베트남 신드롬을 극복했다"고 선언했다.

아버지가 극복한 '베트남 신드롬', 아들이 부활시킨 '전쟁 신드롬'

그러나 아버지 부시가 '베트남 신드롬'을 극복했다는 이라크에서 아들 부시가 다시 '이라크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미군 사망자 수의 차이이다. 1차 걸프전 때 미군 사망자는 약 300명이었으나, 2차 전쟁에서의 사망자는 2007년 4월 현재 3300 명에 달한다.

그러나 두 전쟁의 차이는 미군 사망자 수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 부시는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이라는 최소한의 개입 명분이라도 갖고 있었지만, 아들 부시는 대량살상무기 및 후세인과 알-카에다와의 연계라는 '거짓 명분'에 의존했다.

또한 아버지 부시는 '현상 회복'이라는 제한된 목표를 갖고 있었던 반면 아들 부시는 정복 전쟁을 일으켰다. 이러한 차이는 1990년대 미국과 21세기 초엽의 미국에 대한 상반된 이미지를 낳고 있다.

더욱 근본적인 차이는 그 결과이다. 1차 걸프전이 냉전해체 이후 미국 단일패권시대의 개막을 알린 전쟁이었다면, 2차 전쟁은 반대 결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1기 부시 행정부 때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을 지낸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은 "1차 이라크 전쟁으로 개막된 중동에서의 미국 시대가 2차 이라크 전쟁으로 그 끝을 재촉하고 있다"며 "중동에서의 미국 패권은 종말을 고했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 강행은 '온건한 패권 국가'이자 '현상유지' 세력으로서 미국 이미지에 치명타를 가했다. 이는 미국 단일패권주의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야기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 리더십의 쇠퇴와 국제사회의 미국에 대한 적대감 증폭은 미국이 그토록 자랑했던 '팍스 아메리카'에 대한 동의의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라크전'이 '베트남전'과 다른 결정적 그것

이라크 전 2003년 3월 20일 컬프만에 있던 미군함에서 이라크를 향해 첫번째 토마호크 미사일을 쏘아올리고 있다. 이라크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 AP 연합뉴스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지면서 베트남전과 비교하는 것이 유행이다.

둘 모두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선택에 의한 전쟁이었다는 점, 전쟁 상대방에 대해 무지했다는 점, 베트남에선 공산주의 저지를, 이라크에선 폭정 종식 및 민주주의 이식을 추구한 정치체제 교체가 전쟁의 목표였다는 점, 막대한 전쟁비용이 투입되고 미군 사망자가 크다는 점, 미국 사회가 극심한 분열을 겪는다는 점 등이 자주 거론된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세계질서의 맥락에서 볼 때, '베트남전 이후의 미국'과 '이라크전 이후의 미국'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자유진영'의 국가들은 베트남전 이후에도 미국에 등을 돌리지 않았다. 소련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미우나 고우나 미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라크전 이후의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시대 상황이 미국의 막가파식 일방주의와 군사패권주의를 눈감아줄 정도가 아니라는 것. 냉전시대의 소련과 같은 시급하고 중대한 위협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유진영' 국가들의 반미 여론이 대단히 높은 실정이다.

특히 냉전시대 미국의 가장 강력한 우방인 유럽연합의 반응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연합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여론뿐만 아니라 정부 및 국가연합 차원에서도 미국 단극체제에 대한 심각성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유럽 국가들이 베트남 전쟁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소련 봉쇄'라는 전략적 목표를 미국과 공유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는 달리,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공유된 전략 목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유럽연합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기를 들고, 미국에 가장 먼저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은 이러한 역사 구조적 특성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부시 이후의 미국은 어디로 갈까

오늘날 미국은 "이라크 주둔 미군을 늘릴 것인가 말 것인가", "언제 철수할 것인가" 등을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그러나 아직 철수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잘 거론되지 않는다. 물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핵심적인 목적 가운데 하나가 이라크라는 전략적 요충지에 미군기지를 확보하는 것에 있었던 만큼, 미국이 이라크에서 완전히 발을 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이라크 철수 이후 미국의 대전략을 둘러싼 백가쟁명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논쟁의 중심에는 부시 행정부의 제국주의적 패권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온건한 패권주의로의 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일부에서는 세계대전 전간기 때처럼 고립주의로 돌아가자는 목소리도 나오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이 고립주의를 선택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우선 민주당 스스로가 이라크 침공을 지지·협력한 당사자였을 뿐만 아니라 부시의 이라크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침공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고 있다. 이와 같은 민주당의 '찻잔 속의 차별성'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대외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을 것임을 예고한다.

무엇보다도 '부시 독트린'은 미국 대외정책의 '예외'이면서도 그 전통의 '반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1941년 진주만 사태와 동시에 미국이 개입주의와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 건설을 선택한 이후, 이러한 외교노선은 초당적인 특성을 보여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부시 이후의 미국이 무력사용과 국제기구 및 국제법 무시와 같은 일방주의 행태는 줄어들겠지만 그리고, 문제 해결 방식으로서의 협상을 주목하겠지만, 대외정책의 목표까지 수정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적일 것이다.

세가지 도전, 미국의 선택은?

▲ 이라크 전쟁 반대를 외치며 거리에 나선 정치인들. 오른쪽 부터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제 1서기,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 로랑 파비위스의 얼굴이 보인다.
ⓒ 박영신
그러나 제국주의와 고립주의 어디에선가 내려질 미국의 선택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도전의 힘은 크게 세 군데에서 나올 것이다.

첫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면서 미국 스스로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이라크 신드롬'이다. 이 문제는 이라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동 질서 전체에도 핵심적인 변수라는 점에서 미국은 어떠한 형태로든 상당기간 동안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있게 될 것이다.

둘째는 미국 대외정책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부정적인 여론이다. 여론의 약화와 지도력의 상실은 미국 대외정책의 정당성의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앞으로 미국 대외정책 수행의 상당한 걸림돌이 될 것이다. 미국이 다시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제와 지혜, 그리고 시간이 필요한데, 이것이 성공할지도 불확실하지만, 이 사이에 세계질서는 '팍스 아메리카나'와는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끝으로 세력균형의 재등장 조짐이다. 소련 몰락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가 지속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다른 강대국들이 적극적인 대미 세력균형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 등 미래 다극체제의 후보군들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세력균형을 시도하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1990년대 '세력균형의 부재 속의 팍스 아메리카나'는 분명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태그:#이라크, #전쟁, #조지 부시,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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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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