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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26일이 되면 1992년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공개한 고 정서운 할머니의 추모 3주기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이제 며칠 뒤면 1992년 '위안부 피해자'임을 공개 증언하며, '종군 위안부' 문제를 본격 제기한 고 정서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째가 된다. 정 할머니는 2004년 2월 26일 아침 7시 30분 81세를 일기로 운명했다.

지난 2월 15일 미국 하원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청문회가 열려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는데, 이 자리에 참석한 이용수(80) 김군자(82) 할머니는 정 할머니의 육성을 듣고 미국으로 떠났다. 출국 직전 두 할머니는 정 할머니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침묵의 소리>를 본 것이다.

@BRI@다행히 세계의 주목을 끌긴했지만 현실은 여전하다. 일본 외상은 '일본 정부의 명확한 사죄를 요구'하는 미 하원의 결의안에 반발하고 있고, 최근 <요코 이야기> 논란에서 보이듯 일본인은 2차대전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라는 인식을 여전히 갖고 있다.

미 하원 결의안은 '종군 위안부' 문제의 종결이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정서운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켰던 의아들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고발자 고 정서운 할머니 추모위원회 강동오(42·매암차문화박물관장) 집행위원장이 그 주인공. 그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뜻과 정신을 기리기 위한 '평화의 탑' 건립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함께 하는 역사기행'을 올해 초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강 위원장이 구상한 이번 행사의 제목은 '아름다운 동행'. 참가자들이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역사기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인연을 맺게 하고, 할머니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드린다는 의미다. 또한 종군 위안부 문제가 '반전'과 '평화'를 위한 미래의 가치를 품고 있다는 뜻을 강조하면서 "우리 후세대를 위한 작업"임을 강조할 방침이다.

미 하원 청문회에 참석한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하는 역사기행을 3월에 시작해 5월까지 진행하며, 5월 26일에는 평화의 탑 제막식과 평화나눔 문화제를 펼친다. 이후에도 할머니들의 뜻을 기리는 시화집 발간, 8월 15일 광화문 문화제 행사 등을 계획 중이다.

현재 수경 화계사 주지,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 도법 생명평화결사 순례단장을 비롯 안치환·정태춘(가수), 김용택·도종환·박남준·이원규(시인), 공지영(소설가), 이철수(판화가), 황대권(생태운동가), 김두관(전 행자부 장관)씨 등이 참여하겠다고 뜻을 밝힌 상태. 생전에 정 할머니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번 행사를 추진한다는 강 위원장으로부터 '아름다운 동행'의 속뜻과 계획을 들어봤다.

"<요코 이야기>, 개인의 문제로 봐선 답 없어"

▲ '위안부' 피해 고발자 고 정서운 할머니 추모위원회 강동오 집행위원장.
ⓒ 오마이뉴스 조호진
- 최근 미 의회가 이용수·김군자·얀 러프 오헤른 할머니를 모시고 첫 위안부 청문회를 하면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감회가 남다르겠다.
"할머니의 모습이 느껴졌다. 김군자, 이용수 할머니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침묵의 소리>를 보고 떠났으니까. 그리고 그 다큐멘터리를 갖고 미 의회에서 증언했으니까. 결국 정서운 할머니가 미 의회에서 증언한 게 아니겠나. 감동적이었지만 아직도 이 문제를 못 끝냈구나라는 생각에 한편으론 죄스러웠다. 솔직히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껏 떠든 이야기를 세상을 상대로 다시 한 번 반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점에서 힘을 얻었다."

-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 1992년 고 정서운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임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했다. 세계가 주목하기까지 거의 17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앞으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것은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해야 한다. 반전과 평화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후세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발언하고 뛰어다닌 흔적들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는다. 내 아이들이 이 기록을 꼭 기억하길 바라고, 그걸 믿는다."

- 최근 <요코이야기> 파문처럼 일본은 2차대전의 가해자이면서 원폭의 피해자라는 이중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 이런 점이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데 장애가 되는 것 같다. <요코이야기>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요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작가가 그런 피해를 당했다면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2차대전의 문제를 가해국과 피해국이라는 이분법으로 봐서는 안된다. 무슨 말이냐면 2차대전 당시 일본 민중들도 무척 힘들었다. 독일 민중도 마찬가지였다. 전쟁 시스템이라는 것을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요코 이야기>는 이 문제를 지극히 개인의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하나는 기록이다. 일본이 미국에 항복하고 난 뒤, 만주에서는 일본인을 상대로 한 학살, 강간, 약탈이 있었다는 기록이 많다. 하지만 한반도에선 그런 일이 한 건도 없었다. 미군정이 들어오기 전까진 조선총독부가 치안을 유지했다. 게다가 그들이 평화롭게 갈 수 있도록 부산, 인천항까지 열어줬다.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 패전한 점령국가 국민에게 이렇게 관대한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 이렇게 큰 것을 빼놓고 개인의 자그마한 경험을 부각시키면 그 또한 역사 왜곡이다. 작가가 진정 평화를 사랑한다면 교과서 채택을 철회했으면 좋겠다."

- '노근리 학살 사건'처럼 국내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주목을 끌지 못하던 문제가 AP통신에 보도되고 난 뒤 이슈화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국제사회의 관심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이 문제를 다른 누구한테 부탁해서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이것은 우리의 문제다. 우리가 충분히 고민하고 우리가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일본이 저렇게 나오는 것도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제대로 나서고, 국민이 큰 관심을 쏟았다면 17년 안 걸린다. 1년 7개월 만에 끝낼 수 있었다. 유엔사무총장까지 배출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일본에 배상받는 문제로서 바라볼 게 아니라, 우리가 고민하고 교육해서 풀어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보자."

"할머니들에게 아름다운 추억 남겨드리고 싶다"

▲ 오른쪽부터 채수영 강동오 박보현씨.
ⓒ 오마이뉴스 윤성효
- 지금 '일본군 위안부' 피해 고발자 고 정서운 할머니 평화의 탑 건립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정서운 할머니와 한 약속 때문이라는데 어떤 약속인가.
"첫 번째 유언은 나의 이야기를 널리 알려달라는 것이고, 두 번째 유언은 내 동무들의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다. 하동 지역에서도 많은 또래 여성들이 끌려갔다. 그 중 대부분이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죽었다. 할머니는 돌아와서 결혼도 하고, 젊은 총각들의 봉사까지 받아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만 행복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죽어간 동무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표지판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 솔직히 그 약속은 할머니의 '의아들'인 강동오(첫째), 채수영(둘째 의아들)씨만 아는 약속 아닌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할 사람도 없을 듯한데,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나는 할머니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가 힘들다. 나는 할머니 덕분에 잘못된 남성적 사고를 깰 수 있었다. 그 전까진 가부장적 생각이 몸에 배어 있었다. 게다가 할머니로 인해 결혼까지 했다. 지금 부인은 할머니 재가봉사를 한다는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고 나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 나는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좀더 바른 사람이 되길 바란다. 할머니와 약속을 지키는 것은 '제대로' '더 잘' 살기 위해서다."

- 할머니와 인연이 그렇게 각별했나.
"이번 행사 제목이 '아름다운 동행'이다. 할머니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나? 강동오 채수영 만나서 멋진 연애 했다고 말했다. 세상에 무슨 복이 있어서 젊은 아들 둘 얻고, 장가도 안 간 청년 병 수발도 받는다면서 고마워하셨다. 이게 바로 애정 아니냐. 나이를 초월한 연애라고 생각한다. 남녀 사이에만 연애가 있는 게 아니다. 둘째 아들인 채수영은 할머니 기저귀를 다 갈고, 할머니를 씻어드렸다. 게다가 욕창까지 직접 닦아냈다. 애틋한 마음이 없으면 이렇게 할 수 있겠나."

- 역사기행이 중심행사로 잡혀 있던데.
"지속적으로 일을 하고 싶어서다. 앞으로 하동, 대구에서 시작해 서울로, 서울을 넘어 평양이나 북경까지 이 행사를 넓힐 꿈을 꾸고 있다. 흔적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다. 정서운 할머니 이전까지 수많은 할머니들이 돌아가셨지만 아무도 주목받지 못했다. 그냥 이 세상에 있었던 사실도 아무도 모른 채 돌아가셨다. 할머니들께 아름다운 추억을 드리고 싶다.

할머니들이 그 때 당한 일에 대해 증언을 하고 나면 그 날 저녁 잠을 못 잔다. 생각을 해봐라. 하룻밤에 수십 명을 상대했던 끔찍한 기억을, 그것도 몇 년간 당했는데 다시 끄집어내야만 하는 사실을. 우리는 할머니와 함께 트로트도 부르고, 영화도 볼 것이다. 신명나는 이야기도 할 것이고. 공연팀 이름은 '재미난 복수', 프로그램 이름도 '재미난 복수'다. 할머니들에게 죽음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그렇게 좋은 기억을 안겨드리고 싶다."

- 그 외 어떤 행사를 준비 중인가.
"5월 26일 1부 평화의 탑 제막식, 2부 평화문화제를 개최한다. 그 다음엔 예술인들과 함께 시화집을 만들어서 8월 1일 출판한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원고 한 푼 받지 않기로 했다. 8월 15일엔 광화문에서 시민과 함께 하는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

- '종군위안부'라고 하면 어두운 느낌이 들고, 그래서 많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이번 행사 프로그램은 그런 느낌이 없는 것 같다.
"즐겁고 밝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번 행사를 통해 60년 전 문제가 아니라 지금 문제라는 것을 보여줄 계획이다. 종군 위안부 관련 단체 대표 중엔 25세인 김효정씨가 있다. 정대협의 윤미향 대표는 43세다.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가 딸, 손녀뻘 되는 이들에게 그대로 이어진다. 더불어 '베트남 여성들은 달아나지 않아요'라는 플래카드처럼 성과 관련한 일상 속 폭력은 여전하다. 이런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 운영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고 있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개인적으로 400만원 정도 돈을 모았다. 행사 비용은 대략 4000만원 정도 든다. 나는 이번 행사가 몇몇 명망가만의 힘으로 되길 바라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서 보람을 느끼기 바란다. 적은 돈이라도 좋으니 노무현 대통령부터 마라도 어린이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중이다. 후원금이 넉넉하게 모인다면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추진하는 전쟁평화인권박물관 건립에 보태겠다. 나는 이번 일이 역사적인 일에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시절 받은 3억 달러, 이제 할머니들에 돌려줘야"

▲ 악양 평사리공원에서, 강동오씨.
ⓒ 이성오
-이제 과거 일은 덮고 미래를 생각하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필요하다. 미래를 위해서도. 이 문제는 아주 미래적인 문제다. '반전'과 '평화'가 어떻게 과거에만 필요한 문제인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종군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1992년 1월 8일 첫 수요시위를 시작했다. 일본은 사실 배상문제는 끝난 문제라면서 더 이상 책임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루한 줄다리기라면서 넌더리를 내는 사람도 있다.
"배상 문제와 관련해서 당시 책임자였던 김종필과 박정희를 욕할 생각은 없다. 당시 받은 보상금 3억 달러를 경제 개발에 썼고, 그 혜택을 많은 사람이 받았다. 원래 징용 간 분들에게 드렸어야 했지만, 당시엔 경제가 어려워 어쩔 수 없었다고 하자. 하지만 지금은 1인당 GNP 2만달러 사회다. 그 돈을 토대로 우리가 먹고 살았으니 이제 그 돈을 할머니들에게 돌려줘야 하지 않나. 하지만 사정은 어떠한가. 원폭 피해자 전용 병원은커녕 관련 연구기관도 없다.

법적 문제는 끝났다. 일본 정부가 할 일이 있고, 우리가 할 일이 있다. 일본 정부는 공식 사과를 하고 왜곡 교과서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는 당시 받은 보상금을 할머니들에게 돌려드리는 일을 해야 한다. 세상에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는데 장례비조차 없다는 게 말이 되나. 배상 문제에 있어선 우리한테 먼저 물어보자."

-일본 사회의 우경화 현상이 심하다. 망언도 계속 나올 것이다. 하지만 미국 의회 청문회 등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계획인가.
"모든 문제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났다. 독일은 아우슈비츠 등 모든 과오를 다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어땠나. 다 잊고 살았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반성하자. 명확한 역사 바로 세우기는 우리부터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일본도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우리의 빛나는 항일 이야기를 기록하고 널리 전파해야 한다. 고통의 역사보다 빛나는 투쟁의 역사를 돋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일본 정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우경화가 일본의 밝은 미래를 책임지지 못할 것이란 점이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봐라. 전쟁을 준비하면 일본도 힘들어진다. 그리고 우리도 옛날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고 정서운 할머니의 생애

▲ 강동오씨가 할머니 유골을 뿌린 섬진강 모래사장에 서 있다.
ⓒ이성오

1924년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 하덕마을 출생
1937년 14살에 일본 주재소에 끌려간 아버지를 풀어 주겠다는 구장 말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감.
1938년 부산- 일본 시모모세끼- 중국- 대만- 태국- 싱가포르- 사이공- 인도네시아 등 이동, 인도네시아 수마라이 등지에서 8년간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함.
1945년 22세 싱가포르 수용소에서 1년 수용됨.
1946년 23세 부산으로 귀국
1991년 김학순 할머니 최초 공개 증언
1992년 69세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사실 공개
1995년 72세 북경 세계여성대회 '위안부 피해자' 한국대표로 참가. 증언
1996년 73세 미주등지 증언 강연 / 다큐멘터리 주인공 / 미국 김대실 감독 "침묵의 소리"
1996년 73세 8월 국민기금 반대 올바른 전후청산을 위한 일본 순회 집회 참가
2003년 80세 경상대학교에서 마지막 증언 "정신대 할머니의 삶 그리고 잊혀진 역사"
2004년 81세 2월 26일 07시, 81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함, 유해는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일대와 섬진강에 뿌려짐
-추모위원회 자료

덧붙이는 글 | 문의 : 강동오 집행위원장(055-884-8254, 011-9339-7759, mu0hwa@hanmail.net / 채수영 실무담당(010-4552-3864, soopool21@naver.com) / www.halmun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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