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2007년 1월 29일 배 타키 전에 다 같이 사진 한방 ^ ^
ⓒ 이소정
섬이라…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공간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일까? 난 예전부터 섬이라는 곳을 참 좋아했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좋아하는 곳을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보길도. 엄마 아빠께서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하신 곳이었다. 섬기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 함께 떠나는 친구들과 함께 모둠장, 글꾼, 살림꾼, 짬장(요리담당), 치료일꾼, 학습일꾼을 뽑았다. 그리고 틈틈이 보길도에 대한 공부를 했다.

@BRI@2007년 1월 29일, 드디어 섬기행을 가기 위해 길을 떠났다. 내가 사는 인천을 비롯해 김해, 광주, 무안,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해남터미널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땅끝마을 선착장에서 3시 배를 타고 보길도로 향했다. 바람이 조금은 쌀쌀했지만 오랜만에 배를 탄다는 설레임과 자연을 보는 즐거움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 넓게 펼쳐진 바다와 배가 일으키는 하얀 거품, 맑은 하늘, 뭉게뭉게 핀 구름 그리고 내 두근거리는 가슴….

배를 타면서 보니 우리가 작년 가을에 ‘걸어서 땅끝까지’ 기행 때 해맞이를 했던 땅끝 전망대도 보였다. 4시 경, 드디어 보길도 청별항에 발을 딛었다. 우선 우리는 보길도의 전체적인 지리를 보고 일정을 계획한 후 걷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이 으레 그렇듯이 정말 설레었다. 또한 길가의 풍경 하나 하나가 눈에 쏙쏙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썰물 때라 물이 빠져나간 바다, 진흙 위에 떠있는 배, 길가에 줄줄이 매달려있는 김.

그렇게 걷고 또 걸어서 우린 목적지인 통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섬이라 거리가 만만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 통리 해수욕장은 바다와 주변 환경도 눈에 띄게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특히 모래사장이 매우 아름다웠다. 모래 위에도 파도가 쳤는지 찍혀있는 물결무늬, 손으로 집으면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곱디고운 모래 그리고, 그 위에 찍힌 새의 발자국. 우리 모두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친구들은 예쁜 조개를 줍고, 소라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보고, 모래에 깔깔대며 글씨를 쓰고, 추억들을 디카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물수제비도 떴다.

▲ 2007년 1월 29일 예송리 해수욕장 갯돌밭에서
ⓒ 이소정
그 곳에서 오래오래 있고 픈 마음을 뒤로하고 예송리로 향했다. 도착해서 민박집 ‘동박새 우는 집’에 짐을 풀었다. 한옥인데 불을 때워주셔서 정말 뜨끈뜨끈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밥을 해먹었다. 카레가 너무 짜게 되기는 했지만 맛있는 식사였다. 휴식을 취하고 우리는 바로 앞 예송리 해수욕장에 갔다. 그 곳은 다른 해수욕장과는 다르게 모래 대신 콩돌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운치 있었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빠져나갈 때 콩돌도 촤르르르 하는 소리를 내면서 빠져나가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멋있던지. 달빛과 별빛이 바다에 반짝반짝 자신의 얼굴들을 비추고 물결이 바람 따라 살랑살랑 움직이는 것은 또 어떻고. 다 같이 손을 잡고 해수욕장을 걸어가는데 서로 꼬옥 잡은 손에서 우정이 느껴졌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깔깔대고 수다를 떨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둘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예송리 해수욕장으로 해맞이를 하러 나갔다. 아름다운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손잡고 있는 우리들의 미래도 해처럼 밝게 떠오르기를, 우리 늦봄학교 친구들이 모두 세상에서 해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기도했다. 오늘은 등산하는 날. 적자산을 간다고 했다. 겨울방학이 시작된 후 매일 산에 다니는 나였기에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은 쉽게 산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되었다.

그런데 산을 오르는 것이 거의 암벽타기 수준 이였다. 경사가 어찌나 가파른지. 보통 등산로는 가다보면 평지도 있고 그런데 이 산은 각도가 거의 직각에 가까웠다. 숨이 너무나 턱턱 막혔다. 그리고 섬이라 그런지 날씨가 정말 변덕스러웠다. 후두둑 떨어지는 비에 무거운 짐을 힘들게 내려놓고 비옷을 꺼내면 비가 그쳐버리고, 또 다시 비옷을 힘들게 짐 속에 넣으면 다시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고… 이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 2007년 1월 30일 적자산에서 내려오는 길 생라면 간식을 먹으며 ^ ^
ⓒ 이소정
친구들도 모두 힘들어서 말도 제대로 못했다. 선생님께서는 1시간 정도만 지나면 몸이 가벼워지면서 산과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1시간 후, 나는 정말 산과 만났다. 몸의 반 이상 정도 되는 길이의 가방 때문인지 몸은 무겁게 느껴졌지만 정말 산이 내게 말을 걸었다. ‘자연을 느끼다’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가면서 길가의 식물들의 이름을 알려주셨다. 콩란, 마삭, 후박나무… 사람도 이름을 알게 되면 특별하게 느껴지듯이 평소에는 산을 가더라도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던 식물들인데 이름을 알고 나니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원래는 정상에서 멋진 경치를 바라보며 밥을 먹을 계획이었는데 물이 없어 밥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배가 고팠던 우리는 그 자리에 털썩 앉아 부대찌개에 넣으려던 라면을 부숴 오도독 오도독 맛있게 씹어 먹었다.

조금 힘이 나자 산을 내려왔고 나무가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밥을 지어먹었다. 옆에 있는 민박집에서 물을 좀 구하려고 들어갔는데 사람이 없어서 그냥 그 곳에서 야채를 씻고 잘랐다. 김을 반찬으로 꺼내 놓았는데 바람이 너무 심해서 다 날아가 버리고 장난 아니었다. 식사 후, 쌀쌀해져서 옷을 꺼내 입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산을 조금 올라 낙서재 동천석실에 도착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게 만들어 놓은 곳이라 그런지 더욱 멋있었다. 그런 곳에 그런 건물을 지을 생각을 했다는 것도 참 대단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곳에 있다 보면 나도 몰래 저절로 시 한 수가 나올 것 같았다. 내려와서 세연정 쪽으로 가서 민박집을 잡고 세연정으로 나갔다. 연못 같은 곳에 물이 빈 쪽은 휑했지만 물이 조금 차 있는 곳은 동백꽃이 떠있고 달이 물에 비춰 아름다웠다. 소나무가 물에 닿을 듯 말듯 가지를 내렸는데 그 웅장함이 실로 대단했다. 숙소로 돌아가서 밥도 간단히 지어먹고 놀다가 또 꿈나라로 떠났다.

▲ 2007년 1월 30일 바람이 심하게 부는 데도 꿋꿋하게 밥을 하는 우리
ⓒ 이소정
1월의 마지막 날, 아침부터 분주히 세연정에 산책을 갔다 왔다. 같은 곳인데도 밤에 보는 것과 아침에 보는 느낌이 달랐다. 밥을 지어먹고 바삐 걸어서 제일 처음 출발했던 곳 청별항으로 향했다. 청별항에서 2시에 완도항 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또 똑같은 길을 거쳐서 가니 꼭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고 설레임도 다시 느껴졌다.

첫날에 썰물 때라 진흙 위에 배가 떠있었는데 이번에는 물이 차있어서 신기하고 예뻤다. 아무래도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아이들이 조금은 지쳐있었다. 선생님께서 슈퍼에 아이스크림이 있다면 한턱 쏘신다고 하셨는데 가는 슈퍼마다 아이스크림은 없어서 결국 사먹지 못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송시열 글씐 바위. 중간에 중리 해수욕장도 잠시 들렀다. 힘들게 도착했는데 좀 허무했다. 사람들이 탁본을 너무 많이 떠서인지 먹물이 그대로 남아있고 글씨도 자세히 봐야 보여 실망했다. 보길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곳저곳 너저분하게 쓰레기가 있는데 그것도 그렇고 사람들이 너무 무식한 행동들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좀 씁쓸했다.

아무튼 그래도 바다와 섬들이 보여 너무 좋았다. 이 쪽 부근의 바다는 다른 쪽과는 달리 바닥이 암초로 되어있어서 더욱 푸르러 보인다고 했다. 이 쪽의 바다색깔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어서 기분까지 좋아졌다. 2시 배를 타야 했던 우리는 택시를 불렀고 정말 빨리 도착해서 밥을 먹고 배를 탔다. 다들 피곤해서 풍경을 볼 생각은 못하고 잠을 잤다.

3시에 완도에 도착했더니 완도에 사시는 슬기둥 선생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슬기둥 선생님 차에 다들 타서 '해신' 촬영장을 잠깐 돌아보고 신지도 명사십리로 향했다. 팬션에 짐을 풀고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나갔다. 팬션에 있는 어미 개와 강아지 두 마리가 꼬리를 막 흔들면서 우리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 2007년 1월 30일 동천석실을 낑낑대며 가는 길
ⓒ 이소정
명사십리란, 모래 우는소리가 십리까지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노을이 져서 더욱 아름다웠다.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참 기억에 남았다. ‘바다는 모든 물을 포용하지만 자신의 색을 잃지 않는다’는. 나도 바다를 보면서 새롭게 다짐하는 기회가 되어 더욱 좋았던 것 같다.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길기로 유명하다.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다. 초저녁이라서 바람이 칼날 같았고 우리는 들어갔다.

저녁으로 칼국수를 해먹었다. 사실 칼국수가 아니라 칼죽이었다. 게다가 남자 친구들 칼국수에는 소금 넣는 것을 깜빡해서 맛이 영 안 났을 것이다. 우리는 밤이 되어 바람이 그치자 해수욕장에 한 번 더 나갔다 왔다. 뒷꿈치부터 걸으니 발자국이 꾸욱 하고 찍혔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계속 그렇게 걸었다. 다 걷고 들어가니 슬기둥 선생님께서 치킨과 고구마를 사들고 오셨다. 우리 때문에 일부러 오셨다니 너무 감사했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각자 방으로 가서 잠을 청했다.

2월의 첫날, 섬기행의 마지막 날.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바다를 잠깐 걷고 후다닥 밥을 먹었다. 그리고 완도 터미널로 가서 아쉽지만 각자 사는 곳으로 향했다.

섬기행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바다를 자주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다만 보면 나는 가슴이 탁 트이고 편안해지는 것 같아서 좋다. 또한 자연을 느끼고 많은 것을 생각하고 돌아갈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친구들과도 이번 기회를 통해 왠지 더 가슴 찡한 우정을 나눈 듯 싶다. 보길도는 정말 매력 있는 섬이다. 다음에 엄마아빠를 모시고 와서 내가 가이드를 해드려야겠다.

▲ 2007년 1월 31일 송시열 글씐 바위 있는 곳에서
ⓒ 이소정

덧붙이는 글 | 이소정 기자는 늦봄 문익환 학교에 재학 중인 중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