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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이방인, 런던의 안개

▲ 루브르 박물관에서 필자,1999. 10.15
ⓒ 이재기
"파리의 밤"을 한마디로 압축하라면 그것은 "에로티시즘"(eroticism)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늦은 밤 인적이 드물수록 그것은 오히려 더 강렬해지고 있었다. 가로등의 창백한 불 빛, 19세기의 가스등이 달린 카페, 돌로 만들어진 페이브먼트, 귀가 하는 여자들의 스카프, 루드렉의 캉캉 춤...

거리 이름도 한결같이 에로틱 했다. 샹제리제, 에또와르, 몽테뉴, 상뜨노레, 몽마르뜨르, 앙발리드... 지하철의 포스터는 흑인여자를 모델로 하여 노골적으로 란제리를 선전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 구석구석까지 탐험하자!" Explore every inch of her body!

그러나 "파리의 낮"을 한마디로 압축하기는 어렵다. 오르세 미술관과 바스티유가 있던 자리, 세느강의 저녁노을과 상 제르망의 뒷골목을 합쳐 보지만 좀처럼 이미지가 모여들지 않는다. 구상과 추상을 합친 세계처럼. 세느강변의 산책길은 보슬비가 내릴 때가 더욱 좋았다. 햇빛이 눈부시면 세느강은 죽어버리고 강변의 양 쪽을 줄 잇는 중세 양식의 건축물만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른 아침이었다. 보슬비가 내리는 데도 강변의 벤치에서 우산도 없이 한 모로코 남자가 홀로 앉아서 흐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30대 쯤 일까, 남자는 누추한 차림이었다. 주위에는 팝콘 봉지가 흩어져 있었다.

모로코 사람들은 모로코 사람들만의 슬픈 표정이 있다. 백색도, 흑색도, 황색도 아닌 짙은회색이랄까. 얼굴은 어딘지 영양실조 같은 느낌을 주고, 눈빛은 간절하다. 모로코 남자는 그 이름도 가슴저리는 도시, 카사블랑카(Casablanca)에서 왔고, 목이 날아가면서 모로코의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덜한 나라라고 알려져 있다.
▲ 루브르 박물관 앞
ⓒ 일본의 유럽 여행 안내지
자유, 평등, 박애! 그것은 1789년, 프랑스혁명이 내 걸었던 캣치 프레이즈(Catch Praise)였다. "자유와 평등은 이데올로기로 바뀌면서, "자유"는 서쪽으로 영국으로 건너가서 대서양을 가로 질러 미국으로, 다시 서진하여 태평양을 넘어서서 일본을 거쳐, 지구를 반 바퀴 푸르게 물들이고는 북위38선 남쪽에서 멈추어 섰다.

한편, "평등"은 동쪽으로 동 유럽을 거쳐 러시아를 지나, 중화 인민 공화국으로 지구를 동쪽으로 반 바퀴 붉게 물들이면서 북위 38선 위쪽에서 푸른색을 차단했다. 유일한 분단국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그렇게 태어난다. 재일교포 작가, 정경모(鄭敬模)는 그래서 "오늘의 남북한의 문제는 프랑스 혁명이 던진 세계사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일찍이 글을 쓴 바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으레 묻는다. 코리아에서 왔다면, 남(Sud) 이냐, 북(Nord)이냐고.

파리는, 파리를 찾는 모든 방문객들을 결국은 이방인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내 쫒고 만다. 런던은, 비행기로 도착하는 것 보다는 파리 발 유로스타(Euro star)를 타는 게 좋았다. 도버해협을 넘어서고 애쉬포드(Ashford)라는 작은 마을을 통과할 때, 차창 밖으로 멀리 목장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영국의 양들은 점잖은 걸까... 한동안을 달리면서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양들은 한 마리도 움직이질 않고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몇 번을 통과 했지만 양들은 언제나 요지부동이었다.

"엔클로즈 무브멘트"(Enclose Movement)! 양들이 저렇게 순했기 때문이었을 거야. 울타리를 둘러치는 중세 기사(騎士)의 모습이 떠오른다. 유로스타는 워털루 역에 3시간 후에 도착했다.

▲ 버킹검 궁전 앞의 사열
ⓒ 일본의 유럽 여행 소개지
영국의 위대함은 런던의 입국장(入國場)에서의 "편 가르기"에서 엿 보인다. 유럽인(European)과 기타(The others)로만 구분되어 있었고, 자국국민을 "유럽인"에, 미국인들은 "기타등등" 에 집어넣어 줄을 세우고 있었다. 영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동양인들 속에 줄을 서있는 키 커다란 "기타등등의 미국인"의 모습이 어쩐지 외로워 보였다.

세계는 오직, "유럽과 기타가 있을 뿐이다!"

▲ 윈저성
ⓒ 일본의 유럽여행 소개지
그 점에서 세계의 유일한 공항이었다. 일본처럼 내국인(일본인)과 외국인만을 구분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영국은 영국들인의 아이덴티티(Identity)가 매우 복잡한 나라이다. 나를 영국인(British)라 부르지 말고 잉글랜드 인(English)라 불러 달라. 10명중 6명은 브리티쉬라고 말하지 않으며 스코틀랜드는 80%, 웨일즈는 70%가 유나이티드킹덤(United kingdom)을 거부한다.

사실, 런던을 좋아하기는 힘들다. 짙은 안개, 비 내리는 우울한 거리, 새벽 2시까지도 훤하게 밝은 밤, 맛없는 음식, 심지어 꼼짝 않고 서 있는 버킹검 궁전의 경비까지도 여행객의 일정을 지치게 만든다. 그래서 언제나 한식집을 찾게 되는 저녁이 되어 버린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건 불행이었다.

"영국은, 런던을 벗어 날 때 비로소 영국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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