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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8시면 사라지는 군산역 도깨비 시장
ⓒ 배지영

금요일 밤에 퇴근하면서 동생 지현이네 집에 잠깐 들렀다. 동생이 물었다.

"너, 내일 뭐해?"
"도깨비 시장 갈 건데…."

보통 대화는 여기서 끊긴다. 백화점이라면 마음이 동할까. 동생 지현은 따라나설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토요일 새벽에 나와 동행했다. 시장 곳곳에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이댈 수가 없어서 멀리서만 찍었다.

새벽마다 군산역 광장을 가득 채우는 노점들

내가 만난 할머니는 35년째 군산역 새벽시장에 나온다고 하셨다. 우리를 모닥불 앞에 끌어당기긴 했지만 바짝 앉지는 말라고 하셨다. 그을음이 많이 나서 사흘에 한 번씩은 목욕탕에 가야 한다고.

우리는 느타리버섯 2kg 두 박스를 2만원, 커다란 자루에 담긴 시금치를 5천원, 고구마와 애호박은 모두 해서 9천원에 샀다. 말도 안 되게 쌌다. 아이 아토피 때문에 유기농 가게에서 사 먹고, 손이 많이 가는 요리는 이 세상에는 없는 요리로 치고 산 지 오래 되었다. 그런데 시장에 처음 온 지현이가 가끔 오자고 말했다. 동생 말을 소중하게 여기는 나는 한 번씩 새벽시장에 나오게 될 모양이다.

▲ 새벽이어서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놓았다.
ⓒ 배지영
▲ 오징어는 5마리에 5천원. 시금치는 커다란 자루 하나에 5천원.
ⓒ 배지영

도깨비 시장은 날마다 군산역 광장에 선다. 이름처럼 시장의 존재는 도깨비와 같아서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른다. 몇십 년 전 새벽에 누군가 군산역 광장에 노점을 차렸다고 한다. 장사하는 사람이 한두 명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어느 해부터는 역 광장을 가득 메웠다. 그것도 모자라 역을 끼고 있는 골목까지 노점이 빼곡하게 들어섰다가 아침 8시면 사라졌다.

처음에는 내 자리 네 자리가 따로 없었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새벽 1시부터 나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지금도 노점의 경계는 따로 없지만 들여다 보면 어떤 판이 짜여 있다. 역 광장에 넓게 자리를 잡고 물건을 펼친 분들은 '프로'들이시다. 새벽 3-4시부터는 도깨비 시장에서 장사하고, 8시에는 이녁들의 점포가 있는 삼학동 시장이나 상설 시장으로 가신다.

직접 농사를 지어서 가져오는 분들은 광장 옆 골목이나 신호등 너머로 밀려나 있다. 익산과 군산을 오가는 통근 기차를, 오산역이나 임피역에서 타고 오는 할머니들은 6시 54분에 기차가 서자마자 전력질주해서 역 건물에 바짝 붙어 조그만 노점을 펼치신다. 8시까지 1시간 남짓 장사하신다. 충청도 장항과 전라도 군산을 잇는 금강 하구둑 다리가 생기고부터는 충청도 사람들도 자리를 잡았다.

▲ 익산에서 군산 오는 통근 기차를 타고 오시는 할머니들. 기차에서 내려서는 시장을 향해 '빛의 속도'로 달려가신다.
ⓒ 배지영

장터 우리 집은 장사꾼들 밥집

나도 친정 엄마가 우리 집에 다니러 오실 때 몇 번 도깨비 시장에 와 봤다. 엄마가 도매시장보다 훨씬 싸다고, 차 트렁크 가득 야채와 밑반찬 거리를 사 쟁이는 모습은 젊어 보였다. 아직은 당신 손으로 새끼들을 거둬 먹인다는 자신감으로 활력이 솟아나는 듯했다. 그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내가 열두 살 때 우리 집은 시골에서 면소재지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집으로 이사 나왔다. 엄마는 화장실 옆 빈 공간에다 돼지를 키웠고 곧 냉장고도 사셨다. 그 다음에는 5일장이 서는, 시장통에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방이 다섯 개 있는 집이었다. 동생 지현은 단독으로 '빠꿈살이' 방을 가졌다. 나도 내 방, 내 책상에서, 잠옷을 입고 일기 쓰는 어린이가 되었다.

엄마는 그 집에서 밥상을 차리셨다. 5일장을 따라다니며 장사하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서 '집 밥'을 먹었다. 시장에는 국밥집도 실비집도 많았는데 내 엄마 조여사의 밥은 점점 인기가 많아졌다. 엄마는 장이 서기 전날에는 늘 들기름을 발라 김을 굽고 나물을 무치셨다. 방 안에 있어도, 부엌이나 뒷마당에서 흥얼거리는 엄마 콧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자신감이 붙은 엄마는 집 한켠에 작은 실비집을 내셨다. 철판에 호일을 깔고 구운 로스구이도 팔고, 국밥도 말고, 시장이 파하고 잔 소주만 시켜 먹는 사람한테는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서 그냥 주기도 하셨다. 집 마당에는 엄마가 가꾼 꽃밭과 텃밭이 동시에 푸르고 아름다웠다. 아빠는 멋진 '싸이카'를 타고 다니며 사람들 빚보증을 섰다.

그 집에서 열세 살에서 열다섯 살까지 살았다. 19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동생 지현이하고 나는 '장터 우리 집'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자매는 서로 저만치 떨어져서 소리 죽여 울었다. 아이는 이미 문 닫은 지 오래인 5일장 빈터를 뛰어다녔다. 방치되어 있는 장터는 갓 떼를 입힌 새 무덤처럼 무서웠다. 땀에 전 아이 손을 잡고 말했다.

"제규야, 저 집, 엄마랑 지현이 이모랑 옛날에 살았던 집이야."

▲ 역 광장 뿐만 아니라 골목길, 인도에 차려졌던 노점들도 시간이 되면 깨끗하게 치워진다.
ⓒ 배지영

도깨비 시장은 시간 앞에 배짱을 부리지 않는다

일요일 새벽에 도깨비 시장이 사라지는 장면을 보기 위해 혼자서 갔다. 역 광장과 바로 맞닿아 있는 도로는 시청 단속반이 책임지고 있었다. 상인들이 도로까지 나와서 장사하지 않도록, 물건을 사러 온 차가 주차하지 않도록, 노점들이 정한 시간에 자리를 비켜주도록 지도하고 있었다. 마이크에 대고 오늘만은 봐 주지 않고, 8시까지 치우지 않으면 실어가 버릴 거라고 하는 걸 보니, 단속은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8시 15분이면 전주에서 출발한 통근 기차가 군산역에 도착한다. 역 방송에서는 "자꾸 이렇게 하시면 내일부터 시간 엄수합니다. 이러시면 진짜 우리도 안 참습니다"라고 했다가 "역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했다. 우리나라 기차역 중에서 유일하게 도깨비 시장을 품어 안아야 하는 군산역은 노점상들을 을렀다가 달랠 수밖에 없는 듯했다.

광장으로 나온 역 직원들은 호루라기를 불면서 노점상인들 보고 빨리 치우라고 했다. 어떤 노점상들은 "시끄럽다 이놈들아"하며 느긋하게 대처하면서도 노점을 접는 손놀림은 잽쌌다. 그러나 노점은 손님이 오면 순식간에 풀어 헤쳐졌다.

도깨비 시장은 시간 앞에서 더 배짱을 부리지 않았다. 노점상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를 치우고 자리를 떴다. 전주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온 승객들이 광장을 지나치는 8시 20분에는 깨끗해졌다. 호루라기를 불고, 방송을 하며, 당근과 채찍을 쓰던 군산역 직원들도 들어갔다. 군산역은 작은 도시의 오래된 역일 뿐이었다. 역 광장은 천 년 묵은 여우처럼,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세했다.

▲ 노점과 사람들로 붐비던 역 광장은 오전 8시 넘어서 깨끗하게 치워졌다. 말 그대로 '도깨비 시장'이었다.
ⓒ 배지영

덧붙이는 글 | <이 물건, 여기 가면 싸다>에 응모합니다.


태그:#도깨비시장, #군산역, #상생,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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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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