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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왔다. 다음 날 해인사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여행사에 취소 전화를 하니 여행사 여직원이 난리다.

"밥을 다 맞추어 났으니 절대 안 됩니다."

손해는 보는 건 그쪽이건만 공연히 죄진 마음에 기가 죽었다. 비가 오건 태풍이 불건 가기로 작정하고 밤을 보냈다. 지난 29일(금) 아침, 하늘은 '어제는 놀랬지 용용'하며 햇살을 비추었고, 구름은 유유히 하늘을 떠다녔다. 평생 처음 가는 해인사 길이라 신바람이 났다. 서울에서 초·중·고·대학교를 나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수학여행을 가본 일이 없다. 가장 멀리 간 곳이 소요산이었으니까.

갇혀 지내는 남편에게 아내가 하루의 휴가를 주며, 봄나들이를 다녀오라고 했다. 홀홀 떠나는 길에 밥 먹여주고 태워주고 입장료 다 묶어 단돈 25000원이다. 오전 8시 잠실에서 떠나서 밤 9시에 잠실로 돌아왔다. 바쁜 하루 여정이 꿈같다. 무심코 갔던 길에 무심히 보았던 춘분 연꽃이 횡재였다.

▲ 춘분 추분 오후 3시 경 단 3분만 피는 연꽃을 춘분이 아닌데도 보니 횡재다.
ⓒ 황종원
서울 잠실에서 떠난 여행사 버스는 막히지 않고 달려 점심 때 해인사에 닿았다. 어디서나 보는 음식점과 어디서나 보는 산채 비빔밥, 어디서나 보는 음식점 간판은 여기서도 똑같았다. 함께 온 20명 중 남자는 2명이다. 나는 낯선 여인들 틈에서 적당하게 주눅이 들어 숨죽이면서 밥을 먹었다. 풋나물이 없다는 아낙네의 불만에 음식점 아낙네는 아직 안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믿고 먹으면서도 왠지 섭섭하다.

다 먹고 나니 함께 밥을 먹은 한 여인이 자신이 먹는 영양제 2알을 준다. 혼자 떠도는 영혼에게 적선이다. 근처 상점에서 내준 봉고버스를 타고 다들 홀연히 사라진다. 나 혼자 터벅터벅 해인사로 향한다. 절에 가면 종소리 염불 소리가 랩보다 좋다. 시끌벅적 랩엔 골이 흔들리지만 스님의 청아한 목청과 목탁 소리는 첫아기 품은 어머니의 가슴 소리와 같다. 염불도 차분차분 정적이라 송광사 염불은 서편제며, 기운 괄괄 동적이라 해인사 염불은 서편제란다. 선의 세계에 오고감이 없다하니 정중동이고 동중중이지. 2시간 30분만 해인사를 보라는 여행사 여직원의 출발 시간 예고를 머리에 담는다. 바쁜 걸음이니 염불 소리 들을 기회는 없다.

불교 조계정에 5대 총림이 있으니 총림은 이렇다. 부처의 마음을 찾는 선원으로 선방, 부처의 말씀을 배우는 강원으로 승가대학, 부처의 행동을 익히는 율원으로 계율 교육기관을 갖추어야 총림이다. 5대 총림의 가풍은 다르다. 해인사는 활달, 송광사는 엄격, 통도사는 유연, 수덕사는 선농 일치, 백양사는 임제 선풍으로 개성을 보인다. 5인 5색이니 5대 총림에 5색 선풍이다.

해인사하면 팔만대장경에다 스님 하면 성철스님이 떠오른다. 봄은 봄이나 아직 꽃이 피지 않은 해인사는 아직 꽃 보기는 이르다. 호젓하니 걷기 좋다. 해인사를 평생 못 가 본 남편을 여기까지 보내준 아내에게 감사하지만, 혼자 걷는 길은 조금 쓸쓸하고 적막하다. 꽃이 필 때는 차들로 가득할 주차장이 지금은 적막하다.

차도 별로 없는 해인사로 오르는 길은 사람 가는 길과 차가 다니는 길로 나뉜다. 사람이 가는 길 쪽은 계곡이다. 계곡의 어느 바위엔 잘 쓴 글씨로 뜻 깊은 말씀이 담겨 있는데 마치 다른 바위처럼 처박혀있는 자세로 여기 저기 있다. 가는 길마다 나무에는 이름표를 달았건만 계곡의 어느 바위는 제 몸에 쓰인 글이 무엇이며 어느 시대쯤 된다는 안내의 말씀 하나 없다. 요즘 시대에 벽이나 곳곳에 징그럽게 많게 개발 새발로 쓴 '영자는 내 사랑'이라고 쓰는 순간에 사라지는 사랑의 약속은 전혀 아닐 터.

"조상님 용서하소서."

우리는 한동안 먹고 살기 바쁘다고 잊었고, 지금은 더 잘아도 임의 글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답니다. 하필 계곡 바위에다 글을 새기시는 수고를 하시거들랑 큰 돌을 다듬어 비석이라도 세우시지 않고요. 우리는 요새 한자를 몰라서 어른들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전혀 모릅니다. 나는 속으로 조상님들께 송구한 마음으로 구시렁대며 길을 간다. 얼굴이 뜨거워지고 잔등이 서늘해진다.

하긴 해인사 입구를 들어설 때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계곡에 바위는 그냥 버려놓고, 새로 짓고 있는 성보 박물관에는 무엇을 전시하려는 것인지. 지역의 자원 봉사원을 뽑아서라도 흩어져있는 문화유산을 지키는 지킴이 정신을 먼저 지어야겠다.

▲ 거창한 박물관은 좋으나 계곡에 널린 음각한 바위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
ⓒ 황종원
해인사를 오르는 길이 쉽다.

포장도로라서 가다 쉬다 할 일도 없다. 주차장에서 10여분 걸으면 만나는 계곡은 '가을에는 단풍이 참 붉어 물조차 붉다'하여 홍류동 계곡이다. 해인사는 가야산에 등을 기대고 매화산을 앞에 두고 있다. 아주 깊은 골 산 속에 자리하여 임진왜란을 피해 갈 수 있었지만 이제 차가 바로 절 앞까지 들어가니 시내나 다름없어 신비감이 없다. 편하게 가는 길은 보람도 없다. 봄은 봄이되 봄이 아닌 듯 풍경이 밋밋하니 가을의 단풍을 생각하면서 지난다. 일주문 다다르기 전 해인사 사적비며 공덕비, 자운대율사 사리탑과 성철스님 사리탑이 있다. 단 벌로 세상을 살아 온 성철 스님의 사리탑이 대단해서 후대의 입들이 가만있을 것 같지 않다.

아내가 처녀 시절에 힘들게 고불고불 올랐다는 길은 이제 없다. 뚜벅 뚜벅 걸어가면 숨 한 번 찰 일 없는 해인사 일주문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옷깃을 바로 잡아야한다.

▲ 속인이 일주문을 들어설 때는 잠시 세속을 잊자
ⓒ 황종원
절의 제 일문으로 절의 위용과 기품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일주문은 모든 중생이 성불의 세계로 나아가는 첫 관문의 상징이다. 일주문은 문의 기둥이 양 쪽에 하나씩이다. 해인사의 일주문은 홍하문이라고도 한다.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고 주위의 경치와 어울림이 뛰어나서 절들의 일주문 중에서도 가장 이름이 났다. 일주문 정문의 현판 글씨 '가야산 해인사'는 근대 서가의 대가 해강 김규진의 글씨다. 해인사로 올라가는 길가의 조그만 연못 영지에는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전설로 녹아있다. 해인사의 건물에 대한 소개는 해인사 팸플릿을 참고하면 편하다.

열병하는 병사 같은 천년 노목들을 따라 가면 두 번째 문인 봉황문이 나타나니 이 문을 천왕문이라고도 한다. 큰 절에는 천왕문, 사천왕문 또 금강문으로 불리는 문이 있어 이 문안에는 돌이나 나무 등 조각되거나 사천왕상이 모셔진 탱화가 있게 마련이다. 사천왕은 욕계 육천 가운데 사왕천에 머물러 천상으로 들어오는 여러 착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선신이다. 수미산의 사방에 위치하여 악한 것을 멸하며 불법을 옹호하려는 서원의 산문 입구에서 수문역과 도량 수호 역을 맡는다.

▲ 사천대왕은 잡귀들의 범접에 호통친다
ⓒ 해인사
▲ 적선의 동전이 사천왕 앞에 쌓여간다
ⓒ 황종원
사천왕의 탱화 앞 작은 구덩이에는 오가는 이들이 두고 간 동전과 천 원짜리가 쓸쓸하지 않을 만큼 있다.

일주문과 봉황문을 들어서면 해인사의 제 3문 해탈 문이다. 중문이며 일반 사찰의 불이문에 해당한다. 해탈 문을 지나면 불법의 세계다. 주객, 세간과 출세간, 선악, 시비, 생사 등 대립되고 상대적은 초탈한 불이법문의 세계인 삼존불을 모신 곳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일주문에서 해탈 문까지 가는 동안 33계단을 밟는다. 도리천 33천의 궁을 뜻한다. 해인사의 모든 건물의 중심에 구광루가 있다. 그 이름은 화엄경의 내용에서 따왔다. 부처님께서 아홉 곳에서 설법을 하시기에 앞서 백호에서 광명을 놓으셨다. 예전에는 큰 스님들만이 법당 출입을 하고 일반대중들은 누각에서 예불하고 설법을 듣기 위해 지워졌다.

3층 석탑 정중탑은 해인사 창건 당시 신라말기에 세워졌다. 높이 약 6m에 3층기단이다. 마당의 동쪽에 약간 치우쳐 섰으니 판전 옆으로 통하는 바람골인 좌청룡이 허하니 지리적 균형을 풍수 지리적으로 맞추었다. 판전 건물은 바람이 스쳐지나가도록 서남향이다. 주변 어느 곳에서도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배치다. 대적광전은 화엄경에서 최고의 부처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전이다. 처음에는 비로전이라 하였고 14세기 절을 중창할 때 대적광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다층탑을 앞세우고 봄의 햇살 속에 대적광전이 당당하다
ⓒ 황종원
▲ 팔만대장경이 보존되어있는 장경판전
ⓒ 황종원
해인사에 들어오면 팔만대장경을 꼭 보려고 작정했다. 팔만대장경에 담긴 내용을 모르면서 머릿속에 담긴 생각은 호국 경판이며 나무 경판이며 긴 세월에 병란의 참화에 꿋꿋한 기개를 흠모하였기에. 마치 고고한 어른을 뵙는 기분으로 팔만대장경이라는 현판을 단 장경판전 앞 첫 계단 앞에 섰고, 감히 더 이상 올라서지 못했다. 예까지 오면서 어디선가 흘낏 본 팔만대장경을 볼 수 없는 기간이라고 쓴 팻말이 마음에 걸려서다.

장경판전은 13세기에 만들어진 해인사의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여기에 대장경판 8만 여장을 보존하고 있다. 장경판전은 정면 15칸의 큰 건물을 남북으로 나란히 있다. 남쪽의 건물은 수다라장, 북쪽의 건물은 법보전이다. 동쪽과 서쪽에는 작은 규모의 동서 사간 판전이 있다.

건물은 참으로 간결한 방식이다. 필요한 보존 기능만 있을 뿐 장식적 태깔은 전혀 없다. 앞 뒤 창호의 위치와 크기가 서로 다르다. 바람이 잘 흐르고 실내의 온도가 제대로 지켜지도록 판가의 진열 장치 등이 과학적이며 합리적이다. 기계장치를 전혀 쓰지 않은 자연의 흐름이 시간처럼 흘러간다.

이 판전에 보존되고 있는 8만1340장의 대장경판은 글자 수가 자그마치 5200만 자로 추정된다. 책으로 엮으면 6791권이 된다. 글자 하나하나가 오자 탈자 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 현존 대장경 중에서 가장 오래고 완벽한 내용으로 우리의 문화유산이며 세계의 문화유산이다.

팔만대장경은 불교의 경·율·논의 삼장을 집대성하여 세계 불교 연구의 귀중한 문헌으로 일본이 신수대장경의 표준이며, 중국에 역수출되고, 영국·미국·프랑스·독일 등에도 전해져 세계 불교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서사간판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교경전은 국가에서 새긴 고려대장경판과는 달리, 고려시대에 사찰에서 새긴 고려 각판이다.

온 김에 팻말 하나에 기가 죽을 수 없는 노릇이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계단의 의미를 모른 체 힘들게 올라선다. 오르고 보니 경판이 있는 창고 안에는 못 들어 가되 창으로는 볼 수 있다. 입구를 지나 오른 쪽 창고는 굳게 자물쇠를 잠가 놓았다. 다만 빈틈으로 안식을 취하고 있는 경판의 무리만 보인다. 이 대단한 경판을 삼엄하게 지킬 경비원은 한 사람이다. 흉흉한 요즘 시대에 화염병을 던질 수도 있고, 담뱃불을 던질 수도 있다. 여기를 지키는 폐쇄 회로 카메라는 있는지, 있다면 경찰서와 연결되어있는지, 누가 무슨 일을 저지르기 전에 사전에 막을 인력은 어디 있는지, 승방에서 도 닦고 있는 스님들은 평소에 산의 정기를 마시고 기운이 당찰 터이니 일이 생기면 득달같이 나서는 5분 대기조는 되어있는지 등 두루 두루 궁금할 만큼 경비가 참으로 허술하다.

수다라장에는 이런 팻말이 있다. 사진 촬영은 되나 비디오 촬영은 안 됨. 사진과 비디오 겸용을 들고 온 나는 잠시 주춤한다. 혹시 경비원에게 꾸지람이라도 들을 듯 하여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 막상 들어가 보니 다른 사람들은 디지털 카메라로 비디오를 찍고 있다. 카메라를 찰칵 하고 찍는 자세이나, 비디오는 카메라를 들고서 한 바퀴를 빙 돌면서 찍는 자세부터 다르다. 요새 카메라는 디카와 비디오카메라의 차이가 없다. 디카에 비디오 기능이 있고 비디오카메라에 디카의 기능이 있다. 나는 경비원에게 다가가서 양해를 구한다.

"이 카메라는 보기는 비디오이나 카메라 기능이 있어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도 되겠습니까?"

그래서 찍은 사진이 수다라장의 연꽃이다. 나는 모르고 지나치던 참이었다. 마침 지나던 때는 마침 구름이 지나가고 있어서 수다라장의 문턱을 넘어서 아무런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경비원이 마침 그때 지나가는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하는 소리를 들었다.

"1년에 두 번 연꽃이 핀다오. 해가 나올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고 가시오. 이런 경우는 아주 힘들다오."

해가 들고 꽃이 핀다. 바로 나는 사진을 몇 방을 찍었다. 무심코 들어서는 50대 아줌마들에게는 아줌마의 낡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해인사에 와서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풍경 하나는 있어야 한다면서…. 알고 가야 보이게 마련이나 알고 가는 일이 몇 번이나 되는지.

막상 오고 싶은 곳에 와서도 설명을 해주는 도우미가 없다. 해인사 규모의 절에 신자 또한 많으려니 입담 좋고 재담 좋은 사람들이 요소요소 사찰의 역사를 설명을 해주는 적선이 기다려진다. 어느 절에 가서도 그런 대접을 받은 기억이 없다. 알아서 공부하고 알아서 배워가라는 뚝심이다.

법의 성품 원융하여 두 모양이 본래 없고
모든 법이 동함 없이 본래부터 고요해라

신라 의상스님 팔만대장경의 가르침을 30개의 싯귀로서 함축하여 해인도 도안의 선을 따라
비로자나 부처님의 덕상과 공덕을 나타내는 진언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을 외며 선남선녀들이 구광루 앞마당에 빙글 빙글 돈다.

하나에 모든 것이 들어있고 모든 것에 하나 있어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니라

스님의 말씀이나 경전의 말씀은 언제 들어도 그럴 듯하다. 그런 말을 나오는 깨달음이 도통한다 했던가. 가다가 허리춤을 풀 일이 있어서 해우소에 가니 네모난 종이가 붙어있다. '進一步' 소변을 보기위한 진일보가 익살맞다. 무지한 중생을 위한 안내에도 진일보 정신이 진지하게 필요하다. 안내가 진일보하기 전까지 내 자신이 진일보다. 해탈문을 나서면서 일주문을 바라보며 나선다.

▲ 해탈문을 지나 다시 일주문 쪽 속세로 나아간다
ⓒ 황종원
해인사 경내에는 꽃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으나 해인사를 떠나 10여분 아랫길에 벚꽃이 팡팡 터지고 있다. 4월 초에는 꽃이 피고 지면서 꽃바람 속에 봄은 떠나리라. 늘 그러하듯이 올 때처럼 가리라.

덧붙이는 글 | 다음날 30일 토요일에는 다시 비가 왔다. 연꽃을 보는 것이 무슨 복을 주고 아니고를 떠나 여행길에 좋은 날씨를 만나기가 천운이고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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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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