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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2월 5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작가 황석영씨의 기고문 <개똥폼 잡지 말고 현실의 저잣거리로 내려오라!>에 대한 반론으로,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이승철 시인이 보내온 것이다. 토론의 장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가감없이 반박기고를 게재한다. <편집자주>
▲ 파리에서 황석영씨.
ⓒ 황석영

@BRI@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선배작가인 황석영씨와 그동안 쌓아온 문학적 우정에 금이 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황석영씨가 현실정치의 새판짜기를 위해 총대를 메겠다는 의도에 상당 부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글은 곳곳에 작가 조정래, 고은 시인 등 특정 문인에 대해 비아냥과 조롱이 가득 담겨있고, 최근 우리 민족문화예술계의 현안으로 대두된 '민족문학작가회의' 명칭 변경 문제에 대해서도 객관적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번쯤 그 정당성을 생각해봐야 하기 때문에, 나는 지금 진실과 대의의 입장에서 이 글을 쓰려 한다.

황석영은 왜 한국 문단의 전통을 깨고 있나

지난 5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황석영 작가의 기고문 '개똥폼 잡지 말고 현실의 저잣거리로 내려오라!'는 적잖은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황씨는 지난 1월 22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새정치질서 만들기에 총대 멜 생각 있다"며 정치참여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뻘밭' '진흙탕'에 비유되는 현실정치판에 작가가 직접 나선다는 것은 별 실효성도 없거니와 다분히 작가적 오명을 각오해야 할 일이기에 오랜 세월동안 하나의 금기사항이었다.

이러한 금도를 모를 리 없는 황 작가가 공개선언한 현실정치 참여 문제는 지금 문단과 지식사회에서 찬반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왜 하필 명망있는 작가가 자신에게 문학적 오명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을 감행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점이 든다.

물론 작가 황석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역시 황석영답다'라며 통큰 행동주의적 태도에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엇갈리는 반응도 있다.

작가 조정래씨는 지난 1월 29일 장편소설 <아리랑> 100쇄 돌파 기자간담회에서 "작가와 지식인은 정치인들을 더 많이 감시할 책무가 있다, 작가가 현실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자유지만 정치세력에 들어가 부화뇌동하는 것은 자기파멸의 길인 동시에 문학에 대한 배반이다"고 황씨를 비판한 바 있다.

김용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은 어느 사석에서 "총이 있어야 총대를 멜 것 아니야, 구랏빨만 가지고 어떻게 총대를 메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문단의 전통에 크게 어긋나는 황석영씨의 정치적 발언은 차기 정권 창출 문제에 자신의 명망성을 내걸어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사표현인 바, 이는 문단 사회는 물론이거니와 현실정치권에도 향후 적잖은 파장을 예고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역시 황석영답다" 혹은 "총도 없이 무슨 총대를"

▲ 2001년 8·15민족통일대축전에 참석한 소설가 황석영씨.
ⓒ 노순택
황석영씨는 현재 유럽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이다. 약 2년 동안 영국에 머물다가 지난 2006년 초부터 미라보 다리가 보이는 프랑스 파리 센 강변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한국의 정치현실과 좀더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써 코리아의 문제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창작활동에만 전념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던 그가 느닷없이 귀국하여 여야를 불문하고 여러 현실정치인, 명망있는 인사들과 만나는 회동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 배경이 황씨 말마따나 '작가로서 얼룩을 튀는 것을 감수하고' 행하는 순교적 행동인지, 아니면 특정 정치집단의 음모에서 나온 행동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리고 진보적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황씨가 지난 3주 동안 보수언론을 대표하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사주와 잇달아 회동하여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하다.

물론 아무 이유 없이 회동하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밑그림과 논리, 현실정치판의 새판짜기에 나선 그 이유를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국의 명망있는 작가가 한국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3개 언론사 사주와 잇따라 회동한 사실만으로도 이는 쇼킹한 뉴스다.

이 3주 동안 종횡무진으로 여야 인사와 사회단체 인사, 각계 지도급 명망가들과 회동하였다는 사실을 나는 작가 황석영씨에게 직접 전해들은 바 있다. 말하자면 황씨 표현대로 '개똥폼' 잡고 있는 여러 인사들과 오찬과 만찬을 하고 그리고 새벽 4시까지 인사동에서 통음을 마다 않으면서 자신의 주머니돈을 써가며 정치철학을 피력하고 다닌 것이다. 평소 그를 아는 문학예술계 인사들은 모두 그 이유를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5년간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이후 현실정치판에 기웃거리기를 거부한 그의 성품과 행동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느닷없는 돌출행보에 커다란 의아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무슨 까닭일까?

이번에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고문의 내용을 보면 황석영 작가가 살아온 인생역정과 글쓰기의 변화과정 그리고 작금의 현실정치 문제에 대해 이러저러한 진단과 함께 '87체제의 종언'을 부르짖고 있다.

이어 '우리 다함께 87체제 이전으로 돌아가자. 돌아가자 벗들이여. 그때로!' 라고 호소하면서 그의 정치적 밑그림을 설파하고 있는데, 이는 1970~80년대 민주세력들이 현실적, 정치적 소속 관계를 떠나 대동단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가 주창하는 새판짜기의 밑그림을 보자.

"큰 선은 보수나 진보로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세력을 줄이고 통합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중도라는 깃발을 들어보이는 것이다. 현재 우리 앞에 공의 핵심을 뚫는 것이 중도"라고 한다. "그 프레임 안에 누가 들어오든 살아서 온다면 그에게 깃발을 쥐어주리라"며 올 대선 정국에 그에 걸맞는 인물을 선정하여 후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황석영씨는 누구든 '중도'라는 프레임 안에 들어온다면, 그가 한나라당 후보든 그 누구든 간에 당적을 따지지 않고 지지하겠다는 의도를 내보인다.

조정래에 대한 발언은 사실무근의 음해

황석영씨가 <오마이뉴스>에 기고문을 쓴 또다른 목적은 현재 민족문화예술 진영에 뜨거운 감자로 대두된 '민족문학작가회의' 명칭 변경 문제에 대해 견해와 심정을 밝히고자 함이다. 그는 명칭 변경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을 대변하는 발언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기고문이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명칭 변경 보류를 힐난하면서 명칭 변경을 반대하는 회원들을 비판하기 위함임을 우린 알 수 있다. 또한,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문단 사람이라면 그가 언급한 작가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끔 적시하면서 이들에 대해 인격모독에 가까운 발언을 하고 있다.

황씨는 기고문에서 "나는 큰목소리를 내던 내 동년배 작가를 지난 위기의 시대, 어느 현장에서도 어느 글귀의 서명란에서도, 심지어는 회비목록에서조차 본 적이 없다" 등등 작가 조정래씨에 대해 사실무근의 음해성 발언을 하였다. 왜 그는 동년배이자 동국대 동문인 작가 조정래씨에 대해 이러한 언사를 했나.

조정래씨는 최근 민족문학작가회의 명칭 변경에 대해서 "시대는 변해도 민족이라는 울타리는 여전하다, 민족은 낡은 개념이 아니다, 지켜야 할 가치까지 폐기한다는 것은 신사대주의다"라며 명백한 반대의사를 표명한 적이 있다.

나는 지난 시절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간사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군사독재 시절 조씨가 사무국 살림에 적잖은 보탬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조씨는 주변 문인들에게 술과 밥을 사고, 누구보다 회비를 꼬박꼬박 잘 냈다. 김영삼정권이 안기부법과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킬 때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밤샘농성을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석영씨는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고 비꼬고 있다.

또한 황석영씨는 기고문에서 조정래씨를 '긴급조치 시절 문협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구속문인 석방운동에 비협조적인 인물'로 묘사했는데, 이는 명백한 사실 오류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당시 문협의 사무국장은 조정래씨가 아니었다.

노벨상을 꿈꾸는 사람은 고은인가, 황석영인가

▲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규탄 집회를 마친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문인들이 '한국군 파병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좌로부터 정희성, 구중서, 고은, 황석영, 강형철.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와 함께 황씨는 기고문에서 '노벨상' 운운하면서 지난 2년 동안 외신을 통해 한국의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된 고은 시인을 겨냥한 여러 발언을 하고 있다.

황씨는 기고문에서 "노벨상 캠페인 따위는 그야말로 아이들 말로 쪽이 팔려서 스스로 벌인 적이 없다"고 '초연'한 태도를 보이면서 "노대가들이 늙어가면서 글을 쓰는 행위를 무슨 하늘이 내려준 형벌처럼 엄살을 떨고 과장하는 것에 대해 구토를 느낀다"고 과도한 혐오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먼산에는 거짓이 많다"라고 고은 시인의 시 구절을 인용하다가 "모두들 개똥폼 잡지 말고 현실의 저잣거리로 내려오라!"고 일침을 가한다.

말하자면 한국정치판의 새판짜기를 위해 화해와 상생, 중도와 통합의 이념을 부르짖던 황석영 작가가 기실은 자신의 생각과 입장에 반대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롱과 힐난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나뿐만이 아니라 문단 내부에서는 황씨가 최근 3년 동안 수억원의 적잖은 돈을 써가며 영국과 프랑스 등지에서 생활하면서, 육십이 넘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어학연수 과정을 다니고 그 곳 출판계 인사들과 활발한 인적 교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물론 배움에 있어서 나이를 따진다는 것은 상식 밖의 유치한 일이기에 나는 그것을 비판하진 않겠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잇따른 유럽 체류의 목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갖고 있다.

황씨는 "세계체제의 작가로서 나 자신과 한반도로부터의 거리는 코리아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기 위함이다"고 말한 바 있는데, 정말 외국에 살아야만 한국을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기는 것인지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의아할 뿐, 그 속사정을 잘 이해 못한다.

그러기에 지난해 3월 MBC가 황씨의 유럽 체류에 대해 "우리나라의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자이고, 이 상을 유럽국가인 스웨덴이 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행보"라고 보도한 것은 여러 시사점을 안겨준다.

그러나 황석영씨는 짐짓 노벨문학상에 초연한 듯 말하고 있다. 이번 기고문에서 "노벨상에는 몇 가지 도그마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딛고 있는 대지와 구체적인 현실에서 애매모호하게 멀어지게 하는 점이다"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문단 실정에 어느 정도 알만한 사람들이라면 그가 왜 몇년째 유럽에 상주하면서 그 곳에서 자신의 여러 저서들을 잇따라 번역, 출간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다.

'화해' '통합' 부르짖으며, 입장 다른 문인들은 폄하

나는 우리나라 시인, 작가들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다면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의와 비탄에 빠진 한국문학의 부흥을 위해 기꺼운 일이 될지언정 비판과 조롱거리는 결코 아니리라. 그 수상자가 고은이면 어떻고, 또 황석영이면 어떤가. 또한 한 작가가 자신의 발품을 팔아가면서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찬사를 받을지언정 결코 비판받을 일 또한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특정 작가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그의 발언을 나는 지지할 수 없다. 나는 황씨가 고은 시인의 실명을 언급하면서 문인들이나 기자가 있는 사석에서 "아무개는 노벨상을 위해 전세계로 오가는데 꼴불견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직접 들은 바 있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이 기고문도 누구를 겨냥한 발언인지 알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다.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선배문인, 그의 표현대로 '노대가'의 글쓰는 자세에 대해 무슨 하늘이 내려준 형벌처럼 엄살을 떨고 과장하는 것에 구토를 느낀다'고 거칠게 폄하하는 의도가 과연 무엇인지 묻고 싶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황씨가 인격모독에 가까운 언사를 퍼부어댄 두 사람의 문인은 '민족문학작가회의' 명칭 변경에 대해 반대 의사를 명백히 표명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한국정치판의 새판짜기를 위해 화해와 상생, 중도와 통합의 이념을 부르짖던 작가가 기실은 자신의 생각과 입장에 반대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롱과 힐난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이게 최소한, 작가로서의 기본적 양식을 갖춘 발언인가. 지난 40년간 한국문단을 대표해온 명망있는 작가로서 합당한 태도라고 말할 수 있는가.

"손학규를 끌어오면 승산있는 게임이 될 거야"

▲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총회장. 양성우 시인이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소설 김정한씨가 회장으로, 시인 고은, 문학평론가 백낙청씨가 부회장으로 피선됐다.
ⓒ 민족문학작가회의
지난 1월 하순 민족문학작가회의 총회가 열리기 사흘 전 나는 인사동의 한 술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몇 년 만에 황씨를 보았고, 황씨가 기어이 합석을 권유하는 통에 함께 자리를 했다.

그날 황씨는 <중앙일보> 사주와 만나고 오는 길이라면서 그 신문사 논설위원들, 직원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특유의 목소리로 자신의 장기인 넉살과 우스갯소리를 끝없이 선보이고 있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국 정치현실 변화를 위해 올 대선정국에 총대를 메겠다"고 발언하였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사비를 털어 최근 보름 동안 수많은 정치권 인사와 진보 진영, 시민운동권의 여러 명망가들을 연일 몇 사람씩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 손학규도 만났고, 지난 70~80년대 나와 인연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 그리고 최근에는 조중동 3개 언론사 사주들도 만났어. 아름다운 재단의 박원순이도 만나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살지 마라'고 충고도 했지. 박원순에게 내가 지금 큰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대선 후보로 네 이름이 살짝 거론되면 이름 좀 팔라고 했어. 그랬더니 그러마 하고 수긍하더라. 현재의 정치구도가 깨어져야 해. 예컨대 손학규를 범여권 후보로 끌어오면 우리에게 승산 있는 게임이 될 거야."

나는 황씨가 지난 1970년대부터 손학규씨와 절친하다는 것을 익히 알던 터라 그의 현실정치 선언이 다름아닌 현재 대권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는 손학규씨를 염두에 둔 발언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나라당 후보군 중에서 그래도 상대적으로 진보성향을 가진 손학규씨를 끌어오는 것이 범여권 진영에서 하나의 방법론으로 이미 몇 차례 언론지상에서 오르내리고 있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바 있는 '외부선장론'을 한번 상기해보라).

이 때문에 나는 이번 기고문에서 황씨가 지난 70년대와 80년대 민주세력의 대동단결을 촉구한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킹메이커로 나서겠다고 한 것이 누구를 염두에 둔 것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 인사동에서 나는 김근태나 정동영에 대해 들은 바 없고, 손학규라는 이름을 두세 차례 들었기 때문이다.

손학규씨가 운동권 경력을 지녔고 한나라당 여타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성향이라고는 해도, 나는 아직 손씨가 남북 문제 등과 관련 한나라당의 보수 노선에 크게 반기를 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없다.

만약 손씨가 당적 변경 가능성이 있다면 속히 안개 속에서 걸어나와 입장을 천명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내심 범여권 후보를 겨냥하면서 몸값을 올리기 위해 일시적으로 한나라당에 잔류한다면, 대권쟁취를 위한 하나의 편법이다.

조중동 3개 언론사 사주들을 만난 까닭?

또한 그날 황씨는 그즈음 조중동 3개 언론사 사주와 만났다는 사실을 여러 사람 앞에서 말했다.

나는 진보진영의 대표적 작가로 일컬어지는 황씨가 보수언론사 대표들을 만났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황씨가 몇년 전 '동인문학상' 문제를 둘러싸고 <조선> 보도 태도에 반기를 든 칼럼을 써서 '안티조선' 작가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후 그가 <조선>과 화해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명망높은 작가라고 해도 조중동 3개 언론사 사주를 잇따라 회동했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무슨 일로 만났는지 묻자 황씨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중앙일보> 사주를 만났고, 얼마 전 <조선> <동아> 사주도 만났지. 한국문학의 발전, 아니 세계문학의 부흥을 위해 큰 그림을 한번 그려보라고 권유했지. 예컨대 노벨문학상 상금이 현재 100만달러인데, 당신들이 나서서 300만 달러의 상금을 주면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프랑스의 르 끌레지오 같은 작가를 제1회 수상자로 하고, 나를 2회 수상자로 한다면 노벨문학상에 필적하는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 권했지. 그러면서 나는 <조선> 사주에게 내가 이름팔 일이 생기면 이제 글을 써주겠다고 했어."

'안티조선' 작가로 세간에 알려진 황씨가 <조선>에 자청해서 기고문을 쓰겠다는 말에 나는 귀가 번쩍 열렸다. 그렇다면 작가로서의 그의 용기에 박수를 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또한 기고문에서는 노벨상 따위에 매우 초연한 것처럼 보였던 황씨가 조중동 3개사 사주를 만나 이런 어마어마한 발언을 했다는 사실에 내심 크게 놀랐다. 또 1·2회 수상자 명단까지 제시했다는 그의 말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300만 달러라면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0억이 넘는 큰 돈이다. 한국 문학상으로 최고 상금이 현재 1억원인데 30억이라면 명실상부하게 세계 최고의 문학상에 걸맞는 상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는 뉴스를 통해 미국 CIA가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도록 배후조종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런 음모로 이제 조중동의 주도로 세계 최고의 문학상이 제정된다면 이것은 과연 누구의 배후조종이 될 것인가.

어느 한 작가의 의도대로 문학상이 운영된다면 그게 공정성 있는 세계적인 문학상이 되겠는가고 강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한국문학계도 문학상에 얽힌 여러 좋지 않는 추문이 오가는 판인데 이제 그 어떠한 문학상을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조선>에 이름 팔겠다"는 '안티조선' 작가

아울러 이날 황씨는 '민족문학작가회의' 명칭 변경 문제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이번 기고문에서 "총회 전날에야 명칭 변경 문제가 안건인 줄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그의 명석한 기억력에 대해 알고 있는 나로서는, 바로 얼마 전의 일을 날짜까지 틀리게 말한다는 건 뭔가를 숨기기 위한 의도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즈음 여러 신문은 '민족문학작가회의' 명칭 변경에 찬동하는 취지로 1면 톱기사는 물론 스트레이트 기사·사설까지 써대던 때였다. 이 문제가 민족문학작가회의 총회에서 어떻게 처리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된 시기에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인 선배작가 황씨는 이날 후배문인들에게 명토박듯 말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명칭을 바꾼다는 얘기를 들었다. 잘한 일이야. 세계가 인터넷으로 하루 생활권에 들고 전세계의 모든 상황과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파악되는 이 세계체제 시대에 '민족문학'이라는 간판을 달고다니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 난 이번 총회날 지방에 갈 일이 있어 참석하진 못하지만 총회날 민족문학작가회의라는 명칭에서 '민족문학'이라는 글자를 떼어내지 못하면 이 단체를 '탈퇴'할 거야."

그러면서 황석영 작가는 문학평론가 백낙청씨도 이미 이 문제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나는 굳이 언론과 민족문화 예술계에 이슈거리를 만들어가면서 서둘러 '민족문학' 명칭을 폐기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기에 황씨의 발언은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문제가 황씨가 지난 30년 동안 활동해온 단체를 과감히 '탈퇴'할 만큼 중대한 사실인지 아직도 납득 못하고 있다.

황씨는 이번 기고문에서 '민족'이라는 명칭을 떼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민족의 헛것에서 놓여날 때에 통일을 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설파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민족'이라는 헛것에 놓여나지 못해 통일을 하지 못한 것인 양 주창하고 있다.

그러나 회원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사무총장을 비롯한 몇몇 집행부 인사와 특정 작가의 의도대로 '조직의 탈퇴' '사무총장직 사임'까지 운운하면서 회원들의 의사를 강요하는 태도와 자세는 황석영씨 표현대로 '선진 민주사회'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와 다른 의견이 있기 때문에 '너희와 이제 한집에서 같이 놀지 못하겠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는 강변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그 자리에서 문단의 원로인 고은 선생과 동년배인 조정래 작가에 대해 황씨가 비꼬는 투로 말하는 걸 듣고서 결코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아마 거기 모인 김준태 시인 등 여타 문인들도 씁쓰레했을 것이다.

특히 문단 사람들만이 아니라 유력 신문사의 논설위원도 함께 하고 있는 자리에서 특정 작가를 거명하며 몰아붙이는 것을 보고, 나는 이러저러한 생각들로 우울하고, 착잡했다. 이 때문에 나와 김준태 시인은 일산행 합승 택시에 작가 황석영씨와 동행했지만 거의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 헤어졌다.

황석영 기고문은 자기 모욕의 우울한 행태

▲ 이승철 시인.
선배작가 황석영씨의 언행에 대해 새카만 후배시인이 감히 이러쿵저허쿵하는 것은 나로서도 작가적 명예를 걸고 하는 발언이다. 나는 시인·작가들이란 예민하고 날카로운 존재들이어서 구태여 어떤 사안에 대해 일일이 선배작가들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사물의 이치를 파악할 수 있으며, 또한 어느 작가가 과연 작가로서 품위를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고명한 작가가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위해 자신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특정작가를 공개석상에서 매도한다고 해도 그 특정작가에게 만약 고매한 인품과 작품적 성과가 있다면 그게 손상될 까닭도 없으니, 그저 침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들이란 상처받기 쉬운 존재여서 한 마디 말이 던져주는 폭력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나는 이 글을 마치면서 인간으로서의 품격과 작가로서의 자존을 생각해 본다. 글 또한 사람이 쓰기 때문에 인간성과 정비례할 수는 없을지라도 인간성과 반비례하는 작가라면 그 글이 아무리 좋다고 해서 작품만을 따로 떼어내어 평가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직 진실만이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다.

더구나 혼돈과 카오스의 시대에 '중도'와 '통합'의 정신을 이야기하며 새정치질서 만들기에 총대를 메겠다고 할 때는 그 순수성에 걸맞는 인품의 소지자가 앞장설 때라야 비로소 대중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일국의 시인·작가로서 혹은 당대 문제를 나 몰라라 하지 않는 지식인으로서 최소한의 금도를 지키며 활동하는 것을 '개똥폼' 잡는 것쯤으로 치부한다면 과연 그러한 논리가 한국의 정치발전에 얼마만큼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이는 명망의 과실로 명예와 부귀를 누려온 작가 자신의 문학에 대한 자기 모욕에 불과할 뿐 아니라 한국문학의 한심한 수준과 내용을 그대로 까발려 자백하는 우울한 행태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한 마디 하겠다.

작가 황석영은 진실의 광장으로 나와라!

덧붙이는 글 | 이승철 기자는 195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83년 시 전문무크 <민의> 제2집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세월아, 삶아> <총알택시 안에서의 명상> <당산철교 위에서> 등을 펴냈고, 산문집으로 <58개띠들의 이야기>(공저) 등이 있다. 현재 광주전남민족문학작가회의 부회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겸 사업단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국장, 시 전문지 <시경>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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