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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요일 교회에서 예배가 끝난 후 많은 성도님들에게 모친 장례식에 관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미처 장례식에 참석하지를 못했다며 부의금 봉투를 건네 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분들 중 연세가 70살 가까이 되는 권사님 한 분은 어려운 가정 형편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부의금 봉투를 극구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 권사님께서는 "우리 영감 돌아가셨을 때 집사님께서 부의금을 주었지 않느냐"하면서 주었으니 받는 게 당연한 것이라며 기어이 제 아내의 손에 그 부의금 봉투를 쥐여 주시고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교회 문을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주일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고 가는 그 권사님을 뵐 때마다 10 여년 전에 있었던 참혹한 살인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그분의 남편 되는 분은 예전에 내가 살던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 있는 ㅎ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했던 분인데, 야간 근무를 하던 도중 그만 같은 아파트 사는 주민에게 그만 어처구니없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지난 1996년 7월 27일 경기도 파주 문산에 홍수로 물난리가 나기 며칠 전이었습니다. 밤늦은 시각에 가족들과 TV를 시청하고 있던 중 갑자기 아파트 복도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 왔고, 소란스러운 발걸음 소리에 놀라 뛰어나갔던 나는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계시던 분이 주민 H씨가 휘두른 칼에 찔려 그만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칼을 휘둘렀던 주민 H씨는 자신의 아내에게 폭행을 가하고 있던 중, 인터폰으로 살려 달라는 연락을 받고 뛰어 올라왔던 경비원 아저씨에게 칼을 휘둘러 살인을 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이웃 주민들과 함께 상처를 입은 아저씨를 병원에 옮기게 하고, 아내에게 경찰에 신고하도록 하였지만 경비원 아저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 도중 숨지고 말았습니다.

5.18민주화항쟁 당시 진압군의 고통과 고뇌

아내와 이웃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범인 H씨는 가끔 정신착란을 일으켜 가정 폭력을 일삼아 왔으며 마침 그날 저녁도 비슷한 이유로 자신의 아내에게 칼을 휘두르다가 부부 싸움을 말리려고 찾아온 경비원 아저씨에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해 왔던 범인 H씨는 언제부터인가 우울증과 정신착란을 일으켜 왔다고 했습니다. 범인 H씨는 군 특전사 출신으로써 1980년 5.18광주 민주항쟁 당시 진압군으로 투입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광주 5.18민주항쟁 당시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직접 죽이기도 했다는 그는 5.18 당시 악몽으로 정신 착란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당시 악몽으로 사회생활에 적응을 잘하지 못했고 결국 자신의 가정 파탄은 물론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를 살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같은 직장에 5.18 당시 진압군으로 출정을 했던 후배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 역시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5.18 당시의 악몽 때문에 고통과 고뇌가 있다는 말도 하였습니다.

그는 전역 후 길을 걷다가 행인들과 옷깃만 스쳐도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또한 군 전역 후 얼마나 큰 악몽 속에서 살아왔을까 생각하니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 또한 1978년 3년 만기를 꼬박 채우고 전역한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입니다. 군대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집단입니다. 그 어떠한 경우라도 상관에 대한 복종은 불문율로 되어있는 곳입니다.

광주 5.18민주화시위를 하는 무고한 시민들에게 간첩들이라는 허울을 씌워 무자비하게 발포를 명령했던 그때 그 신군부측 지휘부의 명령에 불복종했던 진압군 병사는 없었을 겁니다.

5·18민중항쟁은 순수한 광주 시민들의 항거

1979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의 10.26 총격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숨지자 당시 국무총리이던 최규하씨가 대통령이 되었고, 당시 보안사령관으로 육군 소장이던 육사 11기 신군부 출신인 전두환, 노태우씨 등은 후배 군인들과 함께 12.12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던 것입니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에서 전 국민들의 집회와 시위가 연달아 일어나기 시작하자 권력을 손에 쥐게 된 신군부 출신들은 당시 정치계 거목인 김영삼씨와 김대중씨를 설득해 시민들과 학생들의 시위를 막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잘되지 않자 김영삼씨를 가택 연금시키고, 김대중씨를 보안법 위반이라는 협의를 씌웠습니다. 이에 김대중씨의 지역 기반인 광주에서는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고,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위가 연일 일어났습니다.

광주에서의 연일 시위에 당황한 신군부측은 곧바로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일체 언론 보도를 못 하게 통제하고, 김대중씨 석방과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는 광주 시민, 학생들을 폭도로 몰아붙였습니다.

당시 신군부측 국내 언론 총괄담당은 육군 준위로, 전국의 방송 및 언론을 통제하였고, 당시 지역신문이었던 전남매일신문과 광주일보를 제외한 그 어느 언론도 군부측의 눈치를 보느라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였으며, 하나같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붙였습니다.

5.18 당시 군을 전역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혈기 왕성한 나이였습니다. 당시 기억으로 광주 시민뿐만 아니라 전남의 순천, 여수, 구례, 곡성, 화순 등지에서는 나이 어린 고등학생들까지 광주로 가서 민주화 요구 시위에 동참했던 기억이 납니다.

광주 금남로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공수부대원들인 진압군과 장갑차를 앞세우고 맨손이었던 무고한 시민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하여 사망자를 냈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5.18민주항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5.18 당시 숨진 많은 이들이 묻힌 망월동엔 이제 국립묘지가 들어섰습니다.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영령들이 어찌하여 폭도가 될 수 있습니까? 민주항쟁으로 자신의 몸을 불살라 민주화를 앞당긴 광주시민들이 어찌하여 폭도입니까?

수천명의 사망자와 부상자를 내었던 5.18민주항쟁에서 숨져간 영령들에게 지금도 폭도라고 몰아붙이고 있는 일부 포털사이트 회원들(다음카페 '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이 진정 대한민국 국민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또한 그들은 순수한 시민기자들의 글이나 기사인 <오마이뉴스>를 '개마이뉴스'로 지칭하기도 하며, 5.18 당시 신군부측 협박에 못 이겨 자신들이 몸담고 있던 언론사를 떠났던 일부 의식 있던 언론인들이 만든 <한겨레신문>까지도 매도하고 있습니다.

"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있습니다. 누구나 어느 특정인을 사랑하고 좋아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왜곡하고 오도를 해서야 될는지요.

그들은 지금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각하. 당신의 눈 속엔 바다가 있습니다. 우리는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명예회복이 되는 그날까지 매진할 겁니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업적. 뛰어난 선견지명을 보여준 각하"라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맹신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당을 떠나 야당인 한나라당 전 대표인 박근혜 의원조차도 합천의 '일해공원' 명칭은 적절치 못하다고 했습니다. 한나라당의 많은 중진 의원들까지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5.18 광주민중항쟁 열사들을 폭도라고 매도하고, 광주 학살 책임자의 호인 일해공원 명칭을 둘러싸고 합천군수에게 격려문을 보내는 운동까지 전개하는 등 역사 왜곡을 하고 있으니, 젊은이들의 치기로서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해마다 광주 5.18국립묘지는 정치, 경제, 사회의 각계 인사들을 비롯한 국민들이 참배를 다녀가는 곳입니다. 대한민국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앞당긴 5.18 광주민주항쟁의 영령들에게 누를 끼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대한민국의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5.18민주항쟁 열사들의 영령에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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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소시민들의 살아가는 애환과 이웃들의 이야기및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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