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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경찰서에 있는 기자실. 수습기자들이 공동으로 쓰는 침대와 사물함, 책상이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 취재기자와 담배.
ⓒ 권우성
수습기자 A는 잠이 많았다. 밤 10시께, 삼겹살이 익는 불판 앞에서 A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서너 시간의 수면으로 스무 시간의 경찰 붙박이 취재를 견딘 지 한달이 조금 지난 상태였다. 수습기자들에게 부족한 건, 세상에 대한 지혜와 기자로서의 근성만이 아니었다. 우리에겐 잠이 필요했다.

선배 기자 B가 A에게 주의를 줬다. "팀장이 말하고 있는데 수습이 왜 졸아. 정신 차려. 술 한 잔 받고." 그러나, 소주는 마시는 그대로 수면제가 됐다. A는 눈을 떠 허리를 세웠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머리를 밥상 위에 처박았다.

B는 이번엔 보다 '강력하게' A를 채근했다. 나를 포함한 동료 수습기자 모두가 긴장했다. 그때 또다른 수습기자 C가 나서 선배 B에게 항의했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취지였다.

선배 B는 그런 C를 거칠게 몰아붙였고, C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언성이 높아지더니 둘 중의 누군가가 상대에게 통첩했다. "너 나와." 식당 앞에서 실랑이가 이어졌다. 멱살잡이가 벌어졌다. 선배 몇몇과 수습 몇몇이 달려들어 이를 말리느라 다시 난장이 펼쳐졌다.

바야흐로 1997년의 어느 겨울밤, 시장터 삼겹살집 앞에 바리케이드를 긋고 일군의 '일진 기자'와 일군의 '수습 기자'는 만취 상태의 드잡이를 벌이며 저널리즘의 본령을 제대로 점령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최근 일어난 이른바 '선배-수습 기자 쌍방 폭력사태(두 당사자의 주장을 모두 수용하여 일단 이렇게 부르기로 하자)'를 접했을 때, 나는 10년 전 그 겨울을 떠올렸다. '두 사람이 전투를 끝내 극한까지 밀고 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그들은 앞으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그 전투가 남긴 상처로 신음할 것이다.

1997년 전의 드잡이, 2007년의 '폭력사태'

언론사에서 그런 '전투'는 종종 발생한다. 일진-수습 기자 사이에 펼쳐지는 갈등은 기자 집단 전체에 내장된 '휘발성 강한' 긴장 관계의 한 부분일 뿐이다. 매일처럼은 아니지만 평균 잡아 한달에 한번 꼴로 거칠고 강력한 언쟁이 벌어진다. 언쟁을 '거칠고 강력하게' 만드는 요소에는 욕설, 반말, 모욕, 폭력 등이 있다.

"D 팀장 말이야. 어제 밤에 E 부장하고 한 판 했어." "이야기 들었냐? F 국장이 아침 편집회의 때 G 부장한테 재떨이를 던졌대." "야, 사회부 H 기자 있잖아. 팀장 앞에서 신문을 찢었대. 이런 식으로 신문 만드는 당신이 무슨 데스크냐면서."

특히 '기자 지망생'들은 기성 언론의 이런 문화에 대한 '공포'를 토로한다. 언론사의 선-후배 관계를 군대의 그것과 비교하고, 그 낙후성을 성토한다. 맞는 이야기다. 신문과 방송을 막론하고, 언론사는 군대·경찰·조폭 등의 집단이 지닌 위계구조와 마초문화를 품고 있다. 당연히 그건 구시대의 유물이고 청산해야 할 잔재다.

▲ 지난 2005년 8월 정부의 '부동산정책' 발표 기자회견에서 사진기자 수십명이 기자회견장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가운데 사회자가 놀란 표정으로 기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번 '쌍방 폭력사태'에 대한 평가도 그 맥락에서 할 수 있다. "요즘 세상에 말 안 듣는다고 윽박지르고 때리는 조직이 어디 있나. 순 양아치 같은 기자 놈들." 그렇게 빈정거리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거린다. 이번 사태에 대해선 그런 평가가 나와도 어쩔 도리가 없다.

다만 언론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전투'와 관련해 한 가지를 더 짚어야 한다.

언론사에서 벌어지는 거칠고 강력한 언쟁에는 기사의 방향, 내용 등에 대한 가치관의 충돌이 언제나 개입된다. 어느 기사를 어떤 방식으로 다룰지에 대한 논쟁이다. 기사 가치의 평가를 둘러싼 논쟁은 다시 소속 매체의 전반적인 보도 방향, 한국 언론의 주류적 논조, 한국 사회의 현실 등에 대한 논쟁과 연결된다.

기사 논쟁이 매번 거창한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까지 번지지는 않지만, 기사 하나에 대한 충돌은 기자의 본분, 언론의 구실, 사회의 현실, 세계의 흐름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쇄 고리로 무한히 뻗어가기 마련이다.

조폭질서와 마초문화, 고쳐야겠지만

두 당사자의 '증언'을 토대로 한 일련의 보도에는 분노와 흥분과 억울함이 생생히 드러난다. 여기서 그 사실 관계를 따질만한 능력이 내겐 없다. 다만 '주먹질'을 잠시 뒤로 제쳐놓으면, 그들 사이에 흘렀던 긴장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 긴장 역시 언론 또는 기자에 대한 세계관의 충돌과 관련이 있다.

선배 기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기자가 된 이상, 이제부턴 대학 시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해. 그래야 기자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어." 후배 기자의 항변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의 목탁이 되겠다면서 언론 조직 자체는 여전히 봉건적이라는 게 말이나 됩니까."

▲ 지난해 9월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한 서울 종각 지하상가에서 방독면을 휴대한 사진기자가 취재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 두 논리 사이에 한국 언론의 현실과 언론인의 과제가 그대로 녹아 있다.

'기자 구실'이란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그것은 전투적인 것이다.

따지고 들자면, 어떤 권력자도 기자에게 고분고분 사실을 말할 의무가 없다. '국민의 알 권리'를 곧잘 들이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후적으로 완성되는 규범일 뿐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빌미로 기자들이 공적, 사적 공간을 마음대로 헤집고 다녀도 된다고 정해놓은 법률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기자는 알아내야 한다. 그런 일 하려고 기자가 된 것이다.

좋은 집안에서 자라 풍요롭게 성장했고 좋은 대학에 가서 성실히 공부했으며 나름의 사회과학적 소양까지 갖췄다고 해서 기자 구실을 해내는 것은 아니다. 권력이 쳐놓은 첩첩의 장막을 단신의 힘으로 뚫고 들어가 결정적 사실을 건져 올리는 '전투력'이 있어야 기자다.

기자 구실은 무엇일까

언론계의 '선배 세대'가 요즘의 '후배 세대'에 대해 갖고 있는 우려가 이와 관련돼 있다. 갈수록 똑똑한 젊은이들이 언론계에 진입하는데, 막상 취재현장에서는 '파이팅'이 부족하다. 권력자·유력자·명망가들이 제공하는 자료를 약간의 글 솜씨로 다듬어 전달하는 일에 자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대변인'의 일이지, 기자의 일이 아니다.

언론계 선배들은 갈수록 초조해지고 있다. 이러다간 모범생 기자들만 언론계에 득시글거릴 듯 하다.

'기성 언론 조직'의 문제는 무엇인가. IMF 이후 신자유주의 경쟁이 언론계에 확산되면서, 지금 한국 언론기업은 '언론'이 아니라 '기업'의 사활을 걸고 싸우고 있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언론 정체성이 중요한 게 아니다. 공중파 방송사, 보수 언론, 개혁 언론, 인터넷 매체 등등이 각각의 제한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조직이 사활을 건 전쟁을 벌인다면, 그 구성원의 '자유의지'가 들어설 자리는 좁아지기 마련이다. "지금 네 생각이 중요하냐? 회사가 망하게 생겼는데. 회사 망하면 너 어디 가서 기사 쓸 거야?" 그렇게 각 언론기업은 기자를 '복제'한다. 담당 기자가 바뀌어도 그 매체가 생산하는 특정 분야의 기사 논조는 똑같다.

언론계의 '후배 세대' 및 '미래의 언론인'들은 이 현실이 두렵고 징그럽다. 선배들은 곧잘 기자의 본분과 기사의 필수요건을 들어 내 기사를 틀어막는다. 말 그대로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은 '데스크의 얼굴을 하고' 젊은 언론인들을 억누른다.

언론계의 '후발 세대'는 결국 이 긴장과 정면으로 대면해야 한다. 기자 노동의 숙련 과정은 해당 매체의 조직논리와 관성에 의한 복제 과정이기도 하다.

수습들은 더 고통스러워야 한다

▲ 지난 2005년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교수 연구실앞에 과열취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포토라인이 설치된 가운데 여러명의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렇다고 해서 기자 노동에 숙련되기를 거부해서는 제대로 된 기자 노릇을 해낼 수 없다. 앞으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언론의 '공채 제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공채 제도가 있는 한 짧은 시간 안에 노동의 숙련도를 높이려는 도제식 수습 교육은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전투'는 계속 될 것이다. 일부이긴 하지만 합리적인 선배 기자들은 기자 근성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말랑말랑해서는 기자를 할 수 없다. 강해야 한다. 일부의 합리적인 후배 기자들은 한국 언론의 부당한 조직논리를 극복하려 한다. 이런 식으로 생활해서는 '부속품'이 될 뿐이다. 그건 기자가 되려했던 목적과도 배치되는 일이다.

오히려 최근 언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이런 종류의 '전투'가 갈수록 줄어드는 데 있다. 언론 조직이 그만큼 '민주화'됐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기자의 근성을 요구하는 언론조직의 풍토가 사라지고 자유의지와 주관을 내세우는 기자의 자존이 축소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 결과는 기성체제에 고분고분해지거나 자신들의 사적인 이해만 다투는 언론기업들의 득세다.

따라서 이번 사태에 대한 질문의 방식은 조금 변화될 필요가 있다. 군사적인 언론계의 수습 교육 문화가 문제라고?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언론계의 수습 교육은 지금보다 훨씬 더 혹독해지는 게 옳다. 수습기자들은 지금보다 더 창백한 얼굴로 더 고통스럽게 그 시절을 보내야 한다.

20대 중후반에 사회에 진출해 아버지뻘인 유력자들을 제 마음대로 들었다 놓았다 하는 직업이 언론인 말고는 없다. 한국 사회 대부분의 특권적 직업은 나름대로는 상당 기간의 '수련 과정'을 거쳐 그 권능을 얻는 반면, 기자는 수습 딱지를 떼는 즉시 그 권능을 갖는다.

권한에 부합하는 자질을 갖추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자질을 키우는 시간이 수습기자 시절 밖에 없다면, 사법연수원생, 인턴의사, 훈련병보다 더 농밀하게 '단련'되는 게 옳다.

'그날을 위해' 수습을 견뎌야 한다

다만 욕먹고 잠 덜자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단련의 핵심일 수는 없다. 현실을 파고들고 훌륭한 글을 쓰고 관련 지식을 탐구하며 삶의 본질을 직관하는 감수성을 갖추는 데, 수습 교육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미래의 언론인'들은 이 수습 기간을 그런 방식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위선을 내면화해서는 안 되지만, 그 위선을 인내하는 것까지가, 기자로서 세상과 대면할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다. 선배의 강압적 언행을 정면으로 치받지 말고, 그 선배의 터무니없는 기사를 정면으로 들이받아라. '그날을 위해' 수습 시절을 견디고 언론계의 모든 선배들을 '반면교사'로 삼아라.

폭력 사태에 연루된 두 사람이 애초 펼치려 했던 논쟁이 언론인의 본령에 대한 것이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그 '선배'가 애초부터 폭력적인 성향이 강했거나, 그 '후배'가 처음부터 대책 없는 반골의 화신이었을 리 없다. 주먹이 오가지만 않았다면, 두 사람은 이 논쟁을 토양 삼아 괜찮은 언론인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두 기자가 그 논쟁의 합리적 핵심을 스스로의 삶을 통해 두고두고 입증해 보였으면 좋겠다.

그들이 다퉜던 이유가 기성의 관행에 대한 옹호나 개인적 희생에 대한 거부가 아니었음을, 기자의 본분에 대한 강조와 기자의 자유의지에 대한 호소 때문에 잠시 다퉜음을, 그 덕분에 좋은 기자로 서로 성장할 수 있었음을, '언론인'으로서 두고두고 증명해 보였으면 좋겠다.

그런 기회가 그들에게 다시 주어질 수 있기를 앙망한다.

우리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지난 3월 31일 새벽 한미FTA 협상장 기자실 간이천막에 비가 새자 양동이를 설치해서 빗물을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0년 전, 겨울밤의 이야기가 궁금할 것이다. 묵묵히 사태를 지켜보던 팀장은 전원을 신문사로 데려갔다. 나를 포함한 수습기자들은 신문사 옥상에 '집합'했고, 선배 기자들은 또 다른 곳에 모여 대기했다. 팀장이 우리더러 뭐라고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밤, 신문사 옥상 위에서 시퍼렇게 빛나던 별들이 생생하다.

그 때 나는 결심했다. 이걸 견디겠다고, 대신 이 다음에 오는 것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반드시 정면으로 맞서겠다고. 기자로서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 선배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을 일단 치러내겠다고, 대신 그 시민권으로 나는 선배들의 위선과 싸우겠다고.

기자가 된다는 것은 경력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날 밤, 절절히 느꼈다.

그 치기어린 열정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 다만 폭풍 같던 수습 시절을 치른 뒤에 나는 제대로 된 수많은 '전투'를 치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제 기자가 된 나의 '수습 동기'들은 그날 밤의 바리케이드를 아직까지 걷어내지 않았다. 기성 언론의 관행과 맞서는 우리의 전투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 안수찬 기자는 현재 <한겨레>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1997년 입사해 민권사회부, 체육부, 여론매체부, 정치부, 문화부 등을 거쳤습니다.


태그:#기자, #수습기자, #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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