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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금릉(金陵)에 내렸다. 금릉은 지금의 공식 지명이 아니다. 하지만 이백의 시를 좋아한다면 이 지명에 금방 정이 들 것이다. 여산(廬山)이나 강남(江南) 등 이백의 시에 익숙한 곳들이 있다. 지금의 지명으로는 난징(南京).

세 번째를 맞는 '김풍기 교수와 떠나는 한시 기행'의 이번 첫 시작점은 금릉, 즉 난징이다. 기자가 1998년 첫 중국 취재를 시작해 이후 몇 번을 들렀지만 그저 객처럼 지났던 곳이다.

▲ 푸지먀오 앞을 지나는 친후와이의 전경.
ⓒ 조창완
@BRI@10개 왕조의 도읍이 있어, 중국 4대 고도(古都)이지만 난징에는 비극적인 색채가 있다. 명 개국 시조 주원장(1368-1398년)이 이곳에 터를 잡고 죽은 후 손자인 혜제 윤문(允炆 1399∼1402)이 황제에 오른다. 하지만 혜제는 즉위 3년 만에 베이징에서 내려온 삼촌 체(棣)의 군대에 시체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비극적인 결말을 맺었다.

이후에도 난징은 태평천국군의 종착지여서 도시를 지나는 창지앙에는 핏물로 가득했고, 1937년에는 40만명 가까이 죽었다는 난징대학살이 있으니 강가의 물가에서 피 비릿내가 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베이징에서 출발해 미리 도착한 나는 현지 가이드와 만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커피를 마셨다. 어차피 난징의 시간은 짧으니 한시 속에서 등장하는 친후아이허(秦淮河)와 시 중심에 있는 푸즈먀오(夫子廟)를 잠시 들르는 것으로 했다.

이번 테마여행부터는 동영상 촬영까지 생각해 마음도 덩달아 바빠진다. 비행기가 도착하고 유학생들로 보이는 무리가 지나가고 우리 일행이 도착한다.

▲ 먀오후이에 참석한 사람들, 반은 여행객이고 반은 시민들인 듯하다.
ⓒ 조창완
남방이라지만 비가 올듯한 날씨가 뿌리는 음산한 기운이 몸이 움츠러든다. 공항을 출발해 시내로 향하는 길에 난징에 대한 추억 이야기를 한다. 이백의 시 가운데 가장 명문이라는 '등금릉봉황대'를 설명하려 했으나 아침부터 서둘렀을 이들에게는 시내까지 40여 분에 단잠을 재우는 게 나을 듯하다. 시를 천천히 생각해 봤다.

금릉 봉황대에 올라(登金陵鳳凰臺) - 이백(李白)

鳳凰臺上鳳凰遊 봉황대 위에 봉황이 놀다가
鳳去臺空江自流 봉황은 떠나 누대는 비어 있고, 강물만 흐른다
吳宮花草埋幽俓 오나라 궁궐의 화초는 황폐한 길에 묻혀 있고
晉代衣冠成古丘 진나라 고관들은 낡은 무덤 다 되었네
三山半落靑天外 삼산의 봉우리 푸른 하늘에 반쯤 솟아있고
二水中分白鷺洲 두 강물은 나뉘어 백로주로 흐른다
總爲浮雲能蔽日 하늘에 떠도는 구름 해를 가리어
長安不見使人愁 장안이 보이지 않으니 근심이 이네


난징시를 관통하는 친후아이허는 난징 시내를 구불구불 흘러간다. 그 가운데 과거부터 난징의 중심지였던 푸즈먀오에서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난징 사람들은 춘지에(春節, 설날)에 이곳에서 가장 축제이자 장터인 먀오후이를 치른다. 일행이 도착한 때도 정월이레날이어서 먀오후이가 한창이었다. 사람들은 공자를 모신 사당인 푸즈먀오를 돌아본 후 배를 타거나 풍물을 즐기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 다양한 문양의 춘지에용 장식물을 만들어서 파는 난징 시민들.
ⓒ 조창완
먀오후이에 참여한 이들은 반은 난징사람이고, 반은 타지인들인 성 싶게 여행자 복장이 많다. 먀오후이의 가장 큰 볼거리는 각 가정에서 만드는 전통적인 공예품을 갖고 나와서 파는 것이다. 각종 등이나 장식물들을 만들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장식하고 그것을 타인들에게 판다. 복을 나누는 행위이자 수익을 만드는 중요한 방식이다.

난징인들에게도 중국의 현대는 복잡한 기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불과 100년도 안 된 시간에 수십만의 핏물이 강물로 흘러드는 처연한 광경을 두 번(태평천국, 난징대학살)이나 경험한 난징사람들에게 평안이야말로 최대의 소원이었을 것이다.

그런 백성들의 슬픈 단상이 가장 잘 표현된 시가 이백의 '장간행'일 것이다.

장간행(长干行) - 이백(李白)

妾发初覆额,折花门前剧 첩의 머리가 이마를 덮었을 때 꽃 꺾어 문앞서 놀았지요
郎骑竹马来,绕床弄青梅 당신은 죽마 타고 와서 청매 나무를 흔들며 놀렸어요
同居长干里,两小无嫌猜 장간에 함께 살면서 둘은 나쁜 마음 하나 없었어요
十四为君妇,羞颜未尝开 열넷에 당신의 아내가 되어 수줍음에 얼굴 펴본 적 없고
低头向暗壁,千唤不一回 항상 고개 숙이고 천 번을 불러도 한 번도 돌아보지 못했어요
十五始展眉,愿同尘与灰 열다섯에 눈썹을 편 이후 티끌이 될 때까지 같이 살자 했어요
常存抱柱信,岂上望夫台 이런 마음 확고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망부대에 올랐네요
十六君远行,瞿塘滟预堆 열여섯에 당신은 멀리 떠나 구당협 거센 물결에 몸을 맡기고
五月不可触,猿鸣天上哀 다섯달 동안 소식이 없고 원숭이 슬픈 울음만 하늘에 울리네요
门前迟行迹,一一生绿苔 문 앞 당신의 발자국에 이끼 돋아 날마다 푸르러져
苔深不能扫,落叶秋风早 쓸어도 이끼를 없앨 수 없는데 가을바람에 낙엽 떨어지고
八月蝴蝶来,双飞西园草 팔월 나비 돌아와 둘이서 정원 풀 위에 놀아요
感此伤妾心,坐愁红颜老 제 마음 상심해 붉은 얼굴 늙어가요
早晚下三巴,预将书报家 언제고 삼파에 오실 때는 편지 보내 소식 알려주세요
相迎不道远,直至长风沙 찾으러 가는 길 멀다 않고 곧바로 장풍사로 달려가겠어요


▲ 쓰촨성 지앙요에 있는 이백 옛집에 있는 이백 상.
ⓒ 조창완
장간은 난징의 한 지명이다. 어린 나이에 만나서 결혼했다가 남편이 전쟁에 나가서 헤어진 부인의 삶을 차분하게 그렸다. 두보보다는 귀족적인 삶을 살았다지만 이백에게도 전쟁에 떠도는 삶이 보이지 않을 리 없었는데, 그 감상 중 하나였을 것이다.

사실 시란 고요한 마음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단편들을 집어내어 표현하는 장르기도 하다. 두보의 시는 물론이고 다산 정약용 등 어려운 시대를 산 시인들의 글에는 서민들이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깔려 죽어가는 처절한 고통이 녹아있다.

▲ 친후와이허에 불이 들어오고 나서 펼쳐지는 야경이 아름답다.
ⓒ 조창완
서서히 등불이 켜지는 난징의 중심부를 다시 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위 두 시 말고도 이백의 시 가운데는 금릉에서 지은 시가 10여 수가 넘는다. 중국 문학사상 가장 최고의 천재시인으로 꼽히는 시선(詩仙) 이백의 고향은 쓰촨 지앙요(江油)다. 물론 아랍계의 피를 받았다는 등 여러 가지의 이야기가 있지만 이백을 규정하는 것은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의 빼어난 시들이다.

안록산의 난을 겪는 등 두보와 동시대를 살면서도 그의 마음은 두보에 비해서 항상 여유로웠다. 젊었을 때도 금릉의 근처에서 많이 있었고 후에 정치적 힘을 잃었을 때도 금릉에서 지내다가 금릉에서 멀지 않은 마안산(馬鞍山)에 묻혔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그의 무덤에 술 한잔 뿌릴 시간이 없다.

▲ 원저우의 상징처럼 오우지앙(甌江)의 중심에 있는 강심여
ⓒ 조창완
첫날 잠을 잘 곳은 원저우(溫州)다. 공항에서 앞사람들이 너무 시간을 끄는 바람에 수속이 늦어졌고, 우리가 원저우 공항에 도착했을 때 짐이 도착하지 않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사람들은 탔지만 짐은 미처 싣지 못한 것이다. 다음날 온다는 말이 있다가 결국에는 공항에서 차로 원저우까지 수송한다는 말을 듣고 호텔에 묵었다.

신발이나 경공업에서 세계의 공장이 됐고, 중국 도시를 순회하면서 부동산 가격을 올린다는 원저우 상인들의 고향이다. 밤에 호텔에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첫날에 짐까지 도착하지 않아서 내가 벌주를 산다고 호텔 앞 바에 들렀다. 인테리어가 아주 인상적인 큰 바였다.

자리를 잡고 나서 김풍기 교수는 이번 여행의 의미를 몇 가지로 설명했다.

우선은 우이산(武夷山)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주자의 철학적 궤적을 살피는 것이다. 다음은 중국 최고의 여행가이자 탐험가인 서하객이 최고로 꼽았다는 옌탕산(燕蕩山)을 만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마간산으로 지나지만 왕양명의 고향인 위야오(余姚), 양명 좌파의 핵심인 태주파의 고향인 타이저우(泰州), 이탁오의 고향인 추안저우(泉州)의 주변을 헤매면서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다. 거기에 다른 하나가 있다면 타이저우의 일부인 린하이(臨海)나 닝보, 샤오싱, 항저우 등을 거치면서 최부의 표해록을 상기한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느낄 것들이 늘어나면서 술이 깨기 시작했다. 먼저 나와 계산서를 들고 깜짝 놀랐다. 다양한 안주에 25병가량의 맥주를 마셨는데, 계산서에는 270위안밖에 찍혀 있지 않았다. 상하이 같으면 1000위안도 모자랄 판인데 놀랐다. 박리다매를 주창하는 원저우 상인들의 생리를 한순간에 느낄 수 있었다.

호텔에 들어가 잠에 밤새 차를 타고 달려온 짐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온 오전6시에야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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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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